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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然(유연)
God-Realization 신-깨달음의 영적 여정....... 삶의 목적은 우주적인 자아와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한한 지복, 파워, 지식 (전지, 전능, 지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 아바타 메허 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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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의 신성화 Sacred Art

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에너지 그림 설명 : 1. 귀에서 귀로 금색의 강한 원형의 에너지 흐름이 드러났다. 2. 영적 중심선이 머리와 연결되어 있지 않다. 1번의 금색 에너지에서 시작해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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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의 의미있는 연결은 명백한 인과 관계가 없는 우연의 일치를 통해 나타난다는 그의 ‘동시성’ 이론은 그의 영적 중심을 통한 직관이다.

”동시성은 우리 의식의 일상적인 차원과 근원적인 차원, 즉 두 정신적 차원의 순간적인 연합이다.”

이와같은 칼 융의 동시성에 대한 정의는 그의 관점이 영적 차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그는 심리학자로 알려져있지만 기독교, 불교, 힌두교, 도교, 영지주의, 연금술, 점성학, 동서양 철학, 문학 등등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나타냈다. 라마크리슈나와 라마나 마하리쉬에 대한 비교 글도 썼던 그의 영적인 관심은 신성화에서 드러난 영적 중심의 발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에너지가 흐르는 곳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비주의적인 성향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결별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1958년 10월 어느 날 꿈에서 나는 렌즈 형태의 빛나는 두 금속성 원반을 보았다.
그것들은 내 집을 넘어 날아가 호수에 내려앉았다. 그것은 두 대의 UFO였다.
이윽고 또 다른 물체가 나를 향해 곧바로 날아왔다. 그것은 완전한 원형의 렌즈였다. 꼭 망원경의 렌즈 같았다. 사 오백 야드 앞에서 잠시 정지하더니 이내 날아가 버렸다. 그 직후 또 다른 물체가 공기를 가르며 재빨리 날아왔다. 그리고 그 렌즈 형태의 금속성 물질이 확장되더니 박스 모양이 되었다.
마치 환등(幻燈) 같았다.
그것은 나를 똑바로 향한 채 육 칠십 야드 떨어진 허공 중에 멈추어 섰다.
깜짝 놀란 나는 잠에서 깨었다.
비몽사몽간에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우리는 항상 UFO가 우리의 투영이라고 생각해왔어.
그런데 이제 보니 우리가 UFO의 투영이구나.
나는 환등에 의해 C. G. 융으로서 투영되고 있는 거야.
그러면 대체 그 환등을 조종하는 것은 누구지?”


일전에 나는 자기(self)와 자아(ego)의 문제에 대해 꿈을 꾼 적이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도보 여행을 하고 있었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구릉지대를 통과하고 있었다. 햇살이 빛나고 있어 주위가 한 눈에 다 들어왔다. 이윽고 나는 길옆의 작은 성당으로 다가갔다. 문이 빼꼼이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섰다. 놀랍게도 제단 위에는 성모 마리아의 상(像)도 십자가도 없었고 단지 아름다운 꽃 장식만 있었다. 그때 나는 제단 앞마루 위에 한 요기(요가 수행자)가 연화좌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뜯어보니 바로 내 얼굴이 아닌가.
겁이 덜컥 난 나는 잠에서 깨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하, 그래. 그는 나에 대해 명상하고 있는 존재로구나.
그는 꿈을 꾸고 있다. 바로 나에 대한 꿈을.”
나는 알았다.
그가 깨어나는 순간 나는 사라지게 되리라는 것을.

-C. G. 융 (스위스 심리학자. 그의 전기 “회상, 꿈, 그리고 사상 Memories, Dreams, Reflections” 중에서. 심리학 용어에서 자기Self는 의식과 무의식을 통튼 인간 존재의 핵을, 자아ego는 표면적인 의식을 말한다. 쉽게 말해, 전자는 고급자아, 후자는 저급자아라 할 수 있다. 꿈속의 요기는 융의 고급자아, 즉 ‘자기’를 상징한다.)


융이 주역에 집중한 이유 중에 하나는 64괘로 분류된 상징적 이미지 때문이다. 이미지 즉 상(象)은, 언어가 일의적(一義的)인 것과 달리, 마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처럼 관찰하는 주체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중요한 것은 현상을 관찰하는 주체가 동시에 그 현상의 공시적 체험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인과율의 경우에 주체는 현상 밖에 있으면서 관찰할 뿐이지만, 공시성의 입장에서 주체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이미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과 우주 사이에 존재하는 공시적 감응으로서 무의식에 잠재하는 일종의 직관지의 능력을 통해서 인지된다.

posted by 有然(유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