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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然(유연)
God-Realization 신-깨달음의 영적 여정....... 삶의 목적은 우주적인 자아와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한한 지복, 파워, 지식 (전지, 전능, 지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 아바타 메허 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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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의 신' 자현스님, "공부는 맛집 탐구와 같아"
등록일 2016.02.11
조회22,575


초등학교 성적표에 ‘가’도 있고, 학번도 제대로 외우지 못할 정도로 기억력이 나쁜 사람. 하지만 4개의 일반대학원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한국학술진흥재단(현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110여 편의 논문을 수록해 ‘논문의 신’으로 통하게 된 사람. 그 주인공인 자현스님의 책 <스님의 공부법>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정리하는 모든 공부 행위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삶 일반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 활동과 연결된 공부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고, 인생 전체를 길게 보고 하는 공부가 진정한 공부라는 말이다.

한편 이 책은 머리 좋은 사람들의 특별한 공부법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공부법을 소개한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감이다. 인식 주체로서의 ‘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자존감의 문제이다. 공부는 결국 나와 싸우는 일일 텐데, 그것이 무너질 경우 의존적이고 종속적으로 바뀌어버린다. 또한 책을 통해 받아들인 많은 정보를 정리하는 것은 무의식의 역할이다. 이 작업은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자신의 논리구조를 재검점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은 글쓰기가 병행될 때 가능하다.

이 책은 공부가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취미와 같은 것이 될 때 어떤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삶을 위한 공부는 물론 책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처한 여러 환경을 읽어내고 그 안에서 스스로 관찰하고 판단하는 주체적인 삶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결국 개인이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것인지와 연결되어 있다.



Q 시중에 공부법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그런 책들과 달리 <스님의 공부법>만이 가진 특징은 무엇인가요?

머리 좋은 사람의 공부법을 배우기는 쉽지 않아요. <스님의 공부법>은 일반인도 따라하고 공유할 수 있고, 조금은 게으른 사람들도 할 수 있는 공부법에 대한 접근이에요. 공부는 취업처럼 경제를 목적으로 하는 공부와 인생을 목적으로 하는 공부가 있어요. 전자의 수단으로서의 공부가 아닌 후자의 목적으로서의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목적은 인생의 만족도에서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러니까 이 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공부에 더해 삶의 질 문제에서의 공부에 대해 말하는 책입니다.



Q 얼마간 책을 쓰셨는지, 전체 구성은 어떻게 잡은 것인지 궁금해요.

열흘 정도 작업했어요. 저는 글을 오래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구조가 뚜렷하면 작업시간이 길지 않아요. 사람들이 뚜렷하게 구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글을 쓰니까 오래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시행착오를 겪고 문제가 계속 발생하는 거죠. 건축물을 제작할 때 자신이 만들 건물이 3D로 머릿속에 구상돼 있다고 가정하면, 도면 그리는 것은 일이 아니에요. 이 책을 쓸 때 글 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대신 구상하는 데 오래 걸렸어요.



Q “나는 평범한 머리로 이를 극복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만들어서, 머리 좋은 사람들을 뛰어넘었다. 이제 그 방법을 공유하고 싶다.”라고 쓰셨습니다. 스님께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게 공부는 취미예요. 게임이라고 보는 거예요. 공부도 게임의 또 다른 방식이죠. 낚시 하는 사람이나 야구경기를 하는 사람과 같이 자기만족이나 재미를 위해서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다른 취미생활보다 공부를 우위에 두는 것은 동아시아의 인문학적 풍토 때문에 그런 거예요. 예전에는 공부한 사람이 권세를 쥐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과 맞물려 있죠. 지금은 공부한다고 해서 권력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에요. 자기계발이라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수단으로서의 공부는 한계가 있어요. 가장 좋은 것은 취미와 직업이 일원화됐을 때예요. 직업을 어떤 방식으로든 취미화시킬 수 있으면 효율성도 좋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경제 목적 공부와 인생 목적 공부... 후자의 공부가 더 중요"



Q 책의 여러 곳에서 명상에 대해 말했는데요, 종교적인 의미를 명상을 말한 건가요?

자기계발 식의 명상이에요. 명상은 거창한 게 아니라, 자기 아편이자 자기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엔도르핀이에요. 즐기는 사람은 굳이 배우지 않더라도 누구나 명상 상태가 돼요. 예를 들어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걸 보면, 밥도 먹지 않고 생리활동도 멈춘 채 대여섯 시간 움직이지 않고 하죠. 누군가 시킨다거나 돈을 준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 안에 자신이 존재하는 건데, 그런 게 명상이죠. 그걸 어떻게 효율적으로 계발해서 쓸 수 있는가 하는 차이가 있는 거죠. 그걸 잘 쓰는 사람은 성공하고 발전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고, 그걸 통제할 수 없는 곳에서 발휘하면 능력치가 떨어지는 거죠.



Q 동양과 서양의 공부법 차이에 대해서 말했는데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서양은 벽돌 쌓는 문화와 같아요. 앞 사람이 하다가 중단하면 다음 사람이 받아서 할 수 있어요. 총량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거죠. 동양은 천재가 한 명 나오면 쭉 올라가는데, 그 기술은 전수가 안 돼요. 서양문화는 벽돌을 쌓는 것처럼 부분적으로 하는 것이고, 동아시아 문화는 전체를 다하는 사람이 지식인이며 그건 천재성과 관계가 있죠. 오늘날 융복합이나 학제적 연구가 권장되는 사회에서는 동양식 지식이 필요해요. 이는 삶의 만족도와 행복의 문제예요. 과거부터 동양에서의 공부는 행복을 이야기했어요. 어떻게 하면 나를 성취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가. 유교식으로 이야기하면 ‘도통’이에요. 결국 깨달음 문제예요.



Q 우리 시대에 공부를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후를 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 평균수명이 늘어났어요. 지금은 금전적인 문제를 신경 쓰지만 한 세대 정도 더 지나면 복지든 연금이든 그 부분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노년에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지가 큰 화두로 떠오를 거예요. 새로운 것에 도전할 상황이 아니므로 자기가 익혀온 것만 가져가죠. 그때 내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보느냐, 어떻게 주어진 조건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한 최적의 조건을 찾아야 하는데, 그 길은 공부밖에 없어요.

공부라고 하면 작은 주제의 공부, 취업이나 학교와 관계되는 공부만 생각하는데, 사실 공부라는 표현 자체가 동아시아에서는 수행이었어요. 고려시대 때 승려들이 승과를 보는데, 그 승과의 이름이 공부선이었어요. 중국에서는 공부가 쿵푸였고요. 국가적 차원에서 그 부분을 만족하게 해주지 못하면 국민의 삶의 질과 만족도가 굉장히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공부는 행복을 위한 습관이에요. 악기를 배우고, 공연이나 영화를 보는 것도 행복을 위한 재투자거든요. 공부도 그런 쪽으로 받아들여야 해요.



Q 책을 읽는 여러 방법에 대해서 말했는데요, ‘책을 끝까지 읽어라’, ‘한 번만 읽어라’ 등. 흔히 이해가 잘 안 되면 책을 반복해서 읽게 되는데, 이러한 방법의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한 권을 계속 읽으면 익숙해지는 거지, 더는 창의력이 생기지 않아요. 익숙한 것과 아는 것은 달라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부터 제사를 지낸 할머니 세대는 평생 제사를 모셨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제사의 뜻이 무엇이고, 왜 제사를 지내는지, 왜 그런 식으로 음식을 놓는지 물으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해요. 그건 익숙한 거예요. 그리고 익숙하면 궁금증이 사라져요. 그렇게 되면 더는 의식을 환기할 수 없어요.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을 내가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착각이에요. 같은 책을 계속 읽으면 익숙함의 비율이 증가하는 것이지 앎의 비율이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예요.



Q 현재 자신의 수준이나 능력에서 어려운 책을 읽다 보면 좌절하는 경우가 많아서, 책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요?

자존감이 중요해요. 자존감이 무너지면 싸울 수 있는 배경 자체가 없어요. 터가 있어야 쌓죠. ‘나는 그쪽 전문이 아니고 당신이 많이 아는 것은 당연한 것이야’라는 식으로 뻔뻔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불교에 ‘국자와 숟가락은 평생 음식 맛을 본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하루 2억 원의 돈을 세는 은행원의 월급이 얼마 되지 않는 것과 같은 거죠. 슬픈 일이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배경이 자존감이라 생각해요.

우리나라 교육에서 위인전 읽는 걸 강조하는데, 저는 그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해요. 그런 것에 계속 매이게 되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종속화돼요. 너저분해도 나를 중심으로, 내가 주인공이 돼야 재미가 있지, 들러리는 재미없어요. 위대한 사람을 판단하는 것도 ‘나’이므로 진짜 중요한 것은 나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해요. 인식주체의 문제인데, 자기의 주관성이 뚜렷할 때 삶의 만족도는 훨씬 높아지는 거죠.







"명상, 거창한 것 아냐... 자기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엔도르핀"



Q 무의식에 대한 이야기도 여러 차례 언급이 돼 있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책을 많이 본 후에 잠을 자는데, 그러면 정리가 돼요. 실제로 우리는 그걸 하고 있어요. 너무 판단이 안 되고 힘들 때 자고 나면 어느 순간 판단이 끊어질 때가 있어요. 그건 무의식이 정리하는 거죠. 이 책 <스님의 공부법>에도 미치기 싫고 살아남으려면 정리하게 되고 판단을 끊어낼 수밖에 없다고 썼어요. 똑같은 어려운 책을 읽더라도, 시험 보기 전에 답을 써야 한다는 주제의식이 뚜렷하면 전부 정리가 돼요. 어떤 식으로 날짜가 잡히면 수행하게 되죠. 글 쓰는 사람들도 그런데, 마감이 걸리면 초능력이 발휘돼 글을 단번에 쓰게 돼요. 보통 때 그런 능력치는 잘 발휘되지 않죠. 그런 것들도 무의식이 수행하는 거예요.



Q 글쓰기에 대해서 강조했는데요, 공부에서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데 스스로 글 써보는 것처럼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머릿속에서 대충 생각하는 것과 글을 썼을 때는 완전히 달라요. 자기 논리의 모순 구조나 자기의 문제를 정확하게 되짚으면서 한 단계 올라가기 위해서는 귀찮아도 써야 해요. 그리고 다양한 글쓰기도 익혀야 하죠. 책 쓸 때, 논문 쓸 때, 신문 사설 쓸 때 요구하는 글이 다르잖아요. 같은 책이라도 좀 더 학문적인 책과 일반인을 겨냥한 책은 당연히 쓰는 법이 다르죠. 지금 현실은 그걸 모두 익히라고 요구하는 사회예요. 그런 사람들만 성공하는 거죠.



Q 어떤 공부를 한다는 건 그 학문의 진리를 탐구하는 거라 생각하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공부는 맛집 탐구라고 생각해요. 내가 선택한 것은 의미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의미가 없어요. 둘 다 레벨은 같을 수 있지만 내 주관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지죠. 결국 판단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은 나인 거죠. 저는 모든 교육제도와 책은 세뇌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회에서 권장하는 교육방식을 주입하는 거예요. 그건 결국 승자가 만든 거죠. ‘너희는 나를 따라와.’ 가령 수학처럼 도움이 되지 않는 학문이 어디 있겠어요. 구구단 못 외워도 사는 데 지장은 없어요.

누군가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무엇을 믿을 것인가. 현재 우리에게 정답이라 주어진 판단이 있을 뿐이죠. 언제 무너질 줄 모르고 누군가 중간에서 농간을 부렸을 수도 있고요. 무언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타고 가는 것도 하나의 흐름인 거예요. 변화를 즐기는 여유가 필요한데, 강한 사람만 변화를 즐길 수 있어요. 약한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죠.



Q 우리 사회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것, 책을 멀리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왜 이렇게 흘러가고 있을까요?

책 읽는 게 재미있으면 하겠죠. 열흘 밤을 새워서 게임을 하다가 죽은 사람에 대한 기사를 두어 번 접했어요. 그 정도로 집착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요. 왜 그 사람은 자기가 죽는지도 모르고 게임을 했을까요. 아마도 행복했기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이제 책이 더는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거죠. 새로움이 없다면 도태돼야 해요. 정부에서 억지로 권장해서 판매하게 할 게 아니라, 철저하게 망하고 나면 새로운 것이 나와요.

오히려 덜 망하면 반전의 기회가 없어요. 지금 출판업자들은 최대의 불황이라는 이야기만 하고 있거든요. 책으로 만족을 주기 위해서 새로운 기획과 접근방식을 취해야 할 거예요. 저는 읽는 책이 아니라 보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요. 사람은 글자를 읽는 것보다 이미지를 읽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그걸 통해서 느낌을 보는 거죠. 그런 식의 접근방식으로 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다음에 쓸 책이 논문 잘 쓰는 법에 대한 책이라고 했는데요, 어떻게 구성할지 간략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지금 평균 학력이 대학원 석사이지만, 조금 더 지나면 박사까지 평균 학력이 올라갈 거예요. 학력 부담을 넘어선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겠지만, 평균 학력 이하가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아주 많아요. 우리나라는 내용이 아니라 형식으로 판단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걸 빌미로 삼아요. 고등학교까지는 암기력이 우수하면 공부를 잘하고, 대학은 작전을 잘 짜서 즐길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면 점수가 올라가죠. 그런데 대학원에서는 경기의 룰이 바뀌어요.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글을 쓰지 않기 때문에 논문 쓰기가 만만치 않아요. 저도 처음에 논문을 써서 교수님께 들고 갔더니 그런 식으로 쓰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대다수가 그럴 거예요. 대학원을 빨리 졸업하는 사람도 있지만, 수년 동안 거기에 발목이 잡혀서 취업할 나이를 놓치는 등 대학원이 인생의 무덤인 사람도 있어요. ‘논문은 기술이다’라는 접근으로 책을 쓸 거예요. 순수학문 하려는 사람과 졸업하려는 사람을 구분해서 논문 쓰는 법을 알려줄 생각이에요.

posted by 有然(유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