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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然(유연)
God-Realization 신-깨달음의 영적 여정....... 삶의 목적은 우주적인 자아와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한한 지복, 파워, 지식 (전지, 전능, 지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 아바타 메허 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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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렌 박사는 목 부위에서 하트의 에너지장이 시작되었다.

가슴에 있는 무한대 상징은
호오포노포노의 정화법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
그것이 마름모 형태로 드러났다.

∞ 무한대 에너지 흐름은
자파, 만트라의 박티 요가와
사랑, 헌신의 구루 요가 수행에서 주로 드러나고 있다.

진언, 염송, 염불, 찬양, 찬송, 챈팅, 찬가 -
기도는 결국 자신이 아닌 신성(불성)으로의 귀의이다.

영성의 중심 8차크라 에너지 흐름은
하이다칸 바바지의 에너지 흐름과 닮은 면이 있지만
완전한 신성의 영역과는 무한한 차이가 있다

휴렌 박사의 행보는 현실적인 에너지 흐름이 강하고
그에 따른 장애가 손과 다리에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


“신성 실현은 대단히 어려운 길이다.
때문에 기꺼이 그 길을 걷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것은 면도날 위를 걷는 것처럼 어렵다.
오직 구루의 은총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구루 없이는 어떤 앎도 불가능하다.
나는 너희 모두에게 해탈을 주기 위해 왔다.
나는 빛을 주기 위해 왔다.”
-하이다칸 바바지


하리 파라마트마 알라
아후라마즈다 갓 예즈단 후
()()()



기억보다 영감이다

조비 테일과 이하레아카라 휴렌이 지은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에서는 인생을 사는 데는 2가지 길이 있다고 했다.
첫 번째는 기억으로 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영감으로 사는 것이다.
기억으로 사는 것은 쉼 없이 재생되는 오래된 프로그램이고,
영감은 신이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여 문제점을 찾는 것이고,
영감은 과거와 현재가 어떠하든지 미래의 일에 대하여 상상하면서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생을 분석적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상상하면서 달려갈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자 가치관의 문제이다.

배상기 서울 청원고등학교 교사


신이 아이들을 우리의 인생에 보낸 이유는...

신이 말하길
'내가 아이들을 보내서 너를 귀챦게 할 것이다, 귀챦음은
너희로 하여금 아이들을 놓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아이들을 나에게 돌려 보내는 것이다.'

따라서 제가 아이들에 관해 정화할 때 마다
그들을 놓아줌으로써 신에게 돌려 보내는 것입니다.

신이 아이들을 창조했기에,
오직 신성만이 무엇이 그들에게 최선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로서 나의 역할은
아이들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신성에게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계속 반복되는 질문 중에 하나가,
어떻게 하면 24시간 내내 정화를 할 수 있는가...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먼저 우리는 사람들에게 수면 중에도 정화를 할 수 있다고 가르치며,
또한 자녀나 배우자에게 말을 하는 것도 그들이 잠자는 동안 하는 것이 좋다라는 것이죠...

가장 중요한 점은, 문제는 항신 당신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수면 중에는 어떻게 정화하십니까?
당신의 무의식을 재교육함으로써,
무의식이 정화 하도록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번째 입니다.

두번째는
깃털 베게 down pillow를 구해서 베고 자는 것입니다.

깃털 베게는
분노, 후회, 증오, 정욕같은 인간의 동물적 성향에 효과가 있습니다.

저는 또한 씨포트 핀을 항상 차고 있습니다.

한시라도 정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제가 정화하지 않음으로 인해
신성에게 제 영혼의 저당권을 상실하고 싶지않기 때문입니다.
저당권은 빚을 의미합니다.
저는 신성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정화하고 있습니다.
부디 당신이 할 일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신성이 할일이란...
지우고, 지우고, 지우는 것입니다.


-이하레아카라 휴렌

 

 

 

호오포노포노(Hoʻoponopono [ho-o-pono-pono])는
고대 하와이인들의 용서와 화해를 위한 문제 해결법이라 할 수 있는데,
약 400년 전부터 기독교의 영향을 받아서 현재의 형태로 발전된 것이다.

전통적인 호오포노포노는 사모아, 타이티, 뉴질랜드를 포함한 남태평양 전역의 섬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만일 가족중에 누군가가 병에 걸리면 그를 종교적 지도자인 사제 혹은 카후나에게 데려와 치료받게 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현대에 와서는 호오포노포노가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어, 가족 중 최고령자가 수행하거나 혹은 개인이 혼자서 수행하는 형태도 생겨났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호오포노포노가 알려진 것은 전통적인 기법과는 매우 다르게 발전 혹은 변형된 형태이며, 두 가지 계열이 있다.

하나는 하와이의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았던 치료사(healer)인 모르나 날라마크 시메오나 [Morrnah Nalamaku Simeona (May 19, 1913 – February 11, 1992)]에 의해서 개발된 것으로, 정식명칭은 [셀프 아이덴티티 호오포노포노]라고 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기법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즉, 전통적인 기법은 종교적 지도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지만, 모르나가 개발한 현재의 방식은 자신의 혼자서 수행하는 방법이다.

또 하나는 하와이에서 하와이 인디언들의 후나(Huna)를 연구하던 맥스 프리덤 롱에 의한 체계이다.

셀프 아이덴티티 호오포노포노는 모르나가 창시한 이후에, 이하레아카라 휴 렌 박사에게 전수되었고, 저명한 인터넷 마케터인 조 바이텔리 박사가 쓴 [Zero Limits]란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전통적인 호오포노포노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모르나의 방법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르나의 방법을 호오포노포노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호오포노포노는 하와이어어로 호오 [목표], 포노포노 [완벽함]이며, 완벽을 목표로 수정을 하는 것, 즉 잘못을 바로잡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전통 방식과 모르나가 개발한 호오포노포노의 차이점은 뚜렷하다. 모르나는 한 개인이 신성 혹은 신의 지혜에 직접 연결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모르나는 자아를 우하네(Uhane 어머니, 의식), 우니히피리(Unihipili 아이,무의식=내면의 아이),아우마쿠아(Aumakua 아버지, 초의식), 카이(Ka'I 신성의 지혜)로 구분하고, 한사람 한사람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신성의 지혜와 연결하여 본연의 삶으로 돌아가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호오포노포노의 본질은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이 연결된 아카의 코드를 끊고 이오의 레벨에서 연결되는 것이며, 이것은 후나의 방법에 좀더 자세히 연구되어 있다.



당신의 책들은 징검다리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인생의 다양한 단계들을 밟고 있어요.
당신의 책들은 그들에게 그들의 현재 위치를 말해주지요.
그들이 그 책을 성장의 도구로 사용할 때
다음 책으로 넘어갈 준비가 되는 겁니다.
책을 리콜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그 자체로 모두 완벽합니다. - 이하레아카라 휴 렌, 호오포노포노의 비밀

posted by 有然(유연)

19세기 중국과 영국의 아편전쟁 원인이 차(茶)와 아편이었다면, 지금 벌어지는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둘 다 무역전쟁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반면 차와 아편은 식물이고 농산물에 해당하지만, 반도체는 고도의 기술집적 공산품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미·중 무역전쟁에서 가장 예민한 교역품은 반도체다. 4차산업과 인공지능이 요즘 대세인데, 여기에서 반도체가 핵심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없으면 인공지능이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은 어떻게 해서든지 중국의 반도체산업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미국의 우월적인 위치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중국 화웨이(華爲) 부회장이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갑자기 체포됐던 것도 미·중간의 첨단산업 기술과 반도체로 인한 대결이 얼마나 긴박하게 돌아가는지를 알려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 반도체에 관한 첨단 기술이 한국에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덕분에 한국이 그나마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10월까지 한국 수출액의 5분의 1을 반도체가 차지했고, 약간의 오차가 있을 수 있지만 지난해 기업들의 법인세 납부액 가운데 약 40%를 삼성전자가 냈다고 한다. 한국의 법인세가 총 40조원인데 이 가운데 40%면 16조원가량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은 반도체로 먹고산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중국의 미래를 위해서 반도체 기술이 절실한 상황이라면 한국이 가진 이 기술을 과연 중국은 보고만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미국이 기술을 차단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바로 코앞에 있는데,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이 기술을 빼앗으면 되는 것 아닌가! 미국은 미국대로 한국 반도체 기술이 중국으로 못 넘어가게 모종의 감시와 압박을 진행하리라고 본다. 전쟁 중에는 민간기업이라고 봐주지 않을 테고, 삼성전자도 미국 통제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 어려운 게 작금의 상황이다. 중국은 중국대로 한국의 반도체 기술을 빼앗기 위해서 온갖 공작을 다할 것이다. 말하자면 미·중 무역전쟁에는 한국의 반도체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반도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북한이 개발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남한이 반도체를 만들어냈다면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어냈다. 이 미사일로 북한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슬아슬한 딜(Deal·거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통제권 밖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갖고 있는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 더 위험한 요소는 북한이 이 미사일 기술을 중동에 수출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이란이 탄도미사일 기술을 습득해 이스라엘 예루살렘으로 한방 쏘아버리면

이스라엘은 박살 난다. 다른 재래식 무기나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Mossad)도 소용없다.

이것이 미국에서 우려하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지금 미국을 움직이는 집단은 유대인들이고,

이 유대인들이 고국인 이스라엘의 안전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실험을 할 때마다 참관단을 모집했고, 이 참관단에 중동권 사람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건 뭘 뜻하는가? 미사일 판촉행사다. ‘우리 미사일 성능이 좋고 값도 싸서 가성비 최고’라고 광고하는 이벤트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이다.


조선시대에 나온 예언서인 <정감록>과 <격암유록>에 ‘소두무족(小頭無足)’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살아자(殺我者) 소두무족(小頭無足)’이라는 대목에서다. 소두무족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이다. 소두무족이란 무엇인가?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미사일이다. 머리는 작고 다리가 없는 모양이 미사일이다. 조선시대 예언가들이 미사일을 알았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 모양은 눈에 어른거렸다. 이걸 묘사하다보니까 ‘머리는 작고 다리가 없다’고 표현했다고 본다. 북한이 밥을 굶어가면서 죽기 살기로 만들어낸 것이 이 ‘소두무족인 미사일’이라는 생각이다. 북한과 미국은 이 미사일을 가운데 두고 밀고 당기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에는 북한의 미사일이 문제이고, 중국에는 남한의 반도체가 문제다. 2018년의 한반도 운세를 뒤돌아보니 반도체와 미사일로 압축된다. 이 두가지가 1년 내내 한반도의 명운이 걸린 싸움을 촉발했다. 따지고 보면 반도체는 돈이고 미사일은 칼이다. 2018년 한해는 돈과 칼이 한반도를 지배했다.

 

조용헌 교수

 

 

<1969년 메허 바바 열반절 홍수 예언 실현>

관련 자료 카페에 검색하면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avatarmeherbaba

 

 

신성적 진실들에 대한 우리의 무지는 엄청나며,

신에 대해 우리가 지닌 개념들은 너무도 초보적입니다.
신을 신인간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의 개체적인 에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삶이 더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게 되고,

최후의 버튼들을 누르게 할 첫 명령을 내릴 그분에게 내맡기는 것이기에,

항복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신인간에게 항복하는 이들보다 더 용기있는 사람들은,

‘그이가 신인간이 아니다’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실패한 나머지

신인간의 출현을 아예 부정함으로써,

여전히 그 누군가나 무언가를 기다리

자신의 기대에 충실한 채 남아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보다도 더 용기있는 사람들은,

아름답고 말없는 신의 사람이 이미 신인류(New Humanity)의 여명으로

동쪽의 하늘을 밝히셨는데도,

물질적 진보를 주장하는 서양문명의 거짓된 빛을 계속 해서 따르고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제 ‘그 한마디의 말씀’(hisWord)의 태양이 온세계를 뒤덮을 것이며,

그분의 영광이 모두에게 발현될 것입니다.


메허 바바가 침묵 속에서 손동작(手話)으로 남겨주신 이 담론들(Discourses)은,

차후에 그가 침묵을 깨고 인류에게 자신의 신격을 드러낼 때 발언할

‘그 한마디의 진실’(One Word of Truth)의 사전적 암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와 무>, 이 책의 구성 내용은 그분이 침묵을 깨고 말씀하실

‘그 한마디의 진실’을

우리의 마음과 가슴이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랜시스 브라바존,
1962년 11월 1일

 

posted by 有然(유연)

https://sacredart.tistory.com/107

불러오는 중입니다...

 

 

posted by 有然(유연)

 

육체적인 욕망을 통해 표현되는 사랑조차도
개인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속박에서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비러벳)을 섬기고 싶게 만든다 .

모든 인간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사랑은 특성상
영원하거나 일시적이기 때문에 견디거나 끝난다.
예를 들어, 결혼은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승격하거나, 저하하거나, 지속적이거나, 덧없는 것이다.

섹스에 대한 애착(성적 매력)만으로는 결혼 생활을 견딜 수 없다.
그들은 피할 수 없이(필연적으로) 이혼하거나 더 나빠지게 된다.
반면에 결혼이란,
서로 봉사하고 영감을 주고자 하는 욕구에 바탕을 둔 것으로,
풍요와 아름다움 속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며,
그들을 아는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 된다.

- 메허 바바

posted by 有然(유연)

 

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

물고기

 

불교와 기독교의 공통된 상징

 

"눈을 떠라. 눈을 떠라. 물고기처럼 항상 눈을 뜨고 있어라. 깨어 있어라. 언제나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에서 깨어나 일심(一心)으로 살아라. 그와 같은 삶이라면 너도 살고 남도 살리고, 너도 깨닫고 남도 능히 깨달을 수 있게 하리니······."

절에서 들을 수 있는 법음 한 구절이다. 이 법음처럼 물고기는 잘 때도 두 눈을 뜨고 잔다. 그래서 잠들지 말고 언제나 깨어 있으라는 뜻이 의당 목어, 목탁, 풍경에는 스며 있다. 목어(木魚)와 풍경은 언뜻 봐도 물고기와 흡사하지만 목탁은 눈여겨봐야 그 닮음을 알 수가 있다. 목탁에 뚱그런 구멍이 둘 나 있으니 그것이 물고기의 눈이요, 손잡이가 바로 꼬리지느러미에 해당한다. 땅땅땅!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 쉼 없이 맹진하여 도를 닦을지어다!

바람에 '땡그랑땡그랑' 풍경이 때리는 은은함은 산사의 정적을 깨트릴 뿐만 아니라 깜빡 졸고 있는 도승의 낮잠을 쫓는다. 낙명(落命)1)의 그날이 코앞에 다가오는 지금, 나는 뭘 했는가? 소태 같은 쓴 세월을 다 보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마음엔 굳은살이 박히지 못했을뿐더러 평심(平心) 하나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목어는 1미터 길이의 큰 나무를 잉어 모양으로 만들어서 그 속을 파내어 아침저녁 예불 때와 경전을 읽을 때 두드리는 도구다. 이는 중국의 절에서, 아침을 먹을 때와 낮에 밥 먹는 시간을 알리는 데에 쓰였던 것으로, 원래의 모양은 길고 곧게 물고기처럼 만들어졌던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수행에 임하는 수도자들이 잠을 줄이고 물고기를 닮아 부지런히 깨우침을 위해 정진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목어가 차츰 모양이 변하여 지금 불교 의식에서 널리 쓰이는 불구(佛具) 중의 하나인 목탁이 되었다고 한다. 또 목어는 처음엔 단순한 물고기 모양이었으나 차츰 용머리에 물고기 몸을 가진 용두어신(龍頭魚身)의 형태로 변신했고, 드디어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이 되었으니 이는 잉어가 용으로 변한다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을 표현한 것이다.

목어

이는 『후한서(後漢書)』에 있는 '등용문(登龍門)'의 고사가 윤색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곧, 복숭아꽃이 필 무렵 황하의 잉어들은 거센 물살을 거슬러 상류로 오르다가 용문(龍門)의 거칠고 가파른 협곡을 뛰어올라야 하는데, 거의가 실패를 하지만 요행히 성공한 잉어는 용으로 화(化)한다는 전설이 있다. 그것이 곧 해탈을 의미한다고 한다. 해탈이란 속박에서 벗어나 속세간의 근심이 없는 편안한 마음의 경지요, 그곳이 곧 열반이라 한다.

독자들 중에도 자동차 꽁무니에 붙어 있는 물고기 형상을 자주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차의 주인이 '기독교 신자'라는 것을 알려 주는 상징이다. 기독교와 물고기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초대 교회 시대에 로마는 무척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이때 사람들은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catacomb) 등지에서 숨어 지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을 밝히기 위해 물고기 그림을 보이거나 물고기 모형의 조각품을 지니고 다니기도 하였으며, 몰래 땅바닥에 물고기 그림을 그려 자기 신분을 알리기도 했다고 한다.

필자도 거기를 가 보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순교적인 산물이 바로 카타콤이었다. 지하 카타콤의 미로에 길을 안내하는 그림도 물고기로 표시하였다고 하니 물고기는 일종의 암호였던 것이다.

초대 교회 물고기 상징

장군의 갑옷도 물고기와 연관이 있다. 장수의 갑옷(갑의, 甲衣)에는 의례 물고기 비늘을 연상시키는 쇳조각들이 온통 주렁주렁 달려 있다. 햇볕에 반사되어 번쩍거릴 때는 보는 이를 눈부시게 한다. 물속의 갈겨니도 가끔씩 몸을 기울여 햇살에 몸을 맞춰 번쩍번쩍 은백색을 쏘아 대며 상대를 겁준다. 참고로 물고기 중에 이들처럼 체색이 희거나 밝은 것은 하나같이 주행성이고, 메기, 뱀장어처럼 흐린 것은 야행성이다.

어쨌거나 갑옷 입은 장수는 물고기요, 물고기 중에서도 대장 물고기이다. 역시 밤낮으로 눈을 감지 말고, 적에 대한 경계를 멈추지 말며, 많은 병사들을 잘 인도하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이리라. 어디 전쟁을 지휘하는 장수만 물고기가 되어야 하겠는가. 녹봉을 먹고사는 우리들 선생들도 모두모두 물고기가 될지어다. 난 월급 타령하는 교수가 제일 밉더라. 무상(無上, 더할 수 없음)의 기쁨은 고통의 심해에 감춰 있다고 하지 않는가.

피카소의 작품 하나가 나의 눈길을 끈다. "예술은 절대로 정숙하지 않아서, 결국 남는 것은 사랑이다"라고 갈파한 전설적인 화가가 밥상에서도 익살을 떤다. 그 양반이 입에 물고 있는 물고기 뼈 사진 말이다. 절로 웃음이 난다. 웃음은 가난도 녹인다고 했던가. 아무튼 예술가의 혼은 먹다 버리는 생선 뼈다귀도 파고든다.

그는 생선 한 마리의 살을 일일이 마음 써서 볼가2) 먹고 나서 그것을 진흙 덩어리에다 꼭 눌러 박아 흔적을 남겼으니 그것이 물고기 화석처럼 보인다.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다. 생선 뼈를 목에 걸리는 가시 정도로 여기지 않고 혼을 불어넣을 작품 소재로 보는 그 유별난 눈을 닮아 보면 좋지 않을까.

그렇다, 물고기는 잠을 자도 눈을 감지 않는다. 땅-땅-땅! 고즈넉한 산사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목탁 소리, 그것은 물고기를 본뜬 목어가 아니던가. 몸통이 큰 복어를 닮았다고 할까. 기독교의 상징이 물고기인 점과 어쩌면 닮았단 말인가.

결국 종교는 공통으로 일맥상통하는 것이니, 불교와 기독교도 불이(不二)의 관계인 셈이다. 엉뚱한 소리지만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 자나 깨나 몸을 씻어 대니 얼마나 심신이 정결할까. 세례가 필요 없는 동물이 물고기렷다. 물고기가 여러 종교와 예술을 아우르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posted by 有然(유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