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有然(유연)
God-Realization 신-깨달음의 영적 여정....... 삶의 목적은 우주적인 자아와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한한 지복, 파워, 지식 (전지, 전능, 지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 아바타 메허 바바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신은 우주의 창조자, 보존자, 파괴자이며,
우주는 그에게서 발산하고 자신의 존재 안에서 그를 지탱하며 또한 그 안에서 재흡수됩니다.
신만이 실재하고, 우주는 신 자신의 발현임에도 불구하고 환상의 영역에 있습니다.

세계 또는 피조물은 옴이라고 하는 창조 지점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로부터 나옵니다.
누구든지 이 옴 지점에 접촉하고 초월하지 않는 한 지속적인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성한 상징인 Om이 평화를 의미하는 샨티Shantih 세계와 나란히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Om, Amin 및 Amen 사이의 음성적 유사성은 많은 것을 암시합니다.
신성한 단어 Amin과 Amen은 이슬람과 기독교 기도의 끝에 자주 사용됩니다.
둘 다 '그렇게 되라'라는 뜻입니다. 한 사람에게서 오는 '그렇게 되십시오'는 축복이나 소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창조입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아민(Amin) 또는 아멘(Amen),
즉 그의 뜻이 현실로 순간에 즉시 성취되는 것입니다.
아랍어 아민(Amin)은 안전 또는 평화를 의미하는 옴(Omn)이라는 어근에서 유래되었으며, 따라서 아민은 동등하거나 적어도 옴(Om)의 친척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는 또한 평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와 같은 다른 종교의
모든 기도에는 창조주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창조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이 직면한 가장 큰 신비입니다.
그 신비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창조주와 하나가 되고,
창조주와 그 안에 창조물 둘 다이며,
무한한 존재 안에 둘 다를 동시에 포함하고 초월하는,
신과 하나인 존재로 그 자신을
깨닫지 않고서는 풀리거나 성취될 수 없습니다.

1956년?
Be 18-19 페이지


God is the creator, preserver and destroyer of the universe, which emanates from him, is sustained by him in his own being, and also is reabsorbed in him. God alone is real, and the universe is in the domain of illusion, even though it is the manifestation of God himself.

The world or creation comes out of the eternal and infinite being of God through the creation point, which is referred to as Om. No one can attain lasting peace unless he contacts and transcends this Om point. We therefore find the sacred symbol Om often appearing in juxtaposition with the world Shantih, which means peace.

The phonetic similarity between Om, Amin and Amen is suggestive of many things. The sacred words Amin and Amen are frequent at the end of Muslim and Christian prayers. They both mean ‘So be it.’ Coming from a man, ‘So be it’ is a blessing or wish; but coming from God, it is creation. Creation is God’s Amin or Amen, i.e. an immediate and instantaneous fulfillment of his will into actuality. The Arabic word Amin comes from the root Omn, which means safety or peace, and thus Amin may be regarded as an eqivalent or at least a kin of Om, which is also associated with peace.

All prayers of different religions, such as Hinduism, Islam and Christianity have a reference to the creator. Creation is the greatest mystery with which all creatures, including human beings, are faced. The mystery cannot be unraveled or fulfilled unless and until man consciously becomes united with the creator, and realises himself as being one with God, who is both the creator and creation in one, at once including and transcending both in his infinite being.

1956?
Be p18-19

posted by 有然(유연)


람타는 지구와 우리의 몸이 8헤르츠로 진동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같은 밀도를 갖기 위해서는, 동일한 주파수로 진동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의 육신은 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와 같은 주파수로 진동하고 있다.
당신 육신의 감각이 물질이라고 하는 가장 느린 빛의 주파수를 인지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이 당신에게 실재하는 것이다."

ㅡ 람타, 화이트북 121p

'채널링 메시지 > 람타 메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람타, 현실창조를 위한 입문서  (0) 2021.12.05
posted by 有然(유연)




람타, 현실창조를 위한 입문서 :
람타와 그의 가르침에 대한 소개
유리타 옮김


제3장 자아의 기원


당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께 인사드립니다. 신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절대 잊지 않도록 기도합시다. 자, 잔을 듭시다.



나의 사랑하는 신이시여,

나는 당신을 부릅니다.

오늘 내가 배우는 것,

그것을 경험하기를 기대합니다.

신이 나의 삶을 축복합니다.

So be it 151



마음이 현실을 창조한다. 당신의 모든 나날은 지금까지 당신이 생각해온 방식으로 일어난 결과이다.



당신들은 어린아이와 같다. 다른 행성, 은하계, 다른 차원들 그리고 다른 시간의 흐름에는 당신들보다 훨씬 더 진보된 문명들과 존재들이 있는가 하면 약간 뒤떨어진 문명과 존재들도 있다. 당신은 신이라고 부르는 공동체의 일부이다. 우리는 영겁의 세월 동안 당신을 잊혀진 신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인간 드라마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당신은 자신의 신성함을 잊은 채 자신의 육신과 물질적 자아에 몰두해왔다. 152



보이드(허공Void), 존재하는 것의 모든 것의 근원



태초로 돌아가보자. 태초는 조금 전에 일어났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보이드는 광대하다. 그럼에도 그 광대함 속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광대한 무(無)이다. 무란 어떠한 원소나 생각조차 없다는 것을 의미. 그러나 광대한 무일지라도 그 안에 모든 가능성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광대한 무이지만 잠재적으로는 모든 가능성이 존재한다.” 153



당신의 평범한 삶 속에서 보이드를 경험할까?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한 곳에 고정한 채, 응시하다 보면 아무런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순간이 오고 그때 당신은 완전히 텅 빈 상태가 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보이드를 경험하는 것이다. 이제 보이드의 영원함에서 보이드는 모/부원칙, 혹은 절대 근원으로 불리며, 이 절대 근원에서 모든 생명이 탄생하였다. 그런데 아무런 개념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생명이 탄생할 수 있을까? 보이드가 어떻게 생명이 아닌 것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을까?



어느날 보이드가 놀랄 만한 일을 했다. 놀랄만한 일한 일이란 보이드가 스스로 숙고한 것이었다. 보이드, 하나의 광대한 무가 스스로 숙고했고, 그것이 숙고한 순간, 하나의 점이 생각났다. 155



보이드가 스스로 숙고한 곳에서, 메아리가 되었지만 한 점으로 모여 집중된 상태이다. 이 점은 이제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 이제 이것을 신이라 부른다. 이 사색점은 의식과 에너지의 시작이다. 이것(보이드)은 그 점에 생명을 모/부 원리이며, 바로 거기에서 당신ㅇ이 시작된 것이다. 156



이제 보이드는 이 작은 존재에게 말을 한다. “안녕, 나는 내 한가운데에서 너의 존재를 염원해 왔어. 나를 이용해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들렴.” 157



신들에 의한 인류의 유전적 변형은 455, 000년 전에 일어났다.



4만 년 동안 멈춘 진화



현실 창조를 시작하기에 앞서 당신의 의문을 조금 풀 필요가 있다. 당신은 두뇌 전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10분의 1도 사용하지 않는다. 엄청나게 큰 신피질의 10분의 1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이 활용하지 않은 엄청난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인슈타인조차도 죽었을 때 그의 두뇌 전부를 사용하지 못했으며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이론을 연결시킬 수 없어, 결국 통합된 관점에서 보았던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수학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당신 자신의 본성 이면에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영적 존재라면, 내면에 있는 당신의 게으름과 조급함이 매우 진화된 육체 안에 있는 미개한 영이라는 것이 아주 논리적으로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천재란 마음의 영역을 확장하고, 그 마음이 모든 것인 사람을 말한다.

이번 생에서 당신은 “영적인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어떻게 하면 육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사용할 수 있을까?”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당신의 유전자 속에 신들이 있을까? 진정 그러하다. 180



현재 당신이 불행한 이유는 현실을 꿈꿀 수 있는 당신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현실에서 모든 것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둔다. 영화관에 가서 다른 누군가가 모험하는 것을 본다. 다른 사람의 시를 읽고 황홀해한다.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이용한다. 따분함을 느끼고 연예오락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것들이 당신으로부터 나오기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신—당신은 분명 신이다—이라면, 그리고 의식과 에너지가 현실의 본질을 창조한다면, 우리가 가진 문제는 자신과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부모로부터 그러한 유전인자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부모보다 더 잘났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당신이 지난 4만년 동안 해왔던 일이다. 당신은 의식을 가지고 이렇게 정신없이 앞뒤로 스윙하면서 살아왔다. 당신이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아는가? 181



당신들은 신들이 떠났을 때 그들이 당신들을 두고 천국으로 돌아갔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현실의 창조자인 믿음은 이 신(당신 내면에 존재하는)을 잠재우고 당신이 선택한 신을 당신 바깥에 두었다.



당신이 하나로 일치해야 할 신과 함께 꿈을 창조하고, 그 꿈을 신에게 내어준 후, 그 꿈으로 벗어날 때 그것이 에너지—상상력이 에너지를 응결시킴으로써,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로 구현된다. 그러나 당신은 신이 여기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막혀버린 것이다. 지난 4만 년 동안 당신들은 매 생애마다 이러한 일을 반복하였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학교에 다니면서 이 문화가 당신에게 주는 모든 것을 배워 지루해졌으며, 당신이 꿈을 꾸고, 그것을 일차 의식과 일치시킨 후, 시간을 붕괴하고, 그것을 다시 가져와, 에너지를 시각적 형상으로 구현하여, 그것을 경험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여할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단지 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깨고 이곳을 벗어나 여기(4차원)로 올라간다. 그들은 이러한 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여기를 벗어나 영적으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란 누구인가? 여기 이 타임라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자를 말한다. 182-83



제4장 에너지, 의식의 보조자





관찰자는 에너지 장을 붕괴시킨다



당신 안에 존재하는 신성은 무엇인가? 당신 안에 존재하는 신성이란 인간의 두뇌 기능을 통해 응결된 의식과 에너지를 말한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의식과 에너지—당신은 확실히 이러한 엉키거나 풀리거나 혹은 조여지는 의식과 에너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것은 당신 주변에 널려 있다—에 둘러싸여 있다면, 이 장(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이다. 그것은 관찰자라 불린다. 그렇다면 관찰자는 어디에 있을까? 관찰자는 당신 머릿속에 있다. 190



만약 당신이 여기에 있는 존재(관찰자)이고 당신이 바로 여기(전두엽)에서 생각을 품고 있다면, 당신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장(場)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질량을 갖는 모든 물질들—당신이 앉아 있는 의자, 입고 있는 옷 그리고 당신 육체를 이루고 있는 것들—은 모두 아원자 입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원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Adam(아담)’ ‘Atom(원자)’, 즉 최초의 인간과 물질을 이루는 최초의 입자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 191



만약 당신이 이 특정한 입자인 원자에 집중한다면, 당신은 원자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의 회전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당신이 진화하고 미지의 것을 깨닫기로 되어 있다면, 당신의 어떤 능력이 그 일을 담당하는 걸까? 그것은 집중된 의식이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원자에 전자를 더하거나 빼면서 집중한다면, 당신은 그 에너지의 특성을 바꿀 것이다. 192



당신과 나 사이의 공간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 장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작은 별들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모든 단단한 물체는 그것을 만든 창조자에 의해 단단하게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을 단단한 물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단단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193



사람들이 계속 같은 타임라인에서 윤회를 거듭하는 이유는 의식의 힘을 육체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그들은 유전적 성향이 짙은 육체를 가지고 태어나 그 육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둔다. 그들의 육체는 유전학적 자동 조종 장치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194



유전인자의 지배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에게 매직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숨겨진 것들을 드러내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관찰자, 즉 우리 안에 존재하는 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약하거나 단지 물질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면, 당신들과 나 사이에 있는 간격의 베일을 벗겨 현실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집중력을 결코 키울 수 없을 것이다.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가? 삶이 힘들다고 생각하는가? 삶은 축복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오늘 당장 죽는다 하더라도 당신은 여기로 다시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까? 당신이 지금 이 순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 맞는 부모에게서 태어날 것이다. 삶이 힘들어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또 다른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갈 것이다.



당신은 지난 4만년 동안 거의 진보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누리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누구 때문인가? 그러한 발전은 단지 소수의 사람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 그들은 그러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며 덕분에 당신들은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고, 영감을 얻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능력은 지식을 습득해, 깊은 생각을 통해 그 지식을 창조력의 기본 구조로 만든 후, 그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상상력이다. 만약 당신이 일정 기간 동안 그러한 상상을 품고 당신의 수용력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그 생각이 이 장에 영향을 주고 이전의 것들은 용해되어 액체 상태로 되어버린다. 상상력이 이 상태에 다시 영향을 미쳐, 그것은 이전의 상태가 아니라 새로운 상태로 응결될 것이다. 196



영적인 사람들은 발견을 이끈 사람들이다. 영적인 사람들은 당신은 물론 당신의 후손에게 이론의 토대를 전해준 태고의 철학자들이며, 그들은 항상 인간 내면에 숨겨진 것들을 이야기한다. (...) 당신은 그저 당신의 필요가 그들에 의해 충족되도록 욕구를 제공하는 일만 했을 뿐이다.

의식적으로 깨어나면 앎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우리는 홀연히 무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것을 ‘앎’이라고 한다. 당신의 집중된 생각이 삶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것을 진정으로 아는 바로 그 순간부터 당신은 자신의 생각을 조절하고 통제하기 시작할 것이다. 생각이 제멋대로 일어난다면 그것이 당신을 망칠 것이기 때문이다. 영이 깨어난다면, 당신은 해방될 것이다. 기쁨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다. 기쁨은 육체의 주인이지 노예가 아니다.


당신의 삶에 있는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을 당신이 창조했다면, 지금까지 당신 자신에게 했던 모든 것들 또한 당신 스스로 창조한 것이다. 성공과 실패 또한 당신에 의해 일어난 것이며, 그것들을 성공 혹은 실패라고 결정했던 이도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행복과 불행을 책임지는 사람이 당신이라면, 그렇게 느끼도록 선택한 자도 바로 당신이다. 이것은 이렇게 간단한 이치이며 항상 그래 왔다. 187



당신의 마음이 이것을 바꾸거나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그 순간, 당신의 인생은 변한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건 나는 그것을 창조할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내 현실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생각과 같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앉아 삶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신에게 질문한다면 어떨까?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은 무엇일까?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은 무엇일까? 나는 어떠한가? 내 두뇌의 10분의 1도 사용하지 않았다면, 나머지 두뇌를 최대한 사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나머지 두뇌를 다 사용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두뇌가 그림들과 홀로그램들이 일으키는 섬광에 따라 작동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각을 그릴 수 있다면, 바로 여기에 그 생각을 일정 기간 동안 의도적으로 붙잡아 둘 수 있다면, 현실 창조를 위한 관찰자 효과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사용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당신이 그 생각을 완전히 받아들여 여기 전두엽에 붙잡아 두는 그 순간, 당신의 타임라인을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든 것들이 유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198



죄책감, 부정적인 생각, 걱정 그리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이 당신을 과거에 묶어둔 것이다. 199



신이란 생명을 베푸는 것이다



“신은 사랑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사랑이라는 것은 항상 베푸는 행위이다. 그것은 취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열정적으로 자신을 품에 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며, 베푸는 행위이다. 신은 당신을 심판할 능력이 없다. 당신을 증오하거나 원망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직 허용만이 있을 뿐이다.

사랑이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문을 활짝 열고 베푸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막혀 있던 댐을 부수는 것과 같다. 사랑은 베푸는 의식(意識)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다른 이에게 베풀 때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당신은 자신에게 어떤 물질적인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성공과 실패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과거의 죄의식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 당신에게 미래는 절대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들을 풀어줄 것이다. 마음에서 그러한 적들을 놓아버릴 때 적들도 당신을 놓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적을 계속 품고 있다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모든 것이 영원하다는 것을 비추어볼 때 나의 행동은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이러한 행동이 나를 영원히 속박할까 아니면 확장하게 하여 언덕 너머를 볼 수 있게 할까?” 신은 사랑이다. 매일 당신에게 삶을 부여하고, 삶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로 당신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200



사람들이 당신을 사랑하기를 기대하지 마라. 그들은 그러한 능력이 없다.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기를 기대하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에게 자유, 평화를 주는 것이며, 당신이 사랑을 취해 당신 자신에게 주었을 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라!



사람들이 마음 편히 실수하도록 허용하라. 왜 그래야 할까? 그들이 지혜를 얻기 직전에 있기 때문이다. 덕이란 것은 삶을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사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많은 여유를 주라. 그들의 실수를 찾으려고 하지 마라. 누군가를 힘으로 통제하려 하지 말고, 그들과 게임을 하지 마라. 그들을 자유롭게 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그들을 대하라. 정직이란 “내가 가장 절실히 원하는 것을 당신에게 준다.”라는 의미이다.

부모가 당신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용서하라. 아무도 다른 사람을 제대로 키울 수 없다. 당신에게 삶이 있고 그들이 당신에게 생명을 부여했다는 것에 대해 기뻐하라. 베풀라. 베푸는 행위를 통해 당신은 신이 될 것이다. 당신이 자비로울 때 당신의 신도 자비로울 것이다. 당신이 용서할 때 당신의 신도 용서할 것이다.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서 어떻게 적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이 자신을 용서했을 때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 201



받는 사람들이야말로 피해자들이다. 당신들 모두 받는 자였다. 당신은 삶이 당신에게 무엇인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당신에게 무엇인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구들이 당신에게 무엇인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주어야 할 의무는 없다. 당신이 베푸는 자라면, 당신은 당신 내면에서 신성한 힘을 구현할 것이다. 왜냐하면 베풀 수 있는 자원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도록 하라. 조용히 앉아 당신의 삶에서 일어나길 바라는 세 가지를 생각하라. 단지 세 가지 꿈을. 그 꿈은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그것은 좀더 영광스러운 영이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자각몽을 꾸는 것처럼 생생한 삶을 갖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엄청난 부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이제 꿈이 있는 당신의 방으로 돌아가 당신에게 일어났으면 하는 것들을 찾기 바란다. 하지만 원하는 것이 당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 내에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라. 그런 후 그것을 적고 그림으로 그리도록 하라. 다 그렸으면 숙고하라. 변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에 집중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과거에 대한 영원한 중독이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것들이다. 당신은 자신의 부족함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심—그것이 무엇이건—에 그리고 자신의 질병에 집중한다. 202



5장 가르침이 위대한 작업에 임하는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



신은 당신을 한 번도 심판한 젓 없다



내 존재의 주 하느님으로부터 당신 존재의 주 하느님께 경배합니다.

같이 잔을 들고 축배합시다.



오 나의 사랑하는 신이여,

나를 창조하사고

나에게 생명을 부여하신 분이시여.

앎을 향한 내 안의 열정을 깨우소서.

내 힘을 돌려주소서.

그리하여 깨달음을 향한 여정,

그 길이 구현될 수 있도록

So Be It

인생을 위하여. 207





진리는 이론의 실행이다



진리에 대해 내가 무엇이라고 말했는가? 내가 당신에게 말한 어느 것도 진리가 아니다. 신은 당신이 아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당신의 방식대로 되게 하고, 그것을 경험할 때만, 당신의 유일한 진리가 된다. 그러면 그것은 진리이다. 212



그리고 의심하는 마음에 맞서기 위해 당신은 많은 진리를 필요로 한다. 정말 그러하다. 자신을 치유할 힘이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다. 자신이 부자가 되고 싶다고 아무리 말한들 소용 없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엄청난 부를 나타내는 그림을 그려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질 때까지 매일 하루 한 시간씩 그 그림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이 해야 할 모든 것이고, 그렇게 하면 부자가 될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방식의 집중이다. 당신이 이것을 사용하지 않는 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며 또한 당신의 진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진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개념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나에게는 진리였으며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당신에게 전달하기 위해 이 시간대에 맞춰 나타난 것이다.

지칠 때까지 하라. 그런 후 책임감을 가지고, “보라, 정말 내가 이것을 간절히 원한다면, 나는 반드시 이룰 것이다.”라고 자신에게 말하라. 그렇게 일어난다. 완벽한 믿음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완전한 치료, 치유 그리고 회복은 순식간에 일어난다. 당신들 대부분이 그러한 것을 이루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심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안과 의심을 완전히 없앨 수 있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순식간에 이룰 수 있다. 당신이 그것을 구현하는데 그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213



만약 당신이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끌어올린다면 원하는 것들을 순식간에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여기를 떠나는 날부터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엉망진창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현재를 묶어주고 유지하는 끈끈이는, 에너지와 당신의 집중력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떤 것에 대한 초점을 바꾸는 순간, 그것으로부터 집중력이 떨어져, 모든 에너지가 흩어진다. 당신의 대인 관계가 변하기 시작할 것이며,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키우던 고양이가 당신의 다리를 물 것이고, 새는 날아가 버리고, 개는 광견병에 걸릴 것이다. 모든 것들이 외해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라. 왜 그런지 아는가? 많은 것들이 망가지는 것을 보는 순간이 바로 그것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여기에서 같은 태도를 고집한다면, 이전과 같은 에너지를 다시 형성할 것이다. 그것이 당신을 병들게 한 바로 그 에너지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러너들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자주 러너를 보내지는 않지만, 당신이 여기에서 배운 내용을 모두 가르칠 수 있는 러너들을 보낼 것이다. 언제나 그들을 축복하라. 누군가가 당신에게 호통칠 때 문득 그들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웃으며 그들을 안아주어라. 그들이야말로 러너이다. 그들을 때리거나 밀치지 말라. “당신의 말이 맞아. 일깨워줘서 고마워!”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의 적은 어떻게 반응할까? 적을 안아준다면 그들은 더 이상 당신에게 적개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무례함에 감사해 한다면 더 이상 적이 있을까? 216



오라장



예수아 벤 조셉의 기적



예수아 벤 조셉이 생명을 어떤 식으로 보았는지 살펴보라. 그는 어떤 것을 보더라도, 그것은 정확히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맹인을 만났을 때 맹인은 그에게 눈을 뜨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그는 허리를 굽혀 진흙을 주워 그것에 침을 뱉었다. 그는 진흙과 침, 이 둘의 입자 관계에 새로운 생체장을 만들었던 것이다. 예수아 벤 조셉은 진흙을 주워 빚은 후 장님의 눈에 붙이는 내내 장님의 완전한 시력을 보고 있었다. 227



당신의 현실이 당신보다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당신이 더 강하다. 그러나 당신의 에너지는 어디에 있는가? 당신의 에너지는 삶에서 당신이 받아들인 평범한 것들에 있다. 당신은 질병을 받아들이고, 걱정거리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인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보기를 원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집중하는 것이다. 229



그것이 그의 마지막 시험이었다. 그것은 그의 의식이 신과 절대적으로 하나가 되었으며 죽음조차도 그의 마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예수아 벤 조셉에 대한 수많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종교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당신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예수아의 진정한 가르침은 예수가 당신의 삶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단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신의 힘을 증명해 보인 마스터였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든 그것을 졸 수 있는 눈을 가졌다면, 그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다면, 그가 인간의 영이 영원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오직 그만 보여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구한 세월을 통해 모든 문화에서 드러났고, 입증되었지만, 사람들은 금새 잊어버렸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갖게 되었나? 예수가 신의 독생자라는 종교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신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그 말은 합당하지 않다. 그리고 그는 당신을 구원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이미 1세기쯤에 그리했을 이해하겠는가? 그의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그들은 보통 사람들, 어부와 세관원, 그저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는 단지 우화를 통해 스스로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말했다.

“믿음을 가져라. 눈이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눈을 뽑아라. 당신은 믿는데, 당신의 팔이 믿지 못한다면 팔을 잘라라.” 이 말은 육체가 무엇을 하건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40



7장 쿤달리니 에너지와 일곱 개의 씰



완전히 알고, 완전히 몰입하고,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는 것이다. 오직 우리의 두 개의 의식 차원, 즉 관찰자와 행위자가 일치할 때만 이런 순간이 일어난다. 만약 우리가 쿤달리니 에너지를 깨워 위로 올려 집중한다면, 이 두 개의 의식 포인트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장은 강력한 자력과 같다. 250



카두시어스가 지닌 실질적인 의미를 잃어버렸지만, 절대적 건강과 행복을 나타내는 카두시어스가 의학을 상징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고대 상징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눈부신 건강에 집중하면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순간을 유지할 수 있다면, 치유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252



송과선은 멜라토닌으로부터 피노라인이라 불리는 환각제를 합성한다.

이처럼 송과선은 두뇌에서 마술사 역할을 한다. 자정을 지나 새벽1시부터 3시까지 가장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는데, 이때 사람들은 자각몽을 꾸게 된다.
단, 송과선이 충분한 시간을 통해 멜라토닌을 피노라인으로 바꿀 수 있을 때만 자각몽을 꾸게 된다.

왜 피노라인인가? 피노라인은 잠재의식이 사용하는 환각제로서 두뇌가 더 깊은 영역들과 교신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늦게까지 자지 않는 사람들은 피노라인을 만들 수 없기에 교신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교신한다는 말은 수면 상태에 있는 신피질 전체에 분포된 피노라인이 뉴런을 역점화시켜서 이 존재(거울의식)가 이 존재(제로 포인트)와 대화한다는 것이다.
또한 피노라인은 잠재의식의 문을 여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유체이탈이 일어난다.

게다가 이 타임라인에서 예언적 통찰력을 얻게 한다. 그리고 피노라인은 당신으로 하여금 이러한 의식 차원(높은)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한다.

당신이 육체로 돌아오기 전, 신피질에서 짧게 터졌던 피노라인이 흡수되기 시작한다. 생성된 모든 피노라인이 흡수되어, 더 이상 공급할 수 없으면 피노라인의 문은 닫히고 당신은 육체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신데렐라 이야기에 진실이 담겨 있지 않은가?

쿤달리니가 깨어나 송과선에 닿으면, 그것은 순간적으로 두 개의 의식 포인트와 에너지 일치에 의해 신경 전달 물질일 세로토닌을 회전시켜 이온화한다. 259

'채널링 메시지 > 람타 메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람타, 화이트북 - 주파수 진동  (0) 2021.12.05
posted by 有然(유연)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그분이 하나라는 생각은 그분을 제한합니다.
그분은 무한합니다.
그분에 대해 올바르게 말하는 것은 ‘God is’
'하느님은 계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메허 바바

신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가 한 존재라는 생각이 그를 제한합니다.
그는 무한합니다.
그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God is’
'신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It is incorrect to say God is one. The idea of his being one limits him. He is infinite.
To speak of him correctly is to say ‘God is.’


God in the Beyond Beyond state is absolutely independent of the world, is the source of infinite power, knowledge, bliss, beauty and wisdom, but is neither conscious of these attributes nor of himself.

God in the Beyond state (Allah, Paramatma) is independent of the world, and yet is conscious of his power, beauty and eternity, but in this state does not express these attributes. He is eternal in the sense that he ever was, is and will be.

We imagine God was. Before that, he was, and still before that he ever was. Imagination cannot grasp and cannot reach the one who has no beginning and no end. So we logically conclude that this state is beyond imagination and understanding.

It is incorrect to say God is one. The idea of his being one limits him. He is infinite. To speak of him correctly is to say ‘God is.’ We can say this only with reference to his Beyond state, where there is no beginning, no end, and nothing exists but God. If God alone is, God is Everything, and in this infinite Everything, Nothing is latent. Thus Nothing also exists. Let us see how this Nothing represents this universe.

The most-first imagining of God, which Vedanta refers to as Lahar and Sufism calls Guman, is the first urge in the beginningless Everything to know itself. As soon as this urge appeared, a beginning began, not of God, but of the urge that produced Nothing, which was latent in God. What was the urge? It was to know ‘Who am I?’ As soon as the urge appeared, Nothing was produced, and God, instead of knowing himself as God, began to experience the nothingness of Nothing.

This process may be likened to a man tickled out of his sleep into a gradual opening of his eyes, a progressively full awakening. When he wakes up he sees the objects, the nothingness of the Nothing (God’s shadow), and not himself. Passing gradually through seven stages of the rise of consciousness, man, figuratively speaking, attains a full opening of the eyes, and simultaneously the consciousness of a fully manifested universe, the shadow of God.

Shadow (Nothing) was latent in God. With the emergence of the urge, God did not know himself as God, but experienced himself as shadow. Impressions (nothingness, germs of imagination and illusion) piled up in profusion, owing to the transition of the shadows through alternations of pain and pleasure, beauty and ugliness, births and deaths, etc. After attaining the human form, for God to know himself as himself, he has to traverse a journey of seven inner stages and yet retain full, open-eyed consciousness. For God to know himself as himself (through the medium of a human form), creation of forms and the consequent experiences were necessary.

(Baba illustrated this with the example of someone standing near a lighted lamp and seeing his own shadow)

Sometimes you suffer, sometimes you are happy. You don’t remember having gone through all the dual states of experience, of being man/woman, strong/weak, rich/poor, healthy/sick, etc. It was all a dream. It will continue to be so until you become free. With God’s urge to know himself a beginning was made, so it has to have an end. Beginning and end, and all the paraphernalia of things and beings – the becomings – that go along with them, are what constitutes the law of opposites.

God has no beginning, no end. The Nothing, which is latent in God, has a beginning and an end. God is not limited. Nothing has three states – Mental, Subtle and Gross. When Nothing manifests, the law of opposites (bindings) manifests. This law is established in all three spheres.

from notes of a talk by Meher Baba, July 1953,
Dehra Dun,
GG4 p89-91.
Another version:
GT p267-268

posted by 有然(유연)


하나님 체험

우리 삶의 숨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은
오직 정직한 사랑을 통해서만 체험할 수 있습니다.

- 메허 바바

God, who is the breath and life of our lives, can only be experienced through honest love.

23 March 1953,
Dehra Dun,
BG p6-7



Since, in the very beginning, imagination gave a twist to substance, and importance to shadow, we, who are eternally free, find ourselves bound, having lost our original self in the maze of illusion. Therefore, despite possessing infinite bliss, we have to experience misery, worries, doubts, failure and helplessness. When in a flash real knowledge comes, we are not what we seem, but are that infinite one. All worries disappear, because in reality sukh (pleasure) and dukh (misery) do not exist. To get rid of this persistent ignorance and to know the true value of reality, we have to experience God; and God, who is the breath and life of our lives, can only be experienced through honest love.

23 March 1953,
Dehra Dun,
BG p6-7

posted by 有然(유연)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SBN=K342734541&start=pm_naver


Irene Coneybeare:
바바, 아담은 몇 살입니까?

메허 바바(웃음): 8400만 년 전에 최초의 인간이 지구에 왔다고 대답하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요?

그러나 전체 설명은 최초의 인간이 어떻게 진화했는지, 이 최초의 진화된 인간이 어떻게 이 지구뿐만 아니라 수백만 개의 지구에 반복적으로 수백만 번 나타났는지 이해하게 해 줄 것입니다. . 그러나 이것은 모두 적절하게 설명되어야 합니다.

말을 멈췄을 때 개인적으로 썼고, 1년 만에 썼고, 지금은 주문할 때만 만질 수 있도록 은행에 넣어둔 책은 이 점을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세계와 과학자들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저는 주기, 깨달음을 위한 지구의 위치, 죽어가는 지구 및 다른 어떤 행성도 아닌 다른 지구의 동시 진화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최초의 인간은 언제 진화했고,
최초의 깨달음은 언제였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모든 것이 그 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1953년 2월 11일,
Meherazad
LM11 p4070

posted by 有然(유연)



옴 포인트 - 메허 바바

자아는 작은 지점에서 나오자마자 환상에 빠져 세상을 여행하기 시작한다.
모든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고급 요가 수행자도 여전히 환상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과 같으며 자아가 아니라 자아의 그림자나 반사를 의식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차원의 유혹에서 벗어나자 마자 영혼이 긴 여정을 떠나는 초기의 작은 지점으로 돌아가 그곳으로 들어갑니다.

이 단계에서 수행자는 온 우주가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이 지점(종종 옴 지점이라고 함)을 넘어서는 데 성공하면서 그는 우주 전체를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에게는 형상이 없고 영원한 실재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순간적인 기쁨이나 슬픔은 없고 영원한 지복만 있을 뿐입니다.

1948년 이전,
Meher Baba가 구술한 메모에서, ST p74


As soon as the self comes out of a tiny point, it descends in illusion and starts its journey in the world. Even advanced yogis, with all their supernatural powers, remain under the sway of illusion. They are like ordinary persons, conscious of the shadow or reflection of the self, and not the self. But as soon as they disentangle themselves from the allurements of the planes, they return to and enter the initial tiny point from which the soul emerged on its long drawn journey.

At this stage, the yogi experiences that the whole universe is coming out of himself. But as he succeeds in going beyond this point (often called the Om point), he becomes completely unconscious of the whole universe. For him, there are no forms, only the eternal reality. And there are no fleeting joys or sorrows, but only the abiding bliss.

before 1948,
from notes dictated by Meher Baba, ST p74

posted by 有然(유연)

(메허 바바는 나중에 설명했습니다:)

환생 시점까지의 진화 과정은 자연스럽습니다.  나선형처럼 체계적으로 진행됩니다.  
모든 형태가 원 안에 있고, 두 방울이 (첫 번째) 인간 형태로 합쳐지는 것이 진화 과정의 끝이었습니다.  그래서 멈췄고, 기세는 77 형태에서 감소했습니다.  그리고 기세가 끝나면 환생을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세상을 떠날 일이 없었습니다.

나는 여러 번 깨달음을 얻은 후
무수한 모든 시간 동안 당신과 함께 아바타로 내려왔습니다.  
마지막 주기에서만 5,329번입니다.  
그리고 450년 만에 다시 한 번.  
비록 우주는 결코 끝나지 않았지만,
그 끝(The end)은 5,330번째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비인격 안에서 개인 둘 다이고,
비인격 안에서 또한 나는 의식이 있습니다.  
무의식의 바다는 바바이고,
의식의 방울 속에서 나이며,
또한 모든 사람 안에서 나는 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경험합니다.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점은 진화의 7단계입니다.  형태를 바꾸는 주요 단계는 8,400,000개입니다.  마스터는 84 lakhs를 셀 수 있습니다.  메헤라바드의 작은 방에서 쓴 내가 쓴 책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말한 후에 세상에 줄 것이다.

(이틀 후:)

식물체까지는 마음도 없고 지성도 없지만 식물체에서 그 에너지는 완전합니다.  
에너지를 의미하는 cheyenya라고합니다.  
동물의 형태에서 지능의 첫 번째 단계는 본능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당신은 이 모든 형태에서 변함없이 동일합니다.  변화하는 것은 형태, 의식, 우주의 체험입니다.  마지막 동물 형태(인간)에서 본능은 지성으로 발전됩니다…

어떤 동물들은 내면의 직관과 영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의식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캥거루는 멋진 광경과 색상을 경험할 수 있지만 완전히 의식이 없기 때문에 파악하지 못합니다.

1933년 4월 20일,
카슈미르,
HM p451-454


(Baba explained later:)

The process of evolution up to the reincarnation point is natural. It goes on systematically like a spiral. All forms are in a circle, and when the two drops united in the (first) human form, that was the end of the process of evolution. So it stopped, and the momentum diminished at the seventy-seventh form. And when the momentum finished, then began reincarnation. There was no leaving the world before.

After my having become Realised many times, I came down as Avatar with you all innumerable times. Only in the last cycle, 5,329 times. And once more after 450 years. The end will be the 5,330th time, although the universe is never finished.

So I am both personal in impersonal, and in the impersonal, too, I am conscious. The unconscious ocean is Baba, in the conscious drop is me, and also in everyone I experience myself consciously.

One very important point is the seven stages of evolution. There are 8,400,000 main stages of changing forms. Masters can count 84 lakhs. It is in the book I have written, which I wrote in Meherabad in a little room. This I will give to the world after I speak.

(two days later:)

Up to the vegetable form there is no mind, no intellect, but in the vegetable form the energy is complete. It is called cheyenya, which means energy. In the animal form the first stage of intellect appears in the form of instinct. You are the same, unchanged in all these forms. What changes is the form, the consciousness and the experience of the universe. In the last animal form (man) instinct is developed into intellect…

Certain animals have inside intuition and inspiration. But as they are not fully conscious, they do not know what they are. Kangaroos can experience wonderful sights and colors, but are not fully conscious, so they do not grasp.

20 April 1933,
Kashmir,
HM p451-454

posted by 有然(유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