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는 법
송담 스님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십시오.
내 마음에 맞는 순경계가 머지않아서 뒤집혀져 가지고 역경계로 변하는 것입니다.
어떤 역경계를 만나서 있다 하더라도 그 고비를 잘 참고 견디면서 노력을 하다보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서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경계 순경계에 놀아나지 말고 어떤 경계를 닥치든지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닌 것을 깊이 인식하고 항상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이뭣고, 역경계 순경계에 끄달려서 울다 웃다 하는 사람은 항상 경계에 속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경계는 다 환으로 우리 중생의 환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생은 곳곳마다 일어나는 그 환의 업에 끄달려 가는 거고 성문 연각은 그 환의 경계가 무서워서 어째던지 그 놈을 없앨려고 그러면서 그 본심을 미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생각만 없앨려고 번뇌망상만 끊을려고 노력을 해가지고 그 관법을 닦아가지고 멸진정에 들어가는 것이 궁극의 목적입니다.
그래야 태어나지 않고, 태어나지 않아야 죽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도 썩 훌륭한 법이 아닙니다.
보살은 그 환 경계라 하는 것을 꽤 뚫어 봐 버리기 때문에 그러한 희로애락, 성주괴공, 흥망성쇠, 그런 명사에 얽매이지를 않아.
그래가지고 어떠한 경계를 닥치든지 본래 남이 없는 무생의 진리에 딱 마음을 계합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뭣고입니다.
이뭣고를 자꾸 하다 보면 무슨 생각이 한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이뭣고 하면 그 생각이 두째번, 셋째번, 생각으로 번질 겨를이 없습니다.
그것이 번져가지고 결국은 생사윤회를 하는데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이뭣고 했을 때 바로 거기서 생사없는 무생경지로 들어가는 법입니다.
우리 중생의 모든 환은 몽한 경계인데 환은 왜 환이냐 하면 마치 어떤 사람이 꿈속에 몸뚱이에 아주 종기가 일어나가지고 차츰차츰 번져서 아주 망신창이가 됐습니다.
그래가지고 너무너무 비탄에 빠지고 고통에 빠졌다가 누가 “텅”하는 바람에 눈을 뚝 떠보니까 꿈이었습니다.
그렇게 온 전신이 쑤시고 애리고 가렵고 그러던 것이 눈을 딱 뜨자마자 몸뚱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그 구멍구멍 고름이 터져 나오던 곳이 간곳이 없더란 말입니다.
우리 중생의 모든 업이, 업으로 나타나는 모든 경계는 꿈속에 앓는 망신창병과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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