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有然(유연)
God-Realization 신-깨달음의 영적 여정....... 삶의 목적은 우주적인 자아와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한한 지복, 파워, 지식 (전지, 전능, 지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 아바타 메허 바바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

Category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2021. 11. 19. 10:25 오늘의 정보/오늘의 영어



fate, destiny, doom은 모두 "운명"이란 뜻이지만, 각기 다소 차이가 있다.

fate는 결말의 부조리성이나 비인간성을 강조하는 반면, destiny는 사태의 되어가는 과정을 바꿀 수 없음을 강조하며 이따금씩 좋은 뜻으로 쓰인다.
doom은 destiny나 fate가 가져오는 두렵고 불안한 종국(終局)을 말한다.


[영] 숙명(宿命), 숙명론. 자연현상이나 인간사에 있어서 인과율의 원칙에 따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태가 벌어지는 일을 숙명이라고 한다. 한 개별 사건이 다른 한 개별 사건의 필연적인 결과로 일어났음을 말할 때 결정론(determinism)이라 하는 반면, 숙명론은 필연적인 원인 결과의 모든 사건을 총체적으로 말할 때 쓰이는 말이다.

숙명(fate), 행운(fortune), 우연 기회(chance), 운명(destiny). 숙명은 행운과는 다르다.


행운은 의지적으로 행동하는 경우 외에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다(Thomas Aquinas, In 2 Phys., 10). 우연과도 다른데 우연은 법칙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cf. J. Sageret, Le Hasard et la destinée, 우연과 운명, 빠리, 1927). 그리고 우연은 자연에서부터 일어나는 일들이다. 숙명은 운명과도 구별된다. 운명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인간 개인의 의지가 개입된다.
숙명은 인간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래사가 독립적으로 전개된다. 운명은 인간이 어느 정도 계획한 결과이다. 이러한 뜻에서 “네 운명을 따라라. 그리고 네 운명을 개척해라. 그렇지만 숙명은 따르지 말라”라고 말할 수 있다.

영어 fate(숙명)라는 말은 라틴어 fatum의 번역이고 fatum은 fari(말하다)에서 나왔다. 성 Isidorus는 “그들은 신들이 말한 것을 숙명이라고 한다. Jupiter 신이 말한 것은 무엇이든지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신들이 말한 것을 fatum(말이 떨어진 것), 즉 숙명이라고 했다”라고 어원을 밝혔다. 라틴어 fatum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ei`marme,nh(에이마르메네)란 말의 번역으로 이 말은 Cicero에 따르면 질서 정연한 일련의 원인들의 묶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숙명은 그들에게는 영원한 진리이다.

Fatalism(숙명론). 고대 그리스에서는 다른 신들은 물론 Zeus 신까지도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리켰다. 이것을 신화적 숙명론(mythologicalfatalism)이라고 하는데, 신들도 숙명 앞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Claudius Ptolemaeus(2세기)는 신화적 숙명론을 점성학적으로 연결시켜 숙명론을 설명했다. 이것을 점성학(占星學)적 숙명론(astrological fatalism)이라고 한다. 사람이 날 때부터 별의 위치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Seneca는 말하기를 “사람은 숙명대로 사는 것으로 우리의 출생 시(時)는 이미 얼마나 살지를 결정한다”고 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을 다음과 같이 익살적으로 표현했다. “그래, 당신이 비너스 별을 타고나서 색한이 되었단 말인가. 또 마르스 별을 타고나서 살인자가 되었단 말인가”라고(In Psalm., 140; PL 37: 1821). 만일 인간의 생활이 천지간의 우주 현상과 밀접히 연결되었다면 인생의 노력과 윤리적 덕목은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철학적 숙명론(Philosophical Fatalism).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자들은 대부분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를 필연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이 세상을 지배하며 불가피하게 인생을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서 없어졌다가 Stoa학파가 강력한 숙명론을 주장했다.


특히 Zeno와 Chrysippus는 숙명론의 주창자(主唱者)라고 할 수 있다. Zeno는 숙명을 “일을 한결같고 지속으로 밀고 나가는 힘”이라고 정의했다. Chrysippus는 숙명을 우주의 이치이며 기력이라고 하며, 이 힘에 따라 “일어날 것이 일어났고 일어날 것이 일어나고 있으며 일어날 것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했다.

이렇게 세상일은 영원히 얼키설키 돌고 돌며 끝없이 돌아간다고 했다. 스토아학파는 정신과 물질의 실체적 구별을 하지 않고 모든 사건을 돌고 도는 순환의 리듬으로 설명한다. 모든 일은 일원론(一元論)적이다. 지혜는 단지 숙명의 사랑일 뿐이다. 그러니 선량한 사람의 의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을 숙명에 내맡기는 것뿐이다. 대자연에 휩쓸리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다. 살고 죽는 것이 다 자연의 질서이다. 그러니 무엇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무행위(無行爲)의 이치(inactive reason, ignava ratio)의 승리이다. 그러니 행복해지려면 무감 포기(無感抛棄, apathetic resignation)를 배워라.
신학적 숙명론(Theological fatalism).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인간의 종교 윤리 생활과 무관하게 예정론(predestination)을 주장하는 것은 종교적 숙명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리스인들의 자연적 우주 질서의 필연성 대신 하느님의 의지를 대입한다. 선택된 자는 자기의 자유와는 관계없이 은총의 힘으로 불가항력적으로 선을 행할 수밖에 없다. 반면 악인은 은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악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non potest nonpeccare).

이 사상은 이슬람 세계에서 보편화되어 그리스도교 세계에는 교부 시대와 중세기를 거쳐 Calvin에게서 본격화되었고(Instit., 3, 25: non enim pariconditione creantur omnes, sed aliis vitaaeterna, aliis damnatio aeternapraeordinantur-모든 사람은 같은 처지로 창조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영원한 멸망으로 선정되었다), Bajus를 통해 Jansenism으로 전달되었다(반얀세니즘 대칙서 Unigenitus, 독생 성자, 32: JesusChristus se morti tradidit ad liberandum prosemper suo sanguine primogenitos, id est, electos, de manu angeli exterminatoris-예수 그리스도는 당신 피로 영원으로부터 長子가 되도록 마련된 자들, 즉 선택된 자들을 괴멸의 천사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몸 바쳐 죽으셨다).

정적주의(靜寂主義, Quietism)와 기회원인론(Occasionalism)도 신학적 숙명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적주의는 스토아학파의 무행동 포기주의를 그리스도교 테두리에 끌어들여 재생시켰고, 기회원인론은 Descartes의 기계론(Mechanism)을 프로테스탄트 예정론으로 채색했다(cf. Geulincx, Ethica: Sum igitur nudusspectator hujus machinae. Ita est, ergo itasit-나는 벌거벗고 서서 이 기계를 바라다볼 뿐이다. 자, 일이 이러하니 이렇게 되어라). Karl Barth신학도 신학적 기회원인론의 현대적 형태의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cf. J. Hamer의 저서: K. Barth, 빠리, 1949). 하느님의 말씀(GottesWort)은 전능하시고 자유로우며, 창조적이어서 인간의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것이다(고전적인 숙명론).

숙명론의 반대자들. Alexander de Aphrodisias: De fato(숙명에 대해), Plotinus: Enneades(九編書, 2, 3; 3, 1), Ammonius: De fato(숙명론), Proclus: De providentia et fato et eo quod innobis(섭리와 숙명,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것에 대해) 등은 영혼의 기능적 가치를 수호하면서 숙명론을 반대했다. Origenes, Minucius Felix, Tertullianus, Gregorius de Nyssa, JoannesChrysostomos 등 그리스계 교부들도 같은 입장을 표명하면서 인간의 가치를 수호하는 동시에 인간의 가치를 드높여 주시는 위격적(位格的, personal) 하느님 개념을 수호하기 위해 숙명론을 반대했다.

posted by 有然(유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