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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然(유연)
God-Realization 신-깨달음의 영적 여정....... 삶의 목적은 우주적인 자아와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한한 지복, 파워, 지식 (전지, 전능, 지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 아바타 메허 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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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有然(유연)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태어나 오래 살기도 또한 어렵다.
세상에서 부처님 만나기 어렵고
부처님 법을 듣기도 어렵네.
모든 악을 짓지 않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해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칠불통게)
거룩한 삼보에 귀의하라.
그것은 가장 길하고 가장 으뜸 되나니
오직 홀로 그것만이 있어서
일체의 괴로움을 건널 수 있느니라.(법구경)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자기가 아는대로 진실만을 말하며
주고받는 말마다 악을 막아
듣는 이에게 편안과 기쁨을 주어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 할때 과감히 행동하라
제 몸 위해 턱없이 악행하지 말고
핑계대어 정법을 어기지 말며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고
성 내거나 질투하지 말라
정의를 등지지 말고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이익을 위해 남을 모함하지 말라
객기 부려 만용 하지 말고
허약하여 비겁하지 말며
지혜롭게 중도의 길을 가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모습이니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이 업신 여기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려 중도를 지켜라
벙어리 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임금처럼 위엄을 갖추고
구름처럼 한가로워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 알고
호랑이 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때와 처지를 살필 줄 알고
부귀와 쇠망이 교차함을 알라
이것이 지혜로운 불자의 삶이니라. (잡장경제4)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덕은 겸양에서 생기며,
도는 안정에서 생기고
명은 화창에서 생기나니,
근심은 애욕에서 생기고,
재앙은 물욕에서 생기며,
허물은 경만에서 생기고,
죄는참지 못하는데서 생기느니라.
눈을 조심하여 남의 그릇됨을 보지 말고,
입을 조심하여 착한 말 바른 말
부드럽고 고운말을 언제나 할 것이며,
몸을 조심하여 나쁜 친구를 따르지 말고
어질고 착한 이를 가까히 하라.
이익 없는 말을 실없이 하지 말고
내게 상관없는 일을 부질없이 시비치말라.
어른을 공경하고 덕있는 이를 받들며,
지혜로운 이 미거한 이를 밝게 분별하여
모르는 이를 너그럽게 용서하라.
오는 것을 거절말고,
가는 것을 잡지 말며,
내 몸 대우 없음에 바라지 말고
일이지나갔음에 원망하지 말라.
남을 손해하면 마침내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오고,
세력을 의지하면
도리어 재화가 따르느니라
불자여| 이글을 읽고 낱낱 깊이 새겨서
영원을 살아갈지어다.(법구경)
 
허술하게 지은 지붕에 비가 새듯이
수양이 없는 마음에는 탐욕의 손길이 스며든다.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계율을 지키지 않고 방탕한 사람은
남의 소를 세고 있는 목자와 같아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다.
계율은 감로(甘露)의 길이 되고
방일은 죽음의 길이 되나니
탐하지 않으면 죽지 않고
도(道)를 잃으면 스스로 죽게 된다.(법구경)
 
활 만드는 사람은 활을 다루고
배 만드는 사람은 배를 다루며
목수는 나무를 다루고
지혜 있는 사람은 자신을 다룬다.
마치 저 큰 바위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뜻이 굳세어
비방과 칭찬에도 흔들림 없다.(법구경)
 
이 몸을 물거품 같다고 보면
모든 법은 스스로 허깨비일 것이요
악마의 꽃 화살을 꺾어 버리면
나고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몸이 병들면 곧 시드는 것은
마치 저 꽃이 시들어 떨어지는 것같고
죽음이 눈 앞에 닥치는 것은
폭포 물이 빨리 떨어지는 것 같다(법구경).
 
그 악이 아직 때가 되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복을 받는다.
그러나 그 악이 때가 이르면
스스로 혹독한 죄를 받는다.
그 선이 아직 때가 이르기 전에는
착한 사람도 화(禍)를 당한다.
그러나 그 선이 때가 이를 때에는
반드시 그 복을 받을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는 죽음을 두려워하니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없네.
자기를 용서하는 것을 거울 삼아
죽이지 말고 때리지 말라.
살아있는 존재는 폭력을 두려워하고
모든 생명은 안락한 삶을 좋아한다.
자기를 용서하는 것을 거울 삼아
죽이지 말고 때리지 말라.(법구경)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웃으랴.
목숨은 언제나 불타고 있나니
그윽하고 어두움에 둘러싸여도
등불을 찾을 줄을 모르는구나
 
천하고 더러운 법 배우지 말라.
게으름 피우며 시간을 보내지 말라.
그릇된 소견을 따르지 말라.
세속의 근심 거리를 만들지 말라.
 
이 세상 모든 것 물거품 같고
사람의 마음은 아지랑이 같다.
이렇게 세상을 보는 사람은
죽음의 왕도 그를 보지 못한다.
임금의 화려한 수레 같다고
이 세상을 그렇게 보라. (법구경)
 
모든 부처님 나오신 것 유쾌하고
바른 도의 설법이 유쾌하며
수행자들 모여 화합한 것
또한 유쾌하나니 화합하면
언제나 편안하느니라.
진리를 보아 마음이 깨끗하고
생사의 깊은 바다 이미 건너서
부처님 나셔서 세상 비춤은
중생의 모든 고통
건지시기 위함이다.(법구경)
 
뜨거움은 음욕보다 더한 것 없고
독하기는 성냄보다 더한 것 없다.
괴로움은 몸보다 더한 것 없고
즐거움은 열반보다 더한 것 없다.(법구경)
 
사랑하는 것에로 달려가지도 말고
미워하는 것을 두지도 말라.
사랑하는 것은 못보면 근심하고
미워하는 것은 보면 근심스럽다.
그러므로 사랑을 짓지 말라.
사랑으로 말미암아 미움이 생기나니
이미 그 얽매임을 벗어난 사람
사랑할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없네
사랑하고 기뻐하는 데 근심이 생기고
사랑하고 기뻐하는 데서 두려움이 생긴다.
사랑하거나 또 기뻐 할 것 없으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랴.(법구경)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은
항상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고
자나깨나 한 생각으로
부처님을 생각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은
항상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고
자나깨나 한 생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은
항상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고
자나깨나 한 생각으로
부처님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무리를 생각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은
항상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고
자나깨나 한 생각으로
육신의 덧없음을 생각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들은
항상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고
자나깨나 한 생각으로
자비를 생각하며 즐긴다.(법구경)
 
사람의 집에 어머니가 있어서 즐겁고
아버지 또한 계시면 더없이 기쁘다.
세상에 사문이 있어서 즐겁고
천하에 도가 있어 기쁘다. (법구경)
 
 
뱀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약으로 다스리듯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는 수행자는 이 세상(이승)과 저 세상(저승)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마음속으로 노려움을 모르고, 세상의 흥망성쇠를 초월한 수행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함께 버린다. 마치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숫타니파아타)
 
모든 중생에 대하여 폭력을 쓰지 말고, 모든 중생의 어느 하나도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두려고 원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발생한다. 사랑과 그리움으로 인하여 괴로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서 우환이 생기는 것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숫타니파아타)
 
마치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 다리듯이, 슬기로운 사람은 독립된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동반자와 함께 있으면, 몸을 쉬거나 일어서거나 걸어가거나 여행하는 데 언제나 참견하게 된다. 남들이 원치 않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숫타니파아타)
 
동반자와 함께 있으면 유희와 환락이 있고 자녀에 대한 애정은 더욱 커진다. 사랑하는사람과 헤어지기 싫더라도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갖지 말고, 무엇이든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온갖 고난을 견디며, 두려움을 갖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숫타니파아타)
 
실로 욕망은 화려하고 감미로우며 유쾌하여 여러 가지로 마음을 교란시킨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런 우환이 있음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성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 하지 말고, 남의 덕을 덮어두지 말라. 혼탁과 미망을 버리고 세상에서 일체의 애착을 버린 자가 되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숫타니파아타)
 
여러 가지 맛에 탐닉하지 말고 욕구하지 말며, 남을 부양하지 말며 문전마다 결식하며 어느 집에도 집착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큰 소리에도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또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숫타니파아타)
 
탐욕과 증오와 미망을 버리고, 집착의 매듭을 끊어, 목숨을 바치는 일이 있더라도 두려워 하지 말며,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숫타니파아타)
 
신앙은 내 씨앗이고, 고행은 비이며, 지혜는 내 멍에와 쟁기이고, 부끄러운 마음은 쟁깃대며, 의지는 밧줄이고 사념은 내 쟁깃날과 고무래다. 나는 몸을 조심하고, 말을 삼가며, 음식을 절제하여 과식하는 일이 없다. 나는 진실을 김 매듯 가꾸고, 온유함은 내 멍에를 벗어 버리는 것을 뜻한다.(숫타니파아타)
 
잠꾸러이기 이며 여럿이 모이는 것을 즐기며 애써서 노력하는 일이 없이 게으르고 곧잘 화내는 것을 능사로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풍족하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늙고 쇠약하는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이가 있으니 이것이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숫타니파아타)
 
혈통을 자랑하고 재산을 자랑하며 가문을 자랑하되 자기의 친척을 경멸하는 자가 있으니 이는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주색에 빠지고 도박을 즐기며 얻는 대로 번번이 잃어 버리는 자가 있으니 이는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 자기 아내에게 만족하지 않고 매춘부와 어울리며 남의 아내와 가까이하는 것은 파멸에 이르는 문이다.(숫타니파아타)
 
화를 잘 내며 원한을 품고, 흉악하여 남의 미덕을 덮어 버리고, 그릇된 견해를 가지고 남을 술책하는 자--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숫타니파아타)
 
한번 태어나는 것이나 두 번 태어나는 것을 막론하고, 생명있는 것을 해치고 이에 대하여 측은한 마음을 갖지 않는 자 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폭력을 사용하거나, 서로 사랑하여 친척이나 친구의 아내를 가까이 하는 자 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숫타니파아타)
 
상대방이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물었을 때 해로운 것을 가르치며 거짓말을 하는 자 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악한 일을 하고도 내가 한 일을 아무도 몰라 주었으면 하고 바라며 속임수가 있는 자 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숫타니파아타)
 
자기를 사랑하고 남을 경멸하여, 자만심으로 비굴해 진 자 이는 천한 자임을 알라. 날 때부터 천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날 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행위에 의해 천한 자도 되며, 행위에 의해 바라문도 되는 것이다.(숫타니파아타)
 
어떤 생물이든, 즉 겁이 많은 것이든 담이 큰 것이든 또 덩치가 길든 크든 짧든 중간쯤 되든, 그리고 섬세하게 생겼든 육중하게 생겼든.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다하여 자기의 외아들을 지키듯 일체 중생에 대하여 무한한 자비심을 베풀라.(숫타니파아타)
 
이 세상에서 신앙은 인간에게 가장 큰 재산이다. 덕행이 두터우면 안락을 가져온다. 실로 진실은 맛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맛이다.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훌륭한 생활이다.
 
이미 일어난 번뇌의 싹은 잘라 버리고 이를 다시 심는 일이 없으며, 또 현재 일어나는 것을 키워 나가지 않고 혼자서 걸어가는 자를 성자라 한다. 저 위대한 선인은 평안의 경지를 본 것이다.(숫타니파아타)
 
생물을 죽이는 것, 그리고 때리고 자르며 결박하는 것, 도둑질을 하고 거짓말하는 것, 속이는 것, 그릇된 것을 배우고 남의 아내를 가까이 하는 것 --이것이 비린 것이다. 육식은 그렇지 않다.(숫타니파아타)
 
성내고, 교만하며, 고집 세고, 반항심.거짓.질투.허풍, 극단의 오만함, 불량배와의 사귐 이것이 비린 것이다. 육식은 그렇지 않다. 어리석은 자들과 친하지 말고, 현자 와 가까이 하며,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받드는 것 이것이 최상의 복이니라.(숫타니파아타)
 
부모를 섬기고 처자를 사랑하며 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 것 이것이 최상의 복이니라. 악을 싫어해서 멀리하며 술을 금하고 덕행에 소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최상의 복이니라.(숫타니파아타)
 
탐욕과 혐오는 자신으로부터 일어난다. 즐거움과 고통과 소름 끼치는 일들도 자신으로부터 일어난다. 갖가지 망상도 자신으로부터 일어나 마음을 방황케 한다 마치 아이들이 까마귀를 놓아 보내듯이.(숫타니파아타)
 
일어나라. 그리고 단정히 앉아 선을 행하라. 잠만 자면 그대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화살에 맞아 고뇌 속에 있는 자들이 잠에 빠지다니. 일어나라. 그리고 단정히 앉아 선을 행하라.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하여 오직 배우라.(숫타니파아타)
 
죽음의 왕은 그대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힘에 굴복한 것을 알고 있다. 그대를 미혹에 빠지게 하지 말라.(숫타니파아타)
 
 
 
一切法不生 一切法不滅 若能如是解 諸佛常現前 일체만법이 나지도 않고 일체 만법이 없어지지도 않나니 만약 이렇게 알 것 같으면 모든 부처님이 항상 나타나는도다.(화엄경)
 
신심은 도의 근본이고 공덕의 어머니라 모든 선한 법을 길러내며 의심의 그물 끊고 애정 벗어나 열반의 위없는 도 열어 보이도다.(화엄경)
 
믿음은 썩지 않은 공덕의 종자 믿음은 보리수를 생장케 하며 믿음은 수승한 지혜 증장케 하고 믿음은 온갖 부처 시현하도다.(화엄경)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有心造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모든 것 오직 마음이 지어냄이로다.(화엄경)
 
若有欲知佛境界 當淨其意如虛空 遠難妄想及諸取 令心所向皆無碍만약 부처경계 알고자 하면 그 뜻을 맑히기 허공과 같이하라 망상과 모든 집착 멀리 여의고 마음의 향하는 바가 걸림 없도록 하라.(화엄경)
 
刹塵心念可數知 大海中水可飮盡 虛空可量風可繫 無能盡說佛功德 사바세계 모든 먼지 몇개 인가 센다 해도 큰 바다 모든 물을 남김 없이 마시어도 허공의 무게 재고 바람 묶는 재주라도 부처님의 크신 공덕 말로하지 못하리라.(화엄경)
 
應修十種廣大行願이니 何等 爲十고 一者는 禮敬諸佛 二者는 稱讚如來 三者는 廣修供養이요 四者는 懺悔業障이요 五者는 隨喜功德이요 六者는請轉法輪이요 七者는 請佛住世요 八者는 常隨佛學이요 九者는恒順衆生이요 十者는 普皆廻向이니라. 첫째는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는 것이요 둘째는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요 셋째는 널리 공양하는 것이요 넷째는 업장을 참회하는 것이요 다섯째는 남이 짓는 공덕을 기뻐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요 일곱째는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것이요 여덟째는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요 아홉째는 항상 중생을 수순하는 것이요 열째는 지은 바 모든 공덕을 널리 회향하는 것이니라.(화엄경)
 
 
 
부처님 세존들은 다만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이 세상에 출현하시기 때문이다. 부처님 세존께서는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知見)을 열어[開]청정케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에게 부처님의 지견을 보이려는[示]연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을 깨닫게 하려는[俉]연고로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견의 도에 들게 하려는[入]연고로 세상에 출현하시느니라.(법화경)
 
여래는 다만 일불승(一佛乘)만을 위하여 중생들에게 말 하는 것이지 다른 이승(二乘)이나 삼승(三乘)은 없느니라 사리불아 모든 시방 세계 여러 부처님의 법도 역시 그러하니라.(법화경)
 
自我得佛來 所經諸劫數 無量百千萬億阿僧祗 내가 부처가 된 이후로 지내온 많은 세월은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지로다.(법화경)
 
 
 
수행자들이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을 이익되게 하면 나아가 모든 생명 을이익 되게 하기 위해서다.(유마경)
 
모든 생명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좋은 일은 함께 기뻐하고 어떠한 잘못도 용서해 줄수 있는 넓은 마음(四無量心)이 가득찬 세상이 보살이 추구하는 이상세계이다.
 
이미 생긴 나쁜 것은 부지런히 노력하여 없애고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쁜 것은 생기지 않게 하며 아직 생기지 않은 착 한 것은 생기게 하며 이미 생긴 착한 것은 더욱 더 성 하도록 노력하는 이러한 마음이 가득찬 세상이 보살이 추구하는 이상 세계이다.(유마경)
 
若菩薩 欲得淨土 當淨其心 隨其心淨 則佛土淨 보살이 이상 세계를 실현하려면 먼저 그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마음이 깨끗하면 우주는 저절로 깨끗해지고 그 속에서 이상 세계는 어느 곳에서든지 이루어진다.(유마경)
 
무명으로부터 애착이 생겨서 이 몸에 병이 난 것입니다. 일체 중생이 병이 들었으므로 나도 병이 들었으니 만일 일체 중생의 병이 없어지면 내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유마경)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則名爲眞懺悔
죄악은 본래없어 마음 따라 일어나니 마음을 비울 때 죄악 또한 사라지네. 죄악도 마음도 모두 다 사라지면 이것을 진실로 참회라 이름하네. (천수경)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을 지닌 것은 모두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아님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 (금강경중 제일 사구게)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결코 색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어서는 안되며 결코 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것 이며 마땅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금강경중 제2 사구게)
 
所以者何 我相 卽是非相 人相衆生相壽者相 卽是非相 何以故
離一切諸相 卽名諸佛
그 까닭은 아상이 곧 상이 아니고 인상.중생상.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상을 여의면 곧 부처라 이름하기 때문입니다.(금강경 중에서)」
 
不應住色 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 生心 應生無所住心
마땅히 색에 머무르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되며 마땅히 성.향.미.촉.법에 머무르는
마음이 있어서도 안된다. 마땅히 머무름이 없는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금강경중에서)
 
須菩提 如來 所得法 此法 無實無虛
수보리야, 여래가 얻은 이 법은 실도 없고 허도 없느니라.(금강경 중에서)
 
須菩提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如人入闇 卽無所見 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有目 日光明照 見種種色
수보리야, 만약에 보살이 법에 머무르는 마음으로 보시를 하면, 마치 사람이 어둠에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으며, 만약에 보살이 법에 머무르는 마음없이 보시하면
마치 눈 밝은 사람이 밝은 햇빛 아래서 모든 것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금강경)
 
須菩提 如來所得阿褥多羅三邈三菩提 於是中 無實無虛 是故 如來說一切法 皆是佛法
수보리야, 부처가 얻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가운데는 실도 없고 허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법이 다 불법>이라고 여래가 설하는 것이니라.(금강경 중에서)
 
須菩提 若菩薩 通達無我法者 如來說名眞是菩薩
수보리야, 만약에 보살이 무아의 법에 통달했다면 여래는 <이야말로 진실한 보살> 이라고 일컬을 것이다.(금강경 중에서)
 
所以者何 須菩提 過去心 不可得 現在心 不可得 未來心 不可得
수보리야, 왜 그러냐 하면 과거의 마음도 가히 얻을 수 없으며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금강경 중에서)」
 
爾時世尊 而說偈言 若以色見我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그러자 이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시었다.「만약 형상을 통해 나를 보거나
음성을 통해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가질 뿐 여래를 능히 보지
못하리라.(금강경중 3 사구게)
 
須菩提 若有人 言 如來若來若去 若坐若臥 是人 不解我 所說義 何以故 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名如來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가 혹은 온다, 간다, 앉는다,눕는다>고 말한다면 이는 내가 설한 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본래 여래란 어디서 오는 것도
아니며,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여래라 일컫는 것이니라.(금강경중에서)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何以故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그러면 남들을 위해 어떻게 설할 것인가? 상에 집착하지 않고 본래 모습 그대로
흔들리지 말지니라. 일체의 현상계는 꿈이요, 허깨비요, 물거품이요, 그림자요,
이슬같고, 번개불같은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금강경중 4 사구게)
 
 
 
善男子 若有無量百千萬億衆生 受諸苦惱 聞是觀世音菩薩 一心稱名 觀世音菩薩 卽時 觀其音聲 皆得解脫 선남자여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모든 괴로움을 받을 적에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곧 그 음성을 관찰하고 다 해탈케 하느니라.(관음경중에서)
 
是觀世音菩薩摩訶薩 於怖畏急難之中 能施無畏 是故 此娑婆世界皆號之 爲施無畏者 관세음보살마하살은 무섭고 급한 재난가운데서도 두려움을 없게 하나니 그러므로 사바세계에서 모두 그를 이름하여 두려움을 없애주는 분이라 하느니라(관음경중에서).
 
 
衆生被困厄 無量苦逼身 觀音妙智力 能救世間苦
중생들이 곤액과 핍박을 받아 한량없는 괴로움 닥치더라도
관세음의 기묘한 지혜의 힘이 세간의 모든 고통 구하여 주네.(관음경중에서)
 
具足神通力 廣修智方便 十方諸國土 無刹不現身 種種諸惡趣
地獄鬼畜生 生老病死苦 以漸悉令滅
신통하고 묘한 힘 두루 갖추고 지혜의 여러 방편 널리 닦아서 시방의 모든 세계
어디서든지 갖가지 몸 나투지 않는데 없어 가지가지 험하고 나쁜 갈래인 지옥과 아귀 축생들까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차츰차츰 모두다 없애버리네(관음경중에서)
 
眞觀淸淨觀 廣大智慧觀 悲觀及慈觀 常願常瞻仰 無垢淸淨光
慧一破諸暗 能伏災風火 普明照世間 悲體戒雷震 慈意妙大雲
澍甘露法雨 滅除煩腦念
참되고 깨끗하게 보살피고 넓고크신 지혜로 관찰하시며 자비한 마음으로
보듬으시니 언제나 원하옵고 앙모합니다. 때 없이 청정하고 밝은 광명이 해와같은 지혜로 어둠 깨치고 풍재와 화재들을 굴복시키고 골고루 이세상 비춰주시니 대비는 체가되고 계행은 우뢰되고 자비하신 마음은 묘한 큰구름 감로의 법비를 내려 주셔서 번뇌의 더운 불꽃 소멸하옵시다(관음경중에서)
 
妙音觀世音 梵音海潮音 勝彼世間音 是故須常念 念念勿生疑
觀世音淨聖 於苦惱死厄 能爲作依好 具一切功德 慈眼視衆生
福聚海無量 是故應頂禮
미묘한 음성이신 관세음보살 범천왕의 음성 과 조수의 음성 세간의 음성보다 뛰어나시니 갈수록 사무침이 더해만 가네 거룩하고 청정하신 관세음보살 중생들은 조금도 의심치 말고 세상사 고뇌속의 등대이시니 능히믿고 의지할 어버이시네. 여러 가지 공덕을 다 갖추시고 자비한 눈길로 중생을 보시며 중생의 원함따라 복덕 주시니 그 공덕 한량없어 예배합니다.(관음경중에서)
 
 
 
舍利弗彼土 何故 名爲極樂 其國衆生 無有衆苦 但受諸樂 故名極樂
여기에서 서쪽으로 십만억 불국토를 지나간 곳에 극락 이라고 하는 세계가 있다.
저 세계를 어째서 극락이라 하는 줄 아는가? 거기에 있는 중생들은 아무 괴로움도 없이 즐거운 일만 있으므로 극락이라 하는 것이다.(아미타경중에서)
 
舍利弗 於汝薏云何 彼佛 何故 號阿彌陀 舍利弗 彼佛光明 無量 照十方國 無所障碍 是故 號爲阿彌陀 又舍利弗 彼佛壽命 及其人民 無量無邊阿僧祗劫 故名阿彌陀
아미타불 부처님의 광명이 한량없어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도 조금도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또 그 부처님의 수명과 그 나라 인민의 수명이 한량없고 끝이 없는 아승지겁이므로 아미타불이라 한다.(아미타경중에서)
 
發心普被恩 難行苦行恩 一向爲他恩 隨形六途恩 隨逐衆生恩
大悲深衆恩 隱勝彰劣恩 爲實示權恩 示滅生善恩 悲念無盡恩
가피나투시고 온갖고행 닦으시고 중생구제 애쓰시고 육도의 곳곳에서 자비 손길내리시고 중생있는 모든곳에 그몸을나투시고 깊고깊은 자비심은평등하여 걸림없고
훌륭한모습을 평등한 듯보이시고 진실한 가치로 방편을 세우시고 열반하심 보이시어 착한마음 일게하고 한량없는 자비로 중생을 위하시네.(제불보살십종대은)
 
兜率來儀相 毘藍降生相 四門遊觀相 踰城出家相 雪山修道相 樹下降魔相 鹿苑轉法相 雙林涅槃相(팔상성도)
도솔천에서 코키리 타고 모태에 드시었네.
사월팔일 룸비니에서 왕자되어 탄생하셨네.
사대문 두루보고 인간의 괴로움 아시었네.
이월팔일 성을떠나 사문이 되시었네.
설산고행 지극하니 범인경지 넘으셨네.
납월팔일 성도하니 모든마귀 항복하네.
녹야원 설법으로 중생구제 나서셨네.
이월 대보름에 큰 열반 이루셨네.(석가여래팔상성도)
 
懷眈守護恩 臨産受苦恩 生子忘憂恩 咽苦吐甘恩 廻乾就濕恩
乳哺養育恩 洗濯不淨恩 遠行憶念恩 爲造惡業恩 究竟憐愍恩
어머니 뱃속에서 보호받은 은혜 낳으실때 괴로움을 격으신 은혜
아기낳고 모든시름 잊으신 은혜 좋은것만 가리어서 먹여주신 은혜
마른자리 젖은자리 가려주신 은혜 젖먹이며 다독거려 키워주신 은혜
더러운것 세탁하며 청결케한 은혜 집을떠나 먼길가면 잊지않은 은혜
자식위해 거짓으로 악업지은 은혜 어른돼도 끊임없이 걱정하신 은혜(부모은중경)

posted by 有然(유연)


서울 은평구 심택사가 소장하고 있는 ‘묘법연화경’이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서울시는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목판인쇄술과 초기 한글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묘법연화경’과 ‘감지금니묘법연화경’을 내일(18일)자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고 밝혔습니다.


▲ 묘법연화경 변상도

‘묘법연화경’은 보물 1153호와 동일한 판본으로 현존하는 권책 수도 동일한 15세기에 새겨진 목판 불경이며 일부 빠진 부분이 있지만 전해오는 전본 중 이 책의 판본이 극히 드물다는 가치가 인정됐습니다.


▲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1의 서(序) 부분

또 성보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감지금니묘법연화경’은 고려시대 목판 불경으로 변상도를 포함하면서 크기가 작고 정교한 소자본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희귀본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상진 기자 / spc5900r@bbsi.co.kr

posted by 有然(유연)


[CEO 칼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 /박상호

자비·지혜·생명이 최고, 불교 3개 경전의 가르침
영원 불멸의 가치 지닌 생명이야말로 으뜸 보물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2019.12.24 18:59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일까 고민할 때마다 불교의 세 가지 경전을 곱씹는다. 첫째는 유마경(維摩經)이다. 유마경의 주인공 유마힐 거사는 자유롭고 진취적이며 비판적인 정신을 대표한다.

유마힐 거사가 병이 든 것은 중생의 아픔을 함께하기(同苦) 위함이었다. 이는 자비 정신의 실천이다. 유마힐 거사는 문수보살과 대화하면서 “어리석음·탐욕과 성내는 마음으로부터 내 병이 생겼습니다. 모든 중생이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모든 중생의 병이 나을 때 내 병도 나을 것입니다”고 했다. 중생과 고통을 함께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 삶의 덕목과 지향 가운데 자비를 최고의 가치로 서술한 경이 유마경이다.

둘째는 반야경(般若經)이다. 반야는 ‘공(空)’을 ‘관(觀)’하는 데서 얻는 지혜이다. 공은 아공과 법공으로 나뉜다. 아공은 중생을 색·수·상·행·식의 5가지 요소가 임시로 조합되어 이루어진 존재라고 본다. 오온가화합(五蘊假和合, 중생은 오온의 일시적인 화합에 불과하다는 뜻)의 인간에게 ‘나’라고 주장할 만한 영원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공이라고 한다. 법공은 오온 등 법의 근거가 공(空)함을 뜻한다.

공이란 있다고 보면 없고, 없다고 보면 있는 교묘한 우주의 법칙이다. 반야경의 핵심 경문 중 하나인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삼라만상 모두 생로병사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색은 물질을 의미한다. 인간도, 지구도, 태양도, 은하도, 우주도 생로병사를 거역할 수 없다.

공즉시색(空卽是色)은 사멸한 별의 잔해에서 새로운 별이 중력의 작용으로 재탄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死)에서 생(生)으로 환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주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이며 부증부감(不增不減)하므로 창조보다는 진화에 가깝다. 반야경의 핵심 경문인 ‘부증부감’은 모든 존재의 참모습을 공이라고 본다. 이는 우주는 생멸(生滅)을 반복할 뿐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는 질량불변의 법칙을 들려준다. 우주는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었고 생멸·변화를 계속할 뿐 증감이 없다는 의미다.

현대 천문학계에서 주장하는 빅뱅이론(우주는 갑자기 대폭발로 탄생했다는 이론)과는 명백히 배치된다. 어쨌든 과학의 발전에 따라 더 많은 것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는 법화경이다. 법화경을 살펴보면 테마는 생명이다. 묘법연화경에서 부처는 머나먼 과거부터 미래 영겁에 걸쳐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다. 그가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은 모든 인간이 부처의 깨달음을 열 수 있다는 대도(大道)를 보이기 위함이다. 그 대도를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 경전의 핵심이다.

법화경은 생명의 영원함을 최고 가치로 상찬한 경이다. 법화경에서 설하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내용을 생각해보자. 제법(諸法)은 삼라만상의 모든 현상을 의미한다. 그 현상의 이면에 모두 묘법연화경이라는 생명의 실상(實相)이 있다는 내용이다. 생명의 가치는 우주에 가득한 보배로도 바꿀 수 없는 숭고하고 존엄한 것이라고 상찬한다. 모든 현상은 묘법연화경이라는 생명의 실체를 가지고 있으며, 생명의 다른 이름(異名)이 묘법연화경이라는 뜻이다.

특히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서는 ‘석존이 구원부터 부처였다’는 획기적인 선언을 하며 생명의 영원함에 대하여 설한다. 석존은 카필라성에서 출가하여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고 부처가 되었다고 대중에 알려진 것과 달리, 구원부터 부처였다는 것이다. 핵심은 생명이야말로 영원불멸의 보석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여래수량품의 뜻을 풀어보면 여래의 수명이 무량하다는 뜻이다. 경문 내용 중 ‘我實成佛已來 無量無邊 阿僧祗劫(내가 진실로 성불한 이래 무량무변 아승기 겁이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아(我)는 석존이며 또 십법계의 아(我)이다. ‘我本行菩薩道 所成壽命 今猶未盡 復倍上數’는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 이룬 바 수명은 지금도 아직 다하지 않았으며 다시 위의 수보다 배이니라”는 의미다. 이는 생명의 영원함을 표현하고 아(석가)는 구원 때부터 부처였고 현재도 부처이며 미래에도 부처라는 뜻이다.

생명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며 본래 존재하며 영원한 것을 의미한다. 구원원초부터 영겁의 미래까지 영원불멸의 가치를 지닌 것이 생명이라는 것이며 이 생명 자체가 부처이고, 그것이 실상이며, 석존이 깨달은 최고의 지혜라는 것이다.

자비와 지혜와 생명의 가치를 따져보자면 모두가 최고의 중요한 보물과 같지만, 필자는 그중에서도 생명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신태양건설 회장·시인

posted by 有然(유연)


시공 초월한 영원한 부처님 (여래수량품)
 
전통적인 《법화경》의 해석에 의하면
《법화경》은 본문과 적문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경우 본문의 중심은 여래수량품이고,
적문의 중심은 방편품이 된다.
 
현대의 《법화경》 연구가들과 달리
중국의 《법화경》 연구가들이
본문의 핵심을 여래수량품에 둔 것은
시공을 초월해 
상주불멸(常住不滅)하는 여래가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본문은 근본이나 주축을 지칭한다면
적문은 현상이나 방법을 의미한다.
 
본질이란
언어나 감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의 방법을 통해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현상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본질의 움직임과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래도 그와 같아서
언어나 개념에 의해 파악되는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다양한 현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항상 드러내고 있지만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종교적 수행을 통해
체험하거나 통찰력을 개발해 알아차리게 된다.
 
우리들이 그러한 본질을 알아차린다고 하더라도
규격화된 언어나 개념에 의해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어느덧 자신에게 익숙한
언어나 개념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교운동가들은
이러한 본질을 알려주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게 되었다.
그것이 세속제와 진제로 설명되거나
아니면 삼매를 통한 교감 등이 강조된 배경이다.
 
“본질이란
언어나 감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보통의 방법을 통해서는 알 수가 없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종교적 세계를
논리나 개념에 의해 파악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그러한 점에 적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세계는
이미 논리적 접근을 불허하고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만일 종교의 궁극적 세계가
논리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면
그때는 종교의 차원이 아닌
철학적 차원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와 철학의 입장이 다른 것은 여기에 있다.
 
불교에선 궁극적 본질의 세계를 다양하게 표현한다.
진여, 불성, 법성, 실제, 일승, 불승 등등이다.
 
서양에선 궁극적인 본질의 세계를 神(신)의 영역으로 생각했다.
유일자나 절대의 세계 등으로 말하거나
야훼, 神(신) 등으로 표현한다.
 
재미있는 것은 서양 역시 궁극의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다만 그의 존재는 분명하기 때문에
그것을 체험할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는
독특한 언어나 기호에 의해 교감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서양 근대의 실존철학자 하이데커의 기호론도
동일한 맥락에서 신을 설명하고자 한다.
일상 신과 교감하기 위한 특별한 언어는
바코드를 비롯해 다양한 것이 있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이미 오염되어 있으며,
특별한 개념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무용지물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은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선종 역시 송나라 시대에 들어오면
특별한 기호에 의해 절대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다.
서양에서 말하는 기호론 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이미 유사한 사고의 유형이 등장하고 있다.
 
《법화경》의 여래수량품에서 말하는 부처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은 오랜 시간 이전에 이미 성불했으며,
무수한 시간을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중생들을 구제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성불한 지는
이 보다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겁이나 더 오래되었다”고 말한다.
 
비유적으로 “산수나 생각으로 알 수 없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여래수량품에서 말하는
부처님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석가모니부처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부처님의 본질적 속성을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체적인 속성은 지니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사물의 이면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생명의 가치나 생명의 빛을
‘불성’이나 ‘부처님’으로 말하기도 한다"
 
경전에서 부처님은
“자기의 몸을 보이거나 다른 사람의 몸을 보이며,
혹은 자기의 일을 보이거나 다른 이의 일을 보이나니,
설하는 모든 말은 다 허망함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며,
다양한 존재들을 구제하기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러할 경우 석가모니 부처님은
본래의 부처님이 드러낸
다양한 모습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 된다.
 
혹자는 여래수량품에서 말하는 부처님은
유신론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물론 그러한 성향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래수량품의 부처님은 구제불이며, 창조불은 아니다.
세상을 창조한 근원자로서의 부처의 속성은 지니고 있지 않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부처님을
실체론적으로 접근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길고 긴 불교의 역사 속에서
부처님에 대한 이상은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위대한 교사로서의 부처님,
그리고 부파불교에서 말하는 인격화 내지 신격화된 부처님,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법신불이나 
반야지를 상징하는 부처님 등이 그것이다.
 
여래수량품에서 말하는 부처님은
반야지의 속성이나
법신불의 속성이 융합된 부처님이다.

반야지나 법신을 하나로 융합한 여래수량품의 부처님을
《법화경》에선 일승이나 불성으로 표현한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의 부처님은
실체적인 본질은 아니다.
만일 실체적인 본질이라 말한다면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설과 배치될 것이다.
 
그러나 실체적인 속성은 지니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사물의 이면에 존재하는 보편적인 생명의 가치나 생명의 빛을
불성이나 부처님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것을 인격적인 표현으로 부처님이라 말하며,
물리적으로는 빛이라 표현하는데
시공을 초월해 영원히 존재한다는 종교적 감성을 전해준다.
 
대승불교는 초기불교의 이념이나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인도 당시의 
다양한 사상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래수량품에서 말하는 부처님이
구제불로서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힌두교의 권화(權化)사상을 수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본질은 요지부동이지만
다양한 권화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가 구제한다는 논리의 전개가 그렇다.
 
그러나 중국의 법화사상가들은
다른 입장에서 여래수량품을 중시하고 있다.
즉 중국에는 도(道)라는 개념이 일반화되고 있었으며,
그 도는 우주 만물의 근원자이기 때문에
일상적인 개념이나 방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도는 우주를 창조하기도 하며,
보편적 존재로서 항상 우리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보았다.
 
인도철학에서 말하는 아트만과 비슷한 개념을 지니고 있다.
이런 도를 중국 사람들은 본질이란 의미에서 체(體)라고 표현하고,
모든 현상은 본질의 작용이란 의미에서 용(用)이라 불렀다.
그러면서 본질은 작용에 의해 파악이 가능하며,
작용에 의거하지 않으면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로 체와 용을 설명했다.
 
그런데 《법화경》이 중국에 소개되었을 때
여래수량품에서 말하는 부처님은
중국의 전통사상에서 말하는 도의 개념과 가깝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으며,
그런 점에서 중국인들은 여래수량품을 중시하게 되었다.
 
아시아에서 《법화경》을 해석하는 고전적인 방식인
본적론은 중국 전통의 체용론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미 견보탑품이나 종지용출품에서 말했듯이
부처의 본질적 속성인 진여는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며,
그것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석가모니불과 다보불이 하나일 수 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영원한 부처는
“생사를 초월해 존재하고,
짧고 길다는 범주를 초월해 있으며,
법신은 형태나 시간에 의해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는 길장의 설명은
그런 점에서 매우 중국적인 해석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천수천안 금강신문'

posted by 有然(유연)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
법화경

그 때 부처님께서는 여러 보살들과 일체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께서 진실하게 밝히시는 말씀을 믿고 이해하라."
다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께서 진실하게 밝히시는 말씀을 믿고 이해하라."
또 다시 부처님께서는 여러 대중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께서 진실하게 밝히시는 말씀을 믿고 이해하라."
이 때 그 보살 대중 가운데 미륵보살이 상수가 되어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나니 설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받으오리다. 이렇게 세 번이나 여쭈오니 세존이시여, 설하여 주시면 저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받으오리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보살들이 세 번이나 청하여 그치지 않을 것을 아시고,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여래의 비밀한 신통력을 자세히 들으라. 일체 세간의 하늘과 인간 그리고 아수라들은 모두 석가모니불은 석씨 왕성을 나와 가야성 가까운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선남자들아, 내가 성불한 지는 한량없고 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겁이니라.

비유하면, 5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 삼천대천세계를 어떤 사람이 모두 가는 티끌로 만들어 그것을 가지고 동방으로 5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 국토를 지날 때마다 한 티끌씩을 떨어뜨림과 같으니라. 이렇게 동방으로 행하여 그 많은 티끌이 다했다면 선남자들이여,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 이와 같이 많은 국토를 사유하고 헤아려서 그 수를 알 수 있겠느냐?"
미륵보살 등이 대답하여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 국토는 한량없고 가없어 산수(算數)로도 알 수 없고 생각으로도 알 수 없습니다. 또 일체 성문과 벽지불이 번뇌[漏] 없는 지혜로 사유하더라도 그 한계의 수를 알 수 없으며, 저희들이 아유월치(阿惟越致)에 머물지라도 이런 일은 알 수 없으니,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많은 국토는 한량없고 가이없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보살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이제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하겠노라. 만일 티끌을 떨어뜨린 국토나 그렇지 않은 국토를 다 합하여 티끌로 만들고 그 하나하나의 티끌을 1겁이라 하여도, 내가 성불한 지는 이보다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겁이나 더 오래되느니라.
그로부터 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설법하여 교화했고, 또 다른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 국토에서 중생을 인도하여 이익되게 하느니라.

선남자들이여, 이 중간에서 내가 연등불(燃燈佛)63) 등에게 설하였고, 또 그의 열반을 설하였으나, 이와 같은 것은 모두 방편으로써 분별함이니라.
선남자들이여, 만일 어떤 중생이 나를 찾아오면, 나는 부처의 눈으로 그의 신심과 모든 근기의 날카롭고 둔함을 관하여 제도할 바를 따라 곳곳에서 설하되, 이름이 같지 아니하며, 연대가 많고 적으며, 또다시 나타나 열반에 든다 하고, 또 가지가지 방편으로 미묘한 법을 설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능히 환희한 마음을 일으키게 하리라.

선남자들이여, 여래는 모든 중생들이 작은 법을 즐겨 덕이 엷고 업장이 무거운 것을 보고, 이런 사람을 위하여 나는 젊어서 출가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고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성불한 지는 이와 같이 오래이고 멀지만,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해서 부처님 도에 들게 하려고 이렇게 말하였느니라.
여러 선남자들이여, 여래가 설한 경전은 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니, 자기의 몸을 설하거나 다른 사람의 몸을 설하며, 혹은 자기의 몸을 보이거나 다른 사람의 몸을 보이며, 혹은 자기의 일을 보이거나 다른 이의 일을 보이나니, 설하는 모든 말은 다 허망함이 없느니라.

왜냐 하면 여래는 삼계의 모습을 참답게 알고 보아 나고 죽음에 물러나거나 나옴이 없으며, 또 세상에 있거나 멸도함도 없으니, 진실도 아니고 허망함도 아니며,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아니하며, 삼계를 삼계 같지 않게 보나니, 이런 일을 여래는 밝게 보아 그릇됨이 없건만, 중생들이 다만 가지가지 성품과 가지가지 욕망과 가지가지 행과 가지가지 생각하는 분별이 있으므로, 모든 선근을 내게 하려고 여러 가지 인연과 비유와 이야기로 가지가지 법을 설하며, 부처님의 일을 하되 일찍이 쉬어 본 일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나는 성불한 지가 매우 오래되어 수명이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항상 머물러 멸하지 않느니라.

선남자들이여, 내가 본래 보살도를 행하여 이룬 수명은 지금도 아직 다하지 못하였으며, 다시 위에서 말한 수의 배나 되지만, 참 멸도가 아닌 것을 방편으로써 멸도를 취한다고 말하나니, 여래는 이런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왜냐 하면 만일 여래가 이 세상에 오래 머물 것을 말하면, 박덕한 사람들은 선근을 심지 않아 빈궁하고 하천하며, 5욕을 탐착하여 생각하는 것들이 허망한 그물에 걸리게 될 것이며, 만일 여래가 멸하지 않고 항상 있음을 보면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어 싫증을 내고 게으름을 피워 만나기 어려운 생각과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아니하므로 여래는 방편으로써 설하느니라.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라. 여러 부처님들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심을 만나기는 매우 어려우니라.
왜냐 하면 이런 일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니, 여러 비구들아, 여래를 만나 보기가 어렵다고 하면 중생들이 이 말을 듣고 부처님 만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내어 마음에 연모하는 생각을 품고 부처님을 간절하게 그리워하여 곧 선근을 심으리라. 그러므로 여래는 비록 멸도하지 않지만 멸도한다고 말하느니라.

또 선남자들이여, 모든 부처님 여래의 법이 다 이와 같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모두 진실이요 허망함이 없느니라. 비유하면, 어떤 의사가 지혜 총명하고 통달하여 좋은 처방과 좋은 약을 만들어 여러 가지 병을 잘 치료했느니라. 그 의사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었으니, 열, 스물 내지 백 명이나 되었다. 아버지가 볼일이 있어서 다른 나라에 간 뒤, 여러 아이들은 독약을 잘못 마시고 약 기운이 번져서 정신이 어지러워 땅에 쓰러져 있었다. 이 때 그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니, 여러 아이들이 독약을 마시고 본심을 잃기도 하고 혹은 아직 본심만은 잃지 않은 이도 있었다.
멀리서 아버지가 오는 것을 보고 다 크게 환희하여 무릎 꿇고 절하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안녕히 다녀오십니까? 저희들이 어리석어 독약을 잘못 마셨으니 구원하시어 다시 생명을 얻도록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는 자식들의 고통이 이와 같음을 보고 여러 가지 처방으로 좋은 약초의 빛과 향과 맛을 다 갖추어 방아에 찧고 체로 쳐서 아이들에게 먹이면서 말하였다.
'이것은 좋은 약이다. 빛과 향과 맛을 아주 잘 맞추었으니 너희들이 먹으면
그 고통이 빨리 낫고 다시는 다른 병에 걸리지 않으리라.'
그 가운데 본심을 잃지 아니한 아들은 그 약이 빛과 향이 갖추어 있음을 보고 좋아하면서, 곧 이 약을 먹어 병이 나았다. 본심을 잃은 아이들은 아버지가 오는 것을 보고 비록 환희하고 문안드리며 병 치료를 원했으나, 그 약을 먹지 않았으니, 왜냐 하면 독기가 깊이 들어 그 본심을 잃었으므로 이같이 좋은 빛과 향으로 갖춘 약을 좋지 않게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때 아버지는 생각하였다.
'이 자식들이 참으로 불쌍하구나. 독약 중독으로 마음이 다 뒤집혀 나를 보고 기뻐하며 병의 치료를 원하지만 이렇게 좋은 약을 먹지 않으니, 내가 이제 방편을 베풀어 이 약을 먹게 하리라.'
그리고 이와 같이 말하였느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알라. 내 이제 늙고 쇠약하여 죽게 되었거늘, 이 좋은 약을 여기에 남겨 두니 이것을 먹을 때 차도가 없을까 두려워하지 말라.'
이렇게 타일러 놓고 다시 다른 나라에 가서 사자를 본국의 아이들에게 보내어 그대들의 아버지는 이미 죽었다고 말하였느니라. 이 때 그 여러 아들들이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슬퍼 하며 생각하였다.
'만일 아버지께서 계시면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여 구원해서 보호하시련만, 이제 우리를 버리고 멀리 타국에서 세상을 떠나셨으니 우리는 외롭구나. 이제는 다시 모실 수도 없도다.'
그러면서 항상 슬픔에 잠겨 지냈다. 그러다가 마침내 마음이 깨어나 이 약의 빛과 맛과 향기가 좋은 것을 알고 곧 먹으니 병이 다 나았느니라. 그 아버지가 아이들이 약을 먹고 다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찾아와 이들에게 보이는 것과 같으니라.
여러 선남자들이여,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누가 이 의사를 허망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또한 이와 같아 성불한 지는 한량없고 가없는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기겁이지만, 중생을 위하여 방편의 힘으로 멸도를 말하고 있으나 능히 법과 같이 설하였으므로, 나를 허망하여 허물이 있다고 하지 않으리라."

posted by 有然(유연)

「여래수량품 중송분」

“나 열반에 듦이 아니라 내 항상 여기 있어서 영축산이나 그 밖의 다른 곳에
항상 내가 여기 있느니라.”

- 법화경

posted by 有然(유연)

“모든 중생 불성 지녀, 청정 계율로 드러내라”

‘실유불성’ ‘법신상주’
대승불교 핵심 교리
계율과 육바라밀 수행

불교 중국화 과정서
크게 유행 인기 끌어
사찰은 다양한 신앙과 역사를 품고 있다. 신앙에 따라 관음·약사·나한도량 등으로 구별하며 역사에 따라 능찰·비보사찰 등 다양하게 부르기도 한다. 주제가 있는 사찰 기행은 사찰의 신앙과 전해오는 역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기획이다. 화엄십찰에 이어 열반종 사찰을 소개한다.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상, 부처님은 입멸이 아니라 중생 제도 방편으로 열반을 보이시고 법으로 영원하다고 열반경은 말한다. 인도 아잔타 석굴의 부처님 열반상.불교신문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상, 부처님은 입멸이 아니라 중생 제도 방편으로 열반을 보이시고 법으로 영원하다고 열반경은 말한다.

인도 아잔타 석굴의 부처님 열반상. ⓒ불교신문


불교의 궁극 목표는 열반(涅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사람은 왜 태어나 늙고 죽는 고통을 당하는가’라는 존재의 실상에 대한 의문을 품고 출가하여 여러 스승을 만나 각종 수행을 배우고 마침내 불과를 증득했다. 불과를 증득했다는 것은 영원히 번뇌의 속박에 벗어나 적멸(寂滅), 열반(涅槃)에 들었다는 뜻이다.

부처님께서는 녹야원 5비구 앞에서 행한 최초의 설법, 초전법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여래는 양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다. 이 중도에 의해서 통찰과 인식을 얻었고, 번뇌의 세계를 완전히 벗어난
적멸과 깨달음과 눈뜸과 열반에 이르렀다.”

➲ 불교 궁극 목표 열반

열반이란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 진리를 궁구하여 불생불멸의 경지에 드는 것을 뜻한다. 윤회의 사슬에서 완전히 벗어나 더 이상 태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나는 비로소 부처가 되었다. 나의 내면적인 해탈은 흔들림이 없다. 이것은 내 마지막 생애이고, 이후에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열반 개념을 새롭게 정리하여 불교 사상에 일대 혁신을 불러온 경이 <열반경>이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의 약칭으로 쓰이는 <열반경>은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시기 전에 남기신 유교(遺敎)적 내용을 찬술한 경으로 후기 불교의 중요한 사상을 담고 있으며 선(禪), 계율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열반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은 법신상주(法身常住)와 상락아정(常樂我淨), ‘모든 중생은 불성(佛性)을 갖고 있다’(一體衆生 悉有佛性)는 사상이다. 부처님은 중생 제도를 위해 방편으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진실한 것은 진리의 깨침 그 자체 즉 법신불(法身佛)이다.


보덕화상이 열반종을 창종하고 그 중심 가람으로 삼았던 전주 고덕산에서 바라본 모습.
보덕화상이 열반종을 창종하고 그 중심 가람으로 삼았던 전주 고덕산에서 바라본 모습.
부처님의 열반은 입멸이 아니고 반열반(般涅槃)으로 반열반은 법신 반야 및 해탈을 이룬 상태로 이를 열반의 삼덕(三德)이라고 한다.

이상규 교수는 <열반경 역해>(도서출판 해조음)에서 “법신불은 시공(時空)을 초월한 우주의 진리를 가리키는 것이고, 그와 같은 진리를 깨닫는 지혜를 반야라 하며 반야지를 깨달음으로서 모든 번뇌의 속박을 벗어나 대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해탈이라고 한다”고 풀이했다. 부처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법계에 상주한다는 것이 법신상주 사상 인 것이다. 이런 관점을 확장하면 열반은 ‘항상하고 즐거우며 깨끗한’(상락아정) 경지다.

부처님의 본질적 성품인 불성이 우주에 보편적으로 존재(법신상주) 하므로 모든 중생이 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실유불성론’이다. <열반경>은 ‘모든 중생은 불성(佛性)을 갖고 있다’(一體衆生 悉有佛性)고 선언했다. 이는 대승의 핵심 사상이다. 실유불성론으로 인해 초기불교의 석가모니 일불(一佛)에서 모든 중생이 부처인 다불(多佛) 시대를 연다.

<열반경>이 끼친 영향은 또 있다. <열반경>은 “이 경은 모든 법을 거두어 잡은 것(此經攝一切法)이라고 밝힌다. 초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모든 불법(佛法)을 총망라한 것이다. 이상규 교수는 ”초기경과 후기경 내용 사이에는 약간 상충되는 듯 하거나, 초기경에서는 찾아 볼 수 없으나 후기경에서 볼 수 있는 법등이 없지 않은데, 이들에 관한 조화를 도모한 것은 크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했다. 불교의 바탕인 연기법과 무상, 고, 무아, 삼법인, 사성제 등 초기경의 핵심 이론이 자주 등장하고 삼보(三寶)와 사성제가 언제나 중생이 귀의할 곳임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선정과 지혜를 고루 닦아야 한다는 정혜쌍수를 말하면서도 정(定)이 앞서고 혜(慧)가 뒤 따라야 하는 것으로 이는 마치 땅을 잘 고른 뒤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하는 등 실천론을 제시한 점도 눈길을 끈다.



보덕화상의 제자가 창건한 열반종 사찰 중 대표적인 곳 진안 금당사 모습.
➲ 모든 법 총망라 정리

<열반경>에서 또 놓쳐서는 안 될 가르침이 계율이다. 중생은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지만 구름에 가린 태양처럼 무명 번뇌로 말미암아 불성이 가려져 이를 보지 못한다. <열반경>은 불성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계율을 굳게 지키고 공을 증득하되 팔정도와 육바라밀 수행에 주력할 것을 강조한다.

모든 중생은 불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자체로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고 불성을 가꾸고 닦음으로써 성불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열반경>의 가르침이다. 불성은 씨앗일 뿐, 뿌리고 가꿔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래서 <열반경>은 “중생의 불성은 부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니, 모든 공덕으로 인연이 화합하여 불성을 본 뒤에 부처를 이룰 수 있느리라”고 했다.

<열반경>은 소승 3종, 대승 10여종으로 이를 통칭해 <대반열반경>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어 본은 전하지 않고 한역본만 전하는데 북본(北本)과 남본(南本)으로 나뉜다. 북본은 담무참(曇無讖, 385~433)이 414년에서 421년 사이에 번역한 40권 13품의 <대반열반경>이다. 법신상주와 중생실유불성 사상이 들어있다.

북본이 강남으로 전해져 혜엄(慧嚴)과 혜관이 사령운(謝靈運)과 함께 북본을 바탕으로 하되 418년에 법현이 번역한 6권의 소승 열반경 〈대반니원경>(大般泥洹經)을 참고하여 완역했다. 이를 남본이라 한다. 남본은 전체 36권 25품으로 가장 널리 읽힌다.

법현이 번역한 소승열반경도 빼놓을 수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마지막 여정, 부강한 나라에 대해 말씀하신 그 유명한 ‘칠불퇴법(七不退法)’, 순다가 올린 점심 공양을 드신 후 복통을 앓아 이를 대중이 나무라자 부처님께서 순다를 위로하며 부처님을 공양한 큰 공덕이 있을 것임을 축원하는 대목, 반열반에 드신 후 장례법을 여쭙자 전륜성왕의 예를 따르면 된다는 내용, 120세의 수밧다 노인에게 설법을 하시고 마지막 제자를 받아들일 정도로 끝까지 법을 설하셨던 광경, 다비 후 사리 분배 등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이 담겨 있다.

<열반경> 한문본이 나오면서 중국 남북조 시대에 대 유행하는데, 도생(道生)의 역할이 컸다. 남복본이 나오기 전 여산 동림사 혜원(慧遠)의 문하에 있었던 도생(道生)이 ‘일천제(一闡提) 성불론’을 펴 당시 불교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일천제는 도저히 성불할 수 없는 자를 말한다. <열반경>이 전해지면서 도생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자 이 경이 부처님의 궁극적 교설이라 하여 크게 유행했다. 위진 남북조 시대를 지나 수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에도 혜원 문하의 여러 학승들이 연구하면서 남북 각지에서 <열반경>을 연구 강경하는 등 중국불교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열반경>이 남북조 시대 중국을 풍미 한데는 이처럼 대승불교의 핵심 교리와 사상이 드러나고 수행론과 실천론, 부처님의 마지막 행장 등이 종합적으로 정리된 불교 경전의 완결판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열반종 본찰 경복사지 모습.
➲ 중국 남북조 시대 유행

여기에다 인도에서 온 불교가 중국 문화와 종교에 맞게 토착화 한 혜원과 도생의 역할이 크다. 인도 출신으로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구마라집의 교학을 이은 혜원은 철저한 율사며 중국의 문화와 특성에 맞게 불교를 재해석하고 독창적 체계를 형성한 중국불교사 초기 인물이다. 혜원에 이어 도생은 중국 전통 종교 도교와 불교를 접목했다. <열반경>의 ‘실유불성론’으로 돈오성불론(頓悟成佛論)을 이끌어내 중국 선(禪)의 씨앗을 뿌렸다고 볼 수 있다.

<열반경>은 그러나 <법화경>을 연구하고 정치한 이론을 정립한 지의의 천태종에 흡수돼 그 명맥을 상실한다. 사상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남북조 시대 중국불교가 부패하면서 폐불을 불러와 교세가 약화된 사회 정치적 원인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 사상은 화엄 법화 선 등에 스며들었다. 인도불교가 중국에 전해져 연구와 번역 등 학문적 차원에서 신앙과 수행으로 나아가는데 <열반경>이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열반경>의 사상은 동(東)으로 전해져 고구려 보덕화상에 닿는다. 보덕화상에 의해 한국불교사 최초의 종단 열반종을 낳고 원효와 의상이라는 한국불교 1700년사 가장 위대한 두 고승을 배출한다. 그리고 삼한 그 중에서도 옛 백제 땅에서 만개했다. 한국 유가(儒家)에서 문장이 가장 출중하다는 두 학자 통일신라의 최치원과 고려의 김부식이 그를 찬양하는 글을 지었다.

중국에서 법화 화엄 선에 스며들어 피와 살이 되었듯이 한국불교에서도 <열반경>은 같은 길을 걸었다. 희미하나마 남아 있는 그 자취를 찾아 나선다.

[불교신문3690호/2021년11월9일자]

posted by 有然(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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