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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13. 21:09 오늘의 정보/오늘의 여행


'불지종가' 영축총림 방장 추대된 성파스님은
박봉영 기자 승인 2018.03.20 13:04 댓글 0


[행장] 58년 불이(不二)의 개차법(開遮法) 펼친 선지식

제210회 중앙종회 임시회에서 ‘불지종가 국지대찰’ 영축총림 방장으로 추대된 성파스님은 수행자로서의 본분사에 힘쓰면서도 단절된 불교문화 복원이라는 한 길을 묵묵히 걸어 문화포교에 큰 족적을 남긴 선지식으로 꼽힌다.
수행과 방편 넘나들며
선농일치 실천한 스승

사그라진 불교문화 복원
잠시도 쉬지않고 ‘한 길’

종단 어려울때 소임생활
화합위해 멸사봉공 헌신

출가 이후 58년 동안 수행과 방편을 넘나드는 개차(開遮)법을 펼쳐온 조계종 원로의원 성파스님이 3월20일 열린 제210회 중앙종회 임시회에서 제4대 영축총림 방장으로 추대됐다. 영축총림 통도사 산중총회에서 총림대중 만장일치로 방장으로 모셔달라고 추천한데 따른 것이다.

영축총림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대가람을 형성한 불지종가 국지대찰(佛之宗家 國之大刹)이다. 근현대 구하스님과 경봉스님, 벽안스님, 월하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이 주석하며 불법을 펼쳤으며, ‘이성동거필수화목(異姓同居必須和睦) 방포원정상요청규(方袍圓頂常要淸規)’의 가르침으로 육화(六和)와 청규에 따라 종문의 정신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대도량이다.

불보종가의 상징이라 할 만한 영축총림의 방장 성파스님은 수행자로서의 본분사에 힘쓰면서도 단절된 불교문화 복원이라는 한 길을 묵묵히 걸어 문화포교에 큰 족적을 남긴 선지식으로 꼽힌다.

1960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은사로 출가하고 통도사 전문강원을 졸업한 후 1970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봉암사 태고선원을 시작으로 제방의 선원에 방부를 들이는 등 치열한 정진을 이어갔다. 제방의 여건이 열악했던 당시 통도사 서운암에 무위선원을 열어 납자들을 맞아들여 선풍 진작에도 힘을 기울였다.

서운암에 주석하면서 성파스님은 수행과 방편을 넘나들었다. 사그라진 불교문화를 다시 꽃피우는 길도 이 때 시작됐다. 지화(紙花)로 전해져오는 사찰의 염색문화를 전통 쪽 염색법을 재현해 한 단계 발전시켰다. 쪽 염색을 한 감지, 각종 색지, 들기름을 바른 유지 등을 되살려냈고, 각종 식물의 꽃과 잎, 뿌리, 열매를 사용한 초목 염재를 개발해 단순했던 천연염색의 한계를 뛰어넘는 길을 열었다.

사경과 선서화의 대가로도 유명한 성파스님은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아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수행은 게으름을 허용하지 않았다. 닥나무로 직접 한지를 제작하고 쪽물을 들여 감지를 만들어 사경과 서예를 곁들였다. 불화를 그릴 때에는 옻칠도 서슴지 않았다. 쉽고 편한 방식 대신 전통문화를 잇기 위한 스님의 고집스런 열정이 만들어낸 명성이다.


영축총림 방장 성파스님.

성파스님을 중심으로 발전한 서운암 도예는 문화예술계에도 잘 알려져 있다. 도예를 병행하며 일찍이 서운암을 중창한 것은 물론 1985년부터 5년여에 걸쳐 흙을 구워 불상을 조성한 도자삼천불과 1991년부터 10년여에 걸쳐 고려대장경의 조성 정신을 잇는 십육만도자대장경 봉안이라는 대작불사를 일궈냈다. 2013년 도자대장경을 봉안한 장경각 불사를 마무리하기까지 28년의 세월을 하루처럼 헌신했다. 숱한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성공한 도자삼천불과 도자대장경 불사는 성파스님의 대원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4월이 되면 들꽃 가득한 서운암이 되는 것도 성파스님의 ‘선농일치’ 작품이다. 부처님에 올리는 공양 중 꽃공양이 공덕이 으뜸이라며 2000년부터 서운암 주변에 야생화를 심었다. 서운암의 꽃밭은 불자들에게 토종 야생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살아있는 학습장인 동시에 모든 종교인이 어우러진 종교화합의 축제마당이 됐다.

산중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문학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성파스님은 시조문학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왔다. 1984년 성파시조문학상을 제정해 최근까지 시조시인들을 격려해온 것이 대표적이다. 1985년부터 영남시조백일장을 개최해오다가 부산시조문학회와 힘을 합쳐 전국시조백일장으로 확대해 운영하고 있다.

수행자로서 일탈로 보일 수 있는 이런 일들에 대해 성파스님은 수행과 일상을 구분하지 않는 불이(不二)의 가르침임을 늘 강조해왔다. 사람들을 수행으로 이끌고자 사찰이 무한대의 학습장을 펼쳐 보이고, 손가락이 아닌 달을 바라보는 심연(深淵)의 공부를 일러주는 것이다. 이사(理事)를 굳이 구분하지 않았던 스님의 지난 삶이 이를 잘 보여준다.

성파스님은 선원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납자의 길을 고집하거나 주지와 중앙종회의원 등 소임에 집착하지 않았다. 오랜 기간 선원에서 정진대중과 함께 하면서도 언제든 소임을 맡아야 할 때는 기꺼이 대중 앞에 섰다. 통도사 주지와 제5,8,9대 중앙종회의원을 역임했고, 종단이 어려울 때는 총무원 교무부장과 사회부장을 맡아 멸사봉공(滅私奉公)으로 종단화합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수행의 길을 걸을 때나 방편을 열어보일 때나 그 바탕에 출가본분사가 자리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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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근거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것인가?' 한국참선지도자협회 세미나 / 불교수행법 현황 -

三光(삼광) - 精光(정광), 氣光(기광), 神光(신광) - 이 뜬다. 이것이 後光(후광) 또는 光背(광배)이다 신성한 빛과 에너지의 모든 것(오라와 후광 비율) https://m.cafe.naver.com/divinesoulenergy/3169 죽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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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13. 16:42 오늘의 정보/오늘의 여행

조계종, 10년만에 제15대 종정 추대..성파 스님은 누구?
이수지
입력 2021. 12. 13. 15:54수정 2021. 12. 13. 16:06


만장일치로 추대...임기는 5년
1960년 출가 통도사 주지·방장 역임
28년간 도자삼천불·16만 도자대장경 조성
'옻칠민화' 개인전도 개최...2017년 옥관문화훈장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대한불교조계종 신임 종정(宗正) 스님에 추대된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가운데)이 1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릴 고불식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1.12.13.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조계종 제15대 종정에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82)이 추대됐다.

조계종 종정추대회의는 13일 오후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종정 추대회의를 열고 만장일치로 성파 스님을 종정으로 추대했다. 임기는 5년이며 1차에 한해 중임할 수 있다.

종정은 조계종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의 전통을 승계하는 최고의 권위와 지위를 갖는 자리다. 조계종 헌법인 종헌에 따르면 종정은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며 종통을 승계하며 계율을 관할하는 전계대화상을 위촉할 수 있다. 종헌종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포상과 징계의 사면·경감·복권을 행할 수 있다. 종단 비상시에는 원로회의 재적 3분의 2이상의 제청으로 중앙종회를 해산할 수 있다.

한편 종정 임기 시작일은 현 진제 종정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26일이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대한불교조계종 신임 종정(宗正) 스님에 추대된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이 13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고불식에 참석하여 예불을 드리고 있다. 2021.12.13. pak7130@newsis.com

조계종 신임 제 15대 종정 성파스님은 누구?
1939년 경상남도 합천 출신으로 1960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1970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문경 봉암사 태고선원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제5·8·9대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교무부장, 사회부장을 역임했다. 통도사 서운암에 주석하며 28년간 민족통일의 원력을 담은 도자삼천불과 16만 도자대장경을 조성했다.

옻칠불화, 민화, 서예, 천연염색 등 전통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7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18년 희귀병 소아암을 앓고 있는 어린이 환우들을 위해 5000만 원 기부로 통도사 방장 추대법회를 대신하기도 했다. .

한국 고유의 전통미술을 계승한 민화, 특히 옻칠민화을 알리고 있다. 1983년 옻을 이용한 개인전을 처음 연 후 국내외에서 전통 옻과 불교미술을 접목한 전시를 10여 차례 열었다.

2018년부터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으로 후학 양성에도 힘쓴 조계종 원로의원 중 한명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posted by 有然(유연)
2021. 12. 13. 15:50 오늘의 정보/오늘의 죽음


원경당 성진 대종사 행장


불기2565(2021)년 12월 6일 주석처인 평택의 만기사에서 홀연히 원적에 든 원경당 성진대종사는 온 몸으로 한국사회의 격동기를 지낸 보기드문 위인입니다. 해방과 분단은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불가에 입문한 여로(旅路)가 그 가운데 있습니다.

대종사는 남한의 남조선노동당을 이끈 부친 박헌영 거사와 모친 정순년 여사 사이에서 1941년 태어났습니다. 1946년 부친 박헌영 거사가 미군정의 압박을 피해 월북하자 남한에 홀로 남겨져 홀연단신 고아가 되었으며, 일본 동경제국대학에서 부친과 함께 사회주의 운동을 펼치다가 출가한 한산(寒山)스님의 슬하에서 청년을 맞았습니다.

자연스레 한산스님의 문하에서 10세 때부터 삭발염의하였으나 정식적으로 출가를 결행한 것은 송담 정은 대선사를 만난 1960년의 일입니다. 1960년 3월 전강스님으로부터 사미계를 수지하고 1963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시니 어엿한 출가사문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1996년 국립사회복지연수원, 1997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을 수료하였습니다.

대종사는 젊은 시절 은사 송담스님을 따라 화두참선 수행에 매진하여 어묵동정 행주좌와 화두참구하기를 인천 용화선원, 수덕사 정혜선원, 문경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26안거를 성만하시고 비로소 출세간의 깊은 묘리를 세간에 내보이셨습니다.

兜率摘花香自濕 두솔적화향자습
松下喫茶心自閑 송하끽다심자한
圓鏡生平修得何 원경생평수득하
滿庭月光露不霑 만정월광로불점

도솔천에서 꽃 따다 보니 향기 절로 배이고
솔 아래 차 마시다 보니 마음 절로 한가하네.
원경이여 한 평생 닦아 무엇을 얻었는가?
뜰에 가득한 달빛은 이슬에 젖지 않는다오.

대종사는 치열한 정진으로 상구보리하였으니 세간으로 나아가 하화중생하기를 서원(誓願)하여 허물어져 가는 가람을 일신하고 복전을 일구셨습니다. 1974년 흥왕사 주지로 처음 부임한 이래 1983년 청룡사 주지, 1987년 신륵사 주지 등을 거쳐 1995년 만기사 주지를 부임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큰스님의 원력이 큰 줄기를 이루어 중생이 감화하고 불연이 꽃을 피웠습니다.

큰 어려움이 처할 때에도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으시고 멸사봉공(滅私奉公)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갔습니다. 2014년 4월 종단의 원로의원으로 추대되고, 2015년 1월에는 최고 법계 대종사를 서품하셨으며, 2017년 12월 원로회의 부의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지난 봄 종단의 법계위원장을 맡아달라는 거듭된 요청을 거절치 못하시고는 후학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못한 현실을 늘 안타까워하였습니다.

아울러 가람수호와 중생교화에 진력하면서도 역사문제연구소를 설립하여 굴곡진 근현대사를 이념과 사상에 치우치지 않는 기록으로 남기고자 매진하였습니다. 1993년부터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와 함께 부친 박헌영에 관한 기록과 사진 자료를 모아 2004년 <이정 박헌영 전집>을 발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010년 펴낸 시집 <못다 부른 노래>는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수행자로 살아온 삶을 회고하며 기록한 역사적 산물이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한국기자협회 한민족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었으나, 대종사께서는 이 또한 거추장스런 허물이라며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근래 건강을 걱정하는 제자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갈 때가 되었으면 가야지 어찌 꺼리랴” 하시던 대종사의 말씀이 세연을 다함을 미리 알고 계신 가르침이었습니다. 지난 12월 6일 누구도 부르지 아니하고 세연을 다하시며 법납 62년, 세수 81세의 삶을 쪽지 한 장 열반송으로 일러주었습니다.

適來時也何尤誰 적래시야하우수
適去順也何忌憚 적거순야하기탄
離席促我末後句 이석촉아말후구
阿汝爲悲獻一花 아여위비헌일화

올 때가 되어 온 것인데 누구를 원망하랴
갈 때가 되었으면 가야지 어찌 꺼리랴
떠나는 자리 나에게 마지막 말을 재촉한다면
그대여 슬프거든 꽃이나 한 송이 올리게나.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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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13. 15:21 오늘의 정보/오늘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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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반구대 암각화, 옻칠로 되살렸다···통도사 방장스님 수중 회화전
입력2021.04.23. 오전 5:00 수정2021.04.23. 오전 6:54
백성호 기자



통도사에 당대의 선지식 경봉 스님(1892~1982)이 주석할 때였다. 당시 30대였던 성파 스님은 경봉 스님에게 시를 써서 보냈다. 그냥 시가 아니었다. 마음공부 자리, 수행의 견처를 담은 시였다. 하루는 경봉 스님에게서 편지로 답이 왔다. 답장에는 ‘능문능시(能文能詩)’라고 적혀 있었다. 능히 글을 쓰고, 능히 시를 쓴다. 마음에 막힘이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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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의 슬로건은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이다. 스님은 "일해야 공부할 수 있지, 일하지 않고서 어떻게 공부할 수 있느냐"며 생산 불교를 강조했다.

선가(禪家)의 어법으로 보면 선사가 후학의 마음자리에 고개를 끄덕인 셈이다. 일종의 인가다. 경봉 스님은 이어서 ‘속불혜명(續佛慧命)을 희옹희옹(希顒希顒)하노라’라고 썼다. ‘부처의 법을 잇기를 바라고 또 바라노라’는 의미다. 당시만 해도 절집에서 경봉 스님과 젊은 성파 스님 사이는 층층시하였다. 그런데도 80대 경봉 스님은 30대 성파 스님에게 ‘능문능시’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4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성파 스님은 통도사 영축총림의 방장이 됐다. 선원ㆍ강원ㆍ율원을 두루 갖춘 총림의 최고 지도자가 방장이다. 14일 푸릇한 신록이 파도치는 통도사 서운암에서 성파(82) 스님을 만났다. 맞은 편에 서 있는 영축산의 산세가 오롯하고 당당했다. 성파 스님은 요즘 각별한 작업을 하고 있다. 7000년 전 선사시대의 예술을 오늘의 예술로 되살리는 작업이다. 주인공은 ‘울산 반구대 암각화’(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국보 제285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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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이 맨발로 올라가 반구대 암각화를 옻칠로 되살린 작품을 손으로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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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풍화작용에 의한 마모가 심해 직접 찾아가도 선명한 그림을 보기가 쉽지 않다. [중앙포토]

선뜻 상상이 가지 않는다. 선사시대 암벽에 새겨놓은 그림에 오늘날 생기를 불어넣는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할까. 사실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직접 찾아간다 해도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는 힘들다. 하천 건너 절벽에 새겨진 그림에다, 풍화작용으로 마모가 심하기 때문이다. 물 건너편에서 망원경으로 본다 해도 그다지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그런데 성파 스님이 이 반구대 암각화를 ‘우주 허공’에 다시 그려놓았다. 제작 기간만 꼬박 3년이 걸렸다. 이 작품은 24일 오후 3시부터 통도사 서운암 장경각 앞마당에 상설 전시된다. 그것도 물속에 잠긴 채 전시되는 전례 없는 수중전이다. 작품 크기는 7.8m×4.4m다. 반구대 암각화와 100% 똑같은 실물 크기다. 누구나 와서 무료로 볼 수 있다. 마구 올라오는 물음을 마주 앉은 성파 스님에게 던졌다.


Q : 반구대 암각화를 우주 허공에 옮겼다고 들었다. 어떤 식인가.

성파 스님은 대답 대신 등 뒤에 서 있는 커다란 도자기를 만져보라고 했다. 조심스레 만졌다가 깜짝 놀랐다. 도자기가 아니었다. 모양은 영락없는 도자기인데, 정체는 삼베였다. 이건 마구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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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가 아니다. 삼베에 옻칠을 해서 만든 작품이다. 성파 스님은 아무리 던져도 깨지지 않는다고 했다.

A : “삼베에 몇 차례나 옻칠해서 겹으로 붙이면 저렇게 된다. 고려청자가 깨졌을 때 무엇으로 붙이는지 아나. 접착제가 아니다. 옻칠이다. 접착제는 세월이 가면 산화돼서 힘이 없어진다. 물에 들어가도 접착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Q : 그럼 옻칠은 어떤가.

A : “옻칠은 썩지 않고 방부가 된다. 접착력도 강하다. 한번 붙으면 떨어지지 않는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옻칠로 한번 접착되면 물에 넣고 팔팔 끓여도 안 떨어진다. 게다가 옻칠은 수천 년 가도 색이 안 변한다.”

성파 스님은 반구대 암각화와 동일 크기의 삼베에 옻칠을 했다. 열두 번 넘게 칠한 뒤에 다시 삼베를 붙이고, 다시 칠하고 다시 삼베를 붙이는 작업을 되풀이하면서 작품의 바탕을 만들었다. 그러자 도자기처럼 단단한 바탕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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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서운암에 마련된 작업실이다. 반구대 암각화를 되살린 작품의 크기가 너무 커서 반출할 때 작업실 정문을 떼어내야 했다.

참 묘했다. 까맣게 칠한 옻칠 바탕이 영락없는 우주였다. 그 위에 점점이 떨어져 있는 색깔 입은 옻 안료는 하나하나가 별이었다. 한눈에 봐도 밤하늘에 펼쳐져 있는 우주였다. 성파 스님은 그 위에다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을 띄웠다. 그것도 우리 고유의 나전칠기 기법에 옻칠로 색을 입혔다. 그러니 성파 스님의 암각화는 우주 허공에 띄운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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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은 "반구대 암각화에는 궁극의 순수미가 있다. 삼국시대의 마애불도 이런 암각화를 보고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Q : 왜 ‘반구대 암각화’인가.

A : “7000년 전 선사시대 때 절벽에 새긴 그림이다. 신석기 시대의 그림이다. 그걸 봤는데 ‘아!’하는 순수미가 있더라. 요즘 문화는 세련되고 편리하다. 그런데 조작미라 백 배, 천 배 꾸미고 부풀릴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그것과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정신도 순수하고, 그림 그리는 장비도 순수하고, 모든 생활이 순수하다. 암각화는 인류 문화사에서도 최고 원조에 해당한다. 예술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건 원조다.”

성파 스님은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예로 들었다. “장 화백의 그림은 서툴다. 대단히 화려하거나, 대단히 세련된 작품이 아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순수미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도 그렇다. 궁극의 순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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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를 나전 기법과 옻칠로 되살린 작품에는 7000년 전에 그린 동물들이 선명하게 살아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자리와 궁극의 순수미는 통한다. 그러니 반구대 암각화를 우주 허공에 띄우며 성파 스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우리 내면에 깃들어 있는 순수의 결정체가 아닐까. 그림을 통해 우리의 어깨를 ‘톡! 톡!’치며 “인제 그만 깨어나라”고 속삭이고 있는 건 아닐까.


Q : 반구대 암각화에는 무엇이 그려져 있나.

A : “사람도 있고, 호랑이도 있고, 거북이도 있다. 특히 고래가 많다. 그 당시에 이미 고래잡이를 했다는 기록이다. 고래를 잡는 그물도 그려져 있고, 고래를 가두는 목책도 그려져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포경 유적이다.”

성파 스님 작품에는 고래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바닥도 모를 우주 공간을 색색의 고래가 헤엄친다. 원시의 순수가 7000년 만에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손으로 고래를 만졌더니 반질반질하면서도 딱딱하다. 알고 보니 전복 껍데기를 쪼개서 붙이는 나전 기법으로 표현했다. 그 위에 천연 색 염료를 녹인 옻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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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천정리 각석을 나전 기법으로 되살린 작품이다. 선사 시대의 그림 외에도 화랑의 이름 등 삼국시대에 가미된 그림과 글들이 새겨져 있다. 서운암 장경각 앞에서 반구대 암각화와 함께 물속에서 상설 전시된다.


Q : 왜 전복 껍데기를 이용한 나전 기법을 썼나.

A : “고려 시대의 나전칠기는 우리나라가 으뜸이다. 중국과 일본보다 뛰어나다. 그래서 나전으로 자개를 붙여서 그림으로 표현했다. 나전은 광산에서 캐는 보석이 아니라 물에서 캐는 보석이다. 물은 무르지만, 이건 굉장히 야물다. 어변성룡(魚變成龍)이라고 하지 않나. 물고기가 변해서 용이 된다. 나전은 물이 변해서 옥이 된 거다. 그러니 대단한 거지.”


Q : 작품의 배경은 왜 우주인가.

A : “불교에서는 법계(法界)라고도 하고, 우주라고도 한다. 이 우주에 삼라만상이 다 있지 않나. 요약하면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거다. 반구대 암각화, 그 한장에 시ㆍ공간을 다 넣고자 했다. 그래서 우주 허공에 암각화 문양을 띄운 거다.”

통도사 서운암 장경각 앞에는 조그만 풀장이 둘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풀장이 아니었다. 작품 전시 공간이었다. 풀장처럼 생긴 액자인 셈이다. 거기에 물을 가득 담고, 반구대 암각화 작품을 물속에 눕혀서 전시한다. 바로 옆에는 반구대 암각화 근처에 있는 울산 천정리 각석(3.3m×9.7m, 국보 제147호)을 나전으로 되살린 작품이 전시된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회화의 수중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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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은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나전은 무른 물에서 나온 여문 옥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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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서운암 장경각 앞에는 풀장이 둘 있다. 사실은 반구대 암각화와 천정리 각석 작품을 전시할 수중 액자다. 물을 가득 채운 뒤 두 작품을 눕혀서 전시한다. 24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Q : 왜 물속에서 전시하나.

A : “모든 것이 물에서 났다. 생명체도 처음에는 물에서 나왔다. 물이 아니면 생명이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댐을 막아 수위가 높아지자 물에 잠긴다, 안 잠긴다 논란이 많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마. 통째로 물에 담겨 있는 걸 함 봐라, 이거다. 하하”


Q : 물속에 넣으면 작품이 손상되지 않나.

A : “서양에는 옻칠이 없다. 동양에만 있다. 옛날에는 집안에 옻칠한 장롱 하나만 있어도 부자라고 했다. 옻칠은 천년이 흘러도 안 변한다. 물 속에 넣어도 변하지 않는다. 회화의 수중 전시는 이게 최초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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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이 맨발로 반구대 암각화 작품 위에 올라가 작업을 하고 있다. 우주에 띄워진 그림의 색상이 선명하다.


Q : 그래도 뜻밖이다. 통도사 방장 스님이 손수 작품을 만드신다. 그것도 차원이 다르다. 누가 반구대 암각화를 우주에 띄울 생각을 하겠나. 세간의 통념을 훌쩍 뛰어넘는다.

A : “아, 이게 이상하다고 하면 방장을 사람들이 잘못 뽑은 거지. 나는 방장 되기 전에도 내 멋대로 했고, 방장 되고 난 뒤에도 내 멋대로 가는 거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계속 내 멋대로 가는 거라.”

성파 스님이 늘 강조하는 슬로건이 하나 있다.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다. “‘일하며’가 먼저 온다. 일을 해야 공부를 할 수 있지, 일 안 하면 공부를 할 수 있나. 그래서 공부하며 또 일하는 거다. 그게 내 좌표다.” 그래서 성파 스님의 불교는 생산 불교다. 신자들에게 기대는 불교가 아니라, 신자들이 찾아오게 하는 불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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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은 원래 색깔이 없다. 여기에 천연 염료를 녹여 넣어 옻칠을 한다. 옻칠한 삼베 위에 그려진 나전의 색색이 무척 아름답다. 성파 스님의 작품은 한반도에 깃들어 있는 고대사의 생생한 기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깊다.

부산과 울산 등 전국에서 이미 유명해진 서운암의 들꽃축제와 시문학회, 전통방식으로 직접 담은 된장과 고추장 장독들, 옻칠로 되살린 우리나라 불화만 총 32종, 152점에 달한다. 이 모두가 성파 스님의 작품이다. 팔만대장경을 모두 650톤의 도자기로 구운 도자대장경, 천연염색, 옻칠 민화 등 끝도 없이 피어나는 생산 불교다.

성파 스님은 “진리의 이론만 알고 사물에 어두우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은 격물치지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다. 성파 스님은 “그 반대도 곤란하다. 사물에만 밝고 진리에 어두워도 안 된다”고 했다. 그럼 뿌리 없는 나무가 되고 만다. “둘이 달라 보이지만 서로 통한다. 진리도 굴리고 사물도 굴릴 때, 선사라도 대선사가 된다.”

마지막으로 성파 스님은 “새가 숲에 있을 때는 극락세계인 줄 모른다. 새장에 갇히면 ‘저 숲이 극락이구나’ 깨닫는다. 그러니 극락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이 극락세계다. 그걸 고통의 바다라고 착각하지 마라. 여기가 극락임을 알면 날마다 좋은 날이 펼쳐지고, 날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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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이 우주 허공에 띄운 반구대 암각화. 고래와 거북, 그리고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 가운데에 고래 잡는 그물과 목책이 보인다.

서운암 밖으로 나왔다. 세상이 푸르다. 성파 스님은 지금 여기가 극락이라 했다. 그러니 우주 허공이 따로 있을까. 70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우리 모두가 우주 허공을 헤엄치는 고래다. 이 극락의 주인공이다.

양산=글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 송봉근 기자

posted by 有然(유연)
2021. 12. 13. 15:00 오늘의 정보/오늘의 여행


조계종 새 종정에 성파 스님 추대
입력2021.12.13. 오후 2:55


조계종 15대 종정으로 추대된 성파 스님이 지난 5월 통도사 서운암 앞 공터를 가득 채운 장독대 사이에 선 모습. 성파 스님은 1980년대부터 버려진 장독을 수집해 간장 된장을 담갔다. /김동환 기자

대한불교조계종의 최고 어른인 제15대 종정(宗正)에 통도사 방장 성파(性坡·81) 스님이 추대됐다. 조계종은 13일 오후 서울 조계사 경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종정 추대회의를 갖고 성파 스님을 종정으로 추대했다. 종정은 ‘조계종의 신성을 상징하고 종통을 승계하는 최고 권위와 지위를 가지는’ 자리다. 새 종정의 임기는 내년 3월부터 5년이며, 한 차례 연임할 수 있다.

성파 스님은 1960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80년대 조계종 총무원 사회·교무부장과 통도사 주지를 지냈다.

통도사 내 암자인 서운암(瑞雲庵)에 머물며 이곳을 중심으로 된장·간장을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보급했으며 옻칠, 도자기, 한지(韓紙) 등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를 보존·발전시켜왔다.

8만 대장경을 도자기판으로 굽기도 했으며 100짜리 한지를 제작하기도 했다. 본인의 작품전도 여러 차례 열었다.

성파 스님은 수행하는 스님이 예술 분야까지 영역을 넓힌 데 대해 “과거 전통 사찰은 건축, 미술, 공예의 산실이었다”며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를 사찰이 앞장서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부터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불보(佛寶)사찰’로 불리는 영축총림 통도사의 가장 큰 어른인 방장을 맡아오다 이날 종정에 추대됐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hansu@chosun.com

https://isness.tistory.com/m/208

'무엇을 근거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것인가?' 한국참선지도자협회 세미나 / 불교수행법 현황 -

三光(삼광) - 精光(정광), 氣光(기광), 神光(신광) - 이 뜬다. 이것이 後光(후광) 또는 光背(광배)이다 신성한 빛과 에너지의 모든 것(오라와 후광 비율) https://m.cafe.naver.com/divinesoulenergy/3169 죽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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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13. 14:54 오늘의 정보/오늘의 여행


조계종, 내일 종단 최고 지도자 ‘종정’ 선출 절차 착수
입력2021.12.12. 오후 2:05 수정2021.12.12. 오후 2:08
정연욱 기자


대한불교조계종이 내일(13일)부터 종단 최고 지도자인 종정(宗正) 선출에 들어갑니다.

불교계에 따르면 조계종 현 종정인 진제스님의 임기가 내년 3월 만료됨에 따라, 내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통해 10년 만에 새 종정 추대 절차가 시작됩니다.

종정추대 회의에는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전원과 중앙종회 의장, 조계종 총무원장과 호계원장 등 20여명이 참여하며, 새 종정 추대는 재적 과반의 찬성으로 결정됩니다.

새 종정 후보로는 공주 학림사 오등선원 조실 대원스님,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스님,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조계종은 제15대 종정이 추대되면 조계사 대웅전에서 고불식을 열고, 새로운 종정의 선출을 알릴 예정입니다.

종정은 종단 행정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종헌·종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포상과 징계의 사면 및 경감, 복권 권한을 행사하며, 원로회의 제청을 받아 종단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를 해산할 수 있습니다.

종정은 승려 나이인 승납이 45년 이상, 세속 나이로 70세 이상, 수행 계급을 뜻하는 법계가 대종사 이상이어야 하고, 임기는 5년이며 중임이 한 차례 가능하다.

2011년 제13대 종정으로 추대된 진제스님은 2016년 제14대 종정으로 재추대 됐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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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근거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할 것인가?' 한국참선지도자협회 세미나 / 불교수행법 현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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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대 종정 추대..성파 스님은 누구인가?

조계종, 10년만에 제15대 종정 추대..성파 스님은 누구? 이수지 입력 2021. 12. 13. 15:54수정 2021. 12. 13. 16:06 만장일치로 추대...임기는 5년 1960년 출가 통도사 주지·방장 역임 28년간 도자삼천불·16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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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13. 08:04 오늘의 정보/오늘의 음악

https://youtu.be/kY-UxWwaC4g



Don't Cry
노래
더 크로스(The Cross)

그대의 눈물이 마를 때 까지
우리의 사랑을 볼 수 없을테니
울지말아요 이제야 나는 알겠으니
날 사랑하던 그대는 이미 없다는 걸

So you don’t cry for me
세월 지나도 난 변하지 않아
And then I cry for you
이 밤 지나면 이젠 안녕
영원히

그대의 아픔도 눈물도 슬픈 상처도
내가 갖겠다던 약속들 잊지 않았기에
울지말아요 이토록 사랑하기에
이젠 안녕 천천히 그리고 영원히

So you don’t cry for me
세월 지나도 난 변하지 않아
And then I cry for you
이 밤 지나면 이젠 안녕
영원히

So you don’t cry for me

So you don’t
So you don’t
So you never dream my heart
And then I cry for you
이 밤 지나면 이젠 안녕

영원히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영원히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언제나 영원히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언제나 영원히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사랑해
언제나 영원히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So you don’t cry for me


더 크로스(The Cross)

대한민국의 남성 2인조 그룹.

1999년 김혁건과 이시하가 MBC 아카데미 음악학과에서 만나 결성하였다.

1기 멤버는 이시하와 김혁건, 2기 멤버는 이시하와 김경현이었으며, 현재는 다시 이시하와 김혁건이 재결합했고 현재 김경현은 솔로 활동을 하고 있다.

2. 활동[편집]
2001년 Mnet 뮤직 페스티벌 록 부문 대상을 받았고, 2003년 정규 1집 'Melody Quus'를 발매하면서 데뷔하였다. 1집 시절에 너무 고음으로 어필한 나머지 일명 고음병 가수로 치부되는 점이 없지 않아 있는데, 2020년 슈가맨에 출연하여 김혁건과 이시하는 실제로 고음병 환자 둘이 모인 그룹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파고 보면 대단한 뮤지션 지향적 그룹이다. 록과 클래식, 국악 등등을 퓨전 시킨 특이한 음악성이 매우 일품. 그리고 파워풀하면서도 감미로운 목소리 또한 상당한 들을거리, 하지만 이렇게나 훌륭했던 명반임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P2P사이트의 범람으로 무료다운로드 때문에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세션 연주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보컬녹음을 2년 동안 할 정도로 많은 투자를 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1]

이후 메인보컬이었던 김혁건이 소속사와의 음악적 마찰로 인해 계약해제를 하면서, 당시 '인터넷 노래짱'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던 김경현[2]이 영입되어 새로운 멤버가 구성이 됐다. 이후 김경현 탈퇴후 소속사 측에서 김혁건과 재계약을 시도했으나 불발되었다.

하지만 두 보컬의 성향이 너무나도 다른 탓에, 김경현은 기존 팬들에게 싸늘한 대우를 받았으며 시작이 썩 좋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7년 '사랑하니까'가 상업적으로 히트를 치면서[3] 많은 사랑을 받았다.[4]

그 이후 그럴싸한 히트곡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사랑하니까'로 대중적 주가가 높아진 상태여서 3집 후속으로 나온 '하루만 한 번만'이 그 뒤를 이을 법도 했지만, 2008년 당시 가수를 막론하여 대대적으로 음원 유출이 발생하고 만다. 애초에 '사랑하니까' 같은 히트가 나올지도 미지수였는데, 음원 유출이라는 대형사고가 터지면서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도 하루이틀 가량 음원 차트의 순위권에 들면서 더 크로스의 저력은 확실히 보여주긴 했다.

이후, 멤버 이시하의 비밀 결혼으로 다수의 팬들은 실망을 느끼고 떠났다.[5]
그 후 2010년 김경현의 군입대로 인해 2013년까지 활동을 중단, 이후 국방홍보원에서 연예병사로 활동하였다고. 전 멤버였던 김혁건은 그 해 특전사 제대를 해서 종종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후술하겠지만 김혁건은 생사를 오고가는 위기가 닥쳐오게 된다.

우선 2012년 5월달 즈음에 1기 멤버였던 김혁건을 보컬로 내세워 복귀할 예정이었으나, 김혁건의 교통사고로 인해 복귀가 무기한 연기되었다.
심지어 교통사고로 목 아래를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상태라는 이야기가 퍼져있으나, 관련 기사가 단 하나도 없어서 정말인지 아닌지 확인조차 불가능한 상황. 그러나 기사로 그가 실제로 전신마비라는 것과 그래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열망이 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2014년 10월 18일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서 자신의 근황과 교통사고가 일어난 시기와 이유, 그 이후의 삶을 조명했다.

연예계 대선배급인 이덕화부터 최민수, 강원래, 이언, 먼데이 키즈 김민수 등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과 사망 소식이 많은 가운데, 김혁건의 사건도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예측 출발을 하는 승용차와 정면 충돌, 그 사건으로 목뼈가 부러지며 경추 손상을 당해 목 아래 어깨 밑으로는 감각이 없는 전신마비로 인해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사고 당시 본인도 예감한 듯 '이제 죽겠구나'라고 생각했으며 '부모님이 오실 때까지만 버티자'라고 생각하고 복식호흡으로 버티다,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를 듣자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병원측에서는 이 정도 부상에 살아난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 준비를 하라는 얘기를 가족에게 알릴 정도였으니, 당시 얼마나 큰 사고였는지를 알게 한다. 사고 후 그룹 동료이자 친구인 이시하에게 사고 소식을 알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시하는 2개월 후 알음알음 소식을 듣고 찾아와, 김혁건에게 재활과 다시 노래를 하자는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김혁건은 이 날 방송된 분량에서 사고 후 힘든 모습이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노래를 부르기 위해 출연했다. 10년이란 세월이 그리도 큰 세월인지 예전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 전의 모습을 유추해 낼 수 있는 모습의 이시하와 김혁건의 더 크로스 완전체로 시청자들에게 인사를 드렸으며, 더 크로스 1집 앨범 중 타이틀곡이자 히트곡인 'Don't Cry' 를 열창했다. 두 번째 곡으로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불렀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를 때에는 2절 부근에 바리톤 김동규가 나와 멋진 하모니를 연출했다.
세 번째 곡으로는 유명한 명곡 'You raise me up'을 불러 주어 감동을 선사했다.

방송에는 김혁건의 부모님도 함께 출연하는데, 아버지 김광운 씨가 김혁건을 위해 기계를 만들어 준 이유와 그간의 심정을 전해 주었다. 노래를 부를 때 전신마비로 인해 배에 힘을 줘 횡격막을 올라가게 할 수 없기에, 아버지 김광운 씨가 손수 만든 기계로 이시하가 눌러주며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노래를 부를 때 들숨, 날숨 등을 정확히 캐치해서 이시하가 기계로 배를 눌러주는 모습은, 둘의 모습이 일심동체로 느낄 정도로 경이롭다.[6] 안타까운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었지만, 열정을 갖고 사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되며, 진정한 친구는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더 크로스의 앞뒤 상황을 잘 알지 못한 채 이시하가 마케팅을 하고 있다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지만 이것은 명백히 오류. 둘은 이미 군입대 전부터 재결성 이야기를 주고 받은 뒤 전역 후 재결합한 상태였고, 이미 컴백 날짜까지 잡아놓았으며 김혁건의 사고는 그 후의 이야기이다.

posted by 有然(유연)
2021. 12. 12. 20:32 오늘의 정보/오늘의 영화



CF 스타

데뷔 이래부터 지금까지 CF퀸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연예인 광고 모델료 기록은 20년 동안 전지현이 경신해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넘사벽 출연 편수를 가지고 있으며 2021년 현재도 당대 가장 핫한 연예인들과 동일하게 CF를 찍고 있다. 양 뿐만 아니라 광고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단편영화 같은 CF들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후문이다. 재발탁된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100개가 넘는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출연했다.

전지현은 특이하다. 공효진보다 예쁘고, 이나영보다 철없고, 수애보다 사악하고, 송혜교보다 건강해 보이며, 김태희보다 표현력이 풍부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지현의 특별함을 설명할 수 없다. (중략) “사랑만 갖고 사랑이 되니?”라는 읊조림(‘2% 부족할 때’), “상처주지 마” 라는 절규(‘엘라스틴’), ‘마이 디지털 스토리’의 그렁그렁한 눈물(‘올림푸스’) 등은 ‘전지현 사용 매뉴얼’이 있다면 맨 앞에 자리해야 마땅한 그녀만의 고유 기능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감정적 콘텐츠가 있는 얼굴? 재능으로 승화된 외모? 그녀에겐 가장 효율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감정의 깊이를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 보그코리아 2013년 2월호


더 대단한 것은 전지현은 단순히 광고를 많이 찍은 연예인을 넘어서서 CF조차도 본인의 브랜드로 소화하여 대중들의 기억속에 각인시킨다는 것이다. 정말 어떤 브랜드와 컨셉을 갖다줘도 소화를 잘해내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사실 광고계에서는 톱스타들을 기용하여 촬영을 하더라도 잠깐 주목 받으면 다행이며 그 이후에도 계속 관심갖게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데, 전지현은 대중이 광고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과 더불어 오히려 무슨 광고를 어떻게 찍었는지 찾아보게 만들 정도의 파급력을 가진 독보적인 CF스타라고 볼 수 있다.

posted by 有然(유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