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 78대 조사 청봉청운 선사의 깨달음과 에너지장
https://cafe.naver.com/divinesoulenergy/463
*사경하여 태운다는것은 왜그런지요?
사경(寫經)이라는 것은 경을 직접 손으로 쓰는 것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옛적에는 경이라는 것은 귀한것으로 한권의 경을 만들려면 필사본으로 직접 쓴것이라 경이 오늘날 처럼 이렇게 복사 인쇄되어 흔치를 못했소이다.
따라서 사경을 하게되면 한권의 경이 출간되는 것과같아 귀한 불사가 되는 것이였소이다.
그러므로 한자의 오차가 있어서는 그 경이 왜곡될것인즉 三拜 一字로 쓰도록 지도 하여 그 신심과 또렸한 정신으로 경을 베껴 한권의 귀중한 경이 나오게 되어 여러분들이 읽게 되는 법보시를 하게 되었으나 현대는 다량출간의 인쇄시대라 사경한 필사본은 크게 쓰임을 소실하게 되어 불살라서 부처님전에 바친다는 것으로 의식을 바꾼것이 되었다고 살피시면 옳을 것이올시다.
그러나 그 사경한 것이 비록 옛처럼 남겨져 경으로써 읽힘은 중시되지 않을 지라도, 부처님의 말씀인 경은 불자들로서 귀하고 귀한 것인즉 사경을 함에 반드시 정신을 차리고 정성을 다 하여 쓰시되, 그 말씀의 뜻을 살펴가며 쓰신다면 보다 큰 의미와 가피와 자력 승화의 은헤를 얻게 될것이올시다.
열심히 공부하시기를 당부하오이다.()
* 사구 백비가 무엇인지요?
만법의 실상이라 하는 것은 형상 있는 모습인 유상도 아니고 아예 없는 무상도 아닌,
논리적으로 유상 아님도 아니요 무상 아님도 아닌(四句非)
일체 차별적인 형상을 여읜 보편 평등한 일체법의 실체의 모습인 것이올시다.
따라서 일체의 있는 그대로의 실제 모습이므로 실다운 상(實相)이라고 하는 것이올시다.
그러므로 그것은 말로써 설명할 수 있음을 여읜 것이라는 것이올시다.
4구(一,異,有,無)를 여의고(떠나고) 나면 그에 따르는 백가지 아님(百非)은 저절로 단절되는 것이로소이다.
그 백가지 부정적 논리(일체논리의 부정)인 백비는 4구(네 가지)의 부정의 논리를 벗어난 것이 아닌 것이니, 사구 백 비를정리하면,
一(하나):비일(非一, 하나가 아니요)
역일역비일(亦一亦非一, 또한 하나라는 것도 또한 하나가 아니요)
비일비비일(非一非非一, 하나도 아니요 하나가 아닌 것도 아니요)
異(다름):비이(非異, 다른 것이 아니요)
역이역비이(亦異亦非異, 또한 다른 것이라는 것도 또한 다른 것이 아니요)
비이비비이(非異非非異, 다른 것도 아니요 다른 것 아닌 것도 아니요)
有(있음):비유(非有, 있음이 아니요)
역유역비유(亦有亦非有, 또한 있는 것이라는 것도 또한 있는 것이 아니요)
비유비비유(非有非非有, 있는 것도 아니요 있는 것 아닌 것도 아니요)
無(없음):비무(非無, 없는 것이 아니요)
역무역비무(亦無亦非無, 또한 없는 것이라는 것도 또한 없는 것이 아니요)
비무비비무(非無非非無, 없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 아닌 것도 아니요)
4×4=16×3세(과거,현재,미래)=48×2(已起,未起)=96+四句(일,이,유,무)=100非
(100가지로 부정해도 定한 것이 아님)
◎ 사구는 정립(定立), 반정립(反定立), 긍정종합(肯定綜合), 부정종합(否定綜合)으로써,
만유 제법을 판정할 때,
제1구의 유(有)는 정립, 제2구의 이(異)는 반정립,
제3구의 역유역무(亦有亦無)는 긍정종합, 제4구의 비유비이(非有非異)는 부정종합이며,
처음 2구를 양단(兩單), 뒤의 2구를 구시구비(俱是俱非) 또는 쌍조쌍비(雙照雙非)라 하는것이올시다.
百(모든) 非(부정)로 부정을 거듭할 지라도 참으로 사물의 진상을 알 수 없음으로
이것을 써서 중생들이 유무(有無)의 치우친 변견에 걸림을 없애게 하는 변증법(辯證法)의 한 형식인 것이올시다.
*四禪定
初禪(초선)
二禪(이선)
三禪(삼선)
四禪(사선) 으로 분류하는 것이올시다.
*四空定
空無邊處定(공무변처정)
識無邊處定(식무변처정)
無所有處定(무소유처정)
非想非非想處定(비상비비상처정) 로 분리하는 것이로소이다.
*사구게는 무엇인지요?
사구게(四句偈)는 네 글귀로서
네구절의 요약된 글귀를 4구게라 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설한 말씀의 요긴한 것을 함축하여 보인 것으로 살피시면 그르지 않을 것이올시다.
게송이라 하는 것은 이 4구게가 시나 노래같은 것이기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오.
* 사구와 활구란 무엇을 이른것입니까?
死句란 禪門에서 義味(옳은 뜻이 드러남이)가 있으며 意路(말의 이치가 정연하게)가 통하는 것을 이르는것이며,
意路가 통하지 않고 의미를 알수가 없는 格밖의 말을 활구라 하는 것이올시다.
따라서 死句는 차별교문에 속하며, 活句는 선문의 格外句(말 밖의 도리)에 해당된다 할 것이올시다.
사구는 의심 할 것이 없으니 지식으로 받아 들일 수가 있으므로 알음알이로 퍼담아 인식 할수 있는 것이라 죽은 말 이라하는 것이며,
활구(活句)는 깨닫지 못하고서는 알수 없으므로 參究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는 알지 못하는 격밖의 소식을 이르는 것이니 살아 있는 말이라 하는것이올시다.
따라서 공안을 破說하여 그 뜻을 밝혀주게 되면 아무리 格外句라 할지라도 그것은 死句가 되어버리게 되는 것이올시다.
*4난득에 대해 여쭈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人生難得),장부로 태어나기 어렵고(丈夫難得), 출가하기어려우며(出家難得), 불법을 만나기 어렵다(佛法難得) 하는 것이니
죽어 다시 태어나기를 사람몸 받아 태어나기(人生) 어렵다 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다는 것이요,
그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났을 지라도 큰마음을 가지고(丈夫) 태어나기가 어렵다 하는 것이니 남여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씀이 큰것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비록 남자로 태어 났을지라도 그 마음씀이 좁고 편협하다면 어찌 그를 대장부라 할 것이며, 비록 여자로 태어 났을지라도 그 그릇이 크면 여장부라 하지 않소이까?
사람으로 태어났으되 욕심을 줄여 세속사를 멀리하고 불도를 닦아 상구보리로 하화중생하기(出家)가 어렵다는 것이며,
거기에 불법(佛法)을 만나기가 어려운것은 사찰을 찾고 불경을 읽는다고 참으로 불법을 만났다 할 것이 아닌것이니,
正法을 만나 바르게 닦고 바르게 성취 할수있는 정법도인(선지식)인 명안종사를 만나
바른지도와 바른 점검을 받게 되기가 어렵다 하는 것이올시다.
불자님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며(人生),
넓은 마음과 불도를 구하고자하는 열성을 가지고 나셨으며(丈夫),
조촐하고 향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계시며(出家),
이제 정법(佛法)을 만났으니 모두 갖추셨다 할 것이올시다.
열심히 수행하셔서 큰 깨달음을 이루시기를 기원하리다.()
*4념처를 알려주십시요.
4념처란 1.신념처<身念處>(관신부정)= 부모로부터 받은 이 육신이 부정하다고 관하는 것
2.수념처<受念處>(관수시고)= 마음 가운데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음행 자녀 재물등은 참낙이 아니라 모두가 고통이라고 관하는 것
3.심념처<心念處>(관심무산)= 마음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 생멸하는 무상한 것이라고 관하는 것
4.법념처<法念處>(관법무아)= 위의 셋외의 만유에 대하여 스스로의 자아가 실체가 없으며 내가 갖고있는 모든 소유물들이 소유하는 나라는 것이 없다는 무아를 관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 사리란 무엇입니까?
사리는 수행의 결정체라고 하는 것이올시다.
그러나 육신을 태운후에 나오는 결정체라 하여 모두가 진사리는 아니올시다.
진사리는 명안종사가 손에 올려 놓고 관해보아야 가릴 수 있는 것이올시다.
석존이야 우리 불교의 교주이시고 本師로써 그분의 사리를 모시고 공양을 하는 것을 탓할 이유가 없으나,
경허문중의 전통적 관행은 사리를 찾지 않는 것으로 일관하여 왔소이다.
경허문중에서는 상을 배제하는 뜻으로 일체 사리를 찾지 않을뿐 아니라 귀히 여기지도 않는 것으로 일관하여 온 것이올시다.
보는 부처가 부처사리를 보는 것이 아니오이까?
따라서 사리가 어찌 견성의 기준이나 연관을 지어 말 할수 있겠소이까?
그러므로 사리가 있고 없고는 윤회와도 상관관계가 없는 것이올시다.
사리를 구하지 마시고 법을 구하시기를 당부하오이다.
우리 스승 혜암노사께서는 '내몸에서 나온 사리를 찾거나 탄 뼈 하나라도 주워서 그 위에 돌하나라도 언져 놓고 경배를 한다면 나와는 원수가 될것이다' 라고 철저히 상견을 경책하여 유언 하셨소이다.
공부 열심히 하시어 입으로 사리를 뱉아 놓으셔서 수많은 후학들의 눈을 뜨게 하신다면 참으로 진사리를 내어놓았다고 할 것이올시다.
*사바하란 무슨 뜻인지 일러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바하~" 라는 말은 앞서의 원한바 그대로 성취하게 하소서. 하는 뜻으로
진언이나 대주 말 끝에 이어 원하는바를 복창하는 것이오.
기독교에서 "아멘~'하는 말은 이 "사바하~"와 같은 뜻으로 보시면 그르지 않을 것이오.
* 4법계(四法界)란 무엇입니까?
①事法界인 차별현상계와 ②理法界인 평등한 本體(實相本性界)와
③理事無 法界인 현상계와 본성체계가 一體不二의 관계와 ④事事無 法界인 事와 事는 곧 현상차별계가 융통무애로 사물과 사물에 걸림이 없어 거리낄 것이 없는 종종무진이므로 사사무애법계라 하는 것이올시다.
*사사무애에 대하여 여쭙니다.()
사사무애(事事無碍)란 현상계 만유의 낱낱 사물이 서로 장애되지 않고
중중무진[重重無盡:서로 相關하여 제한이 없으나 또한 다함없이(無盡)하게 상관하고 있는 것으로 일체 만유가 뒤섞여 相卽融合하고 있는 것] 하게
서로 화하여 통(相融)하며, 낱낱 사물 가운데 우주의 중중무진한 연기법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이 도리를 분명히 체득하여야 참으로 사사무애의 진리를 터득 할 것이므로
여기서 설명으로 다 하여 아시게 하기에는 무리라 하겠소이다.
*四禪定에 대하여 일러주십시요.
初禪(초선)
二禪(이선)
三禪(삼선)
四禪(사선)
*사성제란 무엇인지요?
사성제(四聖諦)란 출가 이전의 부처님의 관심사는 인간 현실의 고(苦)즉, 생로병사에 대한 해결의 문제였었던 것이외다.
따라서 위없는 진리를 깨달으신 세존께서 그 깨달으신 바 진리(緣紀의 법)를 이와 같은 명제에 대입시켜 중생을 위해 쉽게 가르쳐 주시니 이것이 곧 사성제(네가지 진리)인 것이올시다.
콘다나등 5인의 수행자들에게 행한 부처님의 최초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도 말하는 이 4제의 가르침은 苦聖諦, 集聖諦, 滅聖諦, 道聖諦인 것이올시다.
이들을 모두 성제(聖諦)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성스러운 진리이기 때문이올시다.
①고성제(苦聖諦) : 중생이 현실의 모든것을 실다운것으로 보는 판단으로서 因하여 집착함으로 말미암아, 삶의 일체가 고(苦)로써 귀결되게 되는 것이올시다.
중생에게는 생로병사의 네 가지 고(생로병사)를 위시하여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통(愛別離苦), 미워하는 자와 만나는 고통(怨憎會苦), 구해서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인간을 구성(육신으로 더불어)하고 있는 다섯가지 요소 그 자체의 고통(五陰盛苦)등 여덟 가지 고(八苦)가 있는 것이라 할것이올시다.
인간 현실고의 대표적인 것으로서 이와 같이 네 가지, 여덟 가지의 고를 들고 있지만, 이는 인간의 유한성과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체험에 비추어 결국 인생전체는 고를 면할 수 없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인 것이올시다.
그리고, 이러한 고는 병듦과 늙음 등 그 자체로서의 조건이 괴로운 것이기도 하지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고의 의미는 단순한 괴로움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올시다.
그것은 말하자면 욕구충족을 하기위한 못다채운 그리고 다 채울 수 없는 아집으로인한『불안의 개념』과도 같은 경계라 할 수 있는 것이외다.
②집성제(集聖諦) : 인간 현실고의 원인규명으로서,인간에 있어서 고는 그 스스로의 지나친 욕망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올시다.
고를 발생시키는 것은 지나친 욕망의 상태, 즉 몹시 목마른 사람이 물을 구해마지 않는 듯한 탐착의 마음(渴愛, 煩惱)에서 오는 것이외다.
불교라 해서 욕망 그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이 그것의 지나침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올시다.
중생은 이러한 욕망들이 항상 지나쳐 갈애가 불길처럼 타오르는 번뇌의 상태가 됨으로써 그것에 속박되어 타율적이며 부자유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올시다.
따라서 갈애와 번뇌, 그것이 곧 苦의 원인이 되고 쌓임이 되는 것을 集이라고 하는 것이올시다.
③멸성제(滅聖諦) : 갈애, 번뇌, 탐착의 마음을 버림으로써 고를 여일 수 있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 법』또한 일체의 존재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는』상호의존관계, 상관관계인 인연에 있는 것이올시다.
인간 현실고의 상황을 이러한 연기법칙의 관점에서 바르게 살펴 보면 욕망이 있으므로 고가 있게 되는 것이 아니오이까?.
따라서 그 욕망을 떠나면 고도 또한 없어지게 되는 것이올시다.
그래서 연기법칙에 따라, 멸성제는 고를 벗어나기 위해 욕망과 집착의 의 포기를 더 나아가 여읠수 있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외다.
근본문제는 나라는 것이 있다는 소견(아견)으로 나를 위함이 경계에 끄달리고 경계에 집착하므로써 생기는 것이므로 무아의 도리를 증오하여야만 가능한 것이 올시다.
이렇게 볼 때 멸성제에서 요구되는 것은 무아의 실상을 깨달음으로써 가능한 것이니 이것이 곧 고집으로 부터 해방되는 멸진정의 도리인 것이니,
실천수행으로 실오(實悟)의 체달을 하여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멸성제인 것이올시다.
이러한 멸성은 體認으로 證悟하므로써 얻어지는 열반의 경계며 대자유의 경계인 것이올시다.
④도성제(道聖諦) : 지나친 욕망을 없애는 길, 적절하게 그것을 조절하여 열반에 이르는 방법(길) 도성제인 것이외다.
여기서는 인간이 열반에 이르기 위해 실천해 나가야 할 방법(수행)이 구체적으로 여덟 가지 덕목으로 제시되고 있는것이니 이것이 八正道라 하는 것이올시다.
여덟가지 바른 수행의 길인 팔정도로서 중생이 살며 닦아(수행)인 길인 것이외다.
바른길(正道)이란 한마디로 곧 중도(中道)를 말하는 것이올시다.
그런데 중도의 中이란 수학적인 가운데를 말하는 것이 아니외다.
그것은 『가운데 길』이 아니라 치우치지 않는 가운데 없는 가운데로 변견에 치우치지 않은 바른 깨달음의 길을 의미하는 것이올시다.
그러므로 정도(正道)라고 하는 것이외다.
중도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이며, 실천의 문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올시다.
사자후가 뭐죠?
사자후(獅子吼) 란 각인(覺人:부처님)의 설법을
백수(모든 동물)의 왕인 사자의 영각(영각:哮吼)인 울움소리에 비유한 말이올시다.()
* 4종무애(사무애, 이무애, 이사무애, 사사무애)란 무엇인지요?
事無碍 란, 일체 현상계의 사물의 본성이 空하고 필경공하므로 걸림이 없다는 도리이며.
理無碍 란, 일체의 본성 眞體性이 진공묘유하여 아무 걸림이 없음을 이르는 것이요,
理事無碍 란, 절대평등한 본성법체가 理가 되고 일체현상인 有爲가 事로써 理가 물이라면 事는 파도와 같아 이와 사가 여의지 않는 것으로 즉 공즉시색으로 걸림없이 원융한것을 이르며,
事事無碍 란, 현상계의 모든 모습과 일들이 서로 융합하여 방해하는 일이 없는것을 이르니 곧 그성품이 공한 도리인 것으로,따라서 일체사물이 서로 相卽하여 걸림이 없음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三玄 四無碍는 교문인 것이올시다.
화두 참선을 하는 데는 이러한 교학을 알아 대입시키면 계교가 되는 바이니
오직 화두만을 알려고 간절히 의심하시기를 당부하며
따라서 닦아 증득하시게 되면 곧 삼현 사무애는 원래 갖추어진바를 발현하시게 되어 쓰시게 되는 것임을 믿고 間斷없는 수행정진을 거듭 당부하오이다.()
* 사지라함은 어떤것인가요?
四智란 네가지 지혜를 이르는 것으로
1' 성소작지는 불과에 이르러 유루의 전5식(안, 이, 비, 설, 신, )을 굴려 얻는 지혜로 일체범부 소승류의 이익을 위해(화도) 갖가지 성취시키는 지혜인 것이며,
2' 묘관찰지는 제6식(심의식)을 굴려 얻는 지혜(제법의 상을 묘관찰해서 불가사의한 자재한 관찰)-묘한법을 설하여 여러가지 의심을 끊게 하는 지혜이요,
3' 평등성지는 제7식(말라야식-아견)을 굴려 얻는 무루지혜(무아의 상대심을 여의고 대자비심을 일으켜 보살심으로 두루 이익케 교화하는 지혜)이며,
4' 대원경지는 유루의 제8식(아뢰야식-함장식)을 굴려(변해:돌림 작용으로 쓰임) 얻은 무루지혜(티없는 거울같이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 처음 얻는 일체종지로 여래 만덕의 근본)인 것이올시다.
이러한 법리상의 설명은 유식에 드는 것으로 상식적인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씀이 아니올시다.
따라서 이러한 상식보다는 깨달아 들게 되면 위의 삼신 사지가 절로 발현하게 되시어 밝게 쓰시게 되는 것임을 믿고 열심히 닦아 나아 가시기를 기원하오이다.()
*사향 사과는 무엇입니까?
四向 四果라는 용어는 小乘들의 수행果位로 증득의 단계를 차별로써 나눈 차별교문인 것을 이르는 것이 올시다.
참고로 四向은 수다원향,사다함향,아나함향,아라한향으로 그 과위에 이르기전의 즉 그 과를 향하여 닦아 나아가는 과정이라 할 것이며
四果는 수다원果, 사다함果, 아나함果, 아라한道로써 그 과위에 이르른것(성취)을 이르는 말씀인것이올시다.
* 살림살이란 무엇을 말하는지요?
살림살이 살림을 삼는다는 것은
자기의 견처로 삼는 것을 살림 살이라 하는 것으로
사람 사람이 모두 스스로 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나 그 안다는 것(살림)이 모두가 바른 것은 아니니
남의 말을 익혀 스스로 정리하여 살림을 삼는 것은 그르친 것이며 쓸모없는 알음알이라 하는 것이올시다.
따라서 스스로 깨달아 얻은(證得)바의 바른 견처를 살림살이로 하여야 자기도 구하고 남도 구하는 것이올시다.
*살불살조(殺佛殺祖)가 무슨 뜻입니까?
이 살불살조(殺佛殺祖)하라는 본연의 참뜻은 꿈에도 모르는 이들이 이 용어를 아무곳에서나 써서 법의 본뜻을 흐리는 것을 보게 되는바 올시다.
'부처가 오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가 오면 조사를 죽이라'는 말의 뜻은
오직 일체의 상은 허환으로 믿고 오직 실다운 진여만을 증오하라는 경책인 것이올시다.
따라서 부처도 죽여버리고 조사도 죽여버리라 하는 뜻이 아니라
일체의 성품은 공적영지 한 것이라 실다운 상이 없는 것이니
부처니 조사니 하는 것까지도 상견인 것으로 알아 이 상을 쫒아 집착하는 분별심을 여의라 하는 도리인 것임을 아시기를 당부하리다.
*삼계란 무엇을 일컫는 것인지요?
삼계(三界)란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하는 것이올시다.
①욕계(欲界) : 색욕, 식욕, 재욕 등 탐욕이 많아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어리석은 중생이 사는 세계를 말하며,
②색계(色界) : 색은 물질이란 뜻으로 욕심은 적지만 성내는 마음이 있어 물질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세계를 말하나 욕계보다 비교적 맑은 세계이며,
③무색계(無色界) : 탐욕과 성냄은 떨어졌지만 아직 나(我)라는 생각을 못 버려 정신적으로 걸림이 있으나 보통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세계를 일컫는것이 올시다.
*삼덕에 관해 설해주십시요.
삼덕이란 대 열반에 갖추어져 있는 세가지 德으로
법신의 知德(반야)과, 斷德(일체가 끊어진 덕)인 해탈과, 思德을 말하는 것이올시다.
*삼매란 무엇입니까?
삼매(三昧)란 산란심을 한곳으로 모아 망념이 없는 부동심의 경계 를 이루는 것으로 3가지는 산란심,동요심,망념심을 끊고 맑고 밝게 된 마음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삼법무차 삼무차별 같고 다름을 설하여 주십시요.
삼법무차(三法無差)는 삼무차별(三無差別)이 라고도 하는 것으로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이 조금도 차별이 없는것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곧 부처요 중생의 마음의 실상이 곧 부처인 것이라는 뜻이로소이다.
*삼법인이란 무엇인가요?
삼법인(三法印)이란 세 가지 불변의 진리』라는 뜻으로,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말하는 것이올시다.
부처님께서 중생이 잘못된 견해에 빠지지 않도록 인간과 사물의 실상(實相: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 세 가지를 밝혀주셨기 때문에 마치 진리의 인장(印章)과 같다하여 법인이라고 하는것이올시다.
여기에 일체개공(一切皆空)을 합쳐 4법인이라 하기도 하오이다.
법인(法印)이란 우주법계의 근본 구성원리로 고정불변한 근본진리란 뜻이로소이다.
제행무상이란 이 세상의 모든것은 변하고 또 변하는 것이라 항상함이 없다네(諸行無常)
제법무아란 밀체만유 모든 것은 스스로의 성품이 없어 공한 것이라 나라고 할 것이 없다네(諸法無我)
열반적정이란 이 모든 것으로부터 집착을 여의게 되면 고요하여 이것이 해탈이라 하네(涅槃寂靜)』
일체개공이란 세상만유 모두가 그 실상은 형상이 없이 비어 공한 것이라네(一切皆空)』
*삼보 뜻을 알고 싶습니다.
삼보란 "세가지 보배"라는 뜻으로, 불(佛)·법(法)·승(僧)을 가리키는 것이올시다.
①불보(佛寶: Buddha) : 불보(붇다)는 부처님을 뜻하며, 부처님은 우주의 본체이시며, 진리의 인격체로서 다시없는 보배와 같으신 존재이므로 불 보라 일컫는것이며,
②법보(法寶: Dharma) : 법보(달마)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진리자체를 말하며 진리란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만들어진 것이거나 변질 또는 소멸되지 않는 영원불변이므로 그것을 귀중한 보배에 비유하여 법보라 하는것이며,
③승보(僧寶: Sangka) : 승보(샹카)는 불법을 수행하고 지키며, 중생들에게 널리 전파하는 욕심없는 화합승단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지혜롭고 위덕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의지처가 되며, 불법을 밝혀 세상을 빛내는 보석 같은 분들이기 때문에 승보라 하는 것이외다.
그러나 진여문에서는 자성 3보를 칭하는 것임을 아셔야 할것이니,
자성삼보란 자성불인 맑아 고요함과, 자성법인 바름과, 자성승인 조촐함인 것이올시다.
*삼세간이란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三世間이란 ①器世間으로 국토세간을 말하며 佛이 화도한(장엄한 청정)경계와 ②중생세간으로 여래가 교화한 機類와
③智正覺세간인 여래의 지혜를 갖추어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깨닫는 것이올시다.
*3승 12분교란 무엇인지요?
3승(三乘)은 성문(聲聞),연각(緣覺),보살(菩薩) 승(乘)을 이르는 것이며,
乘이란 중생심을 실어 열반에 이르게 하는 법문을 이르는 것으로
곧 성문 연각 보살의 교법인 것이며,
그 과를 이르기도 하는 것이올시다. 이 3승의
성문승은 4성제를 듣고 깨달아 열반에 이르는 것이며
연각승은 12인연 법문(法門)으로 깨달아 드는 것이며
보살승은 6바라밀법에 의하여 깨달아 들며 스스로 해탈하고 남을 해탈하게 하는 것이올시다.
12분교(十二分敎)는 12분경(分經) 또는 12부경(部敎)이라고도 하며,
석가세존의 일대 시교(示교)인 교설(敎說)을 경문(經文)의 성질이나 형식으로 12가지로 구분하여 나눈것으로,
1.수다라 2. 기아 3. 수기 4. 가타 5.우타나 6.타나 7.아파타나 8.이더뎌왈다가 9, 사타가 10, 비브략 11. 아브타달마 12 .바뎨사로 분류한 것이올시다.
* 삼신불에 대하여 여쭈옵니다
삼신(三身)은 법신 보신 화신을 이르는 것이니
법신불이란 본성불(本性佛)인 본각(本覺)을 이르는 것으로 이 법신을 진불(眞佛)이라 하는 것이며
보신불이란 비로소 깨쳐드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으로 시각(始覺)이라하며
화신불이란 깨달은 각인(覺人)을 이르며 응신불이라 하는 것이니
부처(佛;本覺)를 비로서 깨달은 각인을 존칭하여 우리말로 부처님이라 하며
이 각인의 10가지 명칭을 여래10호(如來十號)라 하는 것이올시다.
따라서 이 삼신불은 하나로부터 셋으로 갈리며 셋은 곧 둘아닌 하나인 것이니
眞佛은 오직 법신불인 것이올시다.()
*삼악도와 삼선도에 대해 설해주십시요.
삼악도(三惡道)와 삼선도(三善道)란 중생계의 계급을 구분하여 그 중의 미계(迷界)인 지옥,아귀,축생,수라,천상,인간의 6종으로 나누는데 지옥,아귀,축생계를 3악도라 하고 수라,천상,인간 아수라 계를 3선도(善道)라 하는 것이올시다.
이를 각계를 비추어 보면 지옥계는 嗔에서(성질 화내는 것)생하고, 아귀는 탐욕(貪心:탐내고, 욕심 많은 것)에서 생하며, 축생은 愚痴(어리석음)心에서 생하는 것이올시다.
3선도라 하나 이 또한 좀더 나은 곳에 태어나는 윤회일 뿐이외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갈고 닦아(기도, 정진하는 수행)모든 고통과 번뇌를 소멸하고 해탈, 열반해야만 하는것이 올시다.
*삼업이란 어떤 것입니까?
삼업(三業)이란 몸(身), 말(語), 생각(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위로,
①신업(身業) : 도적, 사음, 살생등 몸으로 짓는 업과,
②구업(口業) : 이간질, 거짓말, 발림말, 악한말 등 입으로 짓는 업이며,
③의업(意業) :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 뜻과 의지 등 정신적 작용으로 짓는 업이올시다.
* 삼중현이란 무엇인지요?
體中玄 이란, 실천가운데 나타난 진실을 가르키는 것이요,
句中玄 이란, 말이나 認識상에 나타나는 진실이며,
玄中玄 이란, 그것(그자체)으로써의 진실을 이르는 것이으로
玄이란 眞實하여 깊어 심오한 가르침의 뜻이오.
따라서 삼현이란 세가지의 깊은도리를 이르는 것이올시다.
*삼학이란 무엇인지요?
삼학(三學)이란 삼학은 불법을 닦아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하여야 할 세 가지 배움이 있소이다.
이것을 삼학(三學)이라 하며, 계학(戒學), 정학(定學), 혜학(慧學)을 배우게되는 것이 올시다.
①계학(戒學) : 계학은 마음의 청정을 지키고 몸을 단속하여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몸과 마음을 보호하는 계율(戒律)이며,
②정학(定學) : 정학은 마음의 산란함을 그치고 고요하고 편안하여 한결같은 본원 경지에 계합하는 것이며,
③혜학(慧學) : 혜학은 모든 번뇌를 없애고 진리를 꿰뚫어 보는 지혜(보리반야)를 말하는 것으로 수행으로 인하여 밝아지는 것이 올시다.
그러나 정혜쌍수로 수행을 하여 定과 慧를 증득하게 되면
계는 생각내지 않음으로써 지킬 것도 없는 것이 되어야 참다운 계정혜가 되는 것이올시다.
따라서 계를 삼학의 앞에 두는 것은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하는 계를 지킴으로써 정헤가 발현되게 되므로 기본바탕으로 하는 것이니
솥에 불을 열심히 때면서 솥안의 물이 고요해 지기를 바란다면 어불성설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 곧 이 계인 것이 올시다.
따라서 구경각을 성취하게 되면 계는 따라서 지킬 것도 없는 것이 되기 때문에 계를 논하지 않는 것이올시다.
*상락아정(常樂我淨)이란 ?
常은 항상하여 변천함이 없는 德이며, 樂은 생사의 고통을 여의어 무위의 안락한 德이며,
我는 망집의 거짓 이름인 自我를 버리고 자재한 眞我이며, 淨은 번뇌의 어지럽고 더러움을 여읜 잠연청정(潛然淸淨)한 德을 이르는 것으로 다시 말씀드리면
생사를 여읜 청정한 본성 그대로의 참자기를 성취하여 永遠不變 하는
편안하고 즐거움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想과 相, 그리고 心이 각각의 뜻은 무엇인지요?
마음(心)이라고 하는 것은 곧 근본이요,
想이라고 하는 것은 곧 그 마음으로부터 생각 일으킴이요,
相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있다고 하는 상대되는 것을 이르는 것이니
이 相見이 있음게됨은 아상(我相)으로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상견이 곧 형상을 집착하게 되므로써 전도몽상으로 因하여
욕구의 불만족으로 고뇌와 고통을 낳게 되며 이로써 일체에 집착심을 일으켜 괴로움을 낳게 되는 것이올시다.
이것으로 하여 탐심(貪心) 이 생기고 탐이 불만족하니 진심(嗔心)이 생기는 것이니
고집멸도(苦集滅道)가 있게 되며
이것은 곧 전도몽상(轉倒夢相)의 어리석음을 낳게 되니 이것을 치심(恥心)이라 하는 것이올시다.
* 相과 像의 차이와 연관성을 알고 싶습니다.
相은 서로라는 뜻이니 일체 모든것을 이르는 뜻에서 쓰이는 글자며
반드시 이 상인 있음은 하나를 세움이 곧 상대를 전제하는 것이기에
따라서 형상상(像)을 쓰지 않고 이 서로 상(相)자를 쓰는 뜻을 알아야 할 것이올시다.
像은 어떤 국한된 현상을 이를 때 쓰는 용어로 보시면 될것이외다.
* 상기병이란 무엇인지요?()
상기병(上氣病)이라는 것은 참학인이 머리로써 지나치게 화두를 계교 궁리하다 그 기가 머리로 쏠려 머리가 아푸고 때로는 열이나며 혼란스러워지는 것이 올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오는 것도 아니요, 또한 선객이라면 올수도 있는 것이올시다.
그것은 참선공부를 잘못지어 그렇게 된 것이외다.
상기병을 치료하려고도 고치려고도 하지 마시고 당분간 모두를 놓으시고 수식관을 정신일도해서 하시기를 당부하오이다.
그렇게 초발심으로 돌아가시어서 일체를 끊고 오직 수식관으로 정신을 집중하는 것으로
다시 시작하신뒤 다음 단계는 다시 일러드릴것이니 시키는 대로 해 보시기를 당부하오이다.
상기병은 스스로 만든 것이올시다.
병세의 증상인 것이니 너무 어렵게 생각을 마시기를 당부하오이다.()
* 상당이란 무엇인지요?
상당(上堂)이란 법을 설하기 위하여 법상에 오른다는 뜻이오.
上은 위로 오른다는 뜻이며 堂은 법당을 가리키는 것으로
중국말은 그림문자(상형)라서 그 뜻을 함축하여 쓰는 일이 많다 할 것이오.
*상대와 대대의 쓰임을 알려주십시요.
같은 뜻의 용어이나 쓰임의 차이가 있다고 보시면 그르지 않을 것이올시다.
상대는 곧 나와 그에 마주한 이로 보시면 옳을것이요,
代代는 무엇이든 있다고 하는 모두는 상대되는 것이 반드시 있는 것이니,
이를테면 어둠은 밝음을 상대하여 있음이요,
有는 無를 전제로 있음이요,
감은 옴을 전제한 것이니,
이렇게 모든것은 代代가 있음으로써 이니
그 쓰임을 가리시기 바라겠소이다.
*상조란 무엇입니까?
상조(相照)란 선문에서 이르는 서로 비춘다는 것으로 즉 일체가 원융무애하여 무이상(無二相)의 경계를 뜻하는 것이며
*상좌란 무슨 뜻인지요?
상좌(上佐) 라고 하는 명칭은
여러가지로 쓰는데 사찰내의 여러 스님들을 이끌며
사무를 총람하는 스님을 칭하기도 하며
'위 사람을 보좌한다' '어른을 보좌한다'는 뜻으로
스님들의 제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하는 것이므로
'아무개 스님의 상좌'라고 하면 '아무개 스님에게 출가한 제자'임을 뜻이 올시다.
또한 상자(上資)라고도 하며 법상자, 수계상좌 참회상좌 등으로 구별 하기도 하는 것이오.
*상즉이란 무엇인지요?
상즉(相卽)이란 곧 서로 함께 한다 하는 뜻이니 만유가 그 실상에 있어 융합일체인 것이라는 것이며
*상응이란 무엇입니까?
상응 (相應)이란 서로 응한다는 말뜻이니 서로통하며 맞아서 어울린다 하는 뜻이올시다.()
*상호란 무엇인지요?
상호(相好)란 용모와 형상으로 부처님은 32상 80종호를 갖췄다 하며, 상은 모습 호는 섬세한 부분인 것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色과 空을 설하여주십시요.
색과 공은 서로 본성이 같은 것이 올시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나 그 동전으로서는 둘이 아닌 것 같이 모습을
나투든(色:), 나투지 않든(空:) 결국 그 같다는 그것(본성:)은 본래 공하며
필경 공하기에 둘이 아니라 같은 것이라 하는 것이올시다.
평소에 육안으로 보는 세상 모든 나투어진 모습들(相)을 중생들은 그것(육신의나<我相> 와 일체만유<法相>)을 생주이멸하는 허환한 것으로 보지를 않고
항상(恒常)하는 것으로 착각을 하기 때문에 애착과 집착을 하게 되고 그 집착이 만족을 가져오지 못하니 화가나고
그 화나는 진심(嗔心)이 어리석은 행을 하게되어 치심(恥心: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킴)으로 인하여 업인(業因)을 쌓게 되는 것이올시다.
이 집착심이 번뇌망념을 일으켜 그 번뇌의 구름이 청정한 자성의 밝은 작용을 혼탁으로 가리게 되어 중생다워지는 것이올시다.
눈으로 보되 일체 있다고 하는 것들은 그 쓰임은 있으나 필경 공으로 돌아가는 허망한 것으로 살펴
집애하지 않는 다면 청정한 자성의 바른 봄이 될 것인즉
이것이 밝게 작용하는 것으로 4지(네가지 지혜)라 하는 것이올시다.()
*생명이란 무엇인지요?
생명(生命)이란 나고 죽는다는 것 즉 생멸하는 것이 있으며 더불어 식(識)을 갖춰서 무기물이 아닌것을 이르는 것이지오.
따라서 근본마음은 형상이 없으며 생멸이 없는 것이니 어찌 생명이라 할 수 있으리까?
비록 영원한 생명이라는 용어를 쓰는경우도 있으나
그 뜻은 생멸하는 것이 없는 영원히 존재하는 실상을 이르는 것으로
근본 마음인 법계와 자기의 본래 모습인 실상은 곧 자성이요 법성이라 하는 것인즉
영원 무변하며 생과 멸이 없는 불변의 것이라 생명이라 하지 않는 것이올시다.
* 禪에 여래선 조사선 의리선에 대한 말씀을 해 주십시요.
禪이란 근본과 그 실상(實像)을 이르며
또한 그 바른 이치인 도리(道理)인 진리(眞理)를 이르는 것이로소이다.
여래선(如來禪)이란 그 실상을 이르데 뜻과 이치를 담아 이르는 것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따라서 여래선이라 하면 말씀 가운데 뜻의 흔적이 있는것을 말하며,
조사선(祖師禪)이란 그 실상의 도리를 이르되 말가운데 뜻을 숨겨 이르므로
말에 자취가 없이 이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의리선(意理禪)이란 그 실상을 이르되 뜻인 이치로써 말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다만 여래선은 자취가 있으며 의리선은 뜻을 완연히 담아 이르는 것을 이르는 것이기에 사구(死句)라 하며
조사선은 그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활구(活句)라 하는 것이올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우열은 없으며
여래선을 깨친분이라면 조사선을 모를리가 없으며
의리선을 깨친분이 여래선 조사선을 모를 리가 없는것이나
세간에서 더러 우미한 이들이 아는 소견을 지어 우열을 두어 분별을 하고들 있어
이 산승이 보기에는 안타까운 바올시다.
여래선 가운데 조사선과 의리가 담겨 있으며
의리 가운데 여래, 조사선이 담긴 것이며
조사선 가운데 여래,의리가 모두 함축되어 있는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하리다.()
*선문 교문 하는데 선문과 교문의 차이점을 가르처 주시기를 바랍니다.
禪門(평등문)이란 실상의 평등의 이치를 말로써 일러 그 진리(理)를 깨달아들게 하는것(門)을 따라서
禪門이라 하는 것이며, 이렇게 가려서 일러주는 이것을 敎門(차별문)이라 하는 것이외다.
敎門(차별문)이란 것은 속제법으로 事라 하며 俗諦라 하는 것이올시다.
禪門이란 實相의 진리를 이르는 것이며 이것을 理라 하며 眞諦라 하는 것이외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禪門은 실상문인 진제(진체: 眞諦)이며 이것은 體인 定이요 理가 되는 것이며,
敎門은 일체만유의 차별을 들어 이르는 속제(俗諦)이며 이것은 用인 慧의 작용에 해당되는 事가 되는 것이올시다.
* 선문답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지요?
선문답(禪問答)이란 선지(禪旨)로써 선문(禪門)으로 일러 응대하는 법거량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이 선문답 거량은 구경을 깨쳐 알고자 하는 목적으로 하는 수단인것이므로
어떠한 공안이든 거론을 하게 되었을때는 그 도리의 是와 非를 반드시 가려 그것을 깨달아 알게하든, 의문을 刻印시켜주든 문답의 결론을 반드시 매듭지어야 할것이올시다.
무슨 화두이건 그 화두 하나하나가 구경은 같은것이올시다.
요즘 스님들이 법상에 올라 옛조사들의 공안을 들어 멋지게 말은 잘 하면서도
그 공안에 대한 자기의 견처를 들어내어 보이지를 못하고
슬쩍 넘어가는 것으로써 그럴듯하게 유식함을 보이고들 있는데,
그래서는 절대로 안되는 것이니 그것은 남을 속이는 짓이라 할수 있는 것이로소이다.
선지식이라면 반드시 공안을 들어 법문을 할때는 자기의 견처로써 그 도리를 일러야 하는것이니,그것은 내가 이 도리를 알고 설한다는것을 증거함과 동시에 듣는자들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거나
의문을 刻印시켜 참구하게 하는것이 선지식의 밝은 法門이요, 바른 가르침이라 할 것이외다.
*선사는 누구를 칭합니까?
선사(禪師)란 깨달은 각인(覺人:祖師)을 칭하는 것이올시다.
따라서 각인(覺人)인 선사는 조사 명안종사(明眼宗師) 선지식(善知識) 은 동의어(同意語)인 것이올시다.
*선원에 대하여 일러주십시요.
선원(禪院)은 선종(禪宗)의 사원이며, 실상의 본질인 마음을 닦아 증오하고자 수행하는 곳이올시다.
따라서 선수행을 하기에 선원이라 하는 것이올시다.
승가에서는 한 곳에 머물러 수행하는 기간인 안거(安居)라는 제도가 있소이다.
안거는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로 나뉘는데
하안거는 음력 4월15일부터 7월15일에 이르는 90일 동안이고,
동안거는 음력 10월15일부터 다음해 1월15일까지의 90일간을
선객들은 이곳에 머물러 참선수행을 하는 것이로소이다.
* 선정이 되려면 어찌하여야 합니까?
선정(禪定)이란 본래의 마음 그대로 고요하여 흐트러짐이 없는 것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부처가 된다는것은 중생심(번뇌심)에서 천연의 청정부동한 본래의 부처(마음)로 환원본제 되었다는 뜻이로소이다.
覺인의 법위에서는 행주좌와 선정 아님이 없으며, 원론적으로 볼때도 본래 선정 아님이 없으나,
중생의 번뇌망상이 치성함으로써 이 선정이 미혹으로 마치 붕어가 어항속을 분주히 맴도는것과 같은것일 뿐이로소이다.
선정을 통해서 삼매에 들려하는 것은 전도된 소견이니, 거꾸로 찾지 마오.
수행인이 화두의심이 간절하면 그로써 화두삼매가 되는것이며 그 화두삼매는 곧 선정으로 이어져 깨어있음이 되는 것이로소이다.
선정이라는 용어도 치우쳐 아시면 그를치는 것임을 알아야하는 것이니,각인의 선정과 수행인의 선정이 다른것도, 본성실상의 선정의 뜻이 또한 다름도 반드시 가려 살펴야 할것이로소이다.
그리고 수행인은 반드시 명안종사를 참문하고, 신수봉행하며 닦지않으면 천연외도가 되기 쉽다는것을 알아야 할것임을 명심하기 바라오.
수행가운데의 선정은 누가 죽이려 한다해도 모르고 있는것 당연하다 할것이외다.
그러나 "수행이 참으로 깊어 정가운데 있다면 귀신의 눈에도 뜨이지 않는다" 하는 뜻을 알아야 하는것외다. 감히 누가 그목을 취할수 있으리까? 물론 호법신장의 보호를 받고있게됨은 당연한 것이로소이다.
생사를 두려워해서 주변을 살피고 의식으로 살펴 깨어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선정으로서 깨어있음과는 천지로 벌어져 깨어있는, 분별심인 심의식 가운데 있는것이니 그런 수행으로는 미륵하생이라도 해탈과는 거리가 십만팔천리인 것이로소이다.
覺人의 깨어 있음은 항시 선정 아님이 없으니 논할것이 없는 것이라
參學人의 깨어 있음을 일러드리겠소이다.
우선 어떻게 하면 깨어 있게되는 것인가?
화두를 놓지 않게 되면 곧 깨어있게 되는 것이올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명해 드린다면,
사물에 응하고 묻고 대답함에 응해서 항상 自性을 여의지 않고 묻고 답하며 두두물물을 그러한 마음으로 살피신다면 곧 깨어있게 되는 것이올시다.
* 성도란 무엇인지요?
성도(成道)란 말 그대로 도를 성취하여 부처님(覺人)이 되셨다는 뜻이올시다.
"나의 법을 통해 깨달음의 문을 여는 것이 최상의 공양”이라 하신 말씀은 곧 세존께서 가장 바라는바 이시니,
따라서 다만 그것을 위하시어 일생을 구걸하시고 노숙하시며 동분서주, 횡설수설 하신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며, 客死하신 그 뜻에 부합하는것으로, 오직 그것만이 불자로써의 최상의 효성이 될것이며,
그러므로 성도제일을 맞아 그 하루라도가 아니라 이 순간 초발심의 신심과 분심으로 부처님의 바라시는바에 따라 용맹정진하여 불도를 모두 이루시고
더불어 대자비심으로 중생제도에 함께하신다면 금상첨화라 하겠으며,
불제자의 가는 바른길이 될것임을 말씀 드리겠소이다.
"모두함께 성불합시다" 이것이 성도라오.
* 성문연각이 무엇인지요?
성문 연각(聲聞 緣覺)이란 소승을 이르는 것으로 대승 보살승과 대조로 든 비유인 것이올시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문(聲聞)은 부처님의 교법(고,집,멸,도인 4성제)을 듣고 관하며 홀로 닦아 스스로 아라한(성불) 만을 추구하는 수행을 이르는 것이며
연각(緣覺)이란 부처님의 교화에 의지하지 않고 12연기법의 이치를 관찰하여 홀로 깨달아 성불만을 국집하는 독각승을 이르는 것으로
대승심 수행인 자리 이타의 보살대원에 의한 수행과 비유해서 혼자만 성취하려는 작은 원력과 수승하지 못한 수행법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성불이란 무엇인지요?
성불(成佛)이라는 용어는 참뜻을 알아야 할 것이올시다.
成佛이란 말은 부처님처럼 자기의 본래면목과 진리를 깨달아 거룩한 성인(부처님각인)이 되라는 뜻이올시다.
그러하나 부처는 곧 자기의 마음이거늘 다시 이룰것이 잇는가? 하는 것이 문제라 하겠소이다.
본래구족한 일체지와 신통묘용을 다시 이룬다는 것이 모순이라는 뜻이니
성불은 미해진 자성을 다시 밝혀 정각인이 된다는 뜻이라 할 것이올시다.
"성불하십시요'하고 인사를 하는데 자신은 부처를 증오하여 부처님이 된 성불을 성취하였는가? 를 반문 할때 과연 상대에게 '성불하십시요' 하는 것은 바른 도리라 할 수 없을 것인즉 "성불합시다"하여야 옳다 하리다.()
*성성적적이란 무엇인지 가르침 주시옵소서....()
성성적적(惺惺寂寂)이란 것은
본성인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고요하되 또렷한 것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이러 할때를 깨어있는 또렷하고 밝고 맑은 마음이라 하는 것이지오.
*성지순례의 성지란 무엇인지요?
성지(聖地)라는 기준을 딱히 정하여 가리라 한다면 난해 하다 할 것이올시다.
우리 불교의 大乘的차원으로 말 할것 같으면 제망찰해이니 처처가 불국토요 성지 않음이 없지 않겠소이까?
따라서 불보살의 상호를 모시는 사찰이라면 모두가 성지라 하여도 무방하지 않겠는지오?
그러므로 一切唯心造이니 마음으로 정하여 성스럽다면 어느곳인들 성지라 정한들 어찌 잘못 되었다 하리이까?
다만 마음에 성스러운곳을 정하신다면 불보살님의 상호를 모신 사찰이라면 어느곳이나 성지라 하여도 무방하다 하리다.
*소소영영함을 아는 주체가 있는지요?
소소영영(疏疎靈靈)이란 자성이 본래 맑아 청정하면서 항시 깨어있어 반야로써 살피는 고요한 가운데 밝음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곧 본성반야의 밝고 또렷한것을 말로써 이르는것을 말하는 것이올시다.
따라서 이것이 참나의 성품이거늘 어찌 불이 용광로에 들어있으나 뜨거움을 알겠소이까?
스스로 소소영령한 것을 보았다 하면 그것은 거짓이요, 착각인 것이올시다.
그것이 주체거늘 어찌 자기가 자기를 알리가 있겠소이까?
* 소신공양이 무엇이며 옳은행인지요?
소신공양(燒身)을 한다고 몸을 태워보이는 것은 그 의지는 갸륵하다 할 것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니올시다.
따라서 이 산승은 소신 소지(燒指) 같은 행위를 절대로 찬성하지 않는 바올시다.
그러한 의지라면 이 몸을 소중히 하여 중도로써 닦아 불도를 이뤄야 할 것이라 하리다.
손가락을 태워서 소신소지 하는 이들이 간혹 있으나 그들 누구하나 손가락을 태워 불도를 성취한 자가 없었음을 아셔야 할 것이올시다.
그러한 의지와 분심과 신심이라면 불법승 삼보에 지극하게 귀의하여
本師 스승이신 석가 세존이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쫓아
열심히 닦아 대오견성을 성취하는 것이 바른 불자의 신행임을 마땅히 아셔야 하리다.()
*소승과 일불승인 대승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요.
소승(小乘)이란 홀로 覺을 이루려는 자리(自利)만을 서원으로 수행하는 것을 이르며
대승(大乘:菩薩乘:一佛乘)은 자리이타(利他)의 대원으로 수행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이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비유로써 든 방편문이요,차별 교문으로 이른 것이올시다.
* 소참법문이란 것은 무엇인지요?
소참법문(小參法門)이라는 것은 禪寺에서 조실스님(선지식)이 참학인들과 더불어 때를 정하지 않고 문답하며 가르킴을 일러주는 법문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수마는 공부하는중에 꼭오는 과정인지요?
수마(垂魔)는 졸리는 것을 이르는 용어인 것이올시다.
참선중에 잠이 오는 것은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라
깨달음에 큰 장애라 魔라 하는 것이올시다.
수마가 누구에게나 온다고 할수 없는 것이올시다.
그러나 참선 수행(좌선)시에 번뇌마 수마가 엄습하여
공부에 장애를 가져오는 일은 흔히 있는 것이올시다.
좌선시에 수마가 오면 조용히 일어나 포행으로 대신 한다든가
세수를 하신다든가 방법을 강구하시면 쉽사리 탈피하실 것이올시다.
수마나 번뇌마를 먼저 걱정하실것이 아니라 간절한 의심이 안되는 것을 염려하셔서
오로지 의정에 빠져드신다면 그깟 수마쯤이야 대수로우리까?
의심이 간절하다면 시간의 흐름이야 잊고 궁구하게 될것인즉
열심히 참구하셔서 大悟하시기를 당부하고 기원하리다.()
*수식관이란 무엇인지요?
수식관(數息觀)이란 단전으로 깊은 호홉을 하면서 그 호홉을 관하며 세므로써
깊이 定에 드는 호홉 수행방편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참선 초심자들이 화두를 간택받아 화두에 집중하여 공부 하기전에
깊고 느린 호홉과 정신집중 훈련을 하게 가르치는 것을
수식관(修息觀) 호홉법 이라고 이르는 것으로
익숙하여지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호홉과 집중의 힘을 얻게 되는 수련법이라고 하겠소이다.
먼저 좌선 자세에서 입을 벌려 깊게 드려 쉬었다가 내 쉬기를 한두 차례 하여 폐활량을 늘인다음
입을 가볍게 다물고 코로만 깊고 가는 느린 호홉을 단전까지 깊이 서서히 드려 마신후
다시 단전에 있는 공기까지를 모두 서서히 토해낸다는 생각으로 호홉을 하되 호홉을 살피며
그 들이 쉬었다가 내쉬는 한번을 집중하여 세기를 한번 두번 세번.....이렇게 열번까지 쉰뒤
다시 세기를 열번으로하여 계속 호홉집중을 훈련하시면 될 것이로소이다.
이렇게 숨쉬는 것을 집중하여 관찰하는 호홉을 수식관이라 하는 것이올시다.
이런 방식으로 집중하여 숨을 쉬어 나가면 잡념을 제거하고 안정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으며,
집중력을 기르게 되어 본격적으로 화두공부를 하게 될시에는 호홉에 마음을 두지 않아도 자연스레 깊고 고른 단전호홉을 하게 되어 공부나 건강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올시다.
단전(丹田)이라고 하는 것은우리 몸의 아랫배(배꼽 밑 약 2~3㎝)에 힘이 가해지는 데이며,
이 단전이라고 하는 것은 아랫배의 근육(筋肉)과 이에 포함되어 있는 내장(內臟)을 말하며, 호흡을 할 때 복부근육(腹部筋肉)이 긴장 혹은 압축하여 내장과 함께 횡격막(橫隔膜)을 눌러서 흉강(胸腔)을 수축해 허파로부터 숨을 토하도록 하는 것이올시다.
이 단전은 우리몸의 氣의 집중처라고 하는 곳이올시다.
쉬울것 같으나 처음에는 집중하여 10을 세는 것도잡념이 사이에 끼어들어 그리 쉽지 않는 것이올시다.
그러나 이렇게 반복 수련하노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숨을 눌러 쉬게 되고 마침내는 자연스러운 단전호홉이 익숙하게 되는 것이며
이러한 호흡상태가 되었을 때 심신(心身)이 잘 정돈되어서 선정(禪定)을 이루게 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올시다.
그러므로 좌선을 익히기전에 의식적으로 이 단전호홉법을 이렇게 수식관으로 익히게 되면 잡념을 쉽게 떨쳐버릴 수 있고 참선을 하는데 화두에 집중 할 수 있는 것이오.
이러한 호흡운동이 자연스럽게 지속되게 되면 막강한 힘을 가진 원동기(原動機)처럼 무한한 힘이 생기게 되어 번뇌망상(煩惱忘想)이 침범하지 못하게 되어 쉽사리 선정(禪定)에 들게 되는 것이 것이올시다.
* 수행이란 무엇입니까?
불교의 수행(修行)은 마음을 닦는다 하는 것이올시다.
그러나 원론적으로는 "묻을 때가 없으니 닦을 것도 없다" 할것이올시다.
그러나 "닦아 증득 할 바는 있으나 더럽혀 물들일 것이 없다' 한 말씀도 간과 하여서는 않될것이올시다.
법을 공부하는 참학인이 원론적인 말에만 국집하게 되면 치우친 변견으로 중도로써 실상을 證하지 못할 것이올시다.
좀더 말씀을 하여 드린다면
불교에서 수행(修行)이라 하는 것은 곧 마음을 닦아 대오견성하여 구경각을 성취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만일 수행하는 이가 마음이 원만하지 못하고 올곧지 못하다면 아무리 공부를 한다하여도 그것은 익히는 공부이지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이라 하지못할 것이올시다.
그러므로 불교는 실천하는 종교라 하였소이다.
이 말씀은 깨달음으로써 體認된 것은 스스로 몸에 익어 능동적인 실천이 된다는 말씀이올시다.
다른 종교에서는 모두가 가르침을 익혀서 실천하게 하는 것으로서 신행생활을 하게 하나 우리 불교(부처님의 가르침)는 그렇지 않아서 깨달음을 극칙으로 삼아 몸소 실천이 적극적이 되게 일러주는 가르침이므로,
불자들은 모름지기 깨닫고자 심혈을 기울이며, 그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수행과정에 애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계율을 지켜 마음을 다스려 가는 것이 아니오이까?
그러나 아직 그에 가까이 스스로 미치지 못하고 옛 불조들의 말을 익혀 제 살림을 삼아 아는채 들을 하고 말로써 부드럽고 아름다움을 보일뿐 실천에 미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기에 무명중생이라 하는 것이 올시다.
어쩌겠소이까?
슬기로운 이들 이라면 스스로 각성하여 애써 지키고 말과 같이 실천하려고 노력하노라면 공부가 익게 되는때 자연 적극적이요 능동적인 실천을 스스로 하게되고 또한 하지 않으면 않되게끔 될것이올시다.
부디 남의 허물을 보려하지 마시고 스스로 애써 지키고 실천하는 불자되시고,
애써 三學(계 정 혜)을 배우고 닦아 定慧 雙修하여 → 雙收하시어서 부처님이 되시기를 당부하며 더불어 기원하리다.()
*숙면일여의 경계를 어찌 아는지요?
숙면일여(宿眠一如) 라는 용어는 깊은 잠에 들어 꿈도 꾸지 않을 때에도 화두가 한결같이 들린다는 용어인 것이올시다.
이 용어를 너무나 쉽게 인용해서들 쓰나
참으로 알아야 할 것은 "공부를 지어감에 몽중일여 숙면일여가 되도록 정진해야 한다"는 경책의 말씀을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되는냐?" 로 쓰는 우매한 짓들을 하고들 있어 고소를 금하지 못하는 바 올시다.
숙면 일여가 되고 있음을 알때는 벌써 파기상종으로 "숙면도 몽중도 일여가 아님"을 바로 살필줄 아셔야 하겠소이다.
어찌 공부지어 가는 분상에 참으로 화두일여가 되고 있다면 일여를 일여인줄 알겠소이까?
또한 엄격히 말하면 "숙면 일여"라는 것은 잠이 깊이 들어 아무 생각도 없이 끊어진 상태를 "숙면" 이라고 하는것인 바
일체가 끊어진 상태의 깊은잠 가운데 어찌 "일여한 화두 의심"이 될수가 있겠소이까?
그렇게 깊은 잠 가운데서도 화두가 여일 하다면 이럴때는 "숙면 일여"라기 보다는 "몽중일여"라 하는것이 적절한 표현이라 할것이 아니겠소이까?
아는체들 하여 마치 "자신이 그러한 경계로 공부지어 왔"으며 "그러한 경계로 깨달음을 얻은양" 하는 그러한 말 재주에 속지를 마시기 바라오이다.
오직 간절한 의심이 그렇게 일상 행주좌와 어묵동정 가운데 화두가 일여하게 스스로 되어질뿐, 그렇게 될려고 하는것도 벌써 망념을 지어가고 있는 것이니,
그렇게 행주좌와 의심의심 지어가고 지어가노라면 목적 하는바의 구경각을 證得하게 됨을 아시기 바라며,
이러한 경책의 말씀도 구경이 아니라 과정이요 수단인 길일뿐인 것임을 아시기 바라오이다.
*신수봉행이란 무엇인지요?
신수봉행(身修奉行)이란 선지식을 스승으로 모셔서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받들어 모시고 수행한다 하는 뜻이올시다.
이것은 확신코 믿는 신심이 우선되어야 가할 것이올시다.
또한 이러한 각오와 적극적인 마음을 갖추지 못한 학인이라면
어떻게 도를 증득할 수 있을 것이리오.()
* 스님이라는 뜻은 무엇인지요?
"스님"의 원 뜻은 "스승님(師)"이라는 존칭어가 맞소이다.
그러나 스님은 범어로"승가(僧伽)" 4인이상의 출가인들이라는 뜻으로 "僧侶" 화합의 뜻이있는 "중(僧)" 무리인 "衆"이란 말로 일반적으로 출가수도 승려를 통털어 "스님"이라 통칭하는것이 올시다.
이 스님의 원 뜻이 변해서 통칭해서 쓰이게되어 본인 스스로도 "스님"이라고 호칭하게 된것은, 스님은 출가사문인 "승"의 순수한 우리말로 音譯하여 고착된 명사로 남들이 호칭할때에는 존칭의 의미가 있겠으나 본인 스스로 칭함에는 "일반적인 통칭어" 로 쓰게된 것으로 보시면 될것이올시다.
따라서 본인 스스로 낮추어 소승, 빈승,사문,산승이라 칭하는바올시다.
*스님들의 명칭을 일러주십시요.
예,중(僧)이라 하는 것은 낮춰부르기 위한 명칭으로 쓰이고 있음은 잘 아시리라믿소이다.
출가 승을 사문(沙門)이라고도하며
스님들의 호칭 중 등의 의미는 선지식으로 법맥을 이은 선지식을 조사(祖師), 선사(禪師), 종사(宗師), 라 하며
계행을 잘 지켜 가르치는 스님을 율사(律師) 라 칭하며
교문을 많이 알아 교로써 가르침을 주는 스님을 강백(講伯) 또는 교학승이라 하며
스님을 높여 부르는 것으로는 화상(和尙), 대덕(大德), 대사(大師) 등이 있소이다.
법사(法師:속인이 불교대학 나와 받은 법사와는 구별됨) 등이 그것이올시다.
그러나 이 호칭도 요즈음에 와서는 뒤죽박죽으로 아무렇게나 골라잡아 쓰이고 있으니 잘 살펴 칭하시기를 당부하리다.
이밖에도 국사(國師), 왕사(王師), 제사(帝師)라는 칭호는
한 나라의 황제나 국왕이 덕높은 스님들을 나라의 정신적인
지도자로 모시기 위해 위촉했던 일종의 직책명이었소이다.
*습이란 무엇인지요?
습(習)이란 습관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따라서 좋은 습관이든 나쁜습관이든 반복하여 행하게 되면 훈습된 그것이 짙게 베어 그 행의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올시다.
세상에는 각각의 근기와 근성의 사람들로 차 있지 않소이까?
따라서 그 각각의 나름대로의 습성이 다르기에 개성이라 하는 것이 아니오이까??
곧장 자기의 좋은 습대로 닦아 나아 가실것을 권하오이다.
*시다림이란 것이 무엇인지요?
시다림(尸陀林)이란 상을 당했을 때 스님이 오셔서 염불을 하거나 법문을 하는 의식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본래 범어를 음역한 것으로 시다림이라는 숯은 인도 마가다국 북문 밖에 있던 숲 이름으로 시체를 버리던 곳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시자, 시봉은 무엇입니까?
시자(侍者) 또는 시봉(侍奉)이란 이는 '모시는 자' '받들어 모신다'는 뜻으로
대체로 사찰에서 큰스님을 모시고 수발을 드는 이를 칭하는 것이올시다.
시주는 무엇입니까?
시주(施主)란 페푼다는 보시와 같은 뜻이나
원래는 '보시하는 분'을 지칭하는 단어지만 지금은 보시하는 행동 자체를 뜻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소이다.
*식이란 각각 무엇인지요?
6식(六識)이란 심의식을 이르는 것으로 이것은 안이비설신의 6근을 뿌리로하여 외경에 접할때 감수하게 되어서 6식과 6경의 경계를 내는 것이라
6근* 6경* 6식을 합하여 18경계라 하는 것이며
7식(七識)이란 무의식의 심식을 이르는 것으로 육경과 관계치 않고 나라는 것을 잠재적으로 알고 고집하는 심식으로 따라서 잠재의식 이라 하는 것이니,
이 7식 정도의 定에만 들어도 나라는 것이 없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나 이때 나라는 존재가 없음을 무의식 가운데 아는것(意식)이 잠재해 있어 내가 없어진 것으로 아나 일반적인 감수로 판단해서 아는 의식이 아니기에 의식하지만 무의식인 잠재의식이라 이르는 것이며,
8식(八識)은 저장 갈무리되는 함장식인 아뢰아식을 이르는 것으로 이것은 심의식의 식이 아니올시다.
따라서 7식이 이 8식을 싸잡아 나라고 고집하는 것이나 실은 이 8식은 그런 나라는 것을 스스로 갖는 심의식은 아니올시다.
*신중님은 어떤분들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요?
신중(神衆)님이란 석가 세존님에게 조복되어서
영원히 부처님을 수호하고 불법을 지키겠다고 서원한
온우주에서 가장 큰 위신력을 지닌 신(神)들로 다시 말하면 일체 신들의 우두머리 신들로서
불법을 보호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분들로 엄청난 힘을 가진 선신들(善神) 이라오.
이분들이 지키는 가장 큰 일은 불법을 바르게 믿고 닦는 수행인들이오.
그분들이 가장 좋아 하는 것은 바른것이라오,
따라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굽고 삿되고 비뚤어진 것이라오.
* 신통을 쓴다하는건지요?
신통(神通)이란 신묘하여 중생의 소견으로서는 불가사의 하여 알수 없는
천안통,천이통,타심통.숙명통,신족통,누진통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그러나 실은 중생에게도 모두 본래부터 구족한 것이나 이를 알지 못하고 제대로 쓰지 못할 뿐이올시다.
이 신통이란 것은 귀신이 쓰는 그러한 요사스러운 역행이 아님도 아셔야 할 것이올시다.
따라서 覺人은 그 육신통을 역순으로 쓰려하지 않는것을 아시기 바라오.
가장 요긴한 누진통을 쓰는것은 항상하오이다만....
*實相이란 무엇입니까?
실상이란 글자 그대로 일체의 본성의 실다운 상(모습)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이것은 敎門이 아닌 禪門에 해당된다 할 것이올시다.
*실참실오와 실참수행에 대해 설하여 주십시요.()
실참실오(實參實悟)란 말과 글을 익히는 알음알이가 아닌 실지로 참구(의심)하여 참답게 실상을 체인(體認) 체달(體達)한 증오(證悟)를 이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올시다.
실참수행(實參修行)이란 위에서 말씀드린 실지 체험으로 닦아 나간다는 뜻이올시다.
* 심인을 전한다는 것을 일러주십시요.
심인(心印)은 마음에 찍어도 흔적없는 도장을 찍는다는 뜻이올시다.
따라서 학문이나 기술등은 전수 할수가 있으나 법은 전해도 전함이 없이 전하는 것이올시다.
이것은 안타깝게도 가장 친한이가 있다 하드라도 그렇게 할수가 없는것이니 스스로 實參으로 證得한 것을 認可 할 뿐이외다.
다만 明眼宗師라면 그 가는 길을 바르게 이끌어 주시고 바르게 점검 해 주실 뿐이외다.
그러므로 석가세존을 일러 三界導師(삼계의 중생들을 이끌어주시는 스승)라 하는 것임을 아시기 바라오이다.
*심행처멸이 무엇이며
심행처멸(心行處滅)이란 마음 작용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니
다시 말씀드리면 생각이 갈곳이 끈긴 경계를 이르는 것으로
사량분별이 끊겼으나 다만 소소영령(또렷이 깨어 있음)한 심처(心處)를 이르는 것이올시다.
*10대 제자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란,
①대가섭존자(大迦葉)이며 마하가섭이라고 하외다.
마하는 크다(大)는 뜻이며, 부처님 제자중에 가섭이라는 자가 많았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하여 대가섭이라고 불렀으며, 대가섭은 백만장자(百萬.長者)의 소생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두타(頭陀)제일로 이욕(離欲)의 생활로 고행하며, 걸식(乞食)하는데도 부호의 집에가서 하지않고 빈가에 가서 복을 지어주기 위한 행으로 유명하며, 항상 부처님으로부터 중하게 존중(敬重)을 받은 제자 중에 제일 이였고, 일찍이 유화(遊化)를 하다 오래간만에 돌아오니 여래께서 반좌(半座)에 앉으라 하시어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앉으셨다하는 다자탑전 반분좌와,
염화미소(拈花微笑)와 '곽시쌍부' 고사(故事)로 유명한 오늘의 선문(禪門)의 연원(淵源)이 되는 3처전심이 그것인 것이올시다.
곧 여래께서『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 미묘법문(微妙法門)이 있으니 마하가섭(摩訶迦葉)에게 부촉한다』고 한 부처님의 제1대 전등제자올시다.
②아난존자(阿難尊者)는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마음이 온순(溫順)하며 기억력(記憶力)이 좋고 25년간 부처님을 항상 따라다니며 시봉을한 제자였으며 부처님(佛陀)의 설법(說法)을 기억하지 못한 일이 없는 제자로소이다.
따라서 근엄해서 불타가 설법하기에 앞서 선정에 들어 사념(思念)을 깊게 하였다고 하며,
부처님께서 입멸 후(入滅後) 유고(遺敎)를 결집(結集)함에 있어 평소의 기억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으니, 대중 아라한들은 이를 시인(是認)하여 성립(成立)시켰던 것이 최초의 불경 결집인 것이올시다.
그러므로 경의 서분에는 반드시 '어느 때 내(아난)가 이렇게 들었다'고 하는 것이올시다.
그 말 할 때의 태도가 부처님과 똑같았기 때문에 듣는 대중은 추모의 눈물을 다시 흘리게 했다고 하오이다. 다문 제일 제자올시다.
③사리불존자(舍利佛 尊者)는 목련(目蓮)존자와 쌍벽이라할 제자로 목련(目蓮)이 왼팔이라면 사리불(舍利佛)은 오른팔이라 할것이외다.
지혜(智慧)제일제자로 이름이 높았으며 부처님을 제(除)하면 지혜(智慧)로써 사리불(舍利佛)을 따라 갈 제자가 없었다고 하는 제자올시다.
④수보리존자(須菩提尊者)는 공(空)의 이치(理致)를 이해(理解)하는데 있어서 제일이었다 하는 제자올시다.
수보리(須菩提)라고 하는 이름이 이미 空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써도 알 수 있지 않겠소이까?.
수보리라고 하는 이름은 부호의 가문에서 출생하였는데 출생할 때 창고에 가득했던 보물이 온데 간데 없이 창고가 비어, 집안 식구들이 이상히 여겨 점쟁이에게 물으니 『이 아이가 장차 중생을 제도하는 도사(導師)가 될 것이기에 이러한 상서(祥瑞)가 나타났다』하였다 하오이다.
이렇듯 제법개공(諸法皆空)의 이치(理致)를 이해(理解)하는데 해공제일의 제자라 하는 것이올시다.
⑤부루나존자(富樓那尊者)는 박식하고 치밀한 사람으로써 변재(辯才)가 비상(非常)하였으니 제자중에 변재제일로 존중받은 제자올시다.
그러므로 설법(說法)제일로 유명(有名)했으며 성격(性格)도 관대관인한 것으로써도 제일의 제자였다고 하는바 이외다.
⑥목건련존자(目楗蓮尊者)는 목련(目蓮)이라고 약칭하기도 하며 신통제일로 신통(神通)이 자유자재(自由自在)한 것은 生母를 아귀도(餓鬼道)에서 제도했다는 이야기로도 유명(有名)하며 우란분재가 이로부터 지켜지게 되었고, 사리불(舍利佛)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弟子)가 되었으며, 죽을 때에도 사리불(舍利佛)과 시기(時期)를 같이 했다는 등 행동을 같이하며 부처님을 보좌한 제자올시다.
⑦가전연존자는 논의(論義)에 뛰어난 제자였다고 하는바 올시다.
아함경에도 외도(外道)를 설파(說破)한 전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뛰어났음을 알 수 있을 것이외다.
설법(說法)을 알기 쉽게 이해(理解)시키는데는 가히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는 제자였소이다.
⑧아나률존자(阿那律尊者)는 수면이 항상 많아서 설법 중에도 가끔 졸아서 부처님의 꾸지람을 많이 들었다고 하는존자로,
하루는 부처님의 꾸지람을 듣고 분발하여 눕지도 않고, 잠도 자지 않고, 용맹 정진하다가 드디어 실명(失明)을 하게되어 장님이 되었으나, 그 대신 심안(心眼)이 열려 시방세계(十方世界)를 달관(達觀)하게 되었다고 하는제자로. 능엄경에도 이를 일러 『十方世界를 掌中에 果實과 같이 본다고』 하였소이다.
⑨우바리존자(優婆離尊者)는 성격(性格)이 근엄(謹嚴)하고 지극하고 진실하여 부처님이 정(定)한 계율(戒律)에는 평생 한번도 파(破)해 본 일이 없었다는 제자 올시다.
출가 전에는 궁중(宮中)에서 시자로써 근면 성실했고 출가 후에도 근엄하고 바른 행으로 일관한 제자이외다.
⑩라후라존자(羅喉羅尊者)는 부처님의 아들로써 아버지를 따라 어려서 출가하였으며, 출가할 적만 해도 장난꾸러기요, 허언도 많이 하였으나 엄한 훈계를 받은 뒤에는 개심(改心)하여 수행(修行)하는데 뜻을 면밀히 하여 밀행제일(密行第一)의 제자라 하였소이다.
*10선(善)이 무엇인지요?
10선이란10善道 十善戒이며 신, 구, 의 10악을 범하지 않고 바른 행을 하는 것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10신이란 무엇인지요?
10신(信)이란 보살이 수행하는 계위(階位) 52가운데 처음의 10위(位)를 이르는 말이며 신심, 정진심, 회향심등을 이르는 말씀이외다.
*10주란 무엇인지요?
10주(住)란 보살수행계위인 52위중 제11위에서 20위까지를 이르는 말로 10신위를 지나서 마음이 진제(眞諦)의 이치에 안주하는 위치에 머물렀다(住)하는 뜻이며,
①발심주 ②마음이 진제에 안주하는 치지주(治地住)
③만선만행을 닦는 수행주 ④부처님의 여래종지에 들어가는 생귀주(生貴住) ⑤부처님과 같은 자리이타의 방편행을 갖추어 상모가 결함이 없는 구족방편주 ⑥용모와 마음이 부처님과 같게된 정심주(正心住) ⑦물러서지 않는 불퇴주 ⑧삿된 소견이 생기지 않고 보리심이 퇴전하지 않아 천진한 동자와 같이 애욕집착이 없는 부처님의 10신(身) 영상이(靈相) 갖추어진 동진주(童眞住) ⑨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지혜가 발현되어 불지에 오를 법왕자주(法王子住)
⑩부처님의 하시는 일을 감당할(下達)만한 관정주(灌頂住)를 이르는것이올시다.
*10행이 무엇입니까?
10행(行)이란 보살수행의 10신 10주에서 나아가 묘각(妙覺)에 이르는 계위로 환희행(歡喜), 요익행(饒益), 무진한행(無塵恨), 무진행(無盡), 이치란행(離癡亂),선현행(善現), 무착(無着)행, 존중행, 선법행(善法), 진실행을 이르는 것이올시다.
*10회향은 무엇입니까?
10회향(回向)이란 보살수행계위 가운데 제31위에서 40위까지 10행위(行位)를 마치고 지금까지 닦아 얻은 자리(自利)를 중생을 위해 돌려주는(회향: 이타) 것이며, 동시에 이 공덕으로 불과를 이루는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하는 지위를 말하는 것이올시다.
*쌍차쌍조를 설해 주십시요.
쌍차쌍조(雙遮雙照)는 생각 일으키고 일으킨 相은 서로 막히고
동시에 서로 부정하기에 막힘없이 비친다는 것이올시다.
더 자세히 설하게 되면 파설(破說)이 지나치다 할 것이라 간단히 설명하였소이다.
http://cafe.daum.net/buddhajuk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