깨닫게 된 모든 이들은 빛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잠자고 있는 자여, 깨어나서 죽은 이들로부터 일어서라. 그러면 그리스도가 네 얼굴에서 빛날 것이다. 신의 현명한 자녀로서 행동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라. 그리고 네 시간의 대부분을 "지금" 안에서 행동하라. 왜냐하면 지금이 곧 영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생각할 때 너희는 영원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영원한 지금 안에서 생각하라. 왜냐하면 너희는 오직 지금 안에서만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를 얼마나 더 쉽게 풀이해야 너희가 이것을 분명하게 이해하겠는가. - 지금이 곧 영원이다. 이로써 이번 강론의 마지막 주제를 이야기할 때가 왔다, "기도", 기도는 나에게 생명의 호흡이었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기도는 모든 차원에서, 모든 세계에게 가장 강력한 힘이다. 기도의 힘은 기도와 응답은 하나라는 사실에 있다. 너희와 아버지가 하나라는 깨달음 속에서 기도하라. 그러면 아버지의 뜻이 네게서 이루어질 것이다. 신께서 머물고 계신 너희의 신성한 중심 사원으로 들어가라. 나는 거기서 네 앞에 나를 드러낼 것이다. 나는 네가 이 강력한 무기를 그동안 무지하게 사용하지 않은 것을 보고 기뻐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 형제는 어렸을 때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너희에게 그의 삶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들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어릴 때부터 우리는 그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매로 태어났으며 꽤 어릴 적부터 얼굴을 맞대고 나를 볼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겪은 수많은 경험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는 대사들이 자신을 통해 말할 수 있는 영매가 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히말라야에 갔었다. 그리하여 나는 직접 그를 통해 내려올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그가 세상으로 나갈 때가 되었다. 그는 건강한 몸의 축복을 받았고, 그의 영은 젊고 활기차며, 우리는 앞으로 올 긴 시간 동안 그가 몸을 입고 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가 이 땅 위에서 할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도가 분리의 그릇된 생각과 함께 퍼져나간다. 그리고 신은 저 먼 곳에 떨어져 있다는 믿음은 교회와 예배당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분은 손과 발보다도 가까이 계신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조차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기도가 분리의 진동과 뒤섞여서 본래의 가치만큼은 되지 못할지라도, 너희가 돕고자 하는 사람을 본래 원했던 만큼 도울 수는 없게 되더라도, 이러한 기도조차도 사라지지 않는다. 전능하신 이께서 머물고 계시는 골방에 들어가서 신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아라. 그밖에 다른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라. 긴장을 내려놓고 의심하지 말고 신에게서 난 유일한 아들, 그리스도의 승리를 보아라. 너희가 돕고자 하는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가 이미 승리했음을 볼 수 있을 때, 그것은 곧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나에 대한 기록 중에 치유에 대한 기록들이 있는데, 너희들 중 대다수가 그 기록을 읽어보았을 것이다. 그 치유들은 모두 같은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을 지닌 힘을 알아보고 깨닫는 방법으로 치유는 일어났으며, 몸은 이에 대해 말할 바 없다.
너희가 고요한 가운데 확신에 차서 그리스도로부터 힘차게 이야기할 때, 그릇된 조건들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신은 모든 곳에 계시기에, 너는 고통받는 영혼들을 언제라도 신의 손길이 있는 곳으로 데려갈 수 있는 것이다. 너희는 참된 기도의 가치를 결코 헤아릴 수 없다, 영적인 실재를 담아내기에 말은 부적절하다. 너희 힘든 짐을 바깥에 있는 신에게 내던지고, 결과를 기다리면서 의심하는 일은 하지 말라. 신은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며, 기도와 응답은 하나로 있기 때문이다. 신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통해 살아있는 유일한 생명이다. 신은 실재이다. 필멸의 감각은 그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안은 바깥이 되어야 하며, 바깥은 안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한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저를 알고 계십니다. 저는 당신께서 홀로 살아 계시며, 유일한 창조주 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저와 하나입니다. 제가 당신께 기도할 때, 제 기도가 이미 이루어졌음을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은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으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마치도록 내보내졌기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너희 가슴 안에서, 그리고 가장 멀리 있는 그곳에서도 신을 알 때 너는 사방에 흩어져 있는 모든 인류와 하나가 된다. 모두를 향한 사랑의 생각을 품고 살아라. 그때 너희의 삶은, 모두의 아버지인 신으로부터 나와 모두에게로 끝없이 나아가는 하나의 끊임없는 기도가 될 것이다. 나의 축복이 항상 언제까지나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나의 평화와 사랑을 너희에게 남기노라 침묵 축복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이 지금 땅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있기를.
(기록자의 증언 : 모든 이는 강력한 힘을 느꼈으며, 강당은 지상의 것이 아닌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형제의 얼굴이 밝게 빛나는 가운데 우리는 주의 얼굴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주는 떠났으며, 주께서 형제를 통해 내려오셨던 그 장소에 그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강론이 나를 통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설명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그 일에 비해 매우 미흡한 나의 의견만을 더듬거릴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 나에게 들었던 느낌에 대해서는 독자들에게 말할 수 있다.
이 말씀이 있기 몇 달 전에 나는 밤에 잠을 자고 있는 동안, 내 안에서 말하는 분명한 음성을 듣곤 했다. 나는 꿈꾸고 있다고 생각 했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 음성이 내 자신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은 실제로 들린 음성이었다. 참 놀라웠던 점은 나는 이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동시에 그것이 말하는 바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은 후, 때가 차면 나를 통해 특별한 강론이 주어질 것이라고 음성이 말했다. 그 음성은 그 강론에 참석할 사람들을 모든 선정하고 나서 정해진 날에 그 강론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 음성은 그 강론이 연달아 지속되는 기간 동안 아무도 들어와서는 안 되며, 그 강론들은 잊혀지지 않도록 속기로 기록 되어야만 하고 유선 녹음기로 녹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첫 강론이 시작되는 밤이 되었을 때, 나는 강당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1000 Volt나 되는 전기가 나를 관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는 상당히 염려했다. 엄청난 힘과 나를 훌쩍 넘어서는 높은 의식을 느꼈지만, 의식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의식과 나는 설명 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방식으로 함께 연결된 듯했다.
그때 나는 내 목소리를 들었지만, 그 목소리는 큰 위엄을 갖고 말했으며, 절대적인 앎을 지닌 존재의 음성으로서 나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나는 나를 통해 말해지는 것들을 매우 주의 깊게 들었으며, 전에 가져본 적 없던 명확성을 갖고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론이 진행되는 동안 사용되었던 언어는 전체 시간 동안 단 한번의 흠도 없었고, 단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놀랐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의 두뇌도 그런 일을 따라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련의 강론들은 일주일에 1번씩 14주 동안 반복되었다.
녹음기에 녹음된 강론을 듣고 나서야 나는 뭔가 기묘하고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경이로웠으며, 나는 아직도 그 놀라운 일에 대해 경이로워 한다. 그때 말해졌던 내용들을 당신도 이제 책으로써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특권을 받았던 사람들이 느꼈던 위로와 만족을 당신도 느낄 수 있다면, 그 말들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 * * * *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증언했던 소감들 중 일부가 다음 페이지에 실려 있다.
맥도날드 베인
맥도날드 베인 박사를 통해 이루어진 강론
Miss Bagot-Smith가 쓰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변모의 경험
1948년 봄에 남아프리카 요한네스버그에 있는 ‘에스콤 하우스’라는 곳에서 강론이 연달아 이루어졌다. 그 강론을 들을 수 있도록 선정된 사람들에게 그 강론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그 강론을 듣게 된 사람들은 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눈에서 베일이 찢겨지는 듯 했으며, 우리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주의 참된 현존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강렬한 현실이어서 그 현존은 결코 희미해지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렬하고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때 이후로는 언제나 우리 마음을 영적인 것들로 드높일 때, 어느 순간에 갑자기 주께서 우리 옆에 와 있다는 것과, 아버지의 힘은 내면에 있으며,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강론들을 그토록 놀랍게 만든 것은 실제로 그가 하는 말이 아니라, 말씀이 전해지는 방식이었다. 그 말씀들은 우리 기억 속에서 영원히 울리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진리가 말없이 우리 앞에 드러났다. 어떠한 묘사도 주(主)의 현존과, 그분을 통한 아버지의 -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세계의 그 어떤 것 보다 분명한 증거 - 사랑에서 오는 엄청난 힘을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강의에 참석 했을 때, 맥도날드 베인 박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친절하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잠시 침묵 속에 있다가, 갑자기 그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듯 했다. 그리고 갑자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짧고 날카로운 숨을 들이쉼과 동시에, 바로 그 몸에, 그러나 완전히 다르게, 주의 현존이 있었다. 그 강사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고 몇 년 동안 존경했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되어 서 있었다. 그 변화는 너무나 놀라워서 우리의 마비된 감각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그것이 현실임을 알았다. 우리 앞에 있는 그 사람은 본래의 그보다 현저하게, 훨씬 더 크게 보였다. 말로는 그 엄청나게 놀라운 진리를 결코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다. 우리는 일상의 감각을 넘어서는 그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우리 앞에 있던 그 자리에는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근엄하고 권위 있으며, 빛나는 눈과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한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우리 앞에 똑바로 서 있었으며, 깊은 장엄함으로써 그분께서 주로 쓰시는 말들로 이렇게 인사를 하셨다.
“나의 평화를 너희에게 전한다.”
그분께서가 말씀을 계속 하심에 따라 우리는 더욱 이해하게 되었고, 인사말은 “나의 평화와 사랑을 너희에게 전한다.”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나의 평화와 나의 축복을 너희에게 전한다.” 라고 바뀌었다. 그는 오른손의 두 손가락을 들어 올리시면서 축복을 하셨는데, 미천한 우리의 가슴은 그 장엄한 모습에 고개를 숙였다.
고요함이 강당 안에 가득 퍼졌다. 그 고요함은 따뜻한 치유의 기운이 우리 몸을 통과해서 흐르는 듯 했고, 파르르 떨리는 그 기운이 흐르면서 치유가 함께 일어났다.
강론을 한 차례 두 차례 계속해서 듣는 가운데, 우리의 진동이 높아지고 이해가 명확해지는 것과, 우리가 일상의 삶을 넘어선 차원으로 들어올려지고 있음을 느꼈다. 우리의 이해에 새벽이 찾아오면서, 우리는 지금껏 들어본 그 어떤 것 보다 위대한 진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그 말씀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제야 우리는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갑자기 번개 같은 진리가 우리의 마음에서 번쩍였다. 마침내 주께서 그토록 오래 전에 처음 말씀하셨던 것의 힘을 알았다. 그리고 그분의 진리는 우리에게 실재가 되었으며, 우리 존재로 녹아들었으며,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황금 같은 고요 속에서 그 진리를 간직할 것이다.
모든 단어가 유유하게,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마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깊은 침묵의 연못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보석 혹은 물방울 같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각각의 문장은 모두 완벽했으며, 그는 생각하기 위해 멈추는 일 없이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점차 우리는 참석한 사람들이 우리 말고 더 있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그러나 놀라지 않고 알게 되었다. 우리 가운데에는 먼저 세상을 떠나간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이 있었으며, 그들 너머에 원이 층층이 계속 넓어지면서 거기에는 의식이 보다 높은 수천의 존재가 늘어서 있었다.
주(Master)께서는 모두를 대상으로 말하시곤 했으나, 생명의 깊은 의미에 관해서는 각자가 이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하시곤 했다. 육체를 갖고 있는 우리를 “너희 필멸의 의식”이라고 부르셨으나, 최근에 몸을 떠나 지각의 폭이 넓어져 보다 영적이고, 우아하고, 무한히 자유로운 기쁨의 차원을 아는 이들에게는 그분의 눈을 들어 직접 말하셨다. 그리고 주께서는 가장 높은 완벽함에 가까이 이른 존재들에게 말씀하시는 동안 우리는 경외심에 가득 차 그 말씀을 들었다. 우리보다 훨씬 의식이 높은 이들부터 우리보다 훨씬 의식이 낮은 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존재들이 늘어서 있음을 우리는 느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주에게 묶여 있었고, 아무도 움직이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우리의 육체가 우리 감각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된 듯 했다. 우리의 몸은 그저 멈춰 있었으며 마치 접착제로 꼼짝 못하게 붙여진 듯 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주께서는 우리를 차례대로 축복 하시곤 했다. 먼저 필멸의 의식인 우리를,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위에 있는 진보된 영들에게. 그분의 음성은 그들의 확대된 지각력을 느끼면서 친밀감이 묻어났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뿌리 깊은 분리 의식을 느끼셨고, 그들에게는 위안과 기쁨인 통일성을 감지하셨다. 그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작게 느껴졌는지! 얼마나 하찮게 느껴졌는지! 정말 작고, 낮으며, 거의 갓난아이처럼 느껴졌으며, 우리는 여전히 신비로 남아있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거기에 손을 뻗치고 있다. 그러나 점차 우리 자신의 마음과 자존심은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전에는 기가 죽어 뒷걸음 쳤던 상황들을 어느새 직접 이끌어 나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전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확신과 권위가 있는 음성이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 또한 더욱 크게 자라고 있으며, 영적 자아가 육적 자아보다 강해진 듯이 더욱 가볍게 밟고 지나가는 듯하다.
우리들 중 어떤 이들은 강연자 뒤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채를 보았다. 보랏빛과 황금빛의 물결이 너무 선명해 눈이 상할 정도였다. 어떤 이들에게는 비스듬히 세워진 십자가가 보였고, 어떤 이에게는 그의 머리 꼭대기로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하얀 광선의 굵은 기둥이 보였다. 반면에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서 긴 적갈색 머리와 수염을 한 모습을 보았으며, 그분의 강연이 진행될 때 천상의 음악과 벨 소리를 들었다.
주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전하셨던 오래된 메시지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를 보이고자 왔다.”의 의미가 우리에게 점점 더 명확해졌다.
전에 우리는 그 말을 얼마나 자주 들었던가. 우리의 감각은 가려져 있었고, 우리는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 예수에 대해, 우리 같은 인간이라고 배웠다. 또한 우리와는 다르게 그는 고도로 섬세하고, 발달했으며, 깊이 통찰하고, 내면의 그리스도성의 경이를 자각한, 신의 살아있는 아들이라고 배웠다. 주 예수와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는 한 존재였다. 그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자신을 인식하고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고 모든 것에 대한 지배권을 가졌다.
말씀이 시작될 때 멀리서 보면 그분의 음성은 항상 엄숙하고 근엄했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확신과 확고함을 갖고 말하는 위대한 지도자와 같았다. 그러나 계속 그분이 계속 말씀해나가시면서, 그분의 음성은 점차 우리에게 따뜻하게 와 닿았고,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반응하고 그분의 영에 대해 점차 이해해 나가자 그분은 기뻐하셨으며 그분의 눈은 사랑으로 빛났다.
강론을 듣고 있는 이들의 숫자는 점점 더 많아졌다. 때때로 그분께서 아버지에 대해 말씀 하실 때, 사랑의 감정으로 압도되곤 하셨다. 그분의 음성은 희미해지곤 했으며, 우리를 완전히 잊은 듯 했고, 갑자기 그분은 아버지의 사랑에 자신을 잃어서 마치 우리 사이에 실제의 존재가 있는 듯 했다. 그분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있는 존재에게 말했다. ‘숨결보다 가까운’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그분은 신격(Godhead)의 영광에 감싸인 채 거기 서 있었다. 아버지께 입술을 작게 움직이며 말씀하시곤 했는데, 때때로 우리는 그 말을 들었다.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께서 제게 주신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이에 대해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잠시 말을 멈출 때 그분의 얼굴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부드러운 사랑으로 빛났다. 순수하면서도 황홀한 빛이 그의 용모를 변모시켰고, 그 강렬함에 우리의 눈은 멀 정도였다. 우리의 눈은 그분의 얼굴에서 나오는 광휘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분은 마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거룩한 사랑의 성전에 들어간 것 같았다. 경외 속에서 우리는 아버지를 강렬하게,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듯이, 생생하게,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실재처럼 느끼면서 바라보았다. 그 느낌들은 희미해져갔지만, 그분은 그곳에 굳건히 힘차게 영광을 넘어서는 영광 속에 서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도 아버지를 알게 되었다. 활발하게 사랑으로 가득 찬 존재로서의 아버지, 수동적인 신격을 초월해 있는 아버지, 힘차게 이끄시며, 아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시는 아버지, 그분의 아들을 팔로 감싸고 있는 아버지, 황홀한 평화 속에서 아들을 보호하고 있는 아버지를 말이다.
그분의 현존을 통해 사랑이 빛났다. 그분의 현존은 우리 모두를 감싸고 있었으며, 치우치지 않고 모두를 같은 사랑으로 품으며, 우리에게 만지거나 볼 수 있는 것들을 넘어서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깨달을 것을 요구하셨다. 신이 살아 계시다는 진리, 아버지께서는 사랑이 넘치시고, 활동적이시며, 적극적이시며, 역동적으로 움직이신다는 진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와 어깨를 맞대고 함께 걸어가고 있는 고요한 동반자라는 진리, 신께서는 우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함께 문에 서서, 어떤 두려움도 우리 집과 삶에 들어올 수 없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진리를 말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오해할 여지가 없는 실재(實在,reality)가 되었다. 주께서는 말로써 그 깨달음을 전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이런 앎이 깨닫게 된 것은 그분 자신의 극도로 불타는 듯한, 아버지의 기쁨의 사랑 때문이었다. 우리가 아버지께 속하게 되자, 그분은 영원하고 무한한 평화와 행복의 영광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분께서 아버지께 다시 올라가실 때,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제자라 불렀으며 우리에게 이 말씀을 힘주어 남기셨다.
“나의 평화, 나의 사랑, 나의 축복이, 너희와 함께 하기를 바라며 두고 간다.”
그때에 우리는 그것이 마지막인줄 알았다. 우리는 다시 또 그 놀라운 강론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했다. 그런데 몇 개월의 사이를 두고 그분께서 두 차례 더 오셨다.
그때에는 그분께서 좀 다르게 말하셨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의 길을 따라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우리의 가슴을 살펴보라고 명하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셨다. “너희의 믿음도 이제 물위를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가?” 그리고 다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너희의 모든 생각과 행위를 결정하고 있는가?”, “너희는 다른 그 무엇보다 오직 사랑 안에서만 살고 있는가?
강론을 들었을 때보다 거의 성장하지 못했던 우리를 발견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웠는가. 그리고 그분께서 찾아오시는 영광을 누리기에 우리 자신이 얼마나 합당하지 못한지 알게 되었다.
* * * * *
맥도날드 베인 박사는 매 주마다 강론을 계속했다. 그리고 주께서는 자주, 우리가 눈으로 분명히 볼 수 있게, 강론 마지막에 우리에게 장엄한 축복을 줄 때처럼, 그 놀라운 순간에 그의 몸을 넘겨받으셨다. 그분의 변모는 완전했다. 가운을 걸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으며, 그의 주위에 빛나고 있는 밝은 빛을 통해 수염과 머리카락과 얼굴이 보였다.
“나의 사랑과 나의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기를.”
그렇게,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주께서 우리 옆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땅 위에서 경건하게 살아나간다. 그분께서 직접 당신의 제자라고 불러주신 우리는, 가슴속에 불멸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앎을 품고 지금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존재한다.
패터슨 부인이 말하다 : “주께서 박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말로 표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몇 초 동안 나는 지금껏 경험해 본 그 어떤 것과도 다른 고요함을 자각했다. 나는 마치 다른 세상으로 옮겨진 듯했다. 그때 나는 박사의 몸 전체 외관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분명히 다른 형태를 띠었고 그로부터 뻗어 나오는 빛줄기가 나타났다. 주의 얼굴이 분명히 나타났다. 강당은 힘과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후에 내 자신의 내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모든 것이신 살아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깊은 안도감을 느끼며 남아 있다.
길버트 부인, 세계를 여행하는 영매가 말하다 : “나는 30년 넘게 영매를 했다. 그러나 주의 변모와 같은 모습은 결코 본 적이 없었다. 그로부터 나오는 빛이 너무 강해서 나는 눈을 감아야만 했다. 또한 나는 그토록 분명하게 천상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강당은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들로 가득했다. 분명하고 뚜렷하며 흠도 없고 실수도 없는 그분의 음성을 한 시간이 넘는 동안 듣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었던가. 어떤 인간도 그런 강연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미스 S.A 와 E.A 아노트가 말하다 : 우리 생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주께서 스스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분의 얼굴은 분명히 빛났다. 빛나는 푸른 눈, 어깨에 흘러내린 적갈색 머리카락과 수염,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빛은 우리 눈이 감당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빛에 점차 익숙해졌으며 그분의 모든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 경험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며, 그것은 전율이 끼치는 경험이었다. 그분의 말씀은 완벽하게 이루어졌으며, 한 시간 넘는 동안 멈춤이나 실수가 전혀 없었다.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이것이었다. 주께서 박사에게 강림(降臨,overshadowed)하실 때 박사의 키가 몇 인치 커졌다. 변모에 대해 들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변모는 처음 목격하였다.
미스터 A. 토마스 진술 : 나는 엔지니어로서, 매우 실제적이며 비판적인 사람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는다. 영매(靈媒)라는 주제에 대해 많은 책을 읽었지만 나는 이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 두 눈으로 그토록 밝은 빛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눈을 감아야만 했다. 얼마 지나고 나서야 내 눈은 그 빛에 적응하였고, 그토록 많은 그림에서 보았던 주의 친근한 얼굴을 보게 되었다. 내가 본 것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떤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런 연설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박사가 훌륭한 강연자이기는 하지만 그와 같이 놀랍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아내와 장모도 이 강연에 참석했으며 나와 같은 것을 보고 들었다.
참석했던 사람들 모두는, 박사를 통해 주께서 이 강론들을 여러 차례 진행하시는 동안 그들이 겪었던 놀라운 경험들에 대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증언했다.
내용의 목차
강론 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신의 사랑
강론 2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왔다”
강론 3
그리스도는 너희 안에 (있는) 생명이다
강론 4
나는 참된 포도나무이며 너희는 그 가지이다
강론 5
내가 살고 있기 때문에 너희도 살게 될 것이다
강론 6
나를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우셨던
아버지의 영이 너희 안에 머물고 있다
강론 7
내 말은 하늘로부터 온다
강론 8
하늘나라는 (네) 안에 있다
강론 9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다
강론 10
가슴이 순수한 이들은 복되다 : 그들은 신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론 11
신의 영은 네 안에서 신의 그리스도로 체현되셨다
강론 12
이처럼 그리스도는 일어섰다
강론 13
너희는 나의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의 가지이다
강론 14
나는 착한 목자이며 내 양떼는 내 목소리를 안다
제 목 그리스도'진아'강론14...끝
나는 선한 목자이고 나의 양떼는 나의 음성을 안다.
나의 평화와 사랑이 너희와 함께 하도록 너희에게 전하노라.
1. 지금은 너희 모두에게 놀라운 시간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너의 진정한 영적 존재인 신의 그리스도로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너의 육체까지도 더 높은 수준의 법칙과 조화되게 될 것 이다. 너는 네 자신의 생각(Idea)이 될 수 없다. 너는 신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3. 위대한 진리는 아무도 신의 생각을 바꾸거나 변화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피어 나도록 계획 되었으며, 완성 되도록 계획 되었다. 아무것도 그것의 진행을 막을 수 없다. 신성한 생각의 표현을 막는 듯이 보이는 것도 방해물이 아니라 경험을 얻는 수단이다.
4. 세상을 두려워 말라. 왜냐하면 세상은 너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너의 내부의 그리스도의 능력이 세상을 이긴다. 모든 상황은 경험으로 보아야 한다. 그때에야 너는 그것들을 벗어나 강하게 된다. 너는 또한 너의 강함이 외부로부터 가 아니고 내부에서 온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 강함은 언제나 너와 함께 있다. 그것이 신의 그리스도의 힘이다.
5. 이것은 실패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는 네 안의 신의 그리스도를 인식함으로써 보다 높은 수준의 법칙으로 가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6. 네가 신의 그리스도를 유일한 실체, 영원하고 항상 존재하는 실체로 인식하는 즉시, 너는 이 진리의 인식에 의해 너를 통해 표현되고 있는 보다 높은 수준의 법칙으로 들어 간다. 이 진리가 인식 되지 않았을 때, 우리가 자연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에 모든 사람이 지배 받게 된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법칙은 자연 법칙을 대신한다. 그것은 자연에 대해 힘을 갖는다; 이것이 너의 내부에 있는 그리스도이다.
7. 신의 그리스도를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의 창조자로 인식 함으로써, 그리고 그를 통하여 모든 것이 생겨 났다는 것을 인식 함으로써, 지금 이 높은 수준의 법칙을 인식하라. 신과 함께 있는 말씀, 신인 말씀, 육이 되어서 너의 중심에서 나타내시는 말씀(this word became flesh manifesting in your midst), 이와 같이 신의 말씀은 네 안에서 그리고 너를 통해 활동 하신다; 이것이 끝도 시작도 없는 생명, 영원한 생명의 진리이다 (this is the Truth of the everlasting Life, the Life that is eternal)
8. 사랑과 이해로 네 가슴에서 말하라,” 당신의 뜻이 내게서 이루어 지소서(Thy Will be done in me)”그러면 그리스도는 네게서 활동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육으로 나타내신 신이기 때문이다.
9. 그리스도는 육으로 나타내고 있는 신이다. 나는 이것을 반복한다. 그것이 네 마음 속에 박히도록. 이 진리를 인식하고 깨달음으로서 엄청난 힘이 네게 생겨날 것이다 : 그리스도는 지금 네게 나타내고 있는 신이다.
10. 너의 가장 깊고, 높은 생각은 절대자의 의식에 있는 것이다.
11. 그러므로 생각이 높을수록, 그것은 더 많은 힘을 갖는다. 당신의 뜻이 내게서 이루어 지소서 ( Thy will be done in me ). 지금 내게서 나타내지고 있는 것은 신의 뜻이다. 하늘과 땅의 어떤 존재도 아버지의 뜻을 바꿀 수 없다. 그것은 지고한 것이다; 이러한 이해에서, 의식은 절대자의 가장 깊은 생각, 지고한 것을 자각하게 된다. 당신의 뜻이 내게서 이루어 지소서.
12. 이것에 하늘과 땅의 위대한 힘이 있다.
13. 이것이 모든 부조화, 자체가 참이 아닌 것을 소멸시키는 힘이다.
14. 너의 보물은 너의 가슴 있는 곳에 있다. 그리고 너의 보물은 그리스도의 진리,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를 끊임없이 외부로 그려내는 것이다. ( your treasure should be the continual outpicturing of the Truth of the Christ, “ I and the Father are One.”)
15. 이 진리를 깊이 생각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네 의식 안에서 집중된 빛이기 때문이다. 네 안의 그리스도에 의해서 네 영혼에 표현되고 있는 빛.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네가 그분을, 그의 모든 영광으로, 그의 모든 능력으로, 그의 모든 지혜로, 그의 모든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다.
16. 내가 말한 것을 단지 상투적인 말로서 반복하지 말라; 그것들을 읽고 또 읽어라. 마치 진실한 기도로 그것들을 암송하듯이.
17. 네가 기도할 때 깊은 경외의 느낌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외부를 닫아버려야 한다; 그때에 너는 내면으로 들어 간다. 네가 기도할 때, 그분 자신 내부에 너를 창조한 그 분과 하나됨을 느껴라.
18. 네가 만일 이런 식으로 이해와 함께 내가 말한 것을 반복 한다면, 네게 밝혀진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19. 내면의 음성이 네게 말할 것이다. 내면의 시각이 네게 열릴 것이다. 이 신의 거처에, 너를 모든 상황에서 지켜 주는 황금 같은 사랑의 고요함, 너를 전능자의 존재 속에 이르게 하는 침묵이 있다.
20. 그때에 비실재적인 것, 실체가 없는 것(the shadow) 은 사라질 것이며 실재가 그 자신을 네게서 드러낼 것이다.
21. 이 진지한 가르침의 짧은 기간동안 너희와 함께 있어서 나는 참으로 기쁘다. 나를 멀리 떨어진 분리되 있는 것으로 보지 말라.
22. 너는 과거에 일어난 것을 너의 기억 속에 밀어 놓았다. 그러나 과거의 일은 현재 너와 함께 있다. 그러므로 항상 너와 함께 있는 그리스도, 신의 존재함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려라. 너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오직 현재에서만 창조 할 수 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오직 지금에서만
23. 네가, 나의 존재를 즐기는 것은 계속될 수 있다. 그리고 너와 함께 있는 나의 존재에 대해 계속 생각 함으로써. 그렇게 나에 대해 알 수 있다.
24. 나의 말(My words)은 네게 생명이다. 나를 믿으라, 그리고 용기를 가져라; 도우려는 진정한 너의 욕망은, 진정으로 비 이기적일 때, 이미 이루어 진 것이다.
25. 도우려는 욕망은 가슴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너를 통해서 그리고 네게서 그 자신을 표현하려 하고 나타나려(come forth) 하는 존재를 네 가슴 안에서 발견 할 것이다. 그리하여 너의 욕망은 실현된다.
26. 기억하라. 네가 돕기를 바랄 때 어떤 분리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바람이 가슴에서 나왔을 때 그것은 이미 이루어 진 것이다. 왜냐하면 너의 아버지가 들으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모두의 하인이다.
27. 너는 내부의 그리스도로서 모든 것에 대해 승리한다.
28. 그리스도는 인류에 나타낸 신의 영원한 아들이다. 이런 이해로 너는 육으로 있는 동안 가능한 가장 높은 곳에 이른다 ( In this understanding you reach the highest possible while in the flesh ).
29. 육으로 사는 동안, 육에서 오는 영향력이 있음을 너는 알 것이다. 그러나 이들 영향력은 나쁜 영향력이 아니다. 그것들은 네가 사물에 대한 이해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다.
30. 너는 이런 조건에서 성장한다. 마치 씨앗이, 땅에 심어졌을 때, 자라서 꽃피우고, 그 씨앗을 낳는 것처럼, 신의 영도 네게서 마찬 가지다. 신의 영이 항상 육에 한정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필멸의 조건들에서 자라나, 언제나 불멸 이었듯이, 불멸이 된다. 육체 안의 생명은 모든 생명의 전체성으로부터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31. 나의 말들을 공부하라. 그러면 휘장이 너의 눈에서 올려질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너와 함께, 네가 분리에 대한 믿음을 극복하는 것을 기다린다 (the son of man waits with you, to overcome your belief in separation ).
32. 그리스도안에 자유가 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는 신의 영원한 아들로서 인류 안에 살아 있다. 이 강력한 힘은 모든 존재를 하나의 가족으로 조화 시킨다. 각각의 모든 영혼 안의 영은 자기 존재의 근원을 인식 할 것이다.
33. 이것에 대한 인식 안에 자유가 있다. 내적 존재(inner being)가 외적으로 표현 되는 것: 이것이 “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 지이다”의 뜻이다.
34. 인간은 인간에 의해 반복해서 다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그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야, 신의 그리스도를 통해 위대한 모두의 “하나임”에 그의 눈을 뜰 것이다.
35. 나는 나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내게 계시며, 모두의 아버지이고, 그리고 모든 것인 아버지이다. 내 안에서 말씀하시고 나를 대신해 말씀하시는 분은 아버지이시다. 아버지와 같은 생명이 아들 안에 있다.
36. 인간성의 감각 (sense of personalities)이 사라지도록 하라. 그때에야 너는 신의 영광, 영원히 군림하시는 그분의 독생자를 볼 것이다.
37. 인간성이라는 것은 외부에서 씌여진 가면일 뿐이다. 그래서 네가 인간성을 잡고 있는 한, 너는 환영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38.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인간성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로 모두 안의 영원한 그리스도를 보는데 실패하고 있다. 너희가 신의 그리스도는 보편적(universal)임을 알 수 있도록, 이것을 위해 나는 너희에게 말하려 왔다.
39. 너희의 할 일은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모든 방식의 치유를 위한 길이 될 수 있도록.
40. 영이 유일한 실체임을 깨달아라. 이 영은 너의 영혼과 몸에 생명을 준다. 그리고 존재하는 유일한 힘이다, 너는 신안에서 살고, 활동하고 너의 존재를 갖는다. 그리고 신은 네 안에서 산다. 그 자신을 표현 하고 있는 것은 신 그 자신이다. 이것을 완전히 아는 것은 네 삶에 지금 자유를 가져다 준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의 진리로 가는 길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있음을 너희는 알지 않느냐”
41. 신의 용서는 자연적이며, 모든 실수는 순간적으로 그분의 영원한 사랑이 흘러 드는 것에 의해 지워진다. 그러므로 후회,슬픔이나 자책에 의해 신성한 선물이 방해 받지 않도록 하라.
42. 이러한 이해로서, 신의 사랑은 그것에 열고 있는 가슴 안으로 흘러 든다: 이것은 곧 이어 육으로 나타내게 된다. 만일 네가 자책으로 슬퍼하고, 후회한다면, 너의 마음은 그늘로 차있게 된다. 그러나 신의 사랑이 너를 채운다면, 그늘을 위한 자리는 없다. 그들은 사라진다.
43. 유일한 조건은 네 자신을 그분께 열므로써 그분의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채우시도록 하는 것이다.
44. 자비로운 사람은 복되다. 그들 안에 내가 있기(abide) 때문이다.
45. 기뻐하라, 너의 보상이 하늘에서 늘어나고 있다. 하늘은 네 자신의 외부에 있는 장소가 아니다. 하늘은 네 안에 있다. 그래서 이 보상은 내부에서 늘어난다. 너의 보상은 즉각적이고, 네게 딸려(go with)있으며, 무한으로 증가한다.
46. 네 안에서 세상의 빛이 빛난다. 그러므로 그 빛이, 단지 말만이 아닌, 네 행동으로 보이게 하라.
47. 말은 배우지 못한 마음을 현혹 시킬 수 있으나, 행동은 개체의 본성을 드러낸다. 가슴으로부터 너는 말하고 느껴야 한다.
48. 그렇게 너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영광되게 한다. 하늘의 왕국은 네 안에 있다. “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 이것이 이해될 때 얼마나 훌륭한 진리 인가 .
49. 너희는 신의 국민이라 말해진 이들이다 - 즉 모든 나라의 아버지, 신과 모든 영혼 안에 있는 이 유일한 독생자인 그의 아들 그리스도 외에는 헌신하지 않는 모든 국민들 중의 국민 ( a people among all peoples with no allegiances except to God).
50. 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너는 보편적이 되어야 한다. 신 외에는 헌신이 있을 수 없다. 다른 어떤 헌신도 네 안의 아버지인 신의 진정한 표현을 제한한다.
51. 네가 형제에게 “너는 아기 보는 사람(nursemaid)이다”, “너는 바보다”라고 말한다면, 너는 사랑의 법칙을 침해한 죄를 진 것이다.
52. 그리고 네가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에게 기도 할 때, 첫번째로, 너에 대해 노여움을 갖고 있는 사람을 기억하라. 네 가슴 안에서 그와 화해토록 하라. 그때에 너의 아버지께서 네 말을 들으실 것이다.
53. 네 가슴 안에서 네가 화해 할 때만, 자유와 용서가 있다. 그때에 너의 가슴은 그 진정한 본성을 표현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이신 아버지 신은 너를 축복 하실 것이다.
54. 왜냐하면 너의 가슴에, 너를 위해 쌓아둔 보상물이 있는 아버지 집의 입구로 들어 가는 열쇠가 있기 때문이다.
55. 속이는 말을 덧붙이지 말라; 그것들은 아무 가치가 없다 - 이들 말은 아버지의 영역에서(realm) 들리지 않는다. 진심으로 네가 의도 하지 않는 것이나, 느끼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다.
56. 네가 기도 할 때 나의 말을 기억 한다면, 너는 네 가슴으로부터, 용서하면서 용서 받으면서, 은밀히 기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 모두의 가슴 안에 있는 신의 능력을 알기 때문이다.
57. 만일 네가 신의 뜻대로 말한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너의 말은 빈 것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것이 하도록 내보내진 것을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신의 능력이 어디 있는지 생각하라 ( Think then where the power of God dwells )
58. 네 가슴이 순수 하도록 하라. 그래서 그것이 나와 함께 말할 수 있도록.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때문이다.
59.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친구에게 친절하고, 그의 적들을 미워한다. 그러나 나는 적을 갖고 있지 않다. 모두가 나의 친구이다. 나같이 되기 위해서는 너는 나같이 해야만 한다.
60. 네가 충분히 사랑할 때, 누구도 너의 적이 아니다. 네가 이것을 인식할 때 그것이 얼마나 참된지 알 것이다. 이기적인 것과 무지가 사라질 때, 진리인 사랑이 나타난다. 사랑의 아버지 집에는 적이 있을 수 없다. 모두는 사랑과 평화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들어 올 수 없다. 하늘에 들어 가기 위해서, 너는 하늘을 가져와야 한다.
61. 신은 그의 가장 불순종한 자녀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네게 부당하게 하는 이들을 사랑하라. 그래서 네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될 수 있도록. 내 안에서 말씀 하시는 분은 아버지이다. 이들 말은 너희가 기억 할 수 있고, 너희에게 남아 있도록 녹음되고 있다.
62. 말이 행해지고 네가 들을 때, 그것은 잠시 동안만 지속 된다. 그러나 녹음될 때 그것은 그 의미와 말이 행해진 방식을 네 기억 속에서 되살릴 것이다.
63. 만일 네가 너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 한다면, 적은 보상이 있지만 너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 한다면 큰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64. 사랑은 분노를 쫓아버리며, 무지의 힘은 너를 전혀 해칠 수 없다.
65. 형제에게 인사하라, 그가 어떤 위치에 있을 지라도 ; 그는 어쩌면 하늘에서 더 클 것이다 , 땅에서는 적을지라도.
66. 너에게 인사하는 모두에게 인사하라. 네가 진실로 말한다. 땅에서 적은 많은 이들이 하늘에서 큰 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지금 아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소박한 사람(the simple) 과 현명한 사람을 통해 표현되는 신의 영광을 알게 될 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67. 이렇게 너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완벽한 것처럼 완벽하게 된다.
68. 구호물을 주고나서, 너의 미덕에 대해 트럼펫을 불지 마라. 너의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69. 네 가슴에서 무엇이 이루어 지던지 너의 아버지는 아시며 네게 풍부히 보상 하시기 때문이다.
70. 네가 하늘의 아버지께 기도 할 때, 너는 너를 외부로 이끄는 감각의 문을 닫아 버림으로써 하늘에 들어 가야만 한다.
71. 왜냐하면 사랑의 황금 같은 고요가 있는 가슴속 중심부(heart of hearts)에서만, 너의 기도는 참되게(truly) 들리기 때문이다.
72. 그러므로 외적인 외부의 것에 속하는 모든 것을 남겨두고, 네 자신의 가슴이 순수한 생각으로, 이기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로서 신의 가슴으로 들어가라.
73. 너의 순수는 신의 그리스도, 나에게 있음을 기억하라( Remember thy Purity is in me, the Christ of God )
74. 용서를 구하라. 하인이 하는 식이 아니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heart)에 의해 이미 그 용서가 되었음을 이미 아는, 아이가 부모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하라.
75. 제자는 몇 번이나 용서 해야 하는지 베드로가 물었다: 일곱번 ? 70번씩 일곱번이라고 말한 것이 쓰여 있지 않느냐. 그것은 한 없는 용서를 의미한다. 하늘의 네 아버지는 네가 용서를 구하는 순간 그 분의 가슴으로 용서 하신다. 그것은 너도 그와 같아야 한다.
76. 아버지는 네 가슴에 무엇이 있는지 아시기 때문이며, 네가 무엇이 필요한지도 아신다.
77.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가슴으로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당신의 왕국이 임하옵소서.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하소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며
우리가 무례한자를 용서 하듯이, 우리의 실족을 용서 하시며
우리를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 다만 잘못에서 저희를 구하옵소서
왜냐하면 왕국과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 Our Father in Heaven, Thy name is hallowed, Thy Kingdom come. Let Thy will be done, as in Heaven so on earth. Give us bread for our needs from day to day. And forgive us our offences as we forgive our offenders. And do not let us enter into temptation but deliver us from error. Because thine is the Kindom and the Power and the Glory for ever and ever. Amen. )
78. 이 기도를 기억해서 네 가슴으로 반복하라. 네 삶에서 날마다 암송하라. 그러면 네게로 들어오는 능력, 지혜와 사랑의 엄청난 근원을 알게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너를 통해 말씀 하실 것이다; 그분은 그 자신을 네게서, 그분의 사랑으로, 그분의 지혜와 능력으로 표현 하실 것이다.
79. 네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 할 때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는 이미 너의 잘못을 용서 하셨다.
80. 그러나 네 자신의 가슴으로 용서 하지 않는다면, 용서는 있을 수 없다. 가슴 안에 신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가 있다. 네가 모든 것을 용서할 때 그분과 얼굴을 맞대고 만날 수 있다.
81. 만일 네 형제를 가슴으로 용서하지 않았다면 , 너희는 무었을 말씀 드리겠는가 ?
82. 아버지와 얼굴을 맞대고 만났을 때 무었을 말씀 드리겠는가 ? 그분은 네 가슴 안에 있는 것을 아신다.
83. 너는 영적인 것보다 세상의 것을 소중히 여겨서는 안된다.
84. 영의 보물은 무궁하다. 반면에 세상의 보물은 덧없으며 헛되다.
85. 나는 너에게 세상의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는 영적인 것은 영원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86. 너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의 가슴도 있을 것이다.
87. 눈은 영혼의 창문이다. 그러므로 눈이 혼란 되거나(confused) 병들지 않게 하라. 왜냐하면 만일 영혼이 어두우면 몸은 그 어두움을 표현 하기 때문이다.
88. 무었을 먹을 것인지, 마실 것인지, 네 몸에 무었을 입을 것인지에 대해 걱정 하지 말라. 생명은 이들 여타의 것들 보다 훨씬 중요 하기 때문이다.
89. 생명 안에 모든 것이 있다.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는 선한 공급자(provider) 이시다, 그분은 그의 모든 창조물에게 주신다. 그리고 네게는 훨씬 더 주신다. 너는 그분의 자녀이고 너는 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90. 모든 것을 창조한 그분 때문에 만물은 성장한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분이 창조한 모든 것 안에 존재 하시기 때문이다.
91. 신은 그의 창조물로부터 분리 되거나 떨어져 있지 않다. 그분은 그의 모든 창조물 안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의 창조물은 그분 안에 존재 한다. 만일 신이 네 안에 존재 하지 않는다면, 너는 살아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을 제외하고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네가 신안에 존재 하지 않는다면 그 분은 무한 할 수 없다.
92. 너의 아버지는 너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신다. 그리고 이들 모든 것은 네게 주어질 것이다.
93. 첫번째로, 모든 것의 근원인 신의 왕국을 구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네 것이 될 것이다.
94. 유일한 조건은 순수한 가슴, 그리고 받을 수 있는 능력(ability) 이다.
95. 이들 나의 말을 음미(examine)할 때, 너는 그 안에 있는 엄청난 진리를 알 게 될 것이다.
96.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버지 사랑의 강물에 몸을 맡긴(caught up) 소박하고 현명한 자는 그분이 가진 모든 것의 표현을 위한 통로가 된다. 나의 것은 너의 것이며 너의 것은 나의 것이다.
97. 나는 항상 너와 함께 있음을 기억하고, 나의 손과 발에 있는 못은 모두가 나에게 돌아올 때 까지 계속 아플 것이라는 것을 알라. 왜냐하면 나는 선한 목자이고 나의 양들은 나의 음성을 알기 때문이다.
98. 위대한 일이 너의 중심에서 이루어 졌다. 그리고 비록 네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해도 너는 그것을 위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내가 너희 가운데 온 것은 이것을 위한 것 이었다; 나는 너희를 한데 모았으며, 너희를 나의 존재 안으로 데려 왔으며, 너를 감싸고 있는 큰 영적 힘으로 너희를 연결 시켰다. 아버지의 보호가 너를 둘러싸 있다( the protection of my Father is about you).
99. 내가 점하고 있는 형제, 그의 의식은 가치 있게 증가 하였다. 그래서 너희는 앞으로 그의 일이 과거에 한 것 보다 훨씬 더 큰 것임을 알게될 것이다.
100.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다(present). 내가 지금 너희를 떠나서 멀리 간다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의 중심에 항상 있다고 생각하라.
MY PEACE, MY LOVE I HAVE BROUGHT TO YOU WILL REMAIN WITH YOU
(내가 너희에게 전한 나의 평화, 나의 사랑이 너희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고요한 치유력의 성소로 들어갈 것이다. 나를 바라보라.
고 요
아버지 당신께 감사 드립니다 - 저 이제 당신께 올라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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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자의 언급 :
주께서 형제의 몸을 떠날 때 음악과 벨 소리가 들이는 동안 밝은 빛이 보였으며, 이 빛은 홀 전체를 채웠으며, 엄청난 힘이 느껴 졌다. 모든 사람이 체육관을 나갔으며,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주의 말씀 중에서 아무것도 더해지지 않았으며, 빼지 않았다. 그것들은 주어진 그대로 이다. 주님이 아직도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참으로 놀라운 실증이었다. )
그리스도의 강론 2 Divine Healing of Mind and Body: Talk 2: ...And A Voice Came From Heaven https://youtu.be/1DyBXzt5la8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1. 내가 강론을 하는 동안 그것들은 동시에 녹음이 되고 있다. 녹음을 하는 것은 내가 말했던 것을 기억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야기한 모든 내용을 기억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말 너머에 있는 의미를 마음에 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너희가 마음을 모으고 집중한다면,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은 심오하며 영원한 진리로 가득 차 있다.
2. 말로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그 무엇을 너희 마음에 전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너희가 직접 하늘의 문을 열 수 있도록 내가 너희에게 열쇠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왔다.”는 말의 의미이다.
3. 하늘이란 어떤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자각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너희는 지금 무엇을 의식하고 있는가? 잠시 생각해봐라! 오직 너희 자신만을 생각하고, 바깥에 있는 것만을 생각하고, 너희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만을 의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자신의 위대함과 강한 힘을 너희 삶 속에서 뿜어내며, 너희에게 자신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내면의 음성을 의식하고 있는가?
4. 지난번 우리가 여기 모였을 때, 나는 너희에게 무한하신 이에 대해 알기 쉽게 알려주었다. 생명과 사랑에 대해서 말이다. 생명과 사랑은 필멸의 감각의 개념 위에 그리고 그 너머에 있다. 그러나 나는 신께서 한없이 위대하시고 놀라우실 뿐만 아니라 한없이 여리시고 낮으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분은 모든 공간을 채우고 계시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다. 이 온통 충만한 생명을 너희가 의식하게 됨에 따라, 그 생명은 영혼의 가장 깊고 가장 높은 열망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스스로 충만하기 때문이다.
5. 이 사랑이야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힘이다. 그리고 너희가 사랑을 꼭 잡고 있을 때 결코 두렵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가장 낮은 것에서부터 가장 높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면서, 무한하신 이의 중심 샘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6. 그 무엇보다, “너희가” 지금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것을 철저하게 배워라. 너희가 처한 현재 조건은 영적 성장을 위한 기회이다. 지금 너희가 처한 상황은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7. 영(靈)이 모든 곳에 존재한다는 위대한 진리를 배울 때, 너희 눈에서는 비늘이 벗겨지고 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음을 보게 될 것이다.
8. 나는 지금 사람들이 쓰는 말과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영적인 진리를 전하기에는 전적으로 부적합하다. 그러나 너희 자신 안에 있는 영(靈)에 자신을 열 때, 내가 말한 것이 사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9. 이제 우리는, 신과 그의 자녀-인류-라는 위대한 진리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
10. 실재(實在)의 너희는 겉으로 드러나 있거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도 아니며, 너희의 인격도 아니다. 이것들은 너희 실재(實在) 자아의 참모습과 전혀 닮아있지 않다. 너희는 실재(實在) 안에 살고 있는 “의식적인 존재”이며 하늘로부터 내려온 “음성”이다. 너희 내면에 있는 하늘로부터 오는 이 음성을 알게 될 때, 너희 나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11. 정말로 아름다운 장면을 보았을 때, 너희는 그 장면을 화폭에 담고자 한다. 그러나 그림을 다 그리고 나도 그것은 따라 그린 것에 지나지 않으며 실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은 너희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12. 실재는 영적인 차원에 있으며, 너희의 참된 자아로서 거기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은 실재를 복사(複寫)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마음은 감각을 통해 외부 세계에 영향을 받게 되므로 예술적 기교의 한계로 복사한 것을 흐리게 한다.
13. 실재에 있는 사랑과 평화의 놀라운 힘이 바깥 세계에 드러날 수 있도록, 내면의 실재를 받아들여라. 온 우주 안팎으로 존재하는 창조 원리는 인간의 눈에도, 천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은 모든 것 안에 존재하는 유일한 실재(實在)이자 만물을 지어내는 과정이며, 모든 것 안에 존재하는 창조원리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만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안다면 무지와 두려움으로 외부 세계를 흐리게 하지 말라.
14. 나는 생명이다! 나 스스로 생명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나의 앎으로 나는 생명이 되었고, 나를 통해 그리고 나에 의해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다른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15. 내가 보고 있고, 알고 있는 그 무엇을 너희에게 말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러나 너희가 깨닫기만을 바라면서 영원히 “지금”에 머무르는 영광이 있으며, 이 영광을 너희에게 일깨워줄 영(靈)이 바로 너희 안에 있음을 나는 너희에게 분명히 말한다.
16. 베드로의 믿음은 바로 이런 영적 힘에 대한 깨달음에 기초한 것이었고, 이 깨달음을 통해 내 사도들은 기적을 행할 수 있었다. 물론 원리를 이해하고 나면 기적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너희 역시 자신 안에 있는 이 영적인 힘을 깨닫게 되면, 창조의 원리가 바로 너희 의식 안에 있음을, 그리고 너희 의식은 창조의 원리가 표현되는 통로임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 의식을 통하여 모든 것이 자신의 삶 안에서 드러나게 된다. 너희 안에 살고 계신 분은 바로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항상 알고 있던 바이며, 너희 역시 알아야 할 바이다.
17. 어린이들은 사물을 본능적으로 안다. 어린이들이 마땅히 알고 싶어 하는 수많은 질문들은, 그들을 이끌어주어야 할 사람들의 무지로 인해, 답을 얻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이 의문들은 다시 제기되기 전까지, 어쩌면 평생 그 답을 구하지 못한 채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진리를 갈망하는 영혼은 그 문을 열 수 있다. 왜냐하면 “보아라. 나는 문 앞에 서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누가 문을 열든지, 나는 들어와 그와 함께, 그리고 그는 나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살아계신 신의 위대하고 강력한 진리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18. 이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항상 존재하고 있던 것을 너희 삶 안에서 나타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너희 안에서, 너희를 통해서 일하고 있는 위대한 창조의 힘은 항상 거기 있다. 그럼에도 너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은 본성상 자신을 드러내고 있으며, 너희를 통해서도 반드시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너희는 그 힘을 드러내기 위해 특별히 지어졌기 때문이다.
19. 내가 말했던 바에 대해 너희는 그 의미가 밝혀질 때까지 곰곰이 생각하여, 필멸(必滅)의 마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진리를, 너희 역시 깨닫게 되길 바란다. 그 진리는 말로 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아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 자체는 말로 도저히 그려낼 수 없으며, 다만 너희가 그것을 깨닫게 될 때 완벽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진리는 말로 그릴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느끼고 깨닫게 되는 그러한 것이다.
20. 모든 생명과 사랑의 중심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에 의해 너희는 새롭게 창조하게 된다. 이처럼 신의 뜻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뜻은 “지금” 너희 안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21.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장벽이 있고, 이것이 우리를 갈라놓는 듯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그 장벽은 너희 마음 안에만 있을 뿐이다. 그 장벽 말고는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해와 사랑을 통해 너희와 나를 가르고 있는 그 장벽을 허물어라.
22. 드넓은 신의 의식에 네가 들어서게 될 때, 너희는 사물의 그림자에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고 실재(實在)적이며 본질적인 것을 찾게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며, 보이는 것은 그림자일 따름이다.
23. 필멸(必滅)의 눈으로 무엇인가를 보았을 때, 그것을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너희는 그것을 실재(實在)라 생각한다. 그러나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더 대단한 것이 바깥으로 표현된 것에 불과하다. 보이지 않는 그것은 바로 창조적인 힘이며, 생명이며, 영원토록 온 우주에 유일하게 존재하고 있는 힘이다. 그리고 이것이 너희와 나와 모든 생명 안에 살고 있는 생명의 법칙이다. 이 생명은 사랑이며, 이 사랑은 평화이다. “나는 생명이다.”
24. 너희 가운데 살다가 떠난 사람들을 너희는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들은 더 성장했으며, 너희를 떠난 적이 없다.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실재(實在)안에 살아 있다.
25. 그러므로 너희는 아무도 잃은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들과 훨씬 더 가까워진 것이다. 너희가 사랑했던 이들 중에서 육신을 벗어난 이들에 대해 생각해보아라. 너희는 그들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생각은 사실과 다르다. 지금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성장했으며, 그 어느 때보다 너희와 가까이 있다.
26. 이제 너희는 내가 너희를 결코 떠난 적이 없으며 항상 너희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세상 안에 머물며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 안에 머물고 있는 진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너희 모두의 마음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성(神性)을 깨닫게 될 것이다.
27. 자신의 참된 자아에 대해 알아갈수록 너희는 나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28. 대부분 사람들은 나와 내 제자들이 멀리 떨어진 어떤 공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크게 착각하고 있다. 나와 내 제자들이 멀리 떨어진 하늘나라에서 너희가 출입 통행증을 어떤 기관으로부터 발급받아서 도착하기만을 기다린다고 믿는 것이다.
29. 그러나 그런 장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의식의 상태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너희와 함께 있다. 너희가 이것을 깊이 이해하는 만큼 우리는 너희 삶에 들어가 너희를 더 도울 수 있다.
30. 신의 의식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봐라. 내 안에 있는 의식과 너희 안에 있는 의식은 같은 의식이다. 이 두 의식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존재하지 않으며, 차이가 있다면 이를 깨닫고 있느냐와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과, 또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도의 문제이다.
31. 신의 의식은 여러 부분으로 나뉘지 않는다. 너희는 ‘나는 이 조각이야, 나는 저 조각이야’ 라는 식으로 말할 수 없다. 신은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는 하나의 완벽한 전체이다. 그리고 너희는 신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신 안에 너희 존재가 있는 것이며, 그분 역시 너희 안에서 마찬가지이다. 너희 의식을 통하여 이를 알아갈수록, 너희 의식은 만물을 움직이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32. 진실한 기도는 결코 무시되는 법이 없다. 신은 너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청하기도 전에 알고 계신다.
33. 신은 사랑이며 너희는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 그를 경배해야만 한다. 너희 중에 자기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또 “물고기”를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34. 참된 사랑을 모르는 너희도 자신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주어야 할 지 알고 있는데, 참된 사랑이신 너희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구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좋은 것을 주시겠느냐?
35. 어떤 이는 기도할 때 신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며 기도한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자기 골방으로 가서 문을 닫고 숨어 기도하여라. 너희 아버지께서도 숨어 들으시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36. 이 말의 의미는 아주 명백하다. 너희 마음의 작은 성전(聖殿) 안에 전능하신 이께서 머물고 계신다. 전능하신 이께서는 너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시다. 그분은 실재(實在) 자체이며, 너희의 참된 자아로서 너희 안에서 실재(實在)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계신다.
37. 너희 영혼이 고요한 가운데, 이 ‘앎’을 품고 홀로 숨어 진지하게 기도할 때, 온 우주는 너희가 원하는 것을 창조하고 표현하고자 움직이게 된다.
38. 모든 진실한 기도는 그 즉시 응답을 받는다. 그리고 너희의 기도 역시 즉시 응답을 받을 때가 올 것이다. 끊임없이 기도해라. 너희 마음이 평화로운 가운데 숨어 끊임없이 기도하라. 이미 받았다고 믿어라. 받게 될 것이다.
39. 너희와 나, 그리고 다른 이들까지 함께 아우른 우리 모두는 하나로 결합된 무한한 전체이며, 어떤 분리도 없고 다만 사랑 안에 살고 있는 한 가족이다. 이를 이해하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40. 이 말의 의미를 처음에는 잘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리의 영에게 너희 자신을 열어 보일 때, 너희와 항상 함께 있었던 위로자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드러낼 것이다. “내가” 바로 그 위로자이며, “내가” 바로 생명이다.
41. 나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이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며, 이미 죽었더라도 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너희 안에 있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를 믿는 이는 영원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죽음은 있을 수 없다. 내가 항상 너희 안에서 살아 있기 때문이다.
42. 똑같은 영이 모든 이 안에 살아 있다. 바닷물 한 방울은 전체 바닷물과 특성이 같다. 나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43. 이해와 사랑을 통해서, 너희는 모든 영혼 안에 머물고 있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모든 영혼 안에 “내”가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내가 전에 이렇게 말했던 것을 들었을 것이다. “주께서 항상 내 오른손에 계시기에 내 앞에 항상 주를 모십니다. 그러기에 나는 결코 동요하지 않습니다.”
45. 신과 인간이 하나라는 것을 배우는데 너희는 왜 이렇게 더딘가! 너희는 한계를 내던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너희들은 어린이들처럼 자기 장난감에 매달리고 있다. 너희들의 담에, 너희들의 칸막이에, 너희들의 교회에, 너희들의 예배당에, 너희들의 유대교 회당에, 너희들의 회교사원에, 너희는 매달리고 있다.
46. 신이 모든 생명이며, 보이는 완벽한 사랑이자 보이지 않는 완벽한 사랑임을 배우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너희 역시 궁금할 것이다. 그 이유는 너희가 안이 아니라, 밖에서 진리를 잡으려 하기 때문이다.
47. 잃기를 두려워하는 것들에 너희는 모두 얼마나 매달리고 있는가. 생명을 버리고자 하는 이는 얻을 것이며, 얻고자 하는 이는 잃게 될 것이다.
48.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리스도로부터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 바깥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리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관념에 묶여 있다. 그러나 내 문은 항상 모든 이에게 열려 있으며, 누구든 들어와 나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
49. 사탄은 그 길을 막고자 한다. 그 사탄이란 모두가 극복해야 할 그릇된 인성(人性)이며, 감각이라는 이름의 사탄이다.
50. 필멸(必滅)의 감각이 빚어낸 환영 말고는 참된 영의 의식을 깨닫는 것을 방해할 장애물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하늘나라는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이천년 전과 마찬가지로 나는 여전히 생명이다. 내가 이 땅에 오기 이천년 전에 모세와 엘리야가 있었을 때에도, 그 생명은 모든 이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아브라함에 앞서 존재한다.
51.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있으며, 전에도 항상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이 깨달음 속에 머무는 가운데, 너희 자신이 전능하신 이의 살아있는 표현 그 자체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아버지께서 항상 너희 안에서 일하시고 있기 때문이다.
52. 너희 안에 있는 신성한 힘은 내 안에 있는 그 힘과 똑같다. 그리고 자기의 의식을 보다 큰 신의 의식에 열어감에 따라, 너희는 나를 알게 될 것이다.
53. 그리스도의 음성은 두려움을 모르며 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스도는 승리자이며,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이 주어진 것이 신의 법이기 때문이다.
54. 십자가의 상징은 사람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세상을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손으로 짓지 않은 사원에서 깨어나, 신에게 자신을 거룩히 바치고, 유혹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하여, 승천하는 것이다. 그가 바로 승리자 그리스도이다. 이 단계들에 대해서는 전에 내가 말했던 바가 있으므로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해 내가 했던 말들을 다시 읽는다면, 너희 안에 계신 영께서 더 많은 진리를 드러낼 것이다.
55. 너희 자신을 열어감에 따라, 영은 너희 가슴의 비밀 골방 안에 머물고 있던 비밀을 너희에게 드러낼 것이다. 나는 생명이며, 나는 진리이며, 나는 길이다. 그리스도인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전에도 다른 길이 없었듯이, 나 말고 아버지께 가는 다른 길이란 없다.
56. 그리스도는 신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 바로 신이었으며, 신과 함께 있었고, 그 말씀은 육화(肉化)되었다.
57. 그리스도가 실재(實在) 안에서 너희의 참 자아이며, 신이자 너희 아버지이신 이께서도 너희를 그렇게 알고 계신다. 너희 역시 자신이 곧 될 너희의 참 자아에 대해 알아야 한다.
58. 육신의 감각의 음성은 그림자의 음성이며, 분리와 한계와 질병과 아픔과 죽음의 관념을 불어넣는 사탄의 음성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의 아버지로부터 난 유일한 아들인 그리스도를 단단히 붙잡아라.
59.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말하라. “감각의 사탄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나는 신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며, 승리자이다. 나는 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께서는 나와 항상 함께 계시며, 나를 인도해주는 안내자이시다.”
60.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기 위함이다. 세상에서 너희는 시련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너희 역시 세상을 이기게 될 것이다.
61. 모든 것을 다스리는 영이신 아버지께서는 살아 있는 생명이시며, 모든 영혼 안에 머물고 있는 그리스도는 그의 아들이며, 성령(聖靈)은 “나는 생명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완전한 그리스도 의식의 표현이다. 아무 것도 너희를 다치게 할 수 없다. 나는 너희 안에 있는 승리자이기 때문이다. 너희 가슴과 마음 안에서 이 진리를 느낄 수 있다면, 너희 역시 승리자이며 너희가 자유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너희는 감각의 사탄을 이겨낼 것이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
62.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에게 경배를 드려라. 그리스도 말고 다른 길은 없다. 그리스도 말고는 다른 어떤 길이 있었던 적은 없다.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살아 있는 내가 바로 그다. 보라. 나는 영원히 살아 있다.
63. “나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최상(最上) 무한자의 의식이다.
64. 그리스도는 진리이며, 생명이자 모든 것을 신과 결합시키는 사랑이다.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너희는 신과 함께 있을 수 있다. 신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65. 나 역시 사랑을 통해서 신과 하나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영혼을 다하고,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신(神)이신 주(主)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66. 그리스도는 세상에 태어난 신의 아들이며, 그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져 세상이 변할 때까지 세상에 남아 있다.
67. 신을 부르기에 가장 알맞은 명칭은 “우리 아버지”이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표현이며, 너희를 창조한 그분을 알아감에 따라,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68. 너희는 그분의 반영(反影)이며, 그분과 꼭 닮아 있다. 아버지와 너희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아버지와 너희가 항상 하나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네 마음 안에서 단순히 말로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그 말의 의미를 진심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말의 참된 의미는 밖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찾아올 것이다.
69. 지금 너희가 귀로 듣고 있는 것들은 너희와 함께 남아있을 것이다. 내가 했던 이 말들을 너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진리의 영이 너희 안에서 자신을 드러낼 때까지, 이 말들은 너희 마음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때 너희는 내 말의 참된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신의 의식 안에 자리 잡힌 것은 사람의 의식 안에 반드시 자리 잡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너희가 하나라는 깨달음과 앎을 통해, 이 의식은 너희 안에서도 자리를 잡게 된다.
70. 나는 이것이 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의식의 보다 높은 영역으로 옮아간 모든 이들은, 이 깨달음으로부터 오는 거대한 힘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71. 너희가 보고 있듯이, 오늘밤 내가 이 형제 안에서 드러난 이 모습은 젊음을 나타내고 있다. 얼굴은 생기로 가득 차 있으며, 몸은 그 안의 모든 세포를 새롭게 하는 힘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의식과 나의 의식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 안에서 나타나 있는 이 순간, 우리의 사랑스런 형제의 의식은 나의 의식과 같으며 하나이다. 실재(實在) 안에서 우리 사이에 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분리란 정신의 환영(幻影)일 뿐이다.
72. 이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가! 너희가 지금 이 힘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 너희의 몸 하나 하나 역시 생명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 안에도 계시기 때문이다.
73.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으며, 아버지 말고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으며, 아들 말고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다. 그리고 아들은 자신이 원하는 누구에게나 아버지를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74.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이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 이 말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75. 아버지는 아들을 알고, 아들은 아버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를 나타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나타낼 수 있다. 왜냐하면 아들은 아버지를 알고 있고, 아버지는 아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76. 지금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너희가 듣고 있는 것을 듣는 이들은 복되다.
77. 나는 승리의 힘을 받았다. 아들은 아버지 안에 살아 있고, 아버지께서는 아들 안에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참으로 이 위대한 진리를 인간의 단순한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고, 너희 안에 있으며, 자신을 드러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위로자이신 영의 도움을 통해서만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된다.
78.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두드려라. 문이 너희 앞에 열릴 것이다. 누구든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79. “남들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들을 너희가 먼저 그들에게 해주어라.” 너희가 다른 이들 안에서 보는 것들은 너희 안에서 이미 자리 잡고 있음을 가슴으로 알라.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들을 너희가 먼저 그들에게 해주어라.
80. 내일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지금”이 존재하는 유일한 시간이다. 지금을 너희의 현실로 만들고, 내일은 스스로 꾸려지도록 내버려 두어라.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놀라움으로 가득 찬 지금을 놓치지 말라.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직 지금 안에서만 의식은 창조할 수 있다. 어제란 기억일 뿐이며, 내일은 다만 희망일 뿐이다. 지금이 유일한 창조의 순간이다.
81. 신의 마음 안에서 오직 매순간에서만, 바로 지금에서만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너희가 신의 마음 안에서 창조한 것은 이미 실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내일은 스스로 꾸려지게 된다.
82. 우는 이들과 함께 울지 말고, 그들 안에서 다스리고 있는 위대한 사랑으로 그들을 도와라.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사랑하듯, 너희 역시 모두를 향한 사랑을 느껴야만 한다. 가장 높은 이에서부터 가장 낮은 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는 신의 자녀들이다. 이 진리를 알게 될 때, 분리란 없으며, 오직 한 가족만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83. 자신의 자아를 벗어나 이타적 존재가 되는 것을 배워라. 이것이 수용성(受容性)의 비밀이다. 너희는 영의 한 조각이 아니라, 전체와 하나이다. 영은 결코 자신으로부터 떨어질 수 없다.
84. 너희가 이 사실을 참으로 의식하게 될 때, 변혁(變革)이 일어난다. 수용성(受容性)이란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신은 항상 당신의 선물을 모든 이에게 넘치도록 부어주고 있다는 것, 이것이 진리이다. 너희가 그분의 선물을 받고자 한다면, 받기 위해 너희 자신을 열어야 한다. 이 수용성(受容性)이야말로 위대한 비밀이다. 모든 참된 존재의 비밀은 자신의 자아를 벗어나 이타적(利他性)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는 것이 받는 것이다.
85.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을 너희가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가끔 궁금해진다. 나는 지금 수천에 수천을 거듭한 수많은 영혼들이, 신께서 하늘에서뿐만 아니라 땅에서도 머물고 계시며, 안에서뿐만 아니라 바깥에서도 머물고 있다는 이해를 깊게 해주는 이 말을 듣기 위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있다.
86. 나는 전에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나를 안다면, 너희는 내 아버지도 알 것이다. 그러나 내 아버지를 모르면서 어떻게 너희가 나를 알 수 있으며, 또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
87. 나는 그리스도로부터 말하고 있다. - 너희는 어디로부터 말하고 있는가? 필멸의 감각에서 말하고 있는가? 너희는 그저 바깥 환경에 반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너희 안에 머물고 있는 신의 힘을, “나는 생명이요, 진리며,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이 있다”는 신의 의식을 깨닫고 있는가?
88. 너희 안에 아버지가 계신다. 진리가 그러하다는 것을 알라. 그러면 그분께서는 너희를 통해 밖으로 나타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빛이며, 세상은 그 빛을 이기지 못하고 빛이 어둠을 이겨낸다. “나는” 세상의 빛이고, 나의 빛으로 어둠은 사라진다.
89. 이것이 인류의 빛이다. 그 빛은 무한한 사랑과 지혜의 표현이며, 인류 안에 완벽한 상태를 창조한다.
90. 너희 존재의 근원(根源)은 신이다. 이 진리에 눈을 뜰 때, 아들 안에 계시는 아버지, 너희 안에도 계시는 아버지를 알게 될 것이다.
91. 필멸(必滅)의 감각이 그리스도 의식을 알아감에 따라, 필멸의 감각은 그리스도의 의식 안으로 끌어 올려진다. 나는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이겨냈다. 나는 필멸의 감각, 육(肉)적인 마음, 감각의 사탄을 이겨냈다. 너희 역시 그리 될 것이다. 이처럼 너희는 하늘로부터 온 음성이 신의 의식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92. 사람은 자신의 짧은 생각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감옥을 만들어 낸다. 자신의 생각에 따라, 스스로 자신을 제한하게 된다. 심지어는 너희의 가장 위대한 생각에서조차 제한은 존재한다. 생명은 머리로 담아낼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다만 깨닫고 느낄 수 있는 그러한 것이다.
93. 유형(有形)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창조는 안에서 먼저 작용한 보이지 않는 원인의 결과이다. 너희 육체는 더 높은 차원으로 영적 성장을 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 성장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영의 완전함을 의식적으로 깨닫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영은 항상 현재에 있으며, 영원하고, 유일한 실체이자, 힘이요, 생명이며, 자신을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깨달아라.
94.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영혼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너의 신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이 법칙을 토대로 인류의 근본(根本)이 세워진 것이다.
95. 방탕한 아들의 비유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이 잘 나타난다. 아들은 탐욕에 빠지고, 회개(悔改)하고, 본래의 자기 모습, 참된 영적 상태를 회복한다. 먼저 그는 시련과 고난을 겪고, 그가 물려받은 재산을 다 써버리고 난 후, 종이라도 기꺼이 되고자 돌아온다. 그러나 그가 항상 아들이었듯이 그는 다시 아들이 되는 것이다.
96. 아버지의 사랑은 가없이 드넓어, 아들이 무슨 일을 했다 하더라도, 아버지의 사랑은 모든 잘못을 말끔히 없앤다. 모든 이의 삶 안에서 이는 얼마나 참된 진리인가. 진리를 깨닫고 나면, 잘못은 바로 잡히게 된다. 잘못이란 너희를 둘러싼 현실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다. 그러면 잘못은 무(無) 속으로 흩어져 버리고, 진리만이, 시초(始初)부터 그랬듯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굳건히 서 있게 된다.
97. 참회(慙悔)는 용서(容恕)보다 앞서 온다. 참회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의 가슴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그는 용서 받는다. 그때 사람은 본래의 영적 상태를 회복하고, 신 안에 있는 자신을 자각(自覺)하게 되며, 모든 이의 종이 되기를 자청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이가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들을 그가 먼저 다른 이에게 하게 된다. 너희가 ‘방탕한 아들’처럼 될 때, 잔치는 이미 너희 앞에 마련되어 있다. 들어와라. 너희 형제와 자매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 이 잔치에 들어와라.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아버지께서 너희를 위해 마련하신 이 잔치에 들어올 수 있다.
98. 이 땅 위에서 너희는 이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잘못을 저질렀다 생각하는 이에게 너희는 왜 그리 자주 사랑을 억누르는 것인가? 그것은 전혀 너희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그분의 아이 사이의 문제이다. 너희가 이를 기억한다면, 다른 이들을 향한 비난을 거두고, 그 무기를 먼저 너희 자신에게 겨누어라.
99. 자기의 잘못을 먼저 보게 될 때, 다른 이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100. 너희는 남을 비난하고자 한다! 그러나 비난 받지 않으려거든 비난하지 말라. 판단 받지 않으려거든 판단하지 말라. 너희 눈에서 널빤지를 먼저 떼어내라. 그러면 네 형제의 눈에서 티끌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더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101. 지금 여기에서 하는 것처럼,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숨어 가르침을 전하며, 모든 곳에서 가르침을 전할 통로를 찾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가르침을 물리적(物理的)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아직 자기 존재의 참된 본성을 깨닫지 못한 이들이 있는 영적(靈的)인 차원에서도 전하고 있다.
102. 나는 지금 너희에게 뿐만 아니라, 너희 필멸(必滅)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이들에게도 말을 하고 있다. 이 진리를 그들이 이해하게 될 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영광을 향해 그들은 나아갈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의식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때, 더 이상 땅에 묶여 있지 않고, 자신들의 마음에서 만들어 낸 속박에서 풀려나 자유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내 ‘말’을 받아들여라. 너희 역시 자유롭게 될 것이다.
103. 신과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을 너희 가슴에 항상 가득하게 품고 있어라. 그때 나는 너희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칠 것이다.
104. 내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거든, 기다려라. 주의 깊게 들어라. 너희 마음을 나의 마음에 맞추어라. 나는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 말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105. 예언서에, 모든 민족이 신에 대해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적혀 있다. 아버지에 대한 가르침을 듣고 배운 모든 이여 내게 오라.
106. 어둠을 뚫고 빛을 비추라 명하신 신께서, 빛과 신의 영광에 대한 이해를 전해주고자 내 가슴 안에서, 빛나고 계신다.
평화와 사랑이 너희와 함께 하길 PEACE AND LOVE BE WITH YOU
오, 영원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본성을 우리 모두 안에 심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현존(現存)을 깨달았고, 우리 모두를 축복하시며 당신에게로 모든 이를 이끄시며, 우리의 삶 안에서 스스로를 나타내시는 당신의 본성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당신의 아드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해와 사랑으로 당신의 말씀을 듣고 있는 이들, 이 말을 읽게 될 이들을 축복하소서. 아멘.
O Eternal Father, Thy Nature is planted in us all. We have realized Thy Presence and find Thy Nature expressing Itself in our lives, blessing all and bringing all to Thee. Loving Father, as Thy son speaks, bless those who listen to, and those who may read, Thy words with Love and Understanding. AMEN
(기록자의 소견 : 문자로 옮겨진 말 역시 우리 가슴을 뛰게 하고 우리 영혼에 가르침을 전해주기는 하지만, 우리 형제의 입에서 매우 값진 진주처럼 흘러나온 말들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이 잊지 못할 경험으로 간직하게 한 그 현존(現存)감까지 표현하기에는 미흡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을 이해와 사랑으로 읽는다면, 그들에게도 이 글은 매우 값진 진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정토종 제11조 성암 대사] 화두타파 후 서방 삼성(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친견
염불각자 열전
정토종 제11조 성암 대사
‘염불하는 자 누구인가?’ 홀연 夢서 깨다 원문출처  숭복사 영취화상 문하서 참구 진적사서 치열한 무문관 수행 연지공양, 서방발원문 주해
부처님께서 염불법문을 열어 보여주심은 중생들로 하여금 육근을 거두고 깨끗한 생각으로 계속하여 아미타불 명호를 불러 생각의 경계가 고요하고 마음이 텅 빈 데 이르면 불성이 저절로 드러나서 곧 부처님 지견(佛知見)에 깨쳐 들어가 자성이 저절로 드러나서 각자 자기에게 갖추어 있는 자성미타(自性彌陀)를 친견하여 한 가지 출세의 큰 인연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권수염불문(勸修念佛文)〉
믿음(信)과 원력(願)과 염불 행(行)은 윤회계를 벗어나 정토에 나는 양식이 되는데, 양식만 준비하면 정토에 나기가 어렵지 않고, 정토에 나면 삼계윤회를 벗어나므로, 석가여래께서는 여쭙는 제자 없이〈아미타경〉을 스스로 말씀하시어(無問自說) 염불 발기의 인연이 된 것이다.
중국 청나라 때 태어나신 성암 대사(省庵大師, 1686-1734)는 부처님께서 염불법문을 열어 중생들로 하여금 발심 염불하여 누구나 본래 갖추고 있는 불지견에 깨쳐들게 한 이러한 도리를 몸과 입과 뜻으로 여실하게 보여준 선지식이다. 청나라 강희 25년(1686) 8월 초파일 태어나 훗날 정토종 제11대 조사로 추존된 대사의 본명은 실현(實賢), 자(字)는 사제(思齊), 강소성 상숙(常熟)사람이다. 속성은 시(時)씨로서 대대로 유교의 선비 집안에서 자랐다.
7세에 동진출가… 15세에 불교ㆍ유교 통달
대사는 태어나면서부터 육식을 입에 대지 않았고, 어린 시절부터 총명한 지혜와 온화하고 부드러운 본성을 드러냈다. 마치 여러 생을 통해 오염된 세간을 벗어나고자 하는 탈속의 뜻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부친이 일찍 사망하자 모친 장(張)씨는 아들이 불연이 깊음을 알고 출가 수도의 길을 열어 주었다. 대사는 일곱 살이 되자, 모친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청량암(淸凉庵) 용선(容選) 화상을 배알하고 스승으로 모시게 했다. 나이가 어려서인지 스승으로부터 불전의 가르침과 규율을 배우는 동시에 유교 등 세상의 학문도 함께 익혔다.
대사는 15세(1700)가 되자, 정식으로 비구계를 수지하게 되었는데, 이때 이미 불교와 유교에 두루 달통하여 시문에 능할 뿐만 아니라 서예에도 정밀한 기예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대사는 절대 다른 업에는 탐닉하지 않았으며 나고 죽는 큰일(生死大事)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세간의 문장과 이치에 달통한 대사는 충과 효를 돈독히 여겨 모친이 서거하자, 불전에서 무릎을 꿇고 49일간〈불설부모은중난보경(佛說父母恩重難報經)〉을 독송하기도 했다. 더불어 매년 모친의 기일(忌日)이 되면 공양을 베풀고 경을 독송하며 어머님의 왕생극락을 발원했다.
 성암대사 사리가 모셔져 있는 아육왕사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화두 타파
어느 날, 성암 대사가 우연히 선인사(善仁寺)에 들렸는데, 홀연히 한 스님이 땅에 머리를 박고 입적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문득, 생명의 무상함을 깨닫고 자신을 경책하며 부지런히 수행 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이로부터 대사는 계율을 철저히 지키면서 의발(衣鉢)을 놓지 않고 하루 한 끼 만을 먹으며 옆구리를 자리에 대지 않고 정진했다. 이후 사방으로 선지식으로 참방하러 운수행각을 다녀온 후, 25세(1710)가 되자 대사는 거성(渠成) 스님과 소담(紹曇) 스님으로부터 불교교리를 배우고, 대승의 성종(性宗)과 상종(相宗)을 연구하는 한편, 소승 방등경전을 공부하였다. 이렇게 3년의 세월이 흐르자 천태종 삼관(三觀)ㆍ십승관법(十乘觀法)의 종지와 성상(性相) 2종의 교학을 두루 막힘없이 관통하게 되었다. 이렇게 성암 대사의 경학이 경지에 오르자 소담 스님은 그에게 천태정종(天臺正宗) 영봉(靈峰) 선사의 제4세 법맥을 전했다.
강희 53년(1714), 29세에 대사는 숭복사(崇福寺)의 영취(靈鷲) 화상 문하에서‘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念佛是誰)?’는 화두를 치열하게 참구하다가, 120일이 지나자 홀연이 크게 깨닫고“나는 꿈에서 깨어났다(我夢醒矣)”고 말했다. 이때부터 대기대용이 자재했으며, 변재가 막힘 없이 터져 나왔다. 영취 화상이 성암 대사가 불문의 법기임을 알고 법맥을 전하려고 하자, 대사는 완곡히 사양하며 예를 갖추고 떠났다.
3년 무문관 수행으로 염불삼매 증득
이듬해, 대사는 진적사에서 폐관(閉關: 무문관)수행에 돌입했는데, 낮에는 대장경을 열람하고, 날이 저물면‘아미타불’명호를 지송했다. 밤을 지새우며 정진한지 3년이 지나자 대사는 마침내 염불삼매를 증득했다. 이러한 삼매 증득이 정토법문에 대한 확고한 신심과 불가사의한 지혜를 낳게 되자, 대사께서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연지 대사의‘서방발원문(西方發願文)’에 주해를 달게 된다. 3년간의 폐관정진을 성공적으로 회향하자, 진적사의 대중들은 성암 대사에게〈법화경〉을 강의해 줄 것을 공손히 청했으며, 대사는 법좌에 올라 막힘없는 변재와 혜안을 갖춘 설법으로 승속 대중의 진실한 찬탄을 크게 받게 된다. 이 일이 있은 후 소담 스님의 하명에 따라 항주 융흥사(隆興寺)에서 경과 율을 대신 강의하도록 했는데, 강의를 들은 대중들이 찬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로부터 대사의 명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연지공양하며 48대원 발하자 방광
강희58년(1719), 절강성 영파시 도옥에 소재한 아육왕탑(阿育王塔)의 부처님 진신사리 앞에서 손가락을 불살라(燃指) 공양하며 48대원을 세우시자, 그에 대한 감응으로 부처님 사리가 찬란한 광명을 내셨다. 이로부터 매년 부처님 열반일에 대사께서는 승속의 대중을 모아놓고 경전을 독송하며 불공을 올렸다. 이때 대사는〈유교경(遺敎經)〉과〈불설아미타경〉을 강의했는데, 선종의 종지인“시심시불(是心是佛: 이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의 깊은 뜻을 결합시켜 예리하고 둔한 상중하의 모든 근기가 두루 이익을 얻도록 대중법문을 설하였다.
청나라 세종 옹정2년(1724), 불혹(40세)의 나이에 이른 대사는 항주 범천사(梵天寺)에 가서 주석하면서 유명한 작품인〈권발보리심문(勸發菩提心文)〉을 짓게 된다. 이후 대사는 항주 선림사(仙林寺)에 은거하여 마음을 고요히 하며 염불에 전념하면서 절 밖을 나가지 않고 모든 인연을 단절한 채 전수염불(專修淨業)에만 매진하였다. 아울러 사중의 대중을 격려하고 지도하면서 오로지 깊은 신심, 견고한 발원, 전수염불을 통해 서방정토에 왕생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때 함께 정토수행을 한 대중들은 한결같이 성암 대사를“(아미타불의 화신인) 영명연수 선사께서 원(願)을 타고 사바세계에 다시 오신 분(永明延壽禪師 乘願再來)”이라는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칭명염불 위주의 염불결사 창립
만년의 대사는 다시 대중의 간청을 받아들여 항주 봉산(鳳山)의 범천사로 돌아와 주석하면서 더욱 광범위하게 정토법문을 전하고 중생을 구제하여 이롭고 편안하게 하였다. 이와 함께 대사는 옹정 7년(1729)에 전수염불 단체인 연사(蓮社)를 창립했다. 정토왕생에 뜻을 두고 신원염불(信願念佛)을 하는 이들이 명을 마칠 때까지 염불결사에 동참할 것을 문서로 기록해 서원을 하도록 하였다. 매일 수행일과를 20이라 할 때 10은 칭명염불, 9는 관상(觀想)염불, 1은 예배와 참회로 나눠 밤낮으로 쉼 없이 정진하도록 했다. 대사의 영향 아래 결사 대중이 함께 염불수행을 하니 그 이익이 결코 적지 않았으며, 재가 염불행자가 출가득도한 자도 수백 명에 달할 정도였다.
매일 10만 편 염불… 서방삼성 친견
옹정 11년(1733) 음력 1월 8일 성도일, 대사는 대중을 모아 말씀하시길 “나는 내년 4월 14일이면 이 세상을 떠나 왕생극락을 하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대사는 향을 피우고 방 문을 걸어 잠그시고 매일 십만편(遍) 씩을 염불했다. 이듬해 4월 2일, 대사께서 출관(出關)하신 후 10일이 되자 대중에게“내가 10일 전에 서방 삼성(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께서 허공에 강림하신 모습을 친견하였고 지금 다시 보노라. 나는 정토에 왕생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곧 이어 사원의 사무를 부촉하시고는 다시 성 안의 여러 호법거사 등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시자가 유훈을 내려주실 것을 청하자, 대사는 글로써 대중에게 설했다. “내가 14일로 왕생을 결정하였으니, 너희들은 나를 위해 모여서 염불을 해다오.”
“극락에서 중생구제 위해 다시 오겠다”
13일에는 음식을 들지 않고 눈을 감은 채 고요히 좌선했고, 14일 새벽 3시 경이 되자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서쪽을 향해 가부좌를 하고 염불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멀고 가까운 곳에 사는 신도들이 모여들어 눈물을 흘리며 예를 갖춰 대사는 세상에 머물러 중생을 제도해 줄 것을 간절히 청하였다. 이때 대사가 다시 눈을 뜨고 대중을 둘러보고는“내가 왕생극락하여 부처님의 수기(授記)를 받고 나서 곧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올 것이다. 생사가 큰일이니, 각자 마음을 맑혀 염불하는 것이 가하리라”는 말을 마치시고는 합장한 채 부처님 명호를 부르시며 편안하게 왕생했다. 이때가 청나라 옹정 12년(1734) 4월 14일이었다. 세수 49년, 승랍 25세로 대사의 삶은 길지 않았으나, 정토종에 끼친 공헌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도 넓었다. 대사가 입적한 12월 8일 제자들이 대사의 영골(靈骨)을 상숙 금천의 불수암(拂水岩) 서쪽에 모셨다. 청나라 건륭 7년 2월 15일, 항주 일대의 제자 등이 다시 대사의 유골을 아육왕사(阿育王寺)의 오른편 탑에 봉안했다. 대사의 저작으로는〈권발보리심문(勸發菩提心文)〉〈정토시집〉〈성암대사어록〉〈성암법사유서(省庵法師遺書)〉 등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디모데후서 3:16-17절에는 성경의 의미와 활용에 대한 전반적인 중요한 말씀이 있다. 내용을 읽어보자.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 구절에서 “은”을 강조한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정의하거나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을 이곳에서도 사용했기 때문이다. 위 구절에 따르면 성경이나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그리스어로 읽으면 하나님께서 말씀에 생명을 불어넣으셨다는 의미이다1.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며 그분께서 만드셨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와 별도로 위 구절은 성경이 유익하며 그 이유를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더 자세히 분석해보면, 성경은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기에 유용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글의 제목이 “하나님의 말씀은”이듯, 이 말씀에 관한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 첫 번째 유용성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불어넣으신 말씀인 성경의 정의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기의 활용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다”(디모데후서 3:17)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이 뿐만이 아니다. 아래에서 우리는 추가로 말씀에 대해 살펴보고 말씀의 가치와 더 나은 활용에 대해 감사하도록 하겠다.
1. 하나님께서 가장 높이 하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말씀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을 읽어보는 것보다 더 좋은 시작은 없을 것 같다. 이 견해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시편 138:2을 읽어보자.
시편 138:2 "주[하나님]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에 하셨음이라"
이 구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그분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세상 그 무엇보다 높으시지만, 그 말씀을 세상 어떤 것보다 더 높게 하셨다고 말씀하시고자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분의 평가는 바로 이것이다. 그분 앞에 말씀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없다.
2. 생명의 식량,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말씀을 가장 높게 하셨는데 이 말씀에 대한 다른 내용도 읽어보자. 먼저, 마태복음 4:4를 살펴보자.
Matthew 4:4 "…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많은 사람들이 빵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반적인 물질적 음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살아가고 물리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 물질적 음식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면 단순한 생존 이상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무엇인가? 답은 같은 구절에 있다.
마태복음 4:4 "…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이 구절에 따르면, 우리의 삶이 단순히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풍요로워지기 위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베드로전서 2:2를 읽어보자.
베드로전서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말씀)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갓난 아기들은 젖이 없이 살 수가 없다. 자면서 자라고 젖을 먹고 싶을 때 운다. 젖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갓난 아기들처럼 우리의 생명도 하나님 말씀의 젖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우리는 말씀의 우유가 필요한지 아닌지 판단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사실이다. 물리적으로 살기 위해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사실처럼, 하나님 말씀을 필요로 하는 삶을 살기 위해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3. 진실인 하나님의 말씀 갓난아이들에게 젖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살펴 보았는데, 이제 말씀이 무엇인지 더 알아보자.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동안 있었던 일에 관해 읽어보고자 한다(요한복음 18:33-38). 이 심문을 하는 동안, 빌라도는 그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물어봤을 만한 질문을 한 가지 했다. 빌라도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진리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요한복음 18:37)고 답하셨으며 이에 빌라도는 요한복음 18:38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요한복음 18:38 "빌라도가 [예수님께]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의 질문은 특별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과 우리들도 살면서 같은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답은 요한복음 17장에 나온다. 잡히기 좀 전까지 하나님께 기도하시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7:14, 17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제자들]에게 주었사오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진리에 관한 질문의 답은 매우 간단하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가 두려움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근간이 되는 진리이다. 예수님은 “길이, 진리요, 생명이니”(요한복음 14:6) 라는 말씀처럼 우리를 위해 많은 기적을 보여주셨다. 우리가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으면 (로마서 10:9) 이라고 성경 말씀에 얘기하셨다. 이것은 그저 긍정적인 말이 아니다. 종교적인 말도 아니다. 이것은 진리이다. 여러분이 반드시 구원을 받기 위해 진리를 따르면 구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진리는 진리이니까. 여러분이 바꿀 수 없다. 변경할 수도 없다. 변경이 불가능하다.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거나 양자택일이다.
반대로 거짓에는 수백 개의 다른 면이 있다. 수천 개의 생각과 철학과 종교가 함께 우리 마음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가온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탄생과 사망을 보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철학과 이론을 시대에 맞게 지속적으로 변경해야 한다. 그러나 진리는 변경할 필요가 없다. 같은 진리가 오늘, 내일 그리고 수천, 수백만 년 동안 통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한 진리이다. 베드로전서 1:23을 읽어보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베드로전서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말씀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시대에 따라 변경할 필요가 없다. 이 말씀을 이천 년동안 증명해 오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같은 하나님이시다. 야고보서 1:17을 읽어보자.
야고보서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인간은 떄로 몇 분만에 마음을 바꾼다. “다양함”과 “변함”은 항상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하면, 변하지 않고 그림자 하나도 회전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께서 뒤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 삶의 가장 확실한 근간이 되고 우리가 두려움 없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4. 순결한 말씀,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정의하는 또 다른 특성 중 하나는 순결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결하다면 얼마나 순결할까? 이 질문에 관한 답은 시편에서 찾을 수 있다. 함께 읽어보자.
시편 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시편 119:140 "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순한 말씀이 아니다. “실수”에 대해 사화하거나 사용하기 전에 손을 봐야하는 그런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고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아서” 더 순수할 수가 없다. 그래서(“순수하므로[결과적으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우리가 그 말씀을 사랑한다. 순결함, 순수성 정확성이 그 지으신 하나님을 그대로 보여준다.
5. 즐거움의 근원인 하나님 말씀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여러가지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시편 119편에서 말씀의 다른 면을 찾아보자.
시편 119:162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시편 119:14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재산이 많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떡만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돈으로 진정한 삶이나 삶의 즐거움을 주는 요소들을 살 수 없다. 그러면 이 요소는 무엇인가? 하나님 말씀이다. 이전에 보았던 내용들과 별도로, 하나님 말씀은 큰 즐거움을 준다. 사실 “많은 탈취물을 얻은” 사람처럼 즐겁게 해준다. 즐거움을 찾기 위해 복권에 당첨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을 찾아, 공부하고, 믿고, 마음 속에 새기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마다 기쁨이 커지고 큰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기뻐할 것이다. 이런 끊임 없는 즐거움의 근원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지 아니한가! 상황이나 “운”이나 다른 것들에 의한 즐거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놀라운 말씀인 성경으로 즐거워지는 것이다.
6. 내 발에 등인 하나님 말씀 하나님 말씀은 또한 시편 119:105와 베드로후서 1:19에서 보듯 다른 중요한 점이 있다. 함께 읽어보자.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베드로후서 1: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 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길을 걸으려면 빛이 필요하다. 빛이 물리적인 것이든 인위적인 것이든, 빛 없이는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인생의 길도 이 규칙에 예외일 수 없다. 이 길을 걷기 위해서 우리는 빛이 필요하다. 이 빛을 어디에서 찾겠는가? 위 내용에 따르면 답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을 따름으로서 여러분은 빛이 가득한 길을 걷게 된다. 시편 84:11과 요한1서 1:5를 읽어보자.
시편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요한I서 1:5 "…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
하나님은 해2이시다. 따라서 그분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빛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같이 빛이 많은 길을 가는 것과 같다.
7. 말씀이 우리의 즐거움이 아니라면...... 말씀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아보는 것이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위에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관해 여러가지를 살펴보았고 말씀이 없으면 어떤 상황이 될지 이해하기가 조금 더 쉬울 것이다. 그러나 시편에는 말씀의 혜택이 아닌 반대의 상황, 즉 말씀이 우리의 즐거움이 아니라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시편 119:77에서 다윗의 말을 읽어보자.
시편 119:77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다윗에게 하나님 말씀(그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의 율법이었다)은 즐거움이었다. 이제 말씀이 그의 즐거움이 아닐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기 위해 92절을 읽어보자.
시편 119:92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라"
떄로 어려운 시절이 찾아오거나 가벼운 시련(고린도후서 3:17과 베드로전서 1:6)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간은 하나님 말씀이 즐거움이자 우리 발에 등불이자 생명의 식량이 되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된다. 말씀이 덜 밝거나 그 가치를 잃는 순간이나 환경은 절대 없다. 하나님은 좋은 상황에서나 나쁜 상황에서나 똑같이 전능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분의 말씀은 좋은 상황에서나 나쁜 상황에서나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불꽃을 계속 태워 우리 가슴 속에 살아숨쉬게 해야 한다. 슬픔, 압박감, 갈등이 잠시 찾아와 하나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간이 생길 수도 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요, 항상 우리가 넉넉히 이기도록 해주신다(로마서 8:37).
8.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유익해서 가슴 깊이 그 말씀을 새겨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이 말씀을 묵상하고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의 중심에 둔다면, 그 결과는 훨씬 달라질 수 있다.
8.1. 복이 있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다 하나님 말씀을 새기는 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시편 1:1-3을 통해 알아보자.
시편 1:1-3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모든 일이 형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모든 일에 형통할 수 있는가? 위 구절에 따르면 그 방법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디모데후서 2:15) 우리 마음에 새기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 말씀을 중심에 두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또한 우리는 “복이 있고” (“행복하고”) 열매를 많이 맺는 시냇가의 나무와 같아진다.
8.2. 번영함과 신중함 하나님 말씀을 묵상한 결과는 여호수아를 읽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도자가 되어 약속의 땅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 사람이라는 사리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점은 관련 자료3 를 통해 알 수 있고 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기 위해 여호수아가 얼마나 신중했는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해야할 일을 알려주시고 이러한 신충함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흥미롭다. 여호수아 1:5-8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시는 말씀을 읽어보자.
여호수아 1:5-8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히브리어: “sakal”은 신중하고 사려깊고 이해력 있고 지혜 있고 형통한다는 의미이다. 강함에 관한 색인 7919를 참조하라. LXX는 “그리하면 현명해질 것이다4”라고 쓰여 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호수와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셨는지 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와 위안을 이해하지 못하신 채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은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보라. 모세의 율법을 지켜 담대히 행동하면 (“어디로 가든”) 항상 형통하게 해주신다고 하셨다. 사실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대로 조심해서 행동하고 멀어지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고 계속 마음에 새길 때에만 만사 형통하게 해주신다고 했다. 이 “~해야만”은 그의 만사형통이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길 때에만 가능하다는 조건부이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있을 때에만 우리는 만사 형통할 수 있다. 여호수아의 남은 부분을 읽어보면, 그는 평생 동안 진실로 하나님을 따르고 섬겨서 만사 형통했다.
9. 결론 이 공부를 마치며,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말해야 한다. 독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보고 스스로 다른 것들도 찾아보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하나님 말씀에 감사할 수 밖에 없는 많은 내용들을 읽었다. 이 내용을 전부 요약해보면,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다음과 같다.
i) 진리
ii) 하나님께서 가장 높이 하신 부분
iii) 삶의 음식
iv) 성장하기 위한 젖
v) 즐거움의 근원
vi) 우리 발의 빛
vii)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기를 위한 활용
viii) 순수함
ix) 우리의 즐거움이 아니면 고난 중에 멸망했을 것
x) 우리가 다음을 위해 묵상해야 할 것
a) 복 b)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음 c) 만사 형통 d) 신중함
이 목록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하나님 말씀의 위대함, 중요성, 가치를 충분히 보여주었으리라고 믿는다. 말씀을 공부하고 우리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지킬 때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 주시는지 명백하게 보여주었기를 바란다.
타소스 키울라초글루
각주
1. 자세한 내용은 디모데후서 3:16에 관한 글, 디모데후서 3:16-17: 성경의 활용 참조.
관음보살이 왼손에 들고 있는 연꽃은 모든 중생이 본래부터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을 나타내고, 그 꽃이 핀 것은 불성이 드러나서 성불한 것을 뜻하며,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는 번뇌망상에 물들지 않고 장차 피어날 불성을 각각 상징하는 것입니다. 중생들이 어려움에 기도를 청할때 관세음보살을 제일 많이 찾습니다.
성관음(聖觀音), 아발로키테슈바라(Avalokiteśvara)는 불교에서 모든 붓다후드의 연민을 내재한 보살을 말한다. 108개의 아바타라가 있으며 그 중 저명한 아바타라는 연화수보살(Padmapāṇi)이다.
이 용어의 최초의 번역은 관자재(觀自在)였다. 특히 쿠마라지바 등 일부 중국 번역가들은 관세음(觀世音)으로 번역하는 것을 선호한다. 아발로키테슈바라의 원래 형태는 15세기 산스크리트어에 나타난다.
슈리 라마나 마하리쉬는 그에게 질문하는 사람이면 누구한테나 기꺼이 구두로 가르침을 주었지만, 그의 '침묵의 가르침'(silent teachings)이 더 직접적이고 더 강력하다는 점을 빈번히 강조하였다. 이 '침묵의 가르침'은 그의 형상으로부터 방출되는 것으로 보이는 하나의 영적인 힘(spiritual force)인데, 워낙 강력하여 그는 이것을 그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말로 가르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 힘을 방출하였고, 이 힘이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동적으로 가라앉혔다. 이 힘에 마음을 맞추었던 사람들은 그것을 내적인 평안과 행복의 상태로서 체험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진보된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러 그 힘이 진아의 직접적인 체험을 촉진시켜 주기도 하였다.
이런 방법의 가르침은 인도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잘 알려진 대표적 인물은 쉬바(Siva)의 화신(AVATAR)이라고 하는 다끄쉬나무르띠(Dakshinamurti)인데, 그는 이 침묵의 힘으로 네 명의 학식 있는 현자들로 하여금 진아를 체험하게 했다. 슈리 라마나는 다끄쉬나무르띠를 높이 평가하면서 자주 이야기하였으며, 그의 이름은 이 장章의 문답 가운데 여러 번 등장한다. 스승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이 힘은, 진아나 스승의 형상에 초점을 맞추어 주의를 집중하는 사람은 누구나 받을 수 있으며,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그것의 효과에는 전혀 장애가 없다. 이러한 주의 집중을 흔히 상합常合(sat-sanga)이라 하는데, 글자 그대로는 '존재와의 친합親合'(association with being)을 뜻한다.
슈리 라마나는 이 행법을 진심으로 권유하였으며, 이것이 진아를 직접 체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자주 말했다. 전통적으로 이것은 진아를 깨달은 사람의 육신 곁에 있는 것을 말하지만, 슈리 라마나는 그 의미를 더 넓게 정의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상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스승과의 '정신적 연결'(mental connection)이며, 상합은 스승의 곁에 있을 때 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스승을 생각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다음의 인용문은 상합의 힘이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이것은 슈리 라마나가 각기 다른 때에 여기 저기서 입수한 5개 절節의 산스끄리뜨 글귀들로 되어 있다. 그는 그 내용에 아주 감명을 받아, 그것을 따밀어로 옮겼고, 이를 실재의 본질에 관해서 쓴 그의 저작인 {실재사십송 증보}(Ulladu Narpadu Anubandham)에 포함시켰다.
1. 상합(sat-sanga)에 의해서 세간적 대상들과의 연결이 끊어질 것이다. 세간적 연결(worldly association)이 끊어지면 집착, 즉 마음의 습이 소멸될 것이다. 마음에 집착이 없는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것'(진아) 속에서 사 라질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생존 해탈(jivan mukti)을 성취한다. 그들과의 상합을 소중히 여기라.
2. 또렷한 탐구(vichara)에 의해 여기 이 생에서 성취되며, 깨달은 스승 (sadhu)과의 친합親合을 이룰 때 심장 안에서 일어나는, 찬양받는 그 지고의 상태는, 설법자(preacher)의 강의를 듣거나, 경전의 의미를 공부하고 배우거나, 착한 행위를 하는 등의 다른 방법에 의해서는 성취할 수 없다.
3. 만약 우리가 깨달은 스승들과의 친합을 얻는다면, 그 모든 신앙적 행위(religious observances, niyamas-勸戒)가 무슨 소용 있으랴? 더할나위 없는 시원한 남풍이 불어오는데, 부채는 부쳐서 무엇하랴?
4. 무더움은 시원한 달이 걷어가고, 가난은 천상의 소원성취수所願成就樹 (wish-fulfilling tree)가 없애주며, 죄는 갠지스 강이 씻어준다. 그러나 무더움을 위시한 이 모두가, 비할바 없는 스승의 친견親見(darshan)을 얻음으로써 다 소멸되리.
5. 물로 이루어진 신성한 목욕장沐浴場과, 돌과 흙으로 만든 신상神像들도 저 큰 성인들(mahatmas)에는 비할 수 없어라. 아, 얼마나 놀라운가! 목욕장 과 신상들은 수많은 날들이 지난 뒤에야 마음의 순수함을 내려 주지만, 깨달은 스승들이 당신의 눈으로 바라보아 주는 사람들에게는 한 순간에 그러한 순수함이 하사된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