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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然(유연)
God-Realization 신-깨달음의 영적 여정....... 삶의 목적은 우주적인 자아와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한한 지복, 파워, 지식 (전지, 전능, 지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 아바타 메허 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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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 루쓰 몽고메리



영혼의 세계에 대하여

“사고나 전쟁 때문에 갑자기 이곳으로 오게 된 영혼들은, 그들이 영계에 와 있다는 것과 이제 더 이상 돈도 벌 수 없고, 공놀이도 할 수 없으며, 그들이 지상에서 해오던 익숙한 것들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충격을 받는다.

만일 그가 지상에서 공부나 명상을 통해서 영계에 대해 준비해 오지 않았다면 처음에는 몹시 놀란다.”(루스 몽고메리,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69쪽, 초롱)

 
만유생명에 대하여
 “나무, 새, 바위, 동물, 짐승, 흙 그리고 모든 생물체는 개성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그들도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있으며, 변덕이 있고, 격렬한 분노도 있다. 그들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힘을 쓰고, 또 선하고 아름답게 되거나 혹은 악하고 추하게 되려고 노력한다.”(위의 책, 132,133쪽)
 
상생에 대하여
“우리가 자신보다는 타인의 복리를 생각할 때 진보된 종족으로의 진화가 가능하다.”(위의 책, 132쪽) 
 
죄와 용서에 대하여
 “자신에 대한 나쁜 기록(아카식 레코드)을 지우는 유일한 방법은 곤란한 지경에 있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돕는 것이다. 모든 선행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기록을 해 가는 것이다.”(위의 책, 271쪽)
  
기도에 대하여
 “기도는 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기도는 명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기도는 신의 마음을 움직이려 하는 능동적인 시도이다.”(위의 책, 224쪽)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볼 수 있는 식물 동물 바위 곤충 그리고 모든 것들이 기도에 영향을 받는다.”(위의 책, 133쪽)
 “양심은 신의 목소리”(위의 책, 242쪽)
 
명상에 대하여
 “명상은 바로 우리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신(神)을 만나는 것이다. … 네가 우주의 맥박에 일치하게 되면, 전체 우주가 하나라는 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과 개인적인 에고를 잊게 될 것이다.” (위의 책, 223쪽)
 
인간계와 영혼계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지상에 혼란이 극심하다면 그것은 영계나 지상 양쪽 모두의 상태가 반영된 것이다.”(위의 책, 270쪽)
 
 
역사의 이정표를 질정하신 천지공사와 연관하여
 “지상의 시간개념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신명계에서는) 너희들이 미래라고 부르는 앞날을 미리 내다볼 수도 있다. (지상의) 사건들은 (신명계에서) 미리 계획되어 있고 그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위의 책, 33쪽)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신이라고 부르는 우주의식



자! 이제 모든 개인은 영원히 영속하는 실체라는 전제로부터 시작해보자. 일부 윤리 주의자들은 아기의 육체적 탄생이

삶의 시작이며 최후 심판의 날에 삶이 끝난다고 말하지만 사실 진정한 삶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으며 비록 형태와 차원은 바뀔지라도 우리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신이 우리의 일부이듯, 우리도 신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사고의 범위를 넓혀준다.



만일 우리 각자가 신이고 우리 모두가 신이라고 일괄해서 생각한다면, 그리고 완전한 신이 되는 것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안다면, 자신처럼 다른 사람도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힘껏 도와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팔과 다리와 눈처럼 필수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산 자나 죽은 자 모두 인류의 전체성이 없다면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모두가 하나되고 하나가 전체가 되는 진리가 산 자나 죽은 자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전체성에 대한 이해를 할 때 우리가 늘 신이라고 부르는 우주의식과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직자는 이런 생각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잠시만 생각해보면, 이런 생각들이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너 자신 안에 있다'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는 데 신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한다는 보수적 설교보다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신의 일부이다.



이제 진화의 한 단계인 이곳 영계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자. 나 자신이 이곳에 금방 왔기 때문에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영계의 시간은 지상의 시간과는 다르다. 이 곳에서는 시계로 측정하는 시간이 없다.



우리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에 지상의 시간으로 어느 때라도 원하는 곳은 갈 수 있다. 그리고 지상의 시간 개념으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대가 미래라고 부르는 앞날을 미리 볼 수도 있다.



사건들은 미리 계획되어 있고 그대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만일 지상의 인간들이 사건들이 먼 미래까지 계획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어떤 재난을 피하기 위해 그토록 심하게 버둥거리지 않고 그저 관망할 것이다. 너희 앞에는 모든 것이 세밀하게 계획되어 있는데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가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리고 항상 긍정적이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두려움 없이 다가오는 미래를 받아들여라. 미리 예정된 것이 너를 위한 우주의 신성한 계획의 일부일 수도 있고 아니면 네 자신이 육체적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 수행하기로 약속된 자신의 임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두려움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우주의 계획에 대한 신뢰의 부족이다. 긴장을 풀고 기꺼운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죽은 뒤에는 무슨 일이 생기는가



죽음이란 손짓하며 부르는 문을 단지 통과하는 것이다. 너무 간단하고 순간적이어서 자신이 그 문을 건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조차 힘들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문 너머에 존재한다. 육체는 지치고 약해진다. 어느 순간이 되면 더 이상 육체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거나, 영혼이 열린 문으로 빠져 나가버려 심장이 멈추게 된다. 그 때가 되면 어떤 이는 기쁘게 영계로 가고, 어떤 이는 마지 못해 간다.



그러나 모두는 평화와 평온을 위한 우주의 충동에 따르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과도한 충격이나 정신적 나약함이 있을 경우 그 영혼은 영계로 오는 과정에서 잠시동안 잠을 잘 수도 있다. 이 경우 그 영혼은 영혼이 스스로 깨어나서 자발적으로 영계의 존재들과 접촉하기를 바랄 때까지 자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나 때때로 영계로의 이동이 여름의 산들바람처럼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는 수도 있다. 내가 바로 그런 경우였는데 나는 병든 육체를 버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고통이 끝나고,영혼이 분리되어 이 곳으로 오기를 갈망했었다. 그리고 이 곳은 네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이 곳이 지구와 다른 점은 더 이상 육체의 안락이 필요 없으며 세상의 아름다움이 완전히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곳이 내가 살아 있을 때 잠재의식 속에서 기억했던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지상의 어느 누구도 이곳의 아름다움이나 이 곳의 영혼들이 다른 영혼들에게 가지는 호감과 같은 강한 친근감을 정확하게 기억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마치 문을 지나 늙고 병든 몸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 것과 같은 기분이다. 나는 죽음에 대한 의식적인 생각 없이 순간적으로 이곳으로 와서 친척들에게 둘러싸였다. 나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할렐루야, 아서, 가나안 땅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러나 이 곳이 가나안 땅은 아니다. 나의 어머니는 조그만 마을의 복음주의자였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이곳이 가나안 땅으로 보인 것이다.



여기에는 그녀가 가나안 땅에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던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아직도 영계에 대해 어린애와 같은 유치한 상상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워주어야 한다. 그런 엉터리 같은 생각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진보가 늦어진다. 진리 대신 많은 보푸라기를 걸치고 있다면 그것들을 신중하게 벗어버려야 한다. 즉시 그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이곳에도 일은 있는데 그것은 합목적적이고, 필요하며, 기분 좋은 것이다. 아무도 강제로 일을 하지는 않는다.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그 일이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아무도 성장과 발전을 강요 받지 않는다. 이곳에서 스스로 원하지 않을 경우는 읽고 쓰고 배우라고 강요하는 교사도 없다.



그러므로 영계에서는 지상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이해가 되는가? 지상에서는 우리를 훌륭하게 만들려는 사랑스런 부모와 교사들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부를 강요한다. 그러나 이곳 영계에서는 제멋대로 하도록 방치한다. 그래서 게으른 영혼은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 영혼에게 올바른 길을 가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앞에서 말한 것들이 지금까지 내가 알게 된 것들이다. 비록 내가 영계에 온지는 얼마 안되지만 각 영혼들에게 영계가 같은 곳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각자가 지상에서 환생을 거치고 나면 모두 이곳으로 돌아옴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겪게 되는 영계는 다르다. 우리는 죽음의 문을 통과할 때마다 변한다. 영계로 돌아올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생각의 틀과 아이디어를 배워왔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고는 곧 물질이다. 우리는 신과 함께 이곳에 있는 것들을 창조한다. 우리는 네가 이러한 고차원의 진리를 지상의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지옥의 사람들도 그들의 생각에 의해 자신의 미래의 삶을 창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의 천국이나 지옥도 만들게 된다.



영계에서 옳거나 그른 장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소와 우리는 하나이다. 지상에서는 너희 안에 천국이 존재하고 이곳에서는 우리 안에 천국 안에 존재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지상에 있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 것에 영향을 받는다. 즉 육체 상태에서 생각한 것이 영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어떤 영혼은 수 천년 동안이나 영계에 적응하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정신의 성장과 영적 진보야말로 이곳에서든 지상에서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성장하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어느 것도 우리를 위해서 대신 성장해 주지는 못한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성장할 것인가 아니면 정신적 미숙아 상태로 남을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우리 각자가 신이며 동시에 신의 일부라고 말하는 것이다.



영적인 진보야말로 이곳에서든 지상에서든 행복을 찾는 열쇠이다. 그리고 이곳은 배우고 성장하기를 열망하는 우리와 같은 영혼에게는 아주 환상적인 곳이다. 이곳의 하늘과 꽃나무, 저녁 노을은 네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 이런 아름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영계든 지상이든 거기에 속하는 모든 것이 생각의 틀임을 알아야 한다.



이곳에서는 오직 생각을 통하여 대화하고 일하고 성장하고 번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기계에 불과한 물질적 마음 때문에 방해 받는 일은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나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이나 영혼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 즉시 그를 볼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의 틀을 투사함으로써 원하는 곳에 즉시 갈 수 있다. 이곳에서는 쓰레기나 슬럼가, 그리고 공기 오염의 문제가 없다.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서 거의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이 곧 물질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 수도 있고 추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악을 생각하면 악한 일이 닥치고, 선한 일을 생각하면 선한 일이 생긴다. 사랑을 생각하면 너 자신이 사랑에 둘러 싸일 것이고, 미움을 생각하면 세상은 온통 괴물과 파괴적인 목소리로 가득찬 지긋지긋한 곳으로 바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에서 선한 생각을 하는 법을 배운다.



우리의 마음은 그 자체가 생각의 틀을 방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보고 서로의 수준을 알게 된다. 서로의 생각의 수준에 맞게 어울리는 것을 우리는 유유상종이라고 부른다. 생각할 장소로 대개 태양이 빛나는 바람부는 해변이나 산의 장엄함을 볼 수 있는 후미진 숲 속을 원하지, 슬럼가의 뒷골목이나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코니 아일랜드에 있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을 당혹하게 만들던 영계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게 되었다. 릴리와 그의 그룹은 내가 너에게 영계의 모든 것을 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상의 사람들에게 영계에 대한 준비를 하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에게 명상과 기도의 목적, 지상의 상호 관련성, 영계의 삶의 방식들에 대해서 알려주겠다.



지상의 사려 깊은 사람들을 일깨워서, 그들이 영계에 대한 준비를 해나가지 않는다면 삶이 낭비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학생들의 공부를 예로 들어보자. 학생은 매일 새로운 수업을 받고, 어제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시험일이 오기까지 많은 학습을 통해 실력을 쌓아간다. 그리고 교사는 그의 진보 정도를 평가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런 간단한 예를 들었다.



육체 상태의 인간의 삶도 이런 것이다. 우리 영혼은 모두 지구라는 학교로 돌아가서 더 빨리 성장하고 발전하는 방법을 배우고, 영계에서 성취한 진보의 정도를 스스로 시험한다. 이것은 정신적인 면에서 어린이가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 속에는 영혼의 진보와 내적 성장을 시험할 수 있는 도전과 기회의 방법들이 숨어있다.



명상을 하지 않는 날은 무의미하게 낭비되는 날이며, 시간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즉각적으로 멈추게 된다. 만일 내가 이곳에서 알게 된 것을 지상의 사람들이 볼 수만 있다면, 그들은 한번의 인생이 불빛이 깜빡이는 정도의 짧은 순간이며 지상의 삶과 삶 사이의 기나긴 시간은 기다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긴간 중에 어떤 영혼은 릴리나 프레드처럼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고 또 심령가를 통해서 일하는 영혼들도 있다. 또 다른 영혼들은 지상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마음이 열린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한다.



탁월한 영능력자 아서 포드



나는 영계로 오기 위해 일부로 서두르지는 않았다. 육체 상태의 삶을 기꺼이 완수했으나, 그 육체는 술로 인해 최상의 상태는 아니었다.



육체는 그 자체로 지상에 있는 사람에게 교훈이 된다. 너의 육체를 함부로 다루지 말라. 육체는 살아있는 신이 거주하는 사원이다. 육체를 영혼의 집처럼 소중히 여기고 조심해서 사용할수록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보상을 할 것이다. 내가 이곳으로 돌아 올 시간이 되었을 때, 이곳이 내가 과거 생 사이사이에 자주 왔던 곳임을 알 수 있었고, 내 안에 있는 영혼이 소생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더 깊은 명상 상태가 되었으며 나의 잠재의식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준비를 했다. 잠재의식은 우리가 언제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잠재의식은 우리의 일부이며,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우리 영혼의 마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른바 장막의 그 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 의식과 더불어 잠재의식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잠재의식을 지나치게 억압하여 오직 현재 의식만이 가슴과 머리를 지배하게 하는 대신, 잠재의식이 확대되고 그 눈부신 위력이 밖으로 드러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나는 마지막 심장 발작이 끝났을 때,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육체적 제약으로부터 해방을 갈망했고, 그것이 다가왔을 때 대단히 기뻐했다는 것을 말해둔다.



나의 영혼은 지친 몸으로부터 분리되었기 때문에 아주 쉽게 영체와 하나가 되었다. 마치 내가 항상 영체였던 것처럼 느껴졌다. 영체의 가벼움과 자유로움, 그리고 무거운 육신을 벗어 던진 천상의 환희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얼마나 안락한지 너는 모를 것이다. 어떠한 억압이나 장애나 고통도 없는, 전에 온 적이 있는 이곳에 다시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기차를 타거나 걸을 필요 없이 어느 때나 어느 곳으로든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니 얼마나 멋지냐! 이곳에는 자유로운 통행을 막는 장애도 방해물도 벽도 없기 때문에 힘이 넘치는 소년으로 돌아간 것보다 더 즐거웠다. 어떤 곳에 가고 싶다고 마음만 먹으면 즉시 그것에 도착하게 된다. 영혼만이 행할 수 있는 이런 능력은 거의 신의 능력과 비슷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나느라 바빴는데 그러던 중 환영의 미소를 지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던 프레처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소년 시절에 그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뒤로 프레처는 진정으로 훌륭한 영혼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멋진 대화를 나누었고, 그는 아직도 네가 우리의 일을 도와준 것에 대해 기억을 하고 있다. 특히 곤란을 무릅쓰고 세상을 향해 그와 나의 사명을 말해준 너의 용기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는 이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의 임무는 완수되었고, 그는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지상의 존재로 돌아갈 것인지 선택권을 가지고 있으나 그는 아직 최종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그는 지상의 또 다른 사람에게 지도령이 되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삶은 네 차원의 삶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우리 역시 이곳에 있으며, 우리가 다른 어떤 다른 세계로 떨어져 나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워싱턴의 너의 거실에 있을 때처럼 마찬가지로 지금 이순간도 너와 함께 있다. 우리는 여기에 그대로 존재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강조되어야 할 점이다. 우리도 너처럼 지구에 속해있다.



(일반적으로 영계라고 부르는 차원은 지구의 영역에 속하며, 그 영역에 존재하는 영혼들은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환생을 거듭한다. 그러나 그 영혼들이 더 고차원의 영역으로 진보하게 되면 지구를 벗어나 우주적인 삶을 누리게 된다.- 역주)



다만 우리는 물질적인 육체를 버렸기 때문에 움직임을 방해하는 기본적인 물리적 법칙에 얽매이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영혼이고 그래서 무생물이나 생물도 통과해서 지나갈 수 있다. 물질은 생각의 구체화이며, 우리는 그것이 형태라기 보다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장애물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는 생각의 틀에서 지어진 집에서 살거나, 냇가의 양지바른 언덕에서 살거나, 우리가 원하는 곳 어디에서든 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전적으로 무의미하다. 우리에게는 주택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언제라도 원하는 때에 어디라도 갈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마구잡이로 몰려다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빨리 자신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에 전념한다.



성장은 그곳만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목적 없이 여기 저기 배회하는 한 성장하지 못한다. 이곳에서의 우리의 목적은 이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이 우리 각자가 하기 바라는 것을 하는 것이다. 서로 동일한 영혼은 하나도 없으며, 우리의 임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인간의 개성과 마찬가지로 다양화되어 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개성으로 자신의 영혼을 가꾸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실재로 신을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의 은혜로운 현존을 확실히 깨닫고 있다.이곳에서 약간이라도 진보를 한 영혼치고 신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영혼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신이며, 신이 우리인 것이다. 우리가 곧 신이기 때문에 신에게서 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이 신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한 손의 손가락들이 육체적 마음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제각각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이다. 너와 나 그리고 이웃과 적들과 신이 모두 하나이다. 분할도 없고 분리도 없다. 우리는 신의 가슴 안에 존재하며, 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이므로, 자기 자신의 구원만이 아니라 적에 대한 구원에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신의 협력자라고 말할 때는, 손가락이나 발가락처럼 신이 우리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먼저 모든 존재를 하나로 묶는 영속하는 힘인 신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이 힘은 아주 강력하여 이 힘으로부터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생존할 수가 없다. 이 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마치 한눈을 감고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힘은 우주를 하나로 묶는 접착제와 같은 것이며, 우주를 완전한 원자로 융합하는 힘이다.



일부 사람들이 우리를 영혼이 아니라 힘이라고 생각하여 왔듯이, 신도 다름 아닌 엄청난 강도의 오직 선한 힘일 뿐이다. 어떻게 악한 힘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을 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힘이나 신성은 우주의 진리이며, 우주의 선이며, 우주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이런 힘의 원심력이 미치는 범위 내에도 부조화와 탐욕과 사악함의 여지는 남아 있다.



이 원심력과 부조화를 이루는 모든 생명체 속에는 어떤 사악함이 내재되어 있다. 이에 대한 유일한 치료 방법은 완전한 조화 속으로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악도, 탐욕도 질병도, 부조화도 사라진다. 우리는 이런 간단한 진리를 배우기 위해서 몇 번이고 이곳으로 돌아온다.



부조화는 우리의 모든 악의 근원이다. 장미를 집어 들어 가까이서 관찰해보라. 잎과 줄기와 꽃잎, 그 완벽함에 절로 감탄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잠깐 기다려라. 무엇인가 빠진 것은 없는가? 혹시 잎 하나가 떨어졌고, 꽃잎 하나는 너무 뒤틀려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꽃이나 바람이나 기타 꽃의 완전한 대칭을 해치는 어떤 외부의 영향에 대해서 비난을 하는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신은 모든 장미가 따라야 할 모범을 창조했다. 그러므로 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가끔은 모범이 잘못되고 실수가 발생한다고 해서 신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신, 혹은 이 전지전능한 힘은 인간이 원하는 대로 인간의 모범을 내려주었다. 각 부분은 다른 부분들과 정확히 들어맞았고, 그래서 전체는 완벽했다.



지구에 처음으로 나타난 육체적 인간은 흠이 없는 완전한 존재였다. 그를 아담이라고 부르는 데, 이름이 무엇이든 상관없지만, 그는 우리가 신이라고 중심적 신의 창조물이었다. 이 사람은 원심력에 의해 전달된 생각의 틀이었다. 그러나 남녀의 다른 인간들이 출현함에 따라 다툼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영혼들은 인간의 육체 속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서로 우호적으로 살아왔으나 육체적 인간이 되고 나서는 서로 더 많은 땅을 가지기 위해서 싸웠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지상에 있는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은 모든 영혼들이 쓰고 남을 정도로 풍부하게 존재했다. 이런 분쟁이 추한 생각의 틀을 만들었고, 생각은 곧 물질이기 때문에 이 때부터 인간의 기본 구조에 오류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발가락이 없고, 머리가 기형이며,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태어나게 되었으며, 이런 불구의 몸을 가진 영혼들은 육체로의 환생을 거듭했다. 마침내 신은 우리가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는 완전한 인간의 전형을 다시 이 세상에 보냈다. 결점이 없는 완전한 생각의 틀, 완전한 인간이 다시 나타나자, 일부 현명한 사람들은 예수를 따르며 하느님의 아들의 완전함을 경배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너도 알다시피, 그를 조롱하며 야유를 보냈고 그들 자신의 욕심과 탐욕과 사악한 방법들을 동원해서 이 완전한 틀을 제거할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한 우리는 사고의 완전한 틀을 찾기를 계속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중심적 힘, 즉 사랑의 힘에 한데 묶는 강한 결합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그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너 자신을 이 전능한 힘에 조화되도록 하라.



신은 진리이며 에너지다



신은 우주의 근원이며 모든 힘은 신으로부터 나온다. 신은 진리이며 에너지이다. 신은 물질임과 동시에 영혼이며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신은 영원불멸 그 자체이며, 전지 전능하다. 그리고 우리가 깨닫고 있던 못 깨닫고 있던 신은 우리 존재의 정수이며 신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한다.



신의 전체적인 조화가 우주를 하나로 융합시켰으며 모든 것은 그 속에 있고 그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신의 완전한 존재함이 없다면 우주는 즉시 분해되어 버릴 것이다. 신은 존재하신다! 하느님은 존재하신다! 그러나 종교에서 이야기 하는 오직 하나인 인격적인 유일신은 아니다. 신은 너무 장대하기 때문에 우리가 신을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신이 없다면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하며 전체의 조화도 없다. 신은 생명 그 자체이며 신 없이는 어떤 생명이나 존재도 지속되지 못한다. 그가 우리의 일부이듯이 우리도 신의 일부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극에 대한 반응과 행동의 틀에 있어서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신의 협력자로써 신과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완전성을 획득할 수 있을 때까지 수많은 지상으로의 환생을 통해서 진화해 나가야만 한다.



완전한 것만이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며, 불완전한 상태에서는 우주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따라서 우리는 거친 모서리를 깎아 내고 전체의 완전한 조각이 되어 신에게 꼭 들어 맞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육체로의 환생을 거듭하는 것이다.



신은 완전한 앎이다. 신은 기도를 들을 뿐만 아니라 아직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소망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신은 최고의 진리이며 전지한 지혜이다. 만일 신이 없다면 무질서와 암흑만이 존재할 것이다. 신은 빛이며 진리이며 사랑이다. 신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의 창조주이며 아버지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사랑과 신뢰로 신에게 다가가면, 신은 현명한 부모들이 늘 그러하듯이 우리의 가장 큰 소망들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다만 그 소망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닐 경우에 한하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기도가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신뢰와 사랑으로부터 우러나온 기도만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신은 우리를 치유하고, 사랑하고, 위로해준다. 신은 일년 내내 밤이나 낮이나 우리를 굽어보고 계신다. 신은 우주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영혼으로 깨어날 때



먼저 늙고 병든 몸을 버린 영혼이 자연스럽게 영계로 오는 변화 과정을 살펴보자. 이런 영혼은 고통이나 놀라움 없이 육신을 벗어나 쉽게 영계로 미끌어지듯 들어온다. 그는 좀 전까지는 육체라는 고통스러운 옷을 입고 지상에 있었으나, 바로 다음 순간 천상의 옷을 입고 영계에 존재한다. 이것이 환상처럼 들리겠지만 결코 환상이 아니다. 만일 그 변화가 준비되어 온 것이라면 실제로 그런 매끄러운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순수한 아름다움과 노래가 있는 영계에서 잠을 깬다. 이곳에 있는 나무는 실체이다. 네가 육체 상태에서 보던 나무의 그림자가 아니다. 꽃들도 순수한 생각의 형태이기 때문에 육체적 인간이 지상에서 보던 그 어느 꽃보다도 아름답다. 새들과, 동물과, 영혼들, 그리고 많은 저택들까지 이곳에 있는 것은 모두 완벽하다. 그것들은 생각만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을 깨자마자 우리는 꿈과 같은 이런 황홀함을 맨 처음 보게 된다. 이것이 진짜일까? 이것이 있을 법한 일일까? 물론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사랑의 힘인 신에 의해서는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는 생각만 하면 모든 것이 즉시 이루어진다. 다만 다른 육체로의 환생만은 예외인데, 이것은 우리가 즉흥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환생을 결정하는 것은 일종의 권리인데 그 권리는 오랜 준비와 영적 진화를 통해서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게 되어 본인이 원할 경우에 빨리 육체적 형태로 환생하는 권리가 주어진다. 자,우리가 늙은 육체에 싫증났거나, 영계에서 살기를 갈망했다고 가정해보자. 잠시동안 쉬면서 옛날 친구들과의 재회를 즐길 것이다.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품성의 수준에 따라서 혼란스러워 하기도 하고 편안해 하기도 하며, 행복해 하기도 하고 불안해 하기도 한다. 우리는 영혼을 엄습한 갑작스러운 변화에 조금씩 적응해 가면서 시간이 몹시 빨리 흐른다는 것과 신의 일에 열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야말로 우리의 진짜 품성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다.



축제와 쾌락의 일상으로 뛰어들 것인지, 아니면 영적 측면을 개발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후자를 택할 경우, 그것이 자신의 성장과 진보의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전체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영적 성장을 바라는 목적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한다는 의도도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전에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라. 우리 각자가 깨달음과 완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성장한 만큼 인류 전체가 진화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빨리 진화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도 진보를 위한 유효한 수단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주어야만 한다. 만일 다른 사람을 해친 끔찍한 죄로 오염되어 있는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은 오랫동안 방치된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만일 이런 의도적인 휴식 기간을 거치지 않으면 사악함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지상에 남겨둔 그런 괴로움을 다시 경험하게 된다. 이곳에서는 '잊혀지지 않는 괴로운 생각'이라고 하지 않고 괴로움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생각 그 자체가 실제로 괴로움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영혼은 자신이 영계로 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지상에서 했던 것처럼 주변을 배회하면서 타인들이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여 주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때로는 지상에 남겨둔 재산과 소유물들에 대한 미련 때문에 영계에 안주하지 못하고 지상을 배회하기도 한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영혼에게는 이곳에서 우리가 돕는 것보다는 아직 육체 상태로 있는 너희들의 기도가 도움이 된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라.



사고나 전쟁 때문에 갑자기 이곳으로 온 영혼들은, 그들이 영계에 와 있다는 것과 이제 더 이상 돈을 벌 수도 없고, 공놀이도 할 수 없으며, 그들이 지상에서 해 오던 익숙한 것들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충격을 받는다. 사실, 이점이 문제인데, 우리는 그들에게 이곳이 그들이 어려서부터 들은 하늘나라라는 것을 처음에는 확신 시킬 수가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곳에 대해 점진적으로 조금씩 말해준다. 그러면 그들은 이곳의 모든 것이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며, 다만 생각의 틀의 생생한 작용으로 인해 모든 것이 지상의 것보다 빛나고 찬란한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새로 오는 영혼을 사랑을 가지고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만일 그가 지상에서 공부나 명상을 통해 영계에 대해 준비해 오지 않았다면 처음에는 무척 놀란다.



그는 시장기를 느끼게 되고 우리는 음식을 준다. 이것 역시 단지 생각일 뿐 이지만, 그가 이런 식으로 지상에서 물질적 육체를 지탱해 왔듯이 그에게는 현실인 것이다. 그는 목이 말라 하고 우리는 그에게 물을 준다. 그는 점차 영혼으로의 변화를 진행해 가는데, 아직은 자신에게 더 이상 음식이나 물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익숙하지 못하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는다. 어떤 이는 아직 육체 상태에서의 인간으로 살아왔고,어떤 이는 이곳에 와 있으며, 어떤 이는 이미 진화해서 더 높은 차원으로 갔거나 아니면 지상으로 돌아가 다른 육체로 환생한 경우도 있다. 우리는 그에게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가 이곳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그 사이에 자신의 모든 소망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어떤 이는 시골길을 걷다가 자연의 찬란한 색과 무성한 잎을 보고는 경외를 느낄 것이다. 다른 이는 대도시에 가고 싶어 할 수도 있는데, 원하는 바로 그 순간 대도시에 이미 도착하여 소음 속에서 마치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분주하게 사람들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 다닌다. 당분간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둔다. 모든 것이 그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그들의 부름에 응할 수 있는 곳에 있으며, 머지 않아 그들이 이런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현재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만일 그들이 학구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면 공부하기를 원할 것이고, 이런 영혼은 우리와 같이 지내게 된다. 또 다른 이들은 지구와 연락을 취하는 그룹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특수한 경우를 보자. 갑작스러운 병으로 이곳으로 오게 된 사람이 깨어나 영혼의 눈을 떴을 때, 시내가 흐르고 나무와 숲이 우거진 숲을 보게 된다. 그것들이 매우 기분 좋게 보이기는 하지만, 그는 자신이 병을 앓아 왔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시험 삼아 시냇물 쪽으로 몇 걸음 걷다가, 자신이 힘들이지 않고 고통도 없이 걷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 이곳에도 좋은 낚시터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언덕을 산책하면서 시냇물이 어떻게 이렇게 맑고 깨끗할 수 있는지 경탄한다. 반짝이는 시냇물은 잔물결을 일으키며 흐르고, 물고기들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 위로 뛰어 올랐다가 사라진다.



그가 낚시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즉시 그의 손에는 낚시대가 나타난다. 그가 낚싯줄을 드리우자 마자 커다란 철갑상어가 낚인다. 그는 의기 양양해져서 집에 돌아가 아이들에게 자신이 낚은 물고기를 자랑하고 싶어 안절부절 하면서도, 낚시질이 실증 날 때까지 물고기를 계속해서 낚는다.



그러나 이미 자신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 주고도 남을 정도의 물고기를 잡았다는 것을 알고 차를 어디에 세워 두었던가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때 자신이 전혀 낮선 곳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그가 어떻게 이곳에 왔는가? 언제 왔는가? 만일 그가 갓 잡은 물고기를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없다면 한바탕의 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스트랄체는 물질적 육체와 마찬가지로 모든 감각을 지니고 있고 오히려 몇 가지 감각은 육체 상태에도 없는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자, 이제 난관을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하는가! 차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고, 사람의 그림자는 보지도 못했다.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신중히 생각한다.



날은 점차 어두워지고 가족들이 자신을 염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그는 몹시 집에 가고 싶어진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집에 도착하게 되고, 낮선 사람들이 그의 몸에 몸을 구부리는 것을 본다. 도대체 그들이 무엇을 하는 것일까? 그에게 약을 먹이는 것일까? 아니다.



이곳은 병실이 아니라 시체 보관소이다.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그는 집으로 뛰어 들어가고 거기서 아내가 상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본다. 사람들이 목소리를 낮추며 오고 간다. 그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으로 봐서 분명히 뭔가 큰 착오가 생긴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들에게 자신이 잡은 기막힌 물고기를 보여주기 위해 바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출입구에 서 있는 그를 쳐다보는 듯 하더니 말을 하는 대신 울기 시작한다. '여보,무슨 일이야?' 하고 그가 묻는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못한다. '이봐, 어떻게 된 거야?' 하고 다그치지만 대답이 없다.



그는 물고기를 손에서 떨어뜨리고 울적해져서 힘 없이 부엌 탁자에 기댄다. 그는 '나는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라고 소리치자 그는 다시 시냇가의 그 초원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곳에서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는 그들에게 자신의 차를 잃어버렸다고 말하자 그들 중 한 명이 그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차가 필요 없다고 말해 준다.



그는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혼미 속으로 빠져든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 노인이 말한다. '아들아, 이제 우리가 학교에 갈 시간이구나' '학교라니요? 그는 소리친다. '어르신 저는 오래 전에 학교를 마쳤습니다.' '얘야, 그러나 이것은 다른 종류의 학교란다.' 하고 노인은 말한다. 이 학교는 우리가 기억하는 방법, 잊는 방법, 그리고 배우지도 않고 무엇을 알 수 있는 진정한 학교란다.



이 사람은 어리둥절하지만 노인을 따라 학교에 간다. 거기서 그는 서너 명의 낮선 사람들이 교실 같은 곳에 앉아 있는 것을 본다. 그들 중 한명은 라이온스 클럽에서 알던 사람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 사람은 한두 전에 죽었기 때문에 그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고, 즉 자신이 잘못 보았다고 생각한다. 수업이 시작되고 그 노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당신들 모두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변호사처럼 보이는 신참자가 손을 들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아니오, 모릅니다. 왜 내가 이곳에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그들의 눈빛에서 그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 역시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지금은 그 해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 노인은 천천히 말을 계속한다. '아들아 잘 들어라. 이것은 이제껏 너희가 들어본 적이 없는 가장 중요한 수업중의 하나이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가 영계에 새로 들어온 제임스(낚시하던 사람)를 환영합시다. 비록 그가 아직 변화에 완전히 적응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런 혼란은 너희 모두가 최근에 겪은 것들이다. 제임스, 우리는 너의 손발보다도 더 너와 가깝단다. 그러므로 당혹하여 외롭다는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단지 당분간은 너의 가족과 친구들이 너를 보거든 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것만 받아들여라.



물론 너는 그들을 보고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이것은 너희들이 그들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거 한다. 왜냐하면 지금 너희들의 능력은 육체 상태의 능력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그들이 너를 엷은 공기로만 보거나 땅 밑에 누워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가!



대 저택을 원하는 사람은 그것이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영혼을 위한 마음의 양식을 원하는 사람들은 넘치도록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이 점에 있어서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각 영혼이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 어제 낚시하던 사람 이야기를 해보자. 낚시는 그 사람이 육체적 인간으로 살 때의 취미였고, 그래서 여기 오기 전에 멋진 장소에서 신나게 낚시 하는 것을 꿈꿨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가 물고기를 요리하는 것을 도와주지 않고 심지어 말조차 하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는 기가 꺽였다. 육체 상태의 인간들은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와 함께 기쁨을 나눌 수가 없었다. 잠시 뒤 그의 새로운 삶이 전의 육체적 삶보다 더 실제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영계의 확고한 법칙 때문에 그가 그들에게 의의를 제기한다거나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이곳도 일하는 세계이며 게으름뱅이들은 스스로 위험을 무릅써야만 한다. 아무도 그들에게 일하라고 강요하진 않지만 성장하고 진보하고 발전하고 미성숙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들 자신의 고차원의 자아가 휴식을 취하라고 말할 때까지 노력을 계속 해야만 한다.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영혼



평소에 내세를 믿지 않고, 그래서 내세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고, 그래서 내세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고 내세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적응하려는 노력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곳에 올 때 가장 힘든 적응 과정을 거치게 된다. 예를 들면, 평생 동안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해 온 확고한 무신론자도 이곳에서 잠을 깨게 된다.



처음에는 놀라고 다음에는 분개한다. 그는 이것이 환상이며 그를 도우려고 하는 영혼들을 자신의 상상의 산물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씩 그는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마지 못해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이 진전됨에 따라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배우기를 열망한다.



신이나 내세 같은 것은 없다고 확신했던 사람, 그래서 현세에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혹하게 대했으며, 남을 돕거나 훌륭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가 영계에 온 순간 미친 듯이 화를 내고 광포해진다. 왜냐하면 자기 스스로 만든 상황, 즉 탐욕스런 영혼들에게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탐욕스런 영혼들도 같은 상황에 있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만든 지옥으로 그를 기쁘게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는 충격을 받는다. 자신은 자긍심 있고, 학식이 있으며, 세련된 사람이기 때문에 악마 같고 버릇 없는 존재들과 사귀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다만 남에 대한 배려 없이 자기 자신만을 생각했을 뿐이다. 그는 그 사악한 집단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그들이 그를 둘러 싼다.



그가 살려 달라고 소리치지만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사악한 집단에 들어올 수 있는 선한 영혼은 없다. 그는 자신의 무덤을 팠었고, 말하자면 당분간 누워 있도록 방치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제껏 얼마나 바보처럼 살았는지 알고는 몹시 비참해진다. 그러나 자신이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피해야 하는지는 아직 모른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죄 많은 삶을 가슴 깊이 후회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소중한 특권을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으로 인해 낭비하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그 상태로 놓아둔다. 그가 충분히 후회를 한 뒤에야 그를 둘러 싼 완고한 영혼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 뒤 오래 동안 그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찾는다.



그가 혼자의 힘만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이것은 때때로 길고 지루한 과정이 된다. 이곳에는 그가 원하면 언제라도 기꺼이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많은 영혼들이 있기는 하지만, 오직 그 자신만이 자신의 잘못을 평가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사고나 살인이나 전쟁의 희생자와 같이 전혀 자신들의 잘못이 없이 갑작스런 죽음을 당해서 이곳에 온 영혼들에 대해 말하겠다. 그들은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과 지상의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처음에는 놀란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의 존재를 부정해 온 사람들이 아니라면 너무 늦지 않게 적응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병을 앓으면서 죽음을 가깝게 생각한 사람들보다는 때때로 잠을 더 오래 잔다. 그러나 그들이 큰 잘못을 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그들이 적응하도록 돕는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계를 빨리 이해하기 시작하고, 때때로 다른 상태의 영혼보다 이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를 더 열망하기도 한다.



강한 분노에 사로잡힌 영혼은 이 세계에 적응하기가 더 어렵다. 전쟁에 참가했던 것을 몹시 원망하고, 그들이 인간일 때 가졌던 육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격한 분노를 터뜨리는 병사들이 이런 경우이다. 하나 확실히 해둘 것은 모든 병사나 군인이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경우는 몹시 원망을 느끼는 영혼에 한한다.



즉 그들은 인류의 자유를 위해서 자진해서 생명을 버렸던 것도 아니며, 그 전쟁이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있는 병사들이다. 그들은 그곳에서도 반항적이었지만, 이곳의 친절한 영혼들이 그들의 반항적 태도가 영혼의 발전에 해롭다는 것을 확신 시키지 못하면 그들의 반항적 태도는 계속된다. 자기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감정적인 혼란과 원망에 싸여 산다는 것은 쓸데 없는 짓이다.



이제 스스로를 파괴하는 내부적 동요 상태로부터 이곳에 도착한 영혼들에 대해 말하겠다. 즉 불행한 자살자들에 대해 말하겠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마음대로 할 수 없듯이, 자신의 목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신성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순간적인 광기로 인해 고통은 받았지만, 곧 자살을 유발한 일시적인 정신이상을 극복하게 된다. 그들이 깨어나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일시적인 광기를 일으킨 당신의 상황을 이해함에 따라 사고로 죽어서 이곳에 온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빨리 이곳에 적응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은 좀더 불행한 경우인데, 그들은 정신이 멀쩡한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자살을 계획했고, 그 자살로 자신의 영혼까지 파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영혼의 파괴에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문제는 그곳에서 보다 이곳에서 훨씬 심각하다. 왜냐하면 문제는 하나도 해결되지 않고 언젠가는 이루어질 지상으로의 환생 때까지 문제가 연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통 받는 영혼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바로 그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끊임 없이 자살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살아 생전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자신에 대한 분노 속에서 살게 된다. 왜냐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이곳보다 지상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너도 알다시피 이곳에는 육체 상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이곳 영계는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기 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그가 다시 물질적인 육체로 환생할 때 어떤 추가적인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지를 배우기 위해 그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회고하고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이 진행된다.



물론 살인자 역시 같은 고통을 당하는데, 이미 이곳에 와 있는 희생자를 다시 되살릴 수 없다는 두려움에 직면한다. 물질적 육체의 상태에서 정당한 절차를 통해 자신들의 카르마를 청산할 수 있는 희생자들의 기회를 박탈했다는 괴로움을 겪게 된다.



다름 아닌 신의 작품인 사람을 해친 죄를 속죄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없다. 그러므로 그 살인자는 환생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자신이 저지른 죄를 물질 세계에서 속죄하겠다는 명백한 각오를 지닐 때까지는 이곳에서 비참한 기간을 보내게 된다.



자, 이제 병들고 그래서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죽음을 갈망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이 영혼들은 이곳에서 즐겁고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에 보통 가장 가깝게 이곳에 적응을 한다. 나는 확실히 이런 영혼들 중 하나였다.



비록 그곳에 있을 때, 영혼이 죽음 뒤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자 했었지만 나는 병든 몸 때문에 고통으로 괴로워했었고, 그래서 이런 해방을 갈망했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는 매 순간이 기쁨으로 가득하다. 이곳으로 무난하게 건너 온 사람들은 즐겁게 다른 사람들을 돌본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슴은 동료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고, 동료를 돕는 것이 그들에게는 전혀 괴로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영혼은 어머니도 없이 혼자서 이곳에서 이곳에 온 아기를 돌보고 다른 영혼은 새로 온 사람 중에 이곳에 대한 정신적 영적 적응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다.



또 다른 영혼들은 지상에 남겨진 사별한 가족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사랑의 생각을 전달하고 잠시라도 그들의 슬픔을 덜어주려고 한다.



다음으로 자신이 엉뚱한 장소와 시간 속에 있다는 것은 알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며 이곳이 어디인지 이해할 수 없는 유형의 사람에 대해서 말해보자.



그는 소위 말하는 내세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으며 내세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는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이내 호기심이 생겨서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이곳이 어디 입니까?' '왜 내가 불러도 사람들이 대답하지 않나요?'



내세에 대한 이런 생각들, 그가 언제나 존재해 온 이곳에서는 당연한 생각이지만, 때문에 그는 당혹해 하고 그래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서 여기 저기 뛰어 다닌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그가 육체 상태로 존재할 때, 이미 오래 전에 그의 내부에서 해답을 찾았어야 한다.



만일 그가 기꺼이 발전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점차 낙담하게 될 것이다. 그는 과거에 했던 것처럼 성공과 돈벌이를 위한 충동에 따르고 싶어한다. 잠시 후 이곳의 나이 든 영혼들이 그를 떠 맡아서 점차 그를 돌보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를 데리고 여기 저기 보여주면서 아직도 물질적 세상에 미련을 두고 있는 과거의 에고를 버리면, 그에게 얼마나 놀랍고 새로운 미래가 기다리는지를 말해준다. 때때로 이런 방법이 지상의 인간들에게 집착하는 것보다 발전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가 이해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는 자신을 지상에 결박해 두었던 족쇄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자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고 이곳에서 사용하는 방법들, 즉 침묵 속의 자기 성찰,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것의 가치, 명상, 그리고 전 과거 생에 대한 사려 깊은 회고들을 시작한다.



그가 과거의 잘못들을 뇌우치고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는 결심에 도달할 때까지 이런 과정이 지속된다. 만일 그가 이곳에서의 교훈들을 잘 배웠다는 것을 확인하기를 열망한다면, 다른 태아 속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가능한 기회를 찾아야 한다.



그의 차례가 오면 그는 자신에게 가장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어머니를 선택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극복해야만 하는 문제를 부여해 줄 어머니를 선택하게 된다.



육신으로 환생하는 영혼



보통은 영혼이 카르마의 빛을 청산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낸 뒤에야 환생의 기회가 온다. 카르마의 빛은 청산되어야만 하며, 그 카르마의 빛이야말로 영혼의 더 높은 발전을 위해서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를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한 번 이 결정이 내려지면, 그는 자신에게 적절한 시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상황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 시험은 그의 개성과 특성을 개발하여 카르마의 빛을 청산하고 진보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만일 인내가 필요한 경우라면 그는 자신이 성급함이 가장 자주 시험 받는 상황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배워야 할 상황이라면 그는 사랑이 별로 필요하지 않는 상황, 그래서 사랑을 주는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상대로 자신의 사랑에 대한 용기를 시험할 수 있는 상황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또한 그가 자신의 부모를 선택할 권리를 얻었다면 부모가 될 영혼들을 둘러보기 시작할 것이다. 이 영혼들은 아마도 육체 상태의 전생들을 통해서 알았던 영혼들이며,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카르마의 유대를 맺은 영혼들일 것이다.



그는 임신하여 출산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번 환생에서 원하는 성별을 물색하고 또 만일 높은 정신적 단계에 있는 영혼이라면 교육적 기회까지 살피게 될 것이다.



물질적 육체로 환생하려는 영혼이 그가 선호하는 상황에 대한 최종 결정을 할 때는 이곳에서 우스개 말로 천상의 컴퓨터라고 부르는 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이것은 일종의 자료 보관 시스템인데 너무 복잡해서 어리둥절하고 놀라서 눈만 크게 뜬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시스템이 아주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항상 많은 영혼들이 가장 적합한 특정 부모에게서 태어나기를 동시에 바라기 때문이다. 만일 너무 많은 경쟁이 벌어지면 영혼들의 다양한 자격들이 여기에 기록으로 짜 맞추어진 다음, 자동으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할 가장 적합한 영혼이 선택된다.



물질 세계의 컴퓨터에 대한 아이디어도 여기서 이 시스템을 조작하던 사람을 통하여 그곳으로 전해진 것이다. 에디슨이나 소위 말하는 발명가들은 이곳의 무한한 지식의 원천을 이용한 사람들이다. 에디슨은 이곳에서 통용되는 원리를 물질적 형태로 지상에 제공한 것이다.



즉, 인간에게 사용되기 위해서 항상 그곳에 있는 자연적 요소를 이용한 것이다. 최종 지명을 받은 영혼은 자신이 기꺼이 물질적 육체로 환생할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종종 그의 부모 곁을 맴돈다.



그러나 때가 되어 육체적 발육이 시작되면 그는 그 육체의 태아로 들어간다. 그는 보통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에 그 육체로 들어가지만 때에 따라서는 약간 전후가 될 수도 있다. 만일 그가 너무 망설인다면 아기는 살지 못한다. 그 육체가 완전하지 않은 경우는 영혼이 그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다시 올바른 운송수단을 찾기 시작하거나 만일 특별한 부모와 살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케네디의 어린 영혼이 이런 경우인데, 그의 육체가 생명을 지탱하기에 부적합해졌을 때, 이전의 친척들을 통해 다시 태어나려고 하였으나 그 기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직 이곳에 있으며 이제는 자주 그의 아버지와 삼촌과 함께 지내고 있다.



이제 너를 곤혹하게 하는 천상의 컴퓨터에 대해서 말해보자. 영혼이 환생을 원할 때는, 육체로의 환생을 위한 도구로서 이 특별한 운송 수단(어머니)을 선택한 이유와 자신이 그 부모에게 적합하다는 자격을 천상의 컴퓨터에 등록한다.



각 영혼의 이런 자유로운 틀은 비슷한 유형의 부모나 환경을 원하는 여러 영혼들의 일반적인 생각의 틀 속에 저절로 입력된다. 이런 자료들이 생각의 틀 속에 입력되면, 자동적으로 천상의 컴퓨터가 작동하여 그런 특별한 지구의 환경에 가장 적합한 영혼을 선정하게 되고, 그 영혼은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것을 자동으로 인식하게 된다.



동시에 다른 영혼들은 자신들의 카르마 빚을 청산하기 위한 특별한 지상의 조건과 환경을 더 잘 충족시켜줄 다른 운송 수단을 찾아보아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정상적인 아이로 태어나기를 원하는 영혼만큼이나 많은 수의 영혼들이 불구의 몸을 가진 아이로 태어나기를 원한다.



이곳에서 알게 된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즉, 육체적 장애가 크면 클수록 영혼은 카르마의 빚을 빨리 청산하고 더 빨리 영적 성장을 이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성공적으로 이겨내기만 한다면 인생의 장애물들은 오히려 영적 진보의 디딤돌이 된다. 그래서 즐겁게 육체적 장애를 맞아들이고 극복하는 영혼은, 지구의 기준으로 부족함이 없이 살아가는 영혼보다 훨씬 더 빨리 성장하게 된다. 선천적이거나 어릴 때부터 시작된 정신적 질병의 경우에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불행이다.



이 영혼들은 그들을 뒤로 잡아 끄는 카르마 빚을 청산하려고 필사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영적으로 진보하기 위해서 그러한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것이다. 때때로 그들은 과거 생에서 저지른 죄를 속죄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런 병든 몸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즉 그들이 과거 생의 심각한 죄에 대해서 진정으로 후회하는 경우에 자발적으로 그런 육체를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고차원의 힘이 그 영혼에게 부여한 임무다. 고차원의 힘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병든 육체를 지정하여 주고 그 영혼이 과거의 잘못을 속죄할 수 있도록 고통과 고난을 겪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 그 영혼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의사는 이런 경우의 뇌 손상이 태아의 기형이나 출생시의 사고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그러나 출생 시점을 전후해서 그 육체로 들어가는 영혼은 그 육체의 결함을 알고 있으며, 일부로 병든 몸을 떠맡음으로써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려는 것이다.



어린이나 젊은이의 심각한 사고나 상처는 간혹 전혀 예상 밖이며 미리 방지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지구상의 환경은 물질적 육체 속의 영혼의 통제 권한 밖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많은 경우에 영혼은 무의식적으로 속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발적으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허용한다. 이렇게 해서 과거의 카르마 빚을 청산할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영혼은 과거 생에서 선택해 온 그 성별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러나 때때로 영혼은 반대의 성 역할을 경험함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자질을 배우기 위해 반대의 성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잔인하게 살아온 사람은 다음의 육체적인 삶에서 여자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래서 온순함이라는 자질이 요구되는 상황을 경험하는 것이다. 용기! 수백 번을 겁 많은 여자로 환생했던 영혼은 그녀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남자의 육체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이제, 중풍을 앓고 있으며, 현재의 삶에서 별로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혹을 품고 있는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



우리는 아카식 레코드에서 그녀가 고대 로마에서 살았으며, 그녀는 다른 사람이 공포로 떠는 것을 즐긴 잔인한 병사였던 사실을 알았다. 그 병사는 불쌍한 기독교인들이 덜덜 떠는 것을 보기 위해 그들에게 야수를 풀어 놓곤 했다.



이 영혼은 과거 생을 속죄하기 위해서 결국 병약하고 겁 많은 여자로 환생했으며, 현생에서는 그녀가 중풍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괄목할만한 영적 성장을 성취할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 받기를 원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관대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비록 사람들은 그의 목에 있는 흉터 자국 때문에 섬짓하기는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기 때문에 그의 흉터를 못 본체 해준다.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 그런 감내하기 힘든 십자가를 지어야 하다니 얼마나 불쌍한가 하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들이 옳기는 하지만 그 역시 이런 장애를 스스로 선택할 만큼 강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 생에서 그는 한 아이의 얼굴과 목을 심하게 구타해서 뼈를 부러뜨리고 결국 그 아이를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성경에서 눈에는 눈으로라고 하듯이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우리의 조물주나 공동의 창조자와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빚이 청산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곳곳에 스며있는 영성



나는 어딘가에 있을 지혜의 사원을 찾기 시작했다. 스승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기쁘게 맞아 주었고 거의 75년 전에 중단했던 수업은 다시 시작했다. 스승은 명상에 대해서 말하였고, 물질적 육체 상태에서 만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명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나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왜냐하면 명상은 신의 마음으로 다가가기 위한 매혹적인 연결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이 육체 상태로 있을 때 매일 명상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대답이다.



인간이 지상에서 배우는 것은 여기서도 중요하며 지상에서 배운 것이 이곳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비록 간난 아이일지라도 그곳에서 명상을 계속하면 창조주와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 이 일(공동저술)이 끝나면 나는 다른 임무가 시작되는데 이곳으로 오는 새로운 영혼들의 지도자로서 스승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그곳에 있을 때, 진실에 대한 믿음을 잊지 않았고, 매일 명상을 계속했고, 강의와 모임 등에서 진실을 널리 퍼뜨린 것에 대한 보상의 일부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다시 영격이 낮은 초보자로 이곳으로 돌아왔을 것이며 진보하기 위해서 다시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열린 문의 이쪽에는 시간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의 사원은 시작된 이래로 현재와 같은 형태로 존재해 왔으며 그것을 모방한 것들이 고대 테배와 아테네에 있었다. 그 사원들은 지혜의 사원에 대한 충분한 기억을 간직한 채로 물질적 육체로 환생한 나이든 영혼들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신성한 사고의 틀의 복제품을 창조하려고 시도했었다.



이곳 지혜의 사원에서의 교훈은 순수한 정신적인 것이지만, 영성이 그 가르침의 모든 부분에 골고루 스며있기 때문에, 마치 지상에서 가장 훌륭한 영적 설교를 듣는 것처럼 지혜의 사원의 가르침도 쉽게 피부에 와 닿는다. 신의 영광과 우주의 신비로 영혼을 가득 채워가는 그 정신적 환희를 도저히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만일 원한다면 한 번 상상해 보라. 나무들의 작은 무리가 풀이 무성한 언덕의 한쪽에 숨겨져 있고, 그 나무 사이로 햇빛이 비치자 잎들은 숲 속의 빈터에 격자 무늬의 그림자를 만든다. 여기가 바로 지혜의 사원이며, 한적하고 고요하며, 햇빛과 그림자로 만들어진 신의 의상 속에 있는 집이다.



우리가 순수한 사색의 수업을 시작하면 새들도 침묵을 지키고, 우리가 명상에 잠기면 새들도 천상의 목소리로 지저귀는데 이것은 마치 전 우주의 조화 속에 둘러싸여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루쓰, 이 지저귐을 들으면 내 영혼 깊은 곳까지 진동하고 내가 마치 모든 생명체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 있단다. 그러나 많은 것들이 각 영혼이 지상에서 알았던 것들과 유사하기도 하단다. 이곳의 빛은 순수하고 끊임이 없다. 왜냐하면 이곳의 빛은 더 이상 태양의 작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들은 스스로 만든 후광에 영원히 둘러싸여 있고, 나무들은 서로 신기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각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하다. 곤충과 새들의 목소리는 아름답지만 그것들은 우주의 진동과 조화되어 있어서 육체적 인간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없다.



지혜의 사원에 대한 또 다른 면을 이야기 해보자. 이곳에서 진보의 올바른 단계에 있는 영혼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서 서로 모인다. 이곳에서는 한 개인을 위한 설교나 수업은 행해지지 않는다. 지상에서도 월요일에 한 시간 가량 만나서 찬송가를 부르고 모금 접시를 돌리기는 하지만 그것이 개인 교습은 아닌 것이다.



여기서는 각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지혜의 사원이라는 주전자에서 교훈을 따라 마신다. 그 주전자에는 결코 다시 물을 채울 필요가 없다. 그 지혜는 끝이 없으며, 영혼이 목말라 찾는 만큼을 즉시 흘러 보내기 때문이다. 아무도 자신이 필요한 이상으로 빨리 그 지혜를 마실 수는 없다.



조금씩 자신의 발전에 따라 우리는 이 지혜를 마시며, 자신의 영혼을 신성하게 한다. 신은 이 지혜의 사원에서 가까이 있으며, 우리 각자에게 밀물처럼 밀려오는 환희가 된다. 지혜의 사원 문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지상에서 영혼의 발전을 위한 오랜 경험을 쌓아 명상의 능력을 얻고 또 우주의 힘에 친숙해진 사람에게만 그 문이 열려있다.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를 얻은 우리는 이곳에서도 높은 특권을 지닌다. 즉 지상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 훨씬 더 빨리 진보할 수 있다.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된 사람들은 좀 전에 내가 한 말의 중요성을 충분히 음미해 보기 바란다. 나는 그들이 인간의 영혼에 대한 공부를 지속함으로써 그들이 이곳에 왔을 때 누리게 될 감격과 만족을 알게 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면 그들은 아주 빠르게 진보할 수 있으며 다시 지상으로 환생해야만 하는 영혼도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 중 일부는 지상에서 비난을 받았다. 즉 아는 체 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발견을 논박했으며,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교신을 통해서 영혼의 불멸성을 밝히려는 우리의 노력을 비웃었다. 우리는 그런 조롱을 참고 견디어 냈으며, 진실에 대한 믿음을 지켰고, 현생이 긴 진보과정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는 내부적 목적 또한 지켰다.



우리를 비웃던 사람들은 아주 불쌍한 신세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는 시간의 시작부터 끝까지 동일성을 유지하는 하나의 영혼이다.'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마음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도 행위와 같은 죄를 짓는다.



우리는 수많은 생애를 이곳에서 서로를 만났으며 또 알고 지내왔다. 일부는 육체적 발전의 다양한 단계에서 함께 살았으며, 우리 모두는 이곳에서든 그곳에서든 한 번 혹은 다른 우연한 만남으로 서로 관계를 맺었었다. 그 결과 이곳에서는 이방인이란 없으며 그래서 우리 모두는 신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서로의 일부라는 것도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우리 영혼은 나무나 꽃이나 시내들과 마찬가지로 단지 창조주의 발현이다.



그리고 신은 자신의 숨결을 우리 각자에게 불어넣어 우리를 자신과 같게 만들었다.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것으로부터 올바른 것을 판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이 모든 사람에게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영혼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자신과 신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는 본질적 지식이 우리 모두의 내부에 존재한다.



우리가 신을 돕는다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그릇된 수단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만일 그 그릇된 방법이 법률에 저촉이 된다면, 미국에서의 경우를 말해보자. 우리는 법을 위반하여 죄를 저지르게 되지만 그것이 필연적으로 신의 의지를 거역하는 것은 아니다. 법률이란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사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죄는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다른 사람에게 고의로 해를 가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그것이 작위든 부작위든 행위와 동일한 것이며, 우리가 다른 사람을 해치려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식탁에서 음식을 빼앗는 것과 같은 해를 끼치게 된다.



인류는 동시에 성장한다.



내가 이곳으로 왔을 때, 전에도 말했듯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영계에 대하여 많은 책을 읽었었고 때때로 초월상태에서 이곳의 상황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예상 밖의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일시적인 생각만으로는 자신이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서는 다른 영혼에게 자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기 위해서 생각만으로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약간의 예외가 있다. 만일 누구도 너를 만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너는 다른 사람의 고독이나 그 사람만의 행동에 끼어 들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쌍방 통행인 것이다.



나는 한 때 오랫동안 프레처를 만나기를 원했었지만 그는 육체상태의 나와 접촉하는 것 외에도 다른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 역시 기꺼이 나와 철학적 대화를 나누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로서는 그를 찾아갈 자유는 없었다. 만일 내가 정해진 시간에 다른 이에게 어떤 말을 하고자 해도 그가 반드시 나와 대화할 보장은 없다.



이곳에서는 항상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우리를 만나고 싶어하는 다른 영혼에게 즉석에서 설교해 주기 위해서 우리가 항상 대기하고 있을 수는 없다. 이런 것은 사생활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지상에서도 네가 원치 않으면 전화를 받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곳의 영혼들은 새로 오는 영혼들을 가르치고 다른 영혼들은 그들이 지상에 있을 때 끝마치지 못한 철학과 영적 발전을 위한 공부를 계속 하기 위해서 학교에 간다. 어떤 영혼들은 이런 개념을 탐구하는데 정력적으로 종사하거나 아니면, 깊은 명상과 기도로써 과거의 잘못을 속죄하고자 한다.



우리라고 네가 상상하듯이 소위 말하는 천국에 너희들보다 더 가깝게 다가선 것은 아니다. 우리가 물질적 육체를 버리고 영적 상태로 옮아 갔다고 해서 자동으로 신과 하나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발상이다. 신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동안 신의 법칙에 순응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고, 다른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



영적 성장의 길은 자기 만족이라는 보상을 바라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행하는 모든 선행에 의해 환히 밝아지고 짧아진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에게 베푸는 마음은 영적 진보에 이르는 사다리와 같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기억하느냐?



이제 자기 만족이나 세속적 보상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남 모르게 베풀어라. 그리고 선행을 남에게 알리기보다는 베푸는 그 자체에서 행복을 찾아라. 네가 이미 사람에게서 보상을 받았다면 왜 또 신에게 보상을 바라느냐? 네가 그곳에서 다른 사람을 도왔기 때문에 받는 보상은 칭찬과 명성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돕고 나서 타인의 칭찬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을 돕고 나서는 칭찬을 기대하느냐? 타인 역시 우리의 일부분이고 또 신의 일부분이 아니더냐? 지혜의 사원은 물론 장소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그것은 생각과 자각에 내재한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의식 상태이다.



우리 각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서로 다른 빛 속에서 그것을 본다. 진보의 수준에 따라 인식의 정도가 달라지므로 나에게는 그것이 아름다움과 진실의 화신으로 보인다. 우리 내부에는 진실에 대한 자각이 존재한다. 지혜의 사원은 우주적 진리의 고차원적 형태이며, 그 지혜의 사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특권, 자신에 대한 이해와 발전을 통해서 성장하기를 원하는 모든 영혼들이 갈구하는 것이다.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 치고 내부의 영적인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만일 우리가 더 훌륭한 사람, 더 진보한 인류로 발전하려고 한다면, 성장을 위한 이런 노력이 모든 진보과정에서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 오해 없기를 바란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초인류로 발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개인이나 어느 집단이 단독으로 초인류로 진화할 수는 없다. 인류가 진화하기 위해서는 전 인류의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이 삶의 장애를 극복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굶주린 사람이나 맨발로 다니는 사람이 없이 만드는 것은 공상적 사회 개량주의자의 꿈을 실현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진보와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대에 우리는 초인류의 하나였다. 그 당시 우리는 내가 지금 너에게 말하고 있는 이런 지식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육체로 태어나는 인간들이 탐욕, 허욕, 미움, 기타 다른 무서운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우리는 초인류의 지위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잠재의식은 영혼의 일부이다.



이제 지혜의 사원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말해보자. 지혜의 사원에서 우리는 철학적 분야에서 활동했던 위대한 지성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현재 이곳에 있지만, 육체로 환생한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있다. 왜냐하면 육체로 환생한 사람들의 흔적이 아직 여기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네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각인한 영적 자국들 역시 이곳에 남아있다. 우리는 소위 말하는 우주의 비밀을 배우기 위해서 사원에 간다. 우리는 명상 뿐만 아니라 바르게 생각하는 법도 배운다. 왜냐하면 우리 몸에서 생각하는 기관은 영혼의 일부분이고 지상에서는 그것을 잠재의식이라 한다.



잠재의식은 영혼의 일부이기 때문에 육체의 죽음과 상관없이 항상 우리와 함께 있지만, 소위 말하는 현재 의식은 오직 물질적 육체라는 기계적 장치에 의해서만 작동한다. 잠재의식에는 창조가 시작된 이래 우리가 흡수한 모든 지식이 저장되어 있다.



그것은 현재까지 알려진 그 어느 것보다 더 거대한 지식과 정보의 데이터베이스다. 그러나 물질적 육체 상태에서는 통상의 방법으로 이 지식의 보고에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지식의 보고는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 내에 의식의 표면으로 떠 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꿈이나 명상을 통해서 그 거대한 지식의 샘에서 물을 퍼 올릴 수 있다. 또한 올바른 최면을 통해서도 그 지식의 보고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방법을 사용하든 그 지식의 전부를 얻을 수는 없다.



여기서는 언제라도 그 지식을 사용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영혼의 특수한 능력을 개발한다면 기억을 확장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전생과 그 때의 영계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구한 세월 동안 환생을 거듭해 온 우리의 모든 과거생도 알 수 있다.



여기 지혜의 사원에는 소크라테스, 칸트, 융, 그리고 지상에서 크게 존경 받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여기서도 그들은 약간의 우열은 있지만 대단히 위대한 존재들이다. 사원에 있는 위대한 스승들 중 일부는 지상에서 전혀 유명하지않던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믿음에 충실함으로써 사원에서 봉사할 수 있는 위대한 스승으로 발전했다.



그들 대부분은 더 이상 환생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지상에서 자신의 운명을 완수했을 뿐 아니라, 이곳 영계에서도 많은 공헌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명은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다.



그들은 영계의 다양한 발전 국면, 가장 고차원의 영역까지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봉사하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약간의 기간은 이곳 사원에 머물면서 우리를 스승이 되는 길로 인도해 준다.



이곳에 도착한 뒤로, 배우고 성장하기를 원하는 많은 영혼들이 아직 지혜의 사원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지혜의 사원은 비전적 가르침을 베풀기 때문에 지상의 모든 이에게 공개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며, 그래서 그들은 영계에서 사원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지상에서 진보하지 못했었다.



이런 이들을 위해서 다른 단계의 많은 학교들이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철학의 기초를 배우고, 우리 존재의 목적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의 본질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환생의 고리를 매듭짓고 신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우주의 철학을 취득하고 우주의 법칙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그러면 우리는 완전한 조화와 다시 하나가 될 것이다.



하급의 학교에서는 영혼들이 시간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우리는 시간 자체이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관여되어 있는 한 우리의 참여 없이는 시간이 진행되지도 않는다.



만일 우리가 길 밖에 떨어져 방황한다면 시간도 멈춘다. 그러나 우리가 성장과 발전을 갈망하면 우리 내부의 시간은 꾸준하게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은 그 수업이 완료되고 우리가 다른 배움을 시작할 때까지 계속된다.



시간은 상대적이며, 우리 각자에게 다 다르다. 일부 영혼들이 스승의 지도 아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 즉 신이 주신 이런 기회를 낭비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런 스승들은 여러 발전 단계를 모두 성취했지만, 다른 영혼을 돕고자 하는 그들의 선한 의도 때문에 매일 잠시 동안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나와 다른 영혼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문을 통과하면 우리 모두가 거의 즉시 우주의 조화와 불일치를 깨닫게 된다. 이런 부조화를 빨리 깨닫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의 조화의 상태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거의 조화로운 상태에 가깝고, 그래서 완전한 조화의 상태에서 벗어나 있는 부족한 것을 즉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화에의 조준이 핵심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은 조화와 쉽게 일치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깨닫는데 약간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러나 늦건 빠르건 결국 부족한 점을 깨닫게 된다.



그 때부터 그들은 조화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시작한다. 이런 영혼들은 내부로부터 준비만 되면 언제라도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스승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이 올바른 스승을 갈망하는 순간 스승은 이미 나타날 준비가 되어있다. 스승은 불리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스승을 찾는 그의 소망이 다른 생각을 압도하게 될 때 즉 그 생각이 확고해졌을 때 스승은 나타난다. 스승은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학생을 배움의 집으로 데려간다. 그 집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배우기 위해서 이미 모여있는 곳이다.



그들은 친밀한 동료애 속에서 함께 배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필요한 노력을 하지 않는 약간의 퇴보는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일부 영혼을 제외한 대부분은 영혼의 발전을 위한 가파른 언덕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자, 여기에 신의 계획의 기본 원리가 설명되어 있다. 즉 살아 움직이는 만물에는 신의 숨결이 스며들어 있다는 변치 않는 신념과, 의심 없이 신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더 진보한 영혼들은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의문조차 가지지 않는다. 운명으로 정해진 계획에 도전을 하면 그는 신의 은총에서 멀어지고 다시 수준 낮은 학생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신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충분하다.



최근에 이곳으로 온 영혼만이 아직 지상에서 하던 것처럼 멋대로 행동하곤 하며, 이곳의 가르침의 일부에 도전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영혼의 진보를 지연시킨다. 만일 육체 상태일 때, 영혼에 대해 공부하고 신의 가르침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시간을 투자했더라면, 그들은 이곳에서 더 빨리 진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규율을 배우는 것은 영적으로 진보하는 모든 방법 중에서 가장 빠른 것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의 의지에 대한 규율, 심지어 지상의 법에 대한 준수까지도 영혼의 진보를 위한 빠른 길이다. 모든 규율은 인간이 평화롭게 함께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규율은 모든 어린이들에게 스며들어야 하며 평생을 통해서 끊임없이 실천되어야 한다. 규율은 이곳에서도 중요한 원칙이며, 아직 육체를 걸치고 있는 지상의 영혼보다는 이곳에 있는 영혼에게 더 중요하다.



삶과 연결된 끈



오늘은 내세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이곳에서 무엇을 보게 되는 지를 말해보자.내세를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그것은 상관없으며, 지상의 분주한 삶에 쫓겨서 한 번도 내세를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예전에 떠나온 곳과 동일하게 보이는 장소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다만 이곳이 더 생생하기는 하지만…



이 말은 여기서는 모든 것의 색의 훨씬 더 생생하고 하늘에는 구름조차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차이마저 없다면 그는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일상적인 일을 할 준비를 할 것이다. 그는 기억이 나는 듯한 첫번째 사람에게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 방에는 사람들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이 자신을 못 본체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한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들에게 주었던 사소한 것이라도 생각해 내려고 애를 쓰지만 자신이 베풀었던 적이 없음을 기억해낸다. 그들 중 몇 명은 좋은 친구들이다. 그러나 그들과 같이 크로스 워드 퍼즐을 하면서 친하게 지낸 적이 없었음을 그는 기억해낸다. 잠시 뒤 그는 아주 쓸쓸함을 느끼지만, 과거에 그가 잘 알던 이곳에 있는 어떤 이가 그를 위로하고 그를 바르게 인도해주기 위해서 그에게 다가온다.



이곳에 금방 도착한 영혼들은 대부분 겁에 질려 있기 마련인데 그는 예전에 죽은 착한 '찰리'의 허깨비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찰리가 말을 걸려고 할 때 그는 둘 다 죽어 영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기분 나쁜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내를 찾기 위해서 집으로 가지만 그의 아내는 상복을 입고 교회에 있다. 그는 그의 친구들 중 누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 죽은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결코 믿지 못한다. 장례식이 시작되고 그는 관 속에 누워 있는 사람이 아는 사람인가를 보기 위해 앞으로 나간다. 처음 한동안 그곳에 누워 누워있는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다가 오싹 소름이 돋는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그는 중얼거린다. 거기에는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과 사업상의 동료들이 있다.



그가 바로 옆에 서 있고, 그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미친 듯이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죽은 '조'에 대해서만 말한다. 자, 나머지는 네가 한 번 상상해 보아라. 조금씩 그는 자신이 완전히 덫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가 자신의 목소리를 그들에게 들려주지 않으면, 자신에게는 그토록 분명히 들리는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산 채로 묻을 것이다.



찰리가 하는 어느 말도 이 모든 것이 무서운 악몽이라는 것을 확신 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그 악몽이,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밀을 듣지 못하면 산 채로 무덤에 묻히면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곳에서 이런 사람을 이끈다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조는 일생동안 철학적인 사고를 해 본적이 없어 소위 내세에 대해서, 털을 갓 깎아 낸 어린 양 만큼이나 준비가 안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점차적으로 조에게 그가 영원불멸이며, 그의 영혼은 살아 있으나 육체는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확신 시키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는 지상에 남겨둔 아내보다도 훨씬 더 큰 당혹과 슬픔을 느낀다.



이제 자신이 죽으면 천사들이 하프를 켜면서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고 대리석으로 된 건물과 저택들이 즐비하고 신이 높은 옥좌에 앉아서 하루종일 자비롭게 행복한 영혼들을 볼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에 대해서 말해보자. 이것이 미국이 아닌 다른 지역들, 도처의 작은 고장에 사는 편협한 마음을 지닌 기독교 신자들의 영계에 대한 관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관점이다.



만일 이곳으로 온 영혼이 대리석 궁전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그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궁전들은 지상에 존재하고 우리 영혼은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프를 켜는 날개 달린 천사를 불러내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천사들이 어디라도 존재한다면 내가 아직 그들을 못 보았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영혼들은 다양한 밝기로 스스로 빛을 발산한다. 일부 영혼은 선함과 순수한 빛의 오라를 방사하는 진짜 빛나는 영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날개를 달고 날아다닌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는 생각으로 이동한다. 지상의 단단한 물체들은 단지 생각의 형태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마음대로 통과한다.



오늘은 일부 사람들이 아주 오랜 휴식을 치하는 장소로써 이곳의 역할을 말하겠다. 그리고 그 휴식은 그가 성장의 길로 나아가기 위하여 깨어날 때까지 계속된다. 천주교도는 이 정거장을 연옥이라 부른다. 천주교도는 우리 모두가 한 번은 그곳에 간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천주교도는 이 기도가 일시적인 과도기의 단계에 있는 사랑했던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나는 기도가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지상에서 동경과 사랑의 기도를 하면 우리는 그 기도로 인해 선을 위한 진동을 강하게 느낀다. 이 일시적인 단계,연옥은 영혼이 지상과 영계 사이를 헤매는 모호한 상태이다.



연옥은 반드시 나쁜 영혼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 내세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죽지 않고 계속 살기를, 즉 불멸을 바라지않는 사람들, 즉 영혼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사람들로 채워진다. 그래서 그들은 낙담하여 잠을 자거나 어슬렁거린다.



또 그들은 진보하기 위한, 배우기 위한, 그리고 그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육체와 모든 것들이 지상에 있다는 생각을 포기하는데 따르는 충격을 회복하기 위한, 어떤 긍정적인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런 영혼은 오랜 동안 림보상태에서 침울하고 불행하게 지낸다.



이런 상태는 그들 자신이 스스로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으며, 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자신들을 도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계속된다. 진정 그런 깨달음이 시작되면, 바로 그 순간 많은 행복한 영혼들이 다가와 그 새로운 영혼이 림보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더 일반적인 경우는, 영혼들은 맨 먼저 친척과 친한 친구와 옛 학교 친구들의 환영을 받는다. 그들은 곧 낡아 버린 육체가 빠져나가고 젊음이 되돌아 온 것 같은 활력을 느낀다. 죽을 당시의 나이에 상관없이, 이곳에선 모두 인생의 한창 때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린 아이의 영혼일지라도 주의 깊은 보호 아래 빠르게 성숙해 간다. 결국 우리 영혼은 모두 시간이 시작된 바로 그 순간에 창조되었으며, 이곳에는 다른 영혼들을 통제하려 하는 나이 든 학교 교사나 고압적인 부모도 없으며, 많은 영혼들이 자발적으로 변화를 이루어 간다.



이런 만남이 이루어진 뒤에 그 영혼들은 주변에 소개되고, 영계에서 이동하는 방법과 다른 영혼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이 경우 많은 가르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자연스러운 적응과 생각의 공명을 통해 우리가 지상에서는 이것을 무어라 불렀건 간에 대화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이런 것들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지상의 인간들이 배우지 않고도 숨을 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상에서 단지 소망하는 것 정도의 집중만으로도 이곳에서는 서로 대화를 하거나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 그 영혼이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고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최근에 끝난 전생 뿐만 아니라 과거 생의 기억까지 생각해 내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왜 특정한 사명을 완수하지 못하고 그렇게 형편없이 실패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의아해 한다. 그 사명이란 그가 육체로 환생한 전생 동안 내내 그의 삶의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이제 전생에서 세운 목표를 기억하고, 그 생애를 평가하고, 어떤 점에서 그 목표를 완수하지 못했는가를 살펴보게 된다.



또 그는 잠재의식은 분명하게 알고 있는 이런 일들을 왜 육체 상태의 의식으로는 기억할 수 없었는지 의아해 한다. 이제 거리에서 갑자기 차에 치여 이곳으로 오게 된 아이에 대해서 말해보자. 그 어린이가 살면서 잘못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 죄 없는 아이가 죽어야만 했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라. 그 어린 아이는 육체적 삶을 준 부모나 그를 사랑하던 할아버지 할머니 만큼이나 나이 든 영혼이다. 어린 아이의 영혼은 과거 생에서 죄를 쌓아 왔으며 이제 그 빛을 청산해야 한다. 이곳에서의 계획은 거의 모든 것을 관리하기 때문에 사고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주 대단한 사악함이 악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급속히 자라나 그가 원래 수행하기로 예정되었던 본래의 계획을 뒤흔들어 버릴 경우만은 예외이다. 말하자면 히틀러가 이런 경우인데, 그는 본래 이번 생에서 화가가 되어 그 영혼의 예술적 성향을 계발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독일에서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의 영혼 속에서 자라난 모든 사악함이 그를 인간 괴물로 만들었다.



완전한 의식 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영계로 이동한 사람들은 그들이 더 이상 육체적 존재가 아니며 그곳에 있는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자주 그들의 장례식에 가서 사랑했던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나서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몹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지상에서의 삶과 연결된 팽팽한 끈을 놓고 새로운 역할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이곳에서 아주 빨리 진보하는 영혼들이다. 영적 사고와 관념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그 결과 이 매혹적인 발자국은 그들을 앞으로 인도하여 결국 그들이 조물주와 하나가 되도록 만든다.



그들은 처음 학교에 간다. 그곳에서는 스승들이 때로는 그 영혼들의 발치에 앉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 위로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그 스승들 역시 학생들이 지상에서 알던 사물들처럼 실재하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지식의 기초와 동양철학, 새로운 영혼들이 좋아하는 기독교 신앙과 이슬람 신앙을 가르친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것을 완전히 이해하면 스승들은 비밀스런 가르침을 베푸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인간으로 지상에 왔을 때 우리에게 친숙해진 그런 종류의 것이다. 스승들은 신의 포도원에서 단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도 궁극적인 환희로 가는 길을 확고하게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선택된 존재들로써 여기서 과거 생과 미래의 환생의 패턴에 대해 충분히 깨달은 상태에서 잠을 깬다. 그들은 이곳에서 한 공부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며, 육체적 인간은 지상에서 그들로부터 그런 기억을 빼앗을 수 없었다. 예를 들자면 우리는 사랑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배운다.



다른 영혼에 대해 불친절하거나 적대적인 생각을 갖는다면 바로 그만큼 진보가 지연되기 때문이다. 때때로 영혼에 남긴 이런 오점을 지우기 위해서는 한 번 이상의 환생이 요구되기도 한다. 악한 것은 말하지도 말며, 생각하지도 말라. 우리 자신이 만들지 않은 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곳 영계에서 한번도 악마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계속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악마를 창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로부터 전해 온 지혜를 배운다. 그리고 그 지혜는 한 때는 인류에게 완전히 알려져 있었으나 육체 상태의 욕망 때문에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잊혀진 것이다.



만일 육체적 욕망과 미움과 탐욕을 버린다면, 육체적 인간일 때도 물질적 육체의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현세의 상태는 유혹의 하나이다. 이런 유혹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이야말로 존재의 높은 단계로 진화하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이다. 물질적 육체는 인간 영혼의 영원성에서 볼 때 극히 짧은 기간 동안에만 존속한다.



한 번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면 물질적 유혹을 극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비록 짧은 순간이라도 육체적 유혹에 진다면 그 사람의 영혼은 진보가 지연된다. 마음 속에 항상 이 생각을 간직해 두어라. 그가 한 때의 즐거움을 위해서 조물주와의 관계를 단절하도록 부추기는 사악한 힘을 극복하는 데는 이런 생각이 최고이다.



우리가 말하는 이 악이란 사악한 길을 가면서 영원한 자국과 오점을 남겨 놓은 영혼으로부터 방사된 힘과 진동들이다. 어쩌면 '영원한' 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일 많은 사람들이 이런 부조화를 원상태로 돌리기 위해 길을 깨끗이 한다면 선함은 결국 이런 사악한 자국을 지울 것이기 때문이다.



악마는 있다. 그러나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다. 악마는 악의 힘이며, 이 힘은 인간이 물질적 형태로 첫 걸음을 디딘 이후부터 이제껏 지상에서 끌어 모아진 것들이다. 악마는 악의 찌꺼기와 같은 것으로 인간이 점차 그리스도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각 세대는 우리가 악마라고 생각하는 그 힘에 사악한 행위의 자국을 남기게 되었고 악은 그 힘을 끌어 모은다.



악마는 결코 사람이 아니라 아주 강력한 힘인데, 그 힘은 새로운 악한 행위로 인해 악의 세기를 더해 간다. 이것은 마치 선이 각각의 친절하고 사려 깊은 행동으로 인해 더욱 빛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태초에 그 단어가 있었고, 그 말은 선을 의미했고, 선은 물론 신을 의미했었다. 하느님이 영혼을 시험하기 위해서 지구라는 차원을 창조할 때 악은 창조하지 않았다.



그러나 육체에 거주하기를 갈망하던, 길을 잘못 든 영혼들이 욕심을 부리고 싸우고 언쟁을 했다. 그들은 자신을 더 중요한 존재로 만들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래서 악의 힘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것은 결국 우리가 사탄이라고 부르는 물질적 형태로 구체화 되었다. 신이 아니라 인간이 사탄을 창조했다. 사탄은 사악한 영혼으로써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악의 화신으로 살며, 모든 악한 생각과 행동에 의해 창조되고 길러진다.



만일 생각이 바로 행위이며, 우리가 추한 생각과 행동을 사랑이 가득한 친절로 바꿀 때마다 악마의 크기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인간이 깨닫게 되면 사탄은 파괴될 것이다. 이곳에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듯이, 지구에 거주하는 존재들, 육체 상태의 인간들만이 아니라 영혼들까지, 마음에서 선이 악을 대신할 때, 우리는 소위 말하는 천년 왕국에 도달하게 된다.



생물체도 개성과 영혼이 있다



이곳에서 시간이란 의미가 없다. 우리는 나이를 먹지 않으며, 태초부터 존재해 왔고 죽음이란 없다. 우리는 이곳에 있고 그곳에는 예정된 시간표가 있다. 이런 진리를 깨닫게 되면 왜 불필요한 일이란 없는가를 이해하게 된다. 아무것도 죽지 않는다. 죽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창조의 첫 순간부터 존재해 왔으며,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듯이 다양한 차원으로 변화해 간다. 즉 물질적 형태를 분해하여 다른 존재의 차원인 영혼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핵심적 단어다. 나는 그 점을 강하게 강조한다. 존재의 차원, 왜냐하면 존재는 항상 있으며 결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손으로 찰싹 때려잡는 파리도 다른 진화의 단계로 가지만 파리의 특성을 잃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에 치인 개도 마찬가지 현상이 일어난다. 물질적인 육체는 다시 지구라는 형탤 돌아가지만 영혼은 다른 영혼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존재하며 거듭해서 다시 태어난다.



이것은 불변의 법칙이다. 우리는 진화의 초기 단계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으로 진화해가면 이런 법칙에서 언젠가는 벗어날 것이다. 때때로 충성스런 개는 물질적 상태에서 아주 많이 진보를 해서, 그 영혼이 더 이상 물질적인 몸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영혼은 항상 개로 남아 있다. 보다 높은 차원으로 진보한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돕거나 보호하는데 자신의 삶을 바치는, 완전히 헌신하고 사랑하는 영혼이 되기 때문이다. 신의 견지에서 볼 때, 그 개가 언제나 자기 주인을 자기보다 소중히 했을 때 그 개는 완전함에 도달한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배워야 하는 참으로 가치 있는 교훈이다 우리 역시 자신을 위한 염려보다는 항상 타인의 복지를 생각할 때 완전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보다는 타인의 복리를 생각할 때 진보된 종족으로의 진보가 가능하다. 우리가 집 안에서 기르는 개나 기타 애완동물은 밉살스럽거나 아니면 헌신적이라는 대조적인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작은 동물, 동불, 식물, 광석, 새의 영혼들은 사람의 것과는 종류가 다른 생명력이다.



그들의 영혼은 분자가 분열하듯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분열한다. 한정된 목적에 봉사하고, 사람의 영혼으로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는 불완전한 영혼이 된다. 그러나 나무, 새, 바위, 동물, 흙,그리고 모든 생물체는 개성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 비록 그것이 지구 차원에서 인간이라고 부르는 생물체의 영혼과는 전혀 다른 조류의 것이지만 말이다. 이것들은 신의 생명력으로 완성된 살아있는 호흡하는 물질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상에서 인간의 형태를 취하는 영혼만큼 고도로 진보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 모두의 조물주의 투영이며, 인간이 된 영혼처럼 사랑에 반응을 보인다. 그들도 좋아하는 것,싫어하는 것이 있으며, 변덕이 있고, 격렬한 분노도 있다. 그들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힘을 쓰고, 또 선하고 아름답게 되거나 혹은 악하고 추하게 되려고 노력한다. 이런 것들은 천부의 특성에 따라 좌우되며 그것이 바로 영혼들의 자질인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식물은 기도에 반응을 보이고, 어떤 식물은 사랑 어린 보살핌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돕기를 거절하는 것이다. 사람들도 이와 똑 같이 반응한다. 어떤 사람은 친절하고 남을 즐겁게 하려고 애쓰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심술궂고 배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혜의 사원에서 기도가, 그것이 육체의 치유를 위한 것이든 영혼의 발전을 위한 열망이든 모든 생명체에 미치는 힘을 배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볼 수 있는 식물 동물 바위 곤충 이 모든 것들이 기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배운다. 나무의 바람소리, 새들의 지저귐, 벌레소리, 그리고 인간의 외침소리는 신에게는 동일하게 들린다. 각각의 존재들은 자신들만의 의사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모두의 신은 이런 한 숨과 속삭임과 외침과 그에게 들리는 다양한 의사소통 형태와 그들 상호간의 의사소통에 대해 항상 귀를 기울이고 있다.



이것을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모든 다른 생명 형태와 의사 소통할 수 있게 될 때가지는 그 생명 형태가 영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우리는 아직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진보의 단계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항상 이런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라. 바위와 나무와 돌과 벌레들의 속삭임 그리고 모든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배워라. 이런 의사 소통을 통해 그들의 비밀 속으로 스며들도록 하라.



그 비밀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연결시키고 우리 각자를 신의 화신으로 만든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물;도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각 사물은 그 자신의 삶과 존재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바위는 새들과 벌들과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신성한 계획의 일부이다. 신의 계획 안에서 모든 존재는 각자 자신만의 위치와 역할이 있다.



벼룩이나 벌레나 곤충들이 자신들에게 운명 지워진 삶의 궤도를 벗어나면 그들은 인간에 의해 죽음의 위협을 맞게 된다. 왜냐하면 창조된 모든 존재들은 각자 고유한 삶의 공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공룡은 먼 옛날 지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들이 인간과 짐승들과 새들의 생활 공간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인간들에게도 동일한 경고가 된다. 만일 인간이 계속 수적으로 팽창하고 다른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파괴적인 존재가 된다면 인간 역시 파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만일 네가 말하는 그런 곤충들이 지나치게 번식하여 인간과 다른 동물들을 위협하게 된다면 그들은 멸종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할당된 장소를 하늘에 가지고 있다. 만일 우리가 하늘의 조화를 깨뜨리고 임무를 수행하는데 도가 지나치다면 불멸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는 아무것도 죽지는 않지만 우리는 물질적 차원에서 사라지게 된다.



특별한 경우들



앞서도 지적했듯이, 기도의 힘은 너희 차원에서 중요하듯이 인간이 죽음이라고 부르는 베일 너머인 이쪽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고인이 그의 육체를 뒤에 남겨두고 그 베일 너머로 건너가면, 그는 자주 당황해 하고, 잊혀지고, 버려졌다는 느낌을 갖는다. 이런 상황을 극복한다는 것은 그가 방금 마친 삶에서 경험한 그 어느 문제보다도 때로는 더 해결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들 대다수는 실제로 이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영계를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기대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이 자기들이 처한 곤경을 알아주기를 필사적으로 바란다. 그들이 지상에서 알았던 사람들이 사랑과 친절로 기원하는, 고인을 위한 기도들은 그들을 안락하게 하고 성장시킨다. 그리고 이 점에서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데, 신은 그들 모두의 기도를 듣는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있는 이곳 역시 배우고 성장하는 단계의 하나이며, 너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창조주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힘겹게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기독교에서 고인을 위하여 하는 기도는 올바른 생각이다. 모든 믿음과 신앙에 의해 채택된, 그리고 영원한 삶의 차원으로 건너간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채택한 관습은 나름대로 고인을 돕게 된다.



우리는 이곳에서 육체 차원에 있을 때보다 더 부지런히 기도한다. 그리고 이런 기도가 창조주와의 조화를 이끌어 준다. 이곳에서 기도의 효과는 육체 차원에서보다 더 즉각적으로 느낀다. 때로는 이곳에 있는 영혼이 단지 육체 차원의 사람이 해주는 기도에 의해 깨닫게 되기도 한다. 케네디 형제들은 기도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탁월한 본보기이다.



대통령이 암살되었을 때, 온 국민의 자발적이고 격앙된 기도가 그에게 쏟아 부어졌기 때문에 그는 영계에서도 전혀 의식을 잃지 않았다. 이런 기도들이 그를 이끌어 주었기 때문에 그는 거의 즉시 영계로의 변화에 마음의 파장을 맞출 수 있었다. 그는 한 순간도 연옥에 머물지않았다. 영혼의 정화 상태에 있는 영혼은 어떤 계기로 인해 자신들이 처한 새로운 존재 상태의 잠재성을 깨달을 때까지는 목적 없이 방황하고 길을 잃는다.



바비 역시 기도와 이곳에서 그를 기다린 형의 사랑에 위해 도움을 받았는데, 그 기도는 인간의 기본권을 옹호하고자 했던 그들의 용감한 투쟁을 찬양했던 사람들이 보내준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이곳에 없었지만, 다른 영혼들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이들 두 영혼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높은 가치를 표방했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환희를 맛보았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겪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착한 사람만이 빨리 죽는다'라는 옛말을 기억하라. 모든 영혼이 선한 것만은 아니며, 모두가 일찍 죽는 것은 아니다. 영혼이 짧은 시간 동안에 그의 사명을 완수하고 나이 먹어 쇠약해지는 것을 피할 수 있다면 그는 각별히 축복을 받은 것이다. 일부 위대한 영혼들은 노인이 될 때까지 살면서 그들의 유용성을 계속 발휘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들의 경력이 최정상에 있을 때, 그들의 특별한 사명이 완수되었을 때, 그들의 몸을 버리고 이곳에서 영적인 발전을 계속하도록 허락되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지혜의 사원은 영적 진보를 위해서 아주 고무적이고 자극적이다. 그래서 물질적 육체 상태의 그 어떤 배움도 여기서의 수업만큼 매혹적이고 유용한 것은 없다. 아이젠하워는 몹시 어지러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줌으로써 그의 운명을 완수한 쾌활한 영혼이다. 그러나 그가 젊었을 때, 대통령이 되었다면, 또 덜 어지러운 시대에 대통령이 되었다면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 훨씬 더 많은 일을 성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이곳으로 왔을 때 그다 전쟁에서 지휘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대단한 환희가 일어났다. 그들은 그를 아버지처럼 숭배했으며 그의 덕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너무 일찍 아까운 나이에 육체를 떠나야 했던, 그래서 후회하고 기성세대에 대하여 적대감을 키워온 많은 젊은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 아이크는 그들을 설득했고, 그리고 이상을 위해서는 죽음보다도 더한 위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히틀러의 경우를 얘기해보자. 그는 한 번의 생애동안 너무 악한 짓을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그런 사악함을 결코 청산할 수 없다. 그는 지상에서 많은 영혼의 생명과 희망과 이상을 파괴한 다음 이곳으로 왔다. 그는 경멸과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그의 죽음에 대하여 어느 한 사람도 슬퍼하지 않았다. 여기서 그는 그의 기괴했던 행동들과 병사들과 막강했던 권력을 되찾으려고 생각하지만 누구 하나 그것들에 귀를 기울이거나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이 영혼은 철저히 무시되기 때문에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어두운 섬에 남겨진 것처럼 느낀다. 그는 날뛰고, 호통치고, 외쳐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이곳에 이런 괴물 같은 영혼과 사귀기를 원하는 수준 낮은 영혼은 한 명도 없다. 소리도 쳐보고 자신을 과시하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결국 그는 자신이 상상으로 만든 깊은 구멍으로 빠진다.



그는 검은 구멍 속으로 깊이 깊이 떨어진다. 에드거 케이시가 토성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그는 바깥 우주의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다. 인류를 해친 그의 범죄의 심각성 때문에, 수백 수 천년동안 돌보아지지 않고 방치될 것이다. 만일 그가 다시 깨어난다면 그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곳의 존재의 차원에서 길고 힘든 공부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죄의 일부라도 속죄하기 전까지는 더 빠른 진보를 약속하는 지상의 삶으로 환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오랜 세월 동안 격리될 운명을 만들었으며, 현대를 살고 있는 너희들에게는 더 이상 히틀러의 운명은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격리 기간은 현재 육체 상태로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 될 것이다.



다음은 아인쉬타인에 대해서 말해보자. 위대한 과학자가 죽으면 이곳에 와서는 기쁨의 환호로 환영 받는다. 그는 순수과학을 발전시키고 그의 재능을 유용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그의 재능을 파괴적인 힘이 아니라 선을 위해 사용한 사람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는 지상에서 천재로 간주되었다. 실제로는 비전의 지식을 선물 받은 사람이다.



이곳에서 높은 수준으로 진보하여 실질적인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과학적 재능을 가진 존재들이 그를 도왔던 것이다. 전화, 전기, 증기선, 그리고 목화에서 씨를 빼는 기계처럼 가치 있는 많은 것들은 이곳 영계와 지상의 재능 있는 영혼들이 같이 노력한 결과였다. 그들은 지상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같이 협력한다. 아인쉬타인은 하루 중 아무 따라도 잠깐씩 선잠을 자곤 했다.



이때 그는 자신의 목표를 새롭게 해주고 실험의 다음 단계를 암시해 주는 이곳 영계의 힘에 파장을 맞추었던 것이다. 이 선잠이야말로 모두를 위한 교훈이다. 육체적 존재인 사람이 이곳의 영적 존재와 교신을 할 수 있게 되면 에너지를 재충전하게 되고 삶의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으며, 삶의 목적을 새롭게 할 수 있다.



다양한 유형들



이제 성직자의 예를 보자. 지옥의 유황불을 설교하고 성서의 내용을 글자 그대로 믿는 그가 이곳으로 오면, 신이 천사에 둘러싸여 옥좌에 앉아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 첫 충격에서 벗어나면 여기 있는 우리들에게 회개하라고 훈계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곳이 그가 순응할 때까지 잠시 경험하는 막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신의 팔에 안길 수 없는 길 잃은 영혼들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나이든 영혼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설명해준다. '그가 잘못된 교리들을 설교하고 있으며, 천국은 각자의 마음 속에 있으며 지옥 또한 그러하다는 것과, 그가 이곳에 도착한 이래 아무것도 숨긴 게 없다'고 말해준다. 그가 자신의 영적 진보를 위한 일을 시작하느냐는 자신의 결정에 달려있다. 그는 약속된 땅에 대한 잘못된 희망으로 다른 이들을 인도함으로써 그들의 진보를 지연시켜왔다.



바로 이곳이 약속된 땅이며, 우리는 자신의 노력을 통해 이곳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빌리는 비록 진실을 잘못 알고 있었지만 선한 영혼이기 때문에 이곳의 현명한 스승들이 그를 돕는다. 그 스승들은 그를 지혜의 사원으로 보내서 그가 유일한 진리에 대해서 눈을 뜨도록 한다. 그 유일한 진리란 우리 모두가 신이며, 우리 모두가 이 기본 진리를 깨달을 때까지는 아무도 인간의 기본적 상태 이상으로는 진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각자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신의 일부라는 것을 납득하게 되면, 신의 다른 부분들을 도움으로써 우리가 깨달음의 더 높은 차원으로 함께 진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눈 앞의 장막은 사라지고 이곳이 어디이며 왜 이곳에 있는가를 정확히 볼 수 있게 된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슬로건이다. 성직자는 이 우주 법칙의 희미한 빛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서 그는 예전에 지옥의 유황불을 설교했던 것처럼 남에게 도우라는 말을 열정적으로 전파한다.



기본적으로 그는 현명한 영혼이었지만 그릇된 원리에 의해 엉뚱한 길로 인도되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설교할 때의 달변으로 진리를 전파한다. 그리고 곧 지구에서의 전생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자신이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그릇된 곳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고, 완고한 믿음 속에 갇힌 자신보다 더 유연하게 교리를 수용한 이들의 설득력 있는 논쟁에 귀를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다른 이들을 잘못 인도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는 그가 저질렀던 잘못을 되돌리기를 열망하고, 그래서 과거 자신과 같은 믿음을 지니고 있는 물질적 육체 상태의 성직자들에게 지혜의 씨를 뿌린다. 만일 그 씨가 비옥한 토양에 자리잡으면 곧 뿌리를 내리고 강경론자들 사이에 진리를 전파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훌륭한 영혼이기 때문에, 육체상태에서 이런 진리를 알기는 했으나 이 영혼처럼 영적으로 고양되어 다른 이들을 돕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은 영혼보다 이곳에서 더 빨리 진보할 것이다.



오늘은 태어나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은 아이에 대해 말해보자. 그 아이는 확실히 지상의 삶을 원했었고, 적어도 자신의 부모를 스스로 선택했었다. 때로는 육체가 미 발육되어 생명을 지탱할 수 없는 경우가 있지만 더 많은 경우에 그런 육체적 이유도 없이 영혼이 철수해 버린 경우도 있다. 겨우 아이가 간절히 바라던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 태어났으나 며칠 몇 주 몇 달 살지 못하고 육체를 떠나야 한다는 결정을 하는 데는 분명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마도 인간의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거나 아니면 영혼이 자신의 성장을 방해하던 카르마를 청산하는 데 그 몸이 합당한 도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경우다. 어쨌든 그 육체적 아이의 영혼은 금방 떠난 곳으로부터 이곳에 돌아온다. 때로는 이런 영혼이 잠깐 동안 자는 경우도 있으나 통상적으로는 재순응 기간이 거의 필요치 않다. 다시 한 번 그 영혼은 짧은 삶 동안의 일들을 모아서 정리하고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평가하게 된다.



아기도, 적어도 영계에서는 아기가 아니다. 다른 영혼은 시간이 시작된 순간부터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와 지상에서의 경험 때문에, 비록 일부는 더 높게 진화하고 더 현명하고, 다른 영혼보다 더 의미 있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이곳에 아기는 없다. 오늘 우리가 에를 든 그 아이는 아기로서 잠깐동안 살다가 우리에게 되돌아 왔다. 육체 상태의 심장이 좋지 않아 생명을 지탱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육체의 한계 때문에 진보가 무산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카르마의 패턴을 말해주고 있다. 이 영혼은 과거 생에서 아기를 돌보지 않음으로써 그 아기를 죽게 했던 과거의 카르마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이번 생에서는 그가 마지막까지 천수를 다하면서 살기를 몹시 바랄지라도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번 생애를 일찍 마감해야 하는 것이다.



그 아기는 이곳으로 돌아와서 잠깐 동안의 순응 기간을 거친 다음 지혜의 사원에서 다시 신과 하나가 되는 이상적인 상태로 오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는 아주 잠깐동안만 이곳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거의 재교육이 필요가 없다. 그러나 만일 그가 2, 3년 동안 육체적 아기 상태에 머물렀다면, 이곳의 영혼들이 그를 영적으로 순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그는 아기의 특성을 버리고 다시 성인의 특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 주변 사람들을 슬픔에 잠기게 한 간질병 어린이의 경우를 보자. 그는 통제할 수 없는 발작이 일어날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정상적으로 보인다. 그 아이는 발작 도중에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정상적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그에게는 삶이 아주 지겨운 것이기 때문에 결국 그의 영혼은 주어진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육체로부터 물러난다.



그가 이곳에서 잠이 깨면, 처음에는 낮선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발작이 일어날까 봐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과 친절로 돌보아주었던 어머니와 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 울부짖는다. 그는 낮선 사람들이 자신을 붙잡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영혼의 눈을 뜨기를 망설인다. 그리고 이런 정신적 고통은 모든 면에서 실재한다. 결국은 유명한 의사가 그의 곤경에 대해서 듣게 되고, 능숙하게 그 소년을 달래서 훌륭한 치료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 시킨다.



그 소년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그런 무거운 종류의 육체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지상의 육체보다 더 아름다운 영적 형체를 지니고 있으며, 모두가 병이나 고통하고는 전혀 관련이 없는 듯이 보인다. 그는 그의 집을 다시 방문하고 부모들이 슬퍼하기는 하지만 그를 위해서 더 이상 비탄에 젖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부모들은 아주 진보한 영혼들이어서 이제 그가 신의 사랑에 감싸여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부모에게 자신의 사랑으로 은총을 베풀고, 그때부터 이곳 스승의 안내를 따라 빠른 속도로 성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스승들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인이라는 사실을 가르친다. 그가 전생을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이 자발적으로 그런 발작을 선택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과거 생에 그는 다른 사람의 육체적 고통에 무감각 했기 때문에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런 발작을 경험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곧 고도로 진보한 영혼으로 성숙하였고 전생의 카르마의 빛을 청산했다. 그리고 이제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않은 상태로 무엇을 배울지를 더 잘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겸손을 배우기를 원한다. 그는 가장 최근의 삶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부모 밑에서 유복한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약간 자만해졌고, 부모의 끊임없는 관심을 요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 생에서는 다른 사람을 돕는 데에 대단히 헌신적이며 사랑스런 태도를 지닌 가난한 부모 티에서 태어나려 할 것이다.



성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많은 후진국들의 문제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힘든 시작을 통해서 균형 잡힌 영혼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런 순환 과정이 우리의 영적 발전을 돕는다. 또 육체적 삶 중간의 영적 세계에서 과거 생을 올바르게 평가함으로써 우리는 의식 면에서 성장하고 점차 발전하여 신의 동료가 되어 가는 것이다.



평생동안 문명과는 전혀 접촉 없이 미개지에서 살던 원주민이 죽은 다음 영계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를 들어보자. 그는 기독교 신앙을 믿으며 문명세계에서 살던 우리보다 그가 마주치는 상황에 덜 놀란다. 그는 미신에 익숙하며, 그가 살았던 곳에서는 모든 곳과 사물과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었었다. 그래서 태양이나 달이나 그리고 하늘에도 신이 있다고 믿어왔다.



그는 처음에 자신처럼 영혼을 두려워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던 자연에 의존하여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고향을 자세히 살피고, 아직 육체적 상태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교신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교신은 책과 부모님의 훈계를 통해서 죽은 사람과는 접촉할 수 없다고 믿게 된 문명세계의 영혼보다 훨씬 쉽게 이루어진다.



그는 자신이 늘 가던 곳에 다시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에 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다른 영혼들과 협력하여 공기의 흐름을 바꾸어서 그들의 땅에 비를 내리게 한다. 이들 원주민들은 문명세계의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적은 횟수의 육체적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때때로 그들은 삶과 삶 사이에서 수천 년씩 잠을 잤기 때문에 그들이 자는 동안에 지구에서 벌어진 엄청난 진보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비록 그들의 영혼도 다른 영혼들과 동시에 태어났었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뒤쳐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과 신이 함께 지구 위를 거닐던 그 때를 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생과 이곳 영계를 더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는가, 어느 것이 우리의 실체인가? 그것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환상적인 일에 대해서는 슬데 없는 말을 하지 말도록 훈계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매우 빠르게 문명이라는 굴레에 갇히게 되고 비록 그들이 초등학교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기는 했지만 자신들도 그런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허용되지 않는다. 비록 그 기억이 아무리 희미한 것일지라도. 이런 망각이 사회적 억압 때문만이 아니라 때로는 과거 생에 대한 의식적 회상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과거 생에서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면 그 기억이 지금 그들이 있는 이 물질적 차원에 불필요한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시 환생하여 과거 생에서 다른 이들에게 끼친 죄를 속죄하고자 자원했었다. 그런데 그들이 현재 겪는 고통의 원인을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감내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한 소년은 코브라에 물려서 죽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대략 아홉 살이었다. 그는 완전히 미개한 상태에서 청결이나 문명의 어느 형태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 이유는 그 소년은 전생이 끝난 뒤로 수천 년 동안 영계에 있으면서 자신의 영적 진보를 위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수백 년 동안 잠을 잤고 이곳의 다른 영혼들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에 그가 다시 물질적 육체로 환생하기로 결정했을 때는 그는 마치 물밖에 버려진 물고기와 같았다.



그는 오직 먹고 자기위해서 살았으며, 그가 할 수 없이 한 일이라고는 오직 공격과 불행을 피하기 위한 것이엇다. 그는 무지 속에서 살았으며, 또 그 상태로 죽었다. 그래서 그 생애를 통해서 단 일보도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에게는 계속 살아야만 하는 목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친절한 영혼들이 그를 깨우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는 잠을 계속 자거나 자신과 자신의 즐거움만 생각할 뿐이다.



그 즐거움이란 것도 거의 없지만 그는 다른 동물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그가 뱀에 물린 것도 카르마의 부채 때문이었는데, 그가 다른 동물들에게 행했던 것들이 인간보다 덜 진화된 상태의 행동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영혼들은 책임감과 영혼의 성장에 대한 깨달음을 알려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상에서보다 이곳에서 몹시 의기소침해진다. 그러나 풍부한 식량과 많은 일 속에서 폭동과 파괴에 몰두하는 문명사회의 사람들보다 더 나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음의 환생에서 이 소년과 같은 환경에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소년은 아주 오래 전 과거에 그의 카르마의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육체로 환생했던 것이다. 성장과 발전, 사랑, 건설적 행동,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이 하늘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재건하기 위해서 사랑하기보다는 파괴하기 위해서 무력과 분노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의 영적 삶이나 미래의 환생에서 자신에게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성인이 되고자 했던 자



그는 결코 도둑질을 하거나 강도질을 하거나 남을 속이거나 성적 충동을 남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고 살아왔으며 확실히 그 점을 믿는다고 말해왔다. 그는 교회에서 봉사를 해왔으며, 자선 사업도 해왔기 때문에 현생이 하늘에 계신 신에게로 돌아가기 전의 마지막 육체의 삶이라고 느낀다.



그는 고통이 심하지는 않으나 불치병을 알아왔으며 그래서 주의 깊게 자신의 주변을 정리해왔다. 아내와 자식들에게 상당한 유산을 남겨주었고 각종 자선기관에도 재산을 기증했다. 그는 죽음 뒤의 경험을 준비해 왔기에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여, 충격 때문에 시간을 질질 끌지도 않고 바로 이곳에서 깨어난다. 이곳에서 깨자마자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하얀 가운을 입은 빛나는 존재를 여러 명 보게 된다.



그들이 설교를 하고 나서 자신을 심판 받는 곳으로 데려갈 것으로 생각하지만 자신은 두려워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빛나는 존재들은 가까이 다가와 그를 환영하는 대신 그를 지나쳐 시내의 반대편으로 건너가 버렸기 때문에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소리쳐 부르려고는 했으나 자신에게는 목소리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그가 열심히 팔을 흔들어도 그들은 그가 있는 쪽을 보지도 않고 곧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몇 분이 지나자 여러 명의 아이들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왜 아무도 자기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지 의아해 한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처럼 확실히 아이들의 눈에도 보일 텐데 말이다. 그는 다시 소리쳐 불러보지만 그들은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다 그는 마침내 자신의 생각을 그들에게 전달해야만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자 그들은 그를 둘러싸고 웃으며 반갑게 맞아준다.



그는 아이들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어디에 있는지 묻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어떤 천사도 만나 본적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는 그들이 그곳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살았는지 묻지만 그들이 너무 어리기 때문에 바른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한 작은 소녀가 그에게 손을 내밀어 많은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 오르곤 하는 시내로 그를 안내하지만 그는 낚시 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또 새로운 게임을 가르쳐 주고자 하지만 자신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길을 가고 싶어한다. 그는 길을 건너가서 그곳 주민을 열심히 찾다가 결국 구두장이의 오두막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긴 수염을 기른 노인이 부지런히 구두를 만들고 있다. 구두장이는 신중하게 생각해서 이 경우에는 아이보다 어른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영계에서는 영체 자체가 옷이며, 구두 같은 것은 필요가 없기 때문에 새로 온 사람은 그 구두를 어디에 내다 파느냐고 묻는다.



그 노인은 구두를 팔려는 의도는 없으며 그저 아이들이 신어도 닳지 않는 강한 신발 재료를 만들고자 하는 자신의 생각을 실험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 신참자는 성 베드로나 가브리엘을 만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노인은 길은 내부에 있다고 대답한다. 그는 처음에는 구두장이가 지하의 비밀 통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가 입구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기 전에 그 노인은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한다. '잠깐 기다려라, 아이들이 너에게 겸손에 대해서 가르쳐줄 것이다.'



신참자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나 노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미 가버렸다. '노인장, 왜 이곳에 있는 누군가가 나에게 신에게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지 말해주시겠습니까?'라고 묻는다. 구두장이는 일을 계속하면서 대답을 빨리 하지 않자 신참자는 초조해진다. '나는 하느님에게 급한 용무가 있단 말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그는 말을 계속한다.



'내부를 살펴라.' 신참자는 구두장이의 오두막 안을 흘낏 보았지만 그들 자신을 제외하고는 다른 영혼은 불 수 없다. '농담인가요?' 라고 그는 퉁명스럽게 묻는다. '나는 최후의 심판의 뜰을 찾고 있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내부를 살피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시 창조주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먼저 스스로를 심판해야 한다.' 신참자는 놀란 듯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라고 항의 한다. '나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와서 신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구두장이는 몇 분 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대답한다. '그러나 친구여, 너의 교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네가 죄가 없다는 확신은 또 무엇을 확신하는가?' 신참자는 난처해 한다. 그러나 확실히 그는 외친다. '나는 남에게 비난 받지 않고 살아왔으므로 죄가 없는 것은 확실합니다. 나는 그 점에서 매우 열심히 노력했으며 이제 하늘에서 그 보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너는 이곳에서 네가 지상에서 햇던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구두장이가 대답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육체적 삶을 사는 동안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준비해왔던 것을 정확하게 발견하게 된다. 너에게 한 가지 애기를 해주겠다. 나는 육체 상태일 때 성직자였다.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기도를 올리거나, 미사를 접견할 때를 제외하고는 빈민 지구의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었다. 나 역시 내 인생이 완전히 신에게 바쳐진 것이라 생각했었다.



나는 여자와 동침해 본 적도 없었으며, 내 것이 아니면 단 한푼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금요일이나 축일에는 고기를 먹지 않았고, 모든 신의 율법을 철저히 지켰다. 나로서는 더 이상의 죄없는 삶이란 거의 상상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내가 육체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이제 최후의 심판의 뜰에서 성 삼위일체를 대면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서 기뻐했었다. 그러나 지구 시간으로 70년을 기다려 왔지만 내가 신을 만날 수 있게 되기에는 훨씬 더 많은 육체적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죠?' 신참자는 놀라서 소리지른다. '우리가 신의 뜻을 저버리고 행동한 적이 있나요? 당신과 다른 선한 사람들이 하듯이 나도 십일조를 바쳤고 영혼을 정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내가 금요일에 고기를 먹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성공회 교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한 것입니까?' 늙은 구두장이는 연장을 당에 놓고 신참자의 손을 잡으며 부드럽게 말한다.



'아들아, 아직 너의 잘못이 무엇인지 모르느냐? 우리는 너무 자신의 영혼에만 관심을 쏟았기 때문에 우리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교리 문답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었다. 나는 나보다 더 배고픈 길거리의 거지를 위해서 내 빵을 포기하지는 않았었다. 너는 고용인들에게 개인적인 문제에 귀를 기울이려고 충분한 시간을 할애했었느냐?



잔잔하고 평온한 마음을 찾으려는 아내의 필사적인 마음에는 어떻게 반응하였느냐? 그녀의 손을 감싸 쥐고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느냐? 아니면 너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항상 너무 바빴기 때문에 그녀의 심란한 마음을 위로할 생각조차 못했느냐? 그녀는 이제 네가 사라졌기 대문에 예전보다 더 행복하다. 왜냐하면 너는 그녀가 너를 성인으로 존경하기를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너의 아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 지 보아라.



신참자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자신의 집을 보자, 다른 남자가 한 때 자신의 것이었던 일광욕 의자에 길게 누워있고, 그의 아내는 음료수 잔이 담긴 쟁반을 가져온다. 그 남자는 말한다. '우리 둘이서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그래요 추모 기간만 지나면요.' 하고 아내가 말한다. '죠는 자신의 구원문제에 바빴기 때문에 이곳 지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스스로 성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같이 산다는 것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지요.'



그의 아내의 말을 듣고 그는 자기가 사랑했던 아내가 왜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독선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를 자기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그녀가 지역사회에서 칭송도 받고 위치가 공고해지기를 바랐다. 그는 도 그가 육체 상태에서 선행에 대한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영계에선 아무런 보상도 저축해두지 못한 것을 알았다. 그는 익명으로 남에게 베풀고 돕는 것이야말로 은총을 수확하는 길임을 알았다. 자신보다 남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 서로 사랑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구원의 길이다.



이것이 왜 우리가 육체 상태로 거듭해서 환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배우는 우주의 중요법칙을 실행하기 위해서 지상으로 환생한다. 이곳 영계에서는 우주의 법칙을 실행하는 것이 쉽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사한 흥미와 진동을 가진 영혼끼리 조화롭게 융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이곳에는 갈등이나 충돌, 유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우주 법칙을 쉽게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 상태로 돌아가면 자신과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도 어쩔 수 없이 접촉을 하게 된다. 혹은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 조화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때부터 시험은 시작된다. 그리고 왜 우리가 때때로 자신과는 전혀 취향이 다른 가족을 일부러 선택하는 지에 대한 설명이 된다. 단지 가족들에게 잘 적응하거나,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화내고 소란 피우는 것을 참음으로써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영적으로 진보하여 창조주의 왕국으로 나아가게 된다.



오늘은 자신이 성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곧장 신의 팔에 안기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여자에 대해 말해보자. 그녀는 권위 있는 위치에 있는 영혼을 만나는 것조차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녀는 성 베드로에게 그녀의 덕망 높은 삶을 강조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면 심판의 옥좌 앞에서 혹시나 자신의 덕행이 저평가되는 실수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곳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성베드로를 찾는다.



그러나 그녀가 볼 수 있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이곳 영계에 살아왔던 한 늙은 영혼이다. 그녀는 마한다. '저, 메어리 브링크인데요. 신에게로 가고 싶습니다.' 그 늙은 영혼은 가엾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고는 그녀에게 잠깐 쉬라고 했으나 그녀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도 지체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를 지나쳐 여기 저기 찾아 다닌다. 그러다 한 젊은이를 만나 신이 있는 곳을 물으니 젊은이가 말한다.



'들으시오, 신은 모든 곳에 있습니다. 신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각자가 확실하게 사랑을 배우고 서로를 돕는다면, 신은 여러분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 의무를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주변의 사람들에게 보다 자신에게 더 그 의무가 어울린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여인이 물었다. '그러나 심판의 뜰은 어디에 있지요?' '부인 당신은 지금 바로 그곳에 앉아 있답니다.' 하고 젊은 이는 답한다. 그녀가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를 않는다. 마침내 그녀는 어렴풋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그녀 자신이 유일한 심판자인 것이다. 아무도 그녀가 순수하고 죄없는 삶을 살았는지 여부를 가지고 그녀를 심판하지 않는다. 그녀 자신이 어떻게든 그 일을 해야만 한다. 그녀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녀는 자신의 성장만을 생각해 왔기 대문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위해 잠시 머물러 서서 그들을 위로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 의해서 자기가 오염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에 의해 자신의 순수한 영적 상태가 더렵혀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타인에 대한 사랑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모든 답은 그녀의 내부에 있다. 신도 그녀 자신이 스스로를 심판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그녀를 평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으며, 이제 자신의 결점을 평가한다. 아무도 그녀를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 자신이 자신에 대한 유일한 심판자이기 때문이다.



유명인사에 대한 영계의 보고서



오늘은 에드거 케이시에 대해 말해보자. 그는 이곳 영계의 다른 차원에 있으며, 다른 영혼들이 그들의 직관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열심히 가르치며 실험도 하고 있다. 물질적 차원에서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수준 이상으로 그는 특별한 진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직접적인 교신을 하기는 불가능하다.조만간 그는 육체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생을 마지막으로 환생의 굴레를 완성하여 더 이상 육체적 고통을 감수할 필요가 없는 충분히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이곳에 왔을 때, 그는 극도로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당부간 휴식을 취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A.R.E(리딩보존 연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상에서의 의식을 통해 그와 교신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는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존경 받는 훌륭한 사람임과 동시에 위대한 영혼이다. 그의 아내 거트루드 역시 과거 생에서 그와 함께 일했으며, 그들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같이 일을 할 때는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호흡이 잘 맞는다.



내가 직접 그를 본 일은 없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의 위풍당당한 존재를 잘 알고 있는 영혼으로부터 들은 것이다. 케이시는 영매를 통해 말하지 않는다고 믿는 휴린의 믿음은 옳다. 그러나 케이시는 영적 진동이 고양되어 내부의 눈이 열린 사람에게는 언제나 접촉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요가난다에 대해서는 못 보았다. 왜냐하면 그 훌륭한 스승은 더 높은 차원에 있으며 더 정화된 차원에서 더 수준 높은 일을 하고 있다고 전해 들었을 뿐이다. 그는 선의 화신이며, 그가 있는 차원의 다른 이들보다 더 위대한 일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영계로 오기 전에 지상에서 이미 영적 이해의 수준이 높은 단계로 발전했으며, 지상에서 오랫동안 영적인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스승이며, 스승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혼이다.



스웨덴의 신지학자 스웨덴보그는 인류의 우주적 지식을 밝혀 주는 횃불이며 등대와 같은 존재이다. 그의 영혼은 다시는 육체로 환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영적 업적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였다면 보그는 그런 사람들의 사고와 영적 발전을 수 세기 밀어 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헌신적으로 자신을 바치는, 그리고 자신을 괴짜로 간주하는 동료들의 비평에 굴하지 않는 그런 위대한 영혼은 거의 없다.



베토벤은 더 고차원의 영역으로 갔으며 오래도록 네 번째 단계에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회전하는 우주의 진동음으로부터 음악을 만들어 낼 것이 확실하다. 그 음악은 하나의 운율로 조화로운 경이로운 우주의 소리이다. 그는 베토벤으로 태어나기 전에도 많은 생을 음악가로 태어났으며, 베토베의 생애에서 귀머거리가 됨으로써 많은 카르마를 청산했기 때문에 다시 육체로 환생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환생하느냐 마느냐는 그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이제 그는 더 고차원의 단계에 도달해 있다.



헤밍웨이는 인간일 때도 그러했지만 큰 곰과 같은 난폭한 영혼이다. 그는 몇 번의 과거 생에서 훈 족 사람이었다. 그는 싸움을 위한 싸움을 했으며 야만적인 행위를 즐겼다. 그 때도 예민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으나 피에 굶주린 상태였다. 비록 아직 격렬한 열정을 위한 잔인성과 흥분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었으나 헤밍웨이는 작가인 생애에서 대단한 진보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자살이라는 불행한 방법으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그 생애에서 그가 이룬 엄청난 진보를 얼마간 망쳐 놓았다. 그는 모든 것을 가졋엇다. 명성, 친구, 재산, 재능, 그러나 그는 자살했다. 결코 그래서는 안되었다. 이 특별한 경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말기로 하자 너무 슬픈 일이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미국의 여류 작가 도로시 파아커는 자신의 육체와 재능을 남용한 슬픈 영혼이다. 그녀는 전생에서 자신보다 더 위대한 어떤 것을 찾고 싶어하는 내부적 충동에 충실하지 않았다. 그녀는 과거 생에서 유고슬라비아의 수녀였는데 그때는 아주 신중한 삶을 살았으나 전생에서는 그런 삶을 반대했다. 그녀는 과거 생에서 지나치게 엄격한수도사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전생에서는 종교를 싫어했다.



그녀는 위선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했지만 이번에는 반대의 극단을 달리게 되었다. 그녀는 명석한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음의 생쯤에는 아마도 균형을 얻게 될 것이다. 그녀는 과거 생에서 자신을 구속했던 속박을 바람 속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신의 일부라고 하는 기본 원리를 잊어버릴 정도로 퇴보했다. 슬픈 경우이다! 그녀는 지금 쉬고 있으며 망연해 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실수가 자신을 타락시켰는지 충분히 깨닫게 되면 그 상태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하나의 우주이다.



모든 것은 하나의 우주이다. 우리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있는 이 곳에 있다. 비록 우리가 다른 삶의 양식을 치하고는 있지만 같은 곳에 있다. 우리가 너의 침대에서 자거나 너의 의자에 앉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너희들 사이에서 일상적인 활동을 수행한다. 우리는 함께 섞이고 때로는 대화한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의 목숨을 구하거나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간섭하지 않는다.



우리는 대부분 같은 길을 따라 움직이며, 물질적 방해물이 있어도 갈림 길에서 근심하지 않으며, 바위나 건물을 우회하지 않고 그대로 지나간다. 바위나 건물이 우리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빛과 에너지의 패턴이고 그것들도 그러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다른 것의 자유로운 통행을 가로막지 못한다. 우리는 물질적 존재와 공존하며 그들은 우리와 공존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그들은 우리를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완전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만지거나 냄새 맡거나 듣지 못한다고 해도 물질적 존재의 생각을 알 수 있다. 물질적 존재의 생각이란 행동만큼이나 쉽게 관찰되는 사고의 틀이기 때문이다.



천재는 우주적 지혜를 기억한다.



너희 쪽 지상의 천재들, 즉 아인쉬타인이나 오펜하이머 그리고 다른 위대한 물리학자들은 우주 법칙을 깨닫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그들은 적어도 잠재의식 상태에서는 우주법칙을 기억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곳에서는 천재로 간주되지만 이곳에서는 물리학에 소질을 가진 아주 진보한 영혼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육체 상태에 있을 때 이곳 영혼들의 도움을 받아 기적처럼 보이는 일들을 성취했다.



평범 이상으로 성공한 작가도 마찬가지이다. 세익스피어, 베이컨, 브라우닝, 빅터 위고, 그리고 다른 위대한 작가들, 그들은 이곳에서 배운 우주 법칙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고 물질세계로 가져갔던 것이다. 조화는 결코 바뀌지 않는 우주법칙 그 자체이므로 그들은 음악을 작곡하거나 그러한 조화의 리듬의 박자로 글을 쓸 수 있고, 리듬과 조화의 우주 법칙에 따라 물질적 차원의 문학과 미술과 음악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소네트는 14행의 박자에 새겨진 우주적 리듬의 본보기이다. 평소에 듣는 음악 이상으로 사람의 마음을 고양시키는 음악이나, 돈벌이에만 급급한 세속적 인간을 진보 시키는 음악은 이곳에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진보한 영혼이 그 기억을 표현한 것이다. 조화된 음악의 박자와 리듬과 화음은 이곳의 소리가 투영된 것이다. 지상에서 들리는 음악은 감미롭다. 그러나 이곳의 들리지 않는 음악은 더 감미롭다.



이곳의 음악이 그러하기 때문에 지상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음악을 초월한 그런 리듬과 조화로운 선율을 알고 있다. 명상이나 꿈을 통해서 언제나 존재하고 과거로부터 존재해왔던 자신의 실체(영혼)에 파장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은 물질적 차원에서 천재라고 불리워질 법하다. 그들은 우주적 지혜의 원천에 연결되어 있으며 아직 물질 차원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법칙을 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모든 지상의 인간들이 명상과 꿈의 상징에 매달리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아직 이 무한한 지식과 지혜의 원천에 대해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우주적 지혜는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그들이 사용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 만일 그들이 일정기간 동안 매일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 앉히고 내부의 힘과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이곳 영계와 접촉할 수 있게 되며, 그들 영혼의 창문이 베일의 이쪽으로 열리게 될 것이다.



이제 삶의 국면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명상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말해보기로 하자. 준비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준비가 영계로 가는 길과 영계의 빛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명상에 들어가면, 오래 전부터 가까웠던 영혼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처럼 신에게 가까워진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신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배우고 나면, 자신의 내부에서 과거의 잘못을 평가하고 더 고차원의 단계로 진보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한판 승부를 위해서 육체 상태로 환생할 것인지를 준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네가 지상에 있을 때 명상에 대해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이곳에서 더 빨리 진보할 수 있다. 명상을 할 때면 처음에는 깊게 호흡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깊게 호흡해서 우리의 물질적 육체가 자주 품고 있는 유해한 가스를 몸 밖으로 내뿜어야 한다. 만트라나 옴을 실시해서 너 자신이 우주전체와 하나로 녹아 드는 것을 느껴라.



너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나 신의 정수의 일부가 되어라. 살아있는 모든 창조물과 하나가 되어라. 네가 우주의 맥박에 일치하게 되면, 전체 우주가 하나라는 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과 개인적인 것을 잊게 될 것이다. 더 깊게 들어가라. 그리고 때때로 신의 영혼이 너라는 존재의 핵심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하라. 이 고요함 속에서 적어도 하루에 15분 내지 20분 동안을 보내도록 하라. 신이 원하는 대로 너에게 말하도록 하라.



기도는 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이제 기도는 어떤 가치가 있는지 말해보자. 기도는 명상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기도는 신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는 수동적인 시도보다 능동적인 시도이다. 너의 생각으로부터 모든 근본적이고 숨겨진 동기들을 제거함으로써 이런 노력을 준비하도록 하라. 그러면 너는 깨끗한 손으로 창조주에게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선을 생각하라. 그러면 네가 신의 은총이 내리기를 바라는 바로 그곳, 네 마음 속에 신이 계실 것이다.



또한 신의 무한한 전체에 용해되도록 노력하라. 축복을 구하라. 마치 그것이 주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인 양 축복을 구하라. 왜냐하면 당연한 듯이 축복을 구하는 것이 곧 믿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너를 위한 신의 의지를 알기 위해 노력하라. 신의 현존을 느끼고 네가 구하는 모든 것이 이기적 변덕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최상의 목적을 위한 것이 되도록 하라.



타인을 해치거나 경쟁자가 친구를 앞지르기 위해서 하는 기도는 응답 받지 못한다. 너의 의지가 아니라 신의 뜻대로 구해지기를 구하라. 그리고 기도가 즉시 응답 받게 되리라는 것을 기대하면서 기도하라.이런 방법들을 배우고 나면 나중에 닥칠지도 모르는 모든 일에 대해서도 준비가 된 셈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곳에서 신의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강렬하게 신성한 존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아직도 기도하거나 신을 경배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발전하는 의식 속에서 자주 신과 함께 한다. 어떤 영혼은 의식의 고차원의 단계로 진보하여 다시 지상의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이 점에 대해 말하고자 릴리가 와 있다.



"영혼이 신의 마음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면 일부러 생각하지 않아도 그 노력의 정도에 따라 생각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이 고양되고, 자유롭게 치솟으며, 환희에 가득 차게 됨을 느낀 다. 그 감동이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그 영혼은 순수한 영역에 잠겨 자신을 잊기 시작하며, 육체적 즐거움이 더 이상 자신에게 매혹적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그는 다시 물질적 삶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이곳에서 진보하기를 원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기도와 명상을 통해서 그렇게 할 수 있다.



나는 다시 육체 상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고차원의 힘과 하나가 될 때의 환희를 맛보았기 때문에 육체를 입음으로써 그런 순수한 희열을 잃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의식의 고차원의 단계에서는 우리는 자신이라는 에고를 잊어버리고 순수한 영혼이 된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신성을 경배하며, 비로 우리가 신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신의 빛에 완전히 조화된다.



내가 말하는 이 단계가 최종의 궁극적인 단계는 아니며 긴 여정의 또 다른 단계일 뿐이다. 우리는 이 신성한 빛 속에서 걸어간다. 이런 경험을 하는 동안 그 경험의 순수한 광희는 바로 우주적 진리이다.우리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빛 속에 영구히 머물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상의 삶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영혼의 진보를 위해 수행하기로 동의 했던 다른 의무를 떠맡게 된다.



이것이 포드가 이곳에 올 때까지 오랜 기간 동안 네가 자동기술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 그곳에 있는 이유이다. 너에게 자동기술을 시키는 것이 네가 자진해서 떠맡은 임무이기 때문에 나는 여태 이곳에 있었다. 네가 자동기술에 흥미를 잃어버리면 자주 그렇지만, 나는 다른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네가 필요할 때는 다시 이곳에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삶을 위하여



이제 최근에 죽은 사람 가운데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이곳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 사람을 말해보자. 그는 사려 깊은 독서와 공부 모임과 명상을 통해서, 신의 의지를 실천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길을 찾도록 도와줌으로써 다음 생에 대한 준비를 해왔다. 그러므로 그가 이곳에서 아스트랄체로 진보하는데 전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지상을 확신하듯이 이곳 영계를 확신하며,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과 이해와 관용을 지니고 살아왔다.



그는 친구와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서 고요한 명상을 시작한다. 그러면 우주의 진동이 그를 고요한 환희로 가득채운다. 그는 즉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영혼들을, 새로 이곳으로 건너온 영혼들 중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거나 잠들어 있는 영혼들을 찾기 시작한다. 이 영혼은 자신의 육체를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한탄하느라 단 일초도 허비하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정리하여 남겨 두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자 죽기 전에 그가 쓴 책들이 출간되었으며, 그는 꾸준히 진보를 계속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곳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은 이곳에 신이 준비해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이곳에서도 활동을 계속할 수가 있으며, 또 할 일도 많다는 것을 알고 기뻐했다.



손에 하프를 들고 구름 위를 거닐면서 자신의 삶을 허비하고 싶어하는 영혼은 많지 않다. 적어도 이곳에는 음치란 없다. 만일 그들이 우주와 조화를 이룬다면 그들 모두가 우주의 조화로운 음악을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말한 이 사람은 아주 빠르게 발전을 할 것이며, 머지 않아 다른 육체로 환생을 하거나 아니면 더 고차원의 영역으로 진보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가 곧 환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상에 미완성인 채로 남겨둔 특별한 일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일부러 해를 끼친 적도 없는 점잖고 친절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스승들의 지도를 받으며 특별한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다음 단계로 진보하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스승들은 시작 단계에서 진동을 바꾸도록 지시한다. 그 결과 그는 지상에의 미련을 버리게 되고 다음 단계의 더 높은 특성에 점차 적응하여 간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야 그는 최상층으로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진동을 바꿀 수 있게 된다. 비록 우리가 때때로 그들을 보는 것보다 그들이 우리를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지만, 그러나 그들 역시 이곳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왜냐하면 우리가 너희들 앞에 나타났던 것처럼 그들도 진동을 이용해서 자주 우리 앞에 나타나곤 한다. 더 진보한 영혼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다. 예를 들면 릴리는 형태를 지닌 영체로서 보다는 찬란한 흰 빛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의 실재성은 마치 그가 육체 상태로 나타나는 것처럼 분명하게 느껴진다. 릴리는 내가 전에 서너 번 이 다음 단계에 가본 적이 있으며, 그때 그곳에서 내가 필요하다고 느낀 모든 것을 배운 후 배운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육체로 환생했다고 말한다.



이 일은 나의 마지막 육체적 삶인 아서 포드의 삶 이전에 일어난 일이다. 바로 이 때문에 내가 군에 복무할 때, 수면상태에서 사망자의 명단을 미리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더 높은 차원에 있을 때 우주 모든 곳에서 발생하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나는 앞서 말했던 다음 차원을 희미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 일을 마치고 나면 다시 그 차원으로 갈 것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이번에는 영계를 믿지 않는 경우이다. 그는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뒤 며칠 지나서 정신을 차리기 시작하면 이곳에서 생명의 징후를 보기 시작한다. 그는 점차 눈을 뜨게 되고 말하자면 활발한 움직임을 본다. 그는 놀란다. 그러면서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것들이 악몽이라고 느낀다. 마치 목이 뒤틀린 닭이 마지막으로 퍼덕거리듯이 이런 움직임들이 죽음에 따른 악몽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런 환상을 물리치기 위해 애써보지만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며 그들이 육체상태에서부터 알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그는 당황해 하다가, 항의하다가, 마지막으로 설명을 요구한다. 옛날 친구는 웃으며 말한다. '찰리 우리는 다른 삶을 계속하기 전에 너에게 이야기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너는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약간 몸부림친다.



그는 의식의 이 새로운 상태에서조차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육체 상태에 있을 때, 그의 마음은 닫혀 있었다. 그는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으며, 삶이 계속된다고 믿는 사람들을 괴짜로 간주하며, 그런 생각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는 지금 주변에서 펼쳐지는 광경과 소리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조금 뒤면 슬며시 다시 쳐다보게 된다.그리고 그 풍경이 이제 약간 바뀐다.



사랑스런 나무화 꽃 그리고 친구처럼 다정한 사람들 대신에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땅 갈라진 틈이 위협하듯이 놓여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선다. 그 갈라진 틈은 더 넓어지고 그는 자신이 그 속으로 깊이 떨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가 도와달라고 비명을 지르지만 그를 안심시켜줄 친구들은 더 이상 거기에 없다. 아니면 그가 그렇게 느낀다. 이것이 바로 예전부터 목사가 경고하던 지옥으로 가는 길인가?



맹렬히 밑으로 떨어짐과 동시에 그의 마음은 고통에 휩싸인다. 그가 육체상태에서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믿지 않자 그 점을 조용히 나무라던 친절한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왜 그들은 지금 나를 돕지 않는가? 계속되는 삶에 대한 불신이 그들을 쫓아버렸던 것이다. 마치 육체 상태에서 그가 계속되는 삶을 믿는 사람들을 반박하고 쫓아내던 것과 같은 셈이다. 마침내 그는 그들의 평온한 모습을 다시 보기를 희망한다.



그는 그들이 말한 모든 영혼이 바라고 있다는 영원함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그들에게 묻고 싶어한다. 그는 심연으로 빠져들면서 그들을 갈망한다. 이런 소망이 표현되자 곧 그는 다시 그들과 함께 초원에 있게 된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자기도 모르게 신에게 감사한다. 심연은 없어졌으며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은 그에게 소망도 행위만큼이나 실질적인 것이 아니며, 생각도 행동과 같은 것이라고 확신 시켜 준다.



친구들을 위로하고 영원한 삶에 관해서 알고자 했기 때문에, 그는 생각의 틀을 통해서 친구들의 존재를 창조했던 것이다. 그는 열렬하게 가르침을 구한다. 그는 비록 닫힌 마음을 가졌지만 기본적으로는 선한 마음을 지닌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지혜의 학교에 등록하고, 영적 상태에서 깨어나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돕는 영혼이 된다.



평소 믿음이 없는 영혼은 이곳 영계에서 자신을 발견하면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영계와 같은 것은 없다고 알아왔기 때문이다. 다른 영혼들이 이곳에서 그를 무감각의 상태에서 끌어내리려고 할 때, 그들 역시 자신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라고 믿고는 적의에 가득찬 눈으로 그들을 쳐다본다. 그는 육체적 죽음 이후 벌도 보상도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천국이나 지옥은 존재하지 않으며, 영혼도 육체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고 알고 있었다.



이런 영혼은 오랫동안 소위 이런 환상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면서 혼미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는 희미하게 자신의 주변에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만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여긴다. 때때로 영혼들이 이런 상태에서 아주 오랜 세월을 보내기도 하는데 그것은 단지 다른 존재들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아직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그 영혼은 완고한 물질적 마음의 굴레를 털어버리고 영계가 실재하는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질 상태가 본질적이고 번영하는 영적 세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고 환영에 불과함을 알고 벗어나는 것이다. 때때로 이런 정직하고 의심 많은 영혼들 즉, 좋은 심성을 지녔으나 삶의 영적 측면에 대해 닫힌 마음을 지니고 있는 완고한 사람들은 그들의 눈가리개를 벗어 던져버리면 이곳에서 빨리 배운다. 그들은 낭비한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서 학교에서 배우는데 전심전력을 다하며 스승들에게 불멸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 한다.



그러나 온통 자의식으로 둘러싸인 영혼은 그의 마음은 강철로 된 올가미와 같다. 그렇게 빨리 회복되지 못하고 천 년이나 그 이상의 시간을 반 수면 상태에서 보내게 된다. 이곳에는 그런 영혼들이 다수 있다. 그들은 대단히 애처로운 영혼들이다.



육체 상태에 있을 때 영원불멸에 대하여 관심도 없었고 지상이 영혼을 위한 학교라는 것을 알지도 못했으며 지상의 이곳 저곳을 그저 떠돌면서 의미 없는 잡담이나 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그가 더 많은 영적 성장을 위해서 물질적 육체로 환생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영적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면 쳇바퀴 도는 삶을 계속할 것이다. 외관상의 목적 달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육체적 삶을 거듭 거듭 반복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영원한 삶의 실체와 영적 영역에 대하여 그의 마음과 가슴과 영혼을 활짝 열어 젖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진정한 영적 진보를 이루지 못한 때문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의도적으로 살해한 사람은 어떤가? 그는 증오와 복수심에 가득 차서 자신이 죽음이라는 문을 지났을 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는 상당기간동안 죽음과 같은 상태에 있다가 마침내 무엇인가가 그를 깨운다. 그는 깨어나서 자신이 그 모든 원인을 만든 지옥이 실제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가 보게 되는 것은 귀신이나 악마가 아니다. 그것은 증오와 시기와 탐욕, 그리고 좌절된 감정들에 의해서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이다. 그는 그 모습으로부터 꽁무니를 빼지만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이 내부에 악마를 간직하고 있었으며, 그의 근본적인 본성만이 그 악마를 쫓아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자신이 전생의 기회를 낭비하였으며 다른 많은 생에서 오히려 퇴보해 왔음을 알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제 그는 자신이 조금 전의 생으로 환생하기 전에 했던 결심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그는 전생에서 탐욕과 증오와 유혹을 극복하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선택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이겨 내지 못했다. 그는 지혜의 사원이나 배움의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완전히 잊혀졌다는 것을 믿을 때까지 아주 오래도록 고통 속에서 머물 것이다.



그가 결국 이런 절망의 구렁텅이에 도달하게 되면 그는 마침내 신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외치게 되고 이 절망의 부르짖음은 신의 귀에 도달하게 된다. 고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다른 영혼들이 그에게로 온다 만일 그가 진심으로 영적 발전을 희망하고 있다면 그는 아주 서서히 자신을 향상시키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신의 의해서 주어진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은 자신의 죄와 벌을 배울 때까지 그 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충분히 진보하면 자신이 죽인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게 될 것이다. 그 반응은 천국의 종을 울리는 그런 아름다운 것이다. 살해당했던 영혼은 아마도 자신의 육체적 생명을 단축시켜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이미 용서할 정도로 자신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이 용서는 살인자의 영혼을 고양시켜 주기 때문에 그는 점차 다른 영혼들의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다할 수 있게 되며,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교훈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너희 쪽과 마찬가지로 이쪽의 영혼들도, 신과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한 선한 영혼의 도움을 반드시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구하면 받을 것이요, 찾으면 얻을 것이며,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의 법칙이다. 구해서 받고, 두드려서 마음의 문을 열어 우주적 사랑의 빛이 그 마음으로 흘러 들도록 하라.



우리는 이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품지 않는다. 영적으로 성장하고자 하면 다른 사람에게 원한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우주의 법칙이다. 후회? 자기 비하? 이것들도 별로 나을 것이 없다. 이것들 역시 영적 성장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육체로 태어나기 위한 다음 환생을 위해서 그런 감정들을 잊어야 한다.우리가 육체 상태에서 저지른 잘못들을 원상태로 돌리기 위해서 과거 생을 회고할 때, 영적으로 퇴보하지 않고는 영적 차원에서 그런 감정들을 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국면을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감옥이나 전쟁터에서 다른 사람에 의해서 고통을 받다가 결국 이곳에서 만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만약 그들이 서로 다른 파장으로 진동하고 있다면 다시 말해 그들을 하나로 묶는 공동의 흥미가 없다면 이곳에서 만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충분한 공통의 흥미를 지니고 있다면 그들은 이곳 영계에서 같은 관념의 차원으로 끌리게 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뇌우치고 용서를 받는가? 천만의 말씀. 그런 것은 물질적 차원의 반응이며, 이곳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 자신이 육체적 고통을 경험해 봄으로써 언젠가는 자신이 한 행위를 보상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뿐이다. 고통을 받았던 사람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그런 고통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그의 과거 행위를 보상했다는 것을 느낀다. 그 결과 남에게 고통을 준 사람이 발생시킨 인과 관계의 예정표가 깨끗하게 정산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자기 비난이나 영적 차원에서 다른 영혼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사실 완전히 세속적인 일부 영혼들은 물질적 차원에서 소위 적에게 복수를 계획한다. 아마도 그가 육체 상태일 때 복수를 맹세했을 것이다. 그는 그 사람 주변을 맴돌면서 복수를 맹세하면서 그에게 앙갚음할 기회를 찾는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유령이 출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린이 같이 유치하고 완전히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곳에서 보다 상급의 지식을 익히게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복수를 생각하는 영혼은 이곳의 모든 지혜의 향연에 등을 돌리게 되고 결국 영적 퇴보를 하기 때문이다. 영적 차원에서 끊임없이 복수할 기회를 찾는 것이 물질적 차원에서 살인을 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그 영혼은 수 만년 동안 영적 성장을 지체하게 된다. 이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는 모든 잘못으로부터 모든 올바름을 완전히 깨달아야만 진보를 하게 된다.



완전한 삶을 살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하기로 결심한 사람에 대해 말해보자. 그는 빈민가의 수많은 유혹에 둘려 싸여 그것들을 모두 극복할 수가 없었다. 그는 가난하고, 배고프고, 추위에 떨고, 사랑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먹기 위해서 훔치고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훔친다. 육체를 뒤에 남겨두고 떠날 시간이 다가 왔을 때,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후회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에게 끼쳤던 손해를 보상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인생을 낭비했다는 후회로 가득한 채로 이곳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의 삶이 진짜 낭비되었던 것일까? 비록 자신의 육체를 보존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것을 훔치기는 했지만 그는 항상 다른 사람을 배려했다. 그는 악한 것이 아니라 음식과 따뜻한 것이 필요했을 때 그 유혹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이곳 영계에서 처음에 그는 자신을 용서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아직 물질 상태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도울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빈민가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욕구를 심어 줌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훔치지 않고도 음식과 따뜻함을 찾도록 돕는다.



그는 이런 가난한 사람들이 유혹에 굴복하는 것을 막으려고 매우 열심히 노력한다. 이 남자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오래도록 힘들게 일해 왔기 때문에 그의 영혼은 진보할 것이며, 아마도 자신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육체로 환생할 필요가 없다. 그의 마음이 올바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후회하고 반성하는 죄인이 죄없는 고집불통보다 이곳에서 더 사랑을 받는다.



양심은 신의 목소리



내부에서 이는 양심의 소리는 신의 목소리다. 우리 자신이 창조주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가 직면하는 심판이라는 것도 우리 눈을 가리고 있던 가리개가 걷히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연유함을 알게 된다. 베일이 걷히면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을 했고, 어디에서 바른 선택을 해서 눈에 뜨이게 진보를 했는지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자신도 잊고 있던 아주 사소한 언행들이 자신에게 커다란 진보를 가져다 주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남을 돕고 자신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선한 행위를 하며, 상심한 사람을 위로하는 편지를 하며, 기분이 우울한 낮선 사람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과 같은 사소한 행동들이 진보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사소하고 잊혀진 모든 행동들이 금전적으로 남을 돕는 과시적인 행동보다 더 많은 진보를 이루게 한다. 남에게 과시하는 행동이란 곧 하늘에 자신의 선행을 저축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실망스럽게도 우리는 자신의 진보에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우리의 진보를 지연시켰다는 것 또한 발견되게 된다. 우리는 쉽게 충고를 하고 자신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아낌없는 칭찬과 잡담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일을 했는지를 자랑스럽게 사람들에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지상에서 한 선행에 대해 많은 말을 하게 되면 물질상태에서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대신 이곳 영계에서는 아무것도 저축하지 못할 것이다.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 자신이 한 선행을 잊어버려라. 이곳 영계에서는 우리가 육체 상태에서 이미 보상 받은 선행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단지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 감사나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선행을 하면 우리는 이곳에서 풍요로운 수확을 거두게 된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감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노하지 말라. 가능하면 남을 도와주어라. 그리고 그것을 잊어버려라.



창조주의 도구로서 삶을 살아라.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 네가 일해서 얻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너 자신을 위해서 요구하지 말아라. 자신의 선행을 광고하려 하지 말고 너 자신을 결코 마르지 않는 샘이 되게 하라.그 샘에서 솟아 오르는 것은 사랑이며, 그 사랑은 아낌없이 주어지며, 끊임없이 더 많은 사랑이 솟아 올라 흘러 넘치게 될 것이다.









환경을 결정하는 시스템



이제 우리는 왜 이곳에서 영혼들이 조급하게 육체 상태로 돌아가는 문제가 자주 발생되는가에 대해 배우고 있다. 그 영혼들은 과거 생의 모든 잘못들을 평가하고, 미래에 직면하게 될 유혹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정확하게 결정할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왜 영혼이 준비가 되기도 전에 육체로 서둘러 돌아가기를 원하는 걸까? 여기서 우리는 소위 인간 본성의 단점을 - 육체적 즐거움을 향한 열정, 알코올, 섹스, 육체미에 대한 지나친 욕구, 그리고 그와 유사한 것들 - 깨닫게 된다.



일부 영혼들은 자신들이 뒤에 남겨둔 육체를 지나치게 좋아하기 때문에 적절한 다른 육체로 환생하는 기회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저 눈 앞에 있는 아무 육체로나 환생하려 한다. 이런 영혼들은 진실로 세속적이며, 육체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는 영적으로 진보할 수 없다. 어떤 습관적인 즐거움은 끝이 없고 사람을 계속되는 환생의 굴레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그 욕구가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탐욕, 섹스에 대한 탐욕, 그리고 술이나 마약 같은 것에 대한 비정상적인 갈망, 또는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습관적인 탐닉들 등 육체 상태에서 제거될 때까지 환생은 계속된다. 이것은 환생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영혼을 위한 교훈이다. 내가 한 말을 잘 이해하도록 하라. 이곳의 술 주정뱅이들은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지상의 사람들 주위로 배회한다.



알코올의 즐거움을 갈망하면서 그들을 물질적 육체에 붙들어 놓는 습관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골초나 마약 복용자, 그곳에서나 이곳에서나, 혹은 섹스를 향한 육체적 갈망을 채우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섹스광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우리가 이곳에서 배우는 매우 중요한 교훈이다. 육체로의 환생하는 영원한 굴레를 벗어나기 물질적 육체의 만족에 우리를 묶어두고 있는 족쇄를 제거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곳에 있는 동안 나쁜 습관을 고치도록 하라. 이곳에서 보다는 지상이 그런 습관으로부터 해방되기가 더 쉽다. 술을 마시지도 않고,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마약을 복용하지도 않고, 섹스를 탐닉하지도 않는 사람은 이곳에서 그런 족쇄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부를 나누지 않고 축적만 하는 사람, 정치나 종교나 다른 어떤 분야든 다른 사람의 믿음에 대한 관용이 부족한 사람은 이곳에서 모든 것에 집착하며,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말한다.



만일 그들이 육체 상태에서 인격상의 그런 결점을 고치지 못한다면 이런 현상은 영계에서도 계속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 영혼은 육체 상태로 존재하는 인간 그 이상도 아니며, 그 이하도 아니다. 자신이 지상에서 지녔던 것과 동일한 성격상의 결점, 갈망, 족쇄를 이곳에서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결점들이 수정될 때까지 영적으로 현저한 진보를 이루지 못한다.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반복해서 육체 상태로 되돌아가는 이유이다. 우리를 퇴보하게 만드는 습관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돌아가는 것이다. 육체 상태에서 그런 굴레를 버리는 것이 이곳에서 극복하는 것보다 쉽다. 영계에는 유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바르게 행동했다고 해서 보상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열심히 공부해야만 하는 학교도 물질적 세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그곳에서 우리는 유혹을 만나고 극복해야만 한다.



자살을 한 사람의 경우를 보자. 신에 의해 그에게 주어진 이 삶은 물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러나 마음은 몹시 혼란한 상태였고 자신이 신의 불꽃을 끄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한다. 그가 아직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영계에서 깨어나게 되면 모르핀 주사를 찾기 시작하거나 마약 공급업자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는 많은 영혼들이 그 차원에서 몰려다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에게 마약을 살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 영혼은 없다.



일부 영혼은 그가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러나 다른 영혼들은 물질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의 요구에 무관심하다. 이곳은 오직 세속적인 영혼이 모이는 낮은 차원의 영적 교차로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약을 찾아서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 그의 마음은 마약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더 이상 육체적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의 영혼은 그의 몸이 그랬듯이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마약을 갈망한다.



그는 땅에 앉아서 잔디를 손톱으로 움켜잡는다. 생각의 틀로 인해 이런 것들이 그에게는 육체 상태와 마찬가지로 실제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훌쩍이다가, 애원하다가,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마약을 먹지 못하면 미쳐버릴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다가 신을 저주하기 시작하고 은총이란 없다고 소리친다. 영적 상태에서도 그는 물질적 상태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마약에 중독되어 있으며, 오로지 약물을 사용해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할 따름이다.



마침내 그는 혼수상태에 빠져들고 이런 상태는 몇 개월 혹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육체 상태에서 마음이 파괴되고 힘이 약해지면 영혼 역시 병이 들게 되고 영적 성장에 부적합하게 되기 때문에 다시 영적 성장이 적합할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쉬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주변 상황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수 백년을 잠잘 수도 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일어나는데 지상에는 더 이상 자신이 알던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사람 주변에 새로 도착한 영혼들은 그가 누구인지 혹은 그가 지상에서 누구였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는 진짜 잊혀진 영혼이다. 어느 누구 하나 아는 사람이 없으며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한 때 알고 사랑했던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에 고차원의 단계로 진보를 했거나 아니면 새로운 이름의 육체로 환생했다.



그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은 전혀 없는 듯이 보이고, 마약에 취했던 잠에서 깨고 나서도 오래도록 혼수상태가 계속될 수가 있다. 그에게 각성의 불꽃을 점화 시켜 줄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냉담과 무관심이 자신을 돕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을 쫓아버린다. 그는 아무런 빛도 밖으로 내비치지 못하고 자신의 내부로 움츠러든다. 마침내 그가 신에게 도와달라고 외칠 때까지 이러한 상황이 다시 수 십년 혹은 수 백년 동안 지속 될 수 있다.



고통을 벗어나게 해달라는 청원이 있었다면 신은 수 백년 전의 가장 희미한 중얼거림까지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우리 각자의 내부로부터 시작되어야만 한다. 신은 우리가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그의 발 밑에 모이기를 기다린다. 그가 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즉시 나이든 영혼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어 그를 비슷한 상태의 영혼들이 이미 치료를 받고 있는 요양소로 데려 간다.



빨리 신에게 도움을 청한 일부는 마약 금단 현상이 완화된다. 이 사람과 같은 상황의 영혼들은 오랫동안 잠을 자고 나서야 깨어난다. 그러고 나면 더 이상의 금단의 고통은 없으며 이제는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도움이 필요하다. 그들 내부의 영적 불꽃이 다시 점화되어야 하며 보살펴지고 우리 모두가 신이라는 사실을 다시 가르쳐져야 한다. 마침내 그 남자는 치료에 반응을 보이고 다시 우아하고 강하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 남자는 자신이 왜 신에게 다가가지 못했는가를 이해한다. 즉 자신이 약물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고차원의 자아가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는 정신에 영향을 주는 어떤 것의 유혹에도 다시는 넘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다시 육체로의 환생을 자원하기 전에 그는 마음이나 영혼이 혼미하고 병든 영혼들을 위해 일을 함으로써 그 결심을 더 확고하게 다진다.



지상은 도전과 시험의 장소



만일 영혼이 육체를 지니고 있으면서 완전하게 되고자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실제로는 퇴보하게 된다. 왜냐하면 현상 유지나 진보만 가능할 뿐 그렇지 않으면 퇴보하게 되는 것이 이곳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 단계의 목적은, 유혹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을 진보하도록 도움으로써 자기 영혼의 진보를 도모하는 것이다.



만일 이점이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 나쁜 습관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게 될 것이다. 신랄한 혀를 잠재우고, 분노와 인색함을 가라 앉히며, 다른 사람의 행복을 적어도 자신의 것과 동일한 위치에 두며, 불친절한 말이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아야 한다.



영적 차원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자발적으로 돕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의 법칙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 놓여 있으며, 너희들이 지상에서 가장 짧은 기간 동안 즐겼던 것과 같은 많은 개인적 선택권이 이곳에는 없다. 육체의 삶은 가장 중요한 시험이다. 너는 그 시험을 최대한 이용하는가? 너의 진보를 지연시키고 영혼이 된 다음에도 너를 세속의 단계에 묶어 두고 있는 습관들을 버리는가?



모든 형태의 음주, 마약, 흡연, 이런 것들은 지상에서 극복되어야 하는 습관들이다. 그래야만 그것들이 다른 단계로의 발전을 방해하지 않는다. 남을 배려하는 것을 배우고, 분노보다는 사랑을 우선시 하며, 자신이 타인의 분노의 대상이 되는 것이 얼마나 싫은 일인가를 상기하여 결코 타인을 자신의 분노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남편이나 아내를 자신보다 소중히 해야 한다.



네가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그들은 너와 다른 진동의 차원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물질 세계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곳 영계에서는 다른 파장이나 진동을 지닌 영혼을 자동적으로 피하게 되기 때문에 같은 성향을 가진 영혼들만 함께 모이게 된다. 그러므로 도전과 시험이 있는 지상에서의 성장이 중요한 것이다.



이제 죽어서 이곳에 도착했지만, 자신들이 육체적 욕망을 지닌 인간이었다는 것을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로 하자. 그들은 이곳에 적응하려고 하지 않는다. 과거의 육체적 삶에서 초래한 습관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담배, 술이나 마약의 감각을 즐기기 위하여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흡입하는 그런 그룹에 끼어 들기를 열망한다.



이곳에서 그들은 애처로운 영혼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놓으려고 하지 않은 그 습관들에 구속되어 이곳에서 아직도 그 사악한 것들을 열망하고 즐기려고 하고 있다. 그들이 이런 즐거움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아주 오랜 기간을 머물면서도 영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이것은 그들 영혼의 진보에 있어서 아주 큰 방해물이다.



다른 사람을 의한 것이 아니라 이런 이유 때문에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마약을 복용하는 습관을 육체 상태에서 버리는 것이 본인에게 훨씬 이롭다. 지상에서 이런 습관을 극복하는 것이 영계에서 보다 훨씬 더 쉽다. 만일 이런 습관을 극복하지 못하면, 보통은 그 습관을 지닌 채 다음 생으로 환생을 하게 된다. 그때는 그 습관이 더 심각해져서 때로는 훨씬 치명적인 탐닉이나 중독이 되기도 한다.



이제 너를 괴롭혀 온 그 질문에 대해 대답하겠다. 내가 알코올이나 담배나 마약과 같은 것들을 아직도 계속 원하고 있는지, 그 대답은 이렇다. 만일 내가 좀 전에 마감한 육체적 삶에서 그런 습관들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이곳에서 형편이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즉 더 예리한 지각력을 지니게 되고, 더 빠른 영적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가끔 질펀한 술잔치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 주위를 배회한다. 이것은 부끄럽고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 경고다. 지상에 있을 때, 나쁜 습관을 고쳐라. 만일 네가 줄담배의 버릇을 지상에서 버리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그 버릇을 이겨내기는 힘들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음주 습관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었다. 말하자면 때때로 끊었던 술을 다시 마셨다. 만일 내가 그곳에서 완전히 술병을 버리고 주위를 다른 일에 돌렸더라면, 이곳에서 나쁜 습관에 얽매여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지 않고 한층 빠른 진보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점을 유념해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중고하기를 좋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네가 물었었고, 이것이 바로 그 대답이다. 즉 아직 가능할 때 나쁜 습관을 버려라!



끝없는 환생의 싸이클



우리가 그 동안에 몸에 밴 불완전함을 마침내 벗어버리고 신의 일부가 되기에 적합해질 때까지, 우리는 성장하고 생활하며, 사랑하고 끝없는 환생의 싸이클로 되돌아 온다. 왜 그렇게 많은 죄인들이 존재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봉사보다. 쾌락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봉사는 쾌락처럼 간단하다.



만일 많은 다른 사람들이 타인을 돕는 데서 순수한 기쁨을 발견한다면 진보 자체가 곧 기쁨이기 때문에 우리는 훨씬 더 빨리 진보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태하고 쉬운 길을 훨씬 더 자주 따른다. 게으르게 시간을 낭비하고 타인은 물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추구한다. 이것이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늘 부르던 것으로 영혼의 본성이 육체 상태에 깃드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적 욕망, 목적 없는 빈둥거림, 이기적인 방법과 아집 등이 우리가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것들 중 일부는 이곳 영계에까지 계속 된다. 일부 영혼들은 자신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거울 앞에서 몸치장을 하고, 외관상 실재라고 그들이 생각했던 멋진 옷을 입는다.



그들은 오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머리를 꾸미고, 거드름에 대한 욕구에서 창조된 멋진 집에서 살며,아주 커다란 고급 차를 타고 다닌다. 만일 그렇게 큰 차가 실재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차를 피해서 하루종일 지옥 속을 이리저리 빠져 다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직 사고의 틀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믿는 사람들에게만 존재한다.



이런 말이 약간 우습게 들리기는 하지만, 이곳 영계에까지 계속되는 물질에 대한 이런 망상을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뒤처진 영혼은 전체 인류의 진보를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이 점을 기억해라. 우리 각자가 행한 잘못된 모든 것은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점은 바로 모든 인류가 함께 진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서로 사랑하라', '너 자신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진보의 다양한 단계



우리 자신이 진보의 다양한 단계를 준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보자. 강조해 왔듯이, 그 길은 가파르고 힘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 길을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만일 네가 남을 밀어 제치면서 혼자 앞으로 나아가거나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다툰다면 너는 결코 정상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뒤에 처진 사람이 네가 올라갈 수 있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너를 끌어 내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하다. 길을 가다가 타인을 돕기 위해서 길을 멈춘다면 그것은 후퇴가 아니라 전진이다. 이것은 시간이란 물질 상태에서 운명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이다. 시간은 상대적이며 이곳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네가 있는 자상에서조차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기를 바랄 때는 그것이 기어가듯이 느리게 흐른다.



타인을 도울 시간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듯이 보이는 사람을 자발적으로 돕는다. 순수하게 자신만 진보한다는 것은 이곳에서는 불가능하다. 대신 우리는 이곳에서는 아주 분명한 우주의 법칙을 따른다. 그리고 타인에게 무관심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퇴보의 중요한 원인이며,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 새롭고 또한 변함 없는 진리에서 언제나 행복이 함께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곳에는 질투가 없고, 지위 향상을 위해 애쓰지 않으며, 시샘이나 원한도 없다. 우리 모두가 결국 하나인데 어떻게 다른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시샘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어리 털들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가? 그들은 모두 너의 두 눈이나 코나 귀처럼 전체의 일부분이다. 각자는 그것만의 주어진 임무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 어느 하나가 너의 시체의 다른 부위를 억압하거나 더 밝은 빛을 발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곳에서 우리가 신의 계획의 장대함을 깨닫는 순간 우리도 그렇게 된다.



우리 각자는 다른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임무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조화로운 전체를 만들기 위해서 협력하여 일한다. 그렇다면 왜 너희들이 육체 상태에 있을 때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못하는가? 조화로운 생각들이 너 자신을 에워쌀 수 있도록 노력하라. 고치 속으로 기어 들어가지 말고 너 주변으로 조화를 퍼뜨려라. 만일 네가 온정과 사랑을 방사한다면, 너 주변의 영혼들은 주위에 가득한 조화를 느낄 것이며 잠재의식으로부터 너에게 가까워지려고 할 것이다. 달아나지 말아라. 자신을 아낌없이 주어라. 그리고 손을 내미는 누구에게나 도움의 손길을 주도록 하라.



왜 종교의 경구를 외우기 위해, 예술이나 과학 분야에서 유명해지기 위해 애쓰는가.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영적 진보는 오직 네가 다른 사람의 진보를 얼마나 도와주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유명한 사람이 이곳 영계로 왔다고 해도 그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그가 왜 유명한가? 그는 이곳 영계에서 연유한 무엇으로 발명했을 뿐이다.



그가 완전한 음조와 울림으로 노래했기 때문에 유명한가? 그것은 창조주가 그에게 부여한 재능일 뿐이다. 이러한 재능이 타인을 돕고 그들의 길을 밝히는데 사용되었다면 이곳에서 진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타인의 짐을 거들어 주지않거나 자신의 발전에만 관심을 쏟았느냐 하는 것이 요점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기억하느냐? 토끼는 타인을 돕는 것을 잊어버렸다. 열심히 달리다가 멈추어 서서 자신의 우월함만 생각했다. 그러나 거북은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터벅터벅 걸었다.



영적 진보의 성취를 갈망하는 영혼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이 육체 상태의 전생을 스스로 평가하자마자 그들은 스승에 의해서 더 고차원의 진보를 위한 수강 신청을 하게 된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특별한 스승들이 있는데, 그들은 자진해서 다른 영혼들의 성장과 발전을 돕고자 하는 진보한 영혼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영혼들을 자신들의 날개 아래 두고 보살피는데, 말하자면 우리도 이곳에서 날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공부를 위해서 정기적으로 만나며, 이곳에서 정연한 진보를 위해서 자진해서 우주 법칙에 복종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대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물질적 차원에 있는 영혼보다 훨씬 더 많은 영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현재의 이 임무를 완성할 때까지 나는 내 진로를 결정할 필요가 없다.



이제 교과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이곳에서는 산술이나 지리가 필요치 않다. 그런 것들은 오직 물질 차원에서만 필요한 것이다. 철저법도 한물 갔다. 우리는 우주적 상징을 통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말하고 있는 언어나 단어도 불필요하다. 읽기는 아카식 레코드를 판독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하다. 물론 아카식 레코드도 우주적 상징으로 되어 있다. 쓰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곳에서 아무도 쓰지 않는다. 아카식 레코드는 펜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행위와 생각에 의해 지워지지 않게 각인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공부하는가? 지상의 과학자들에게 아이디어를 투사하고자 하는 영혼들은 과학의 기본을 공부한다. 우주법칙을 더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영혼들은 철학을 공부한다. 선함은 다른 사람들과 사이 좋게 지내기 위한 철학이고,생태학은 미래에 환생하는 영혼들을 위해 지구의 환경을 구하려는 사람을 돕기 위해 점점 더 필요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 생에서 사랑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반드시 사랑을 배워야만 한다. 왜 우리가 사랑을 배워야 하는가? 사랑이 없으면 조화도 없고, 조화가 없으면 전체 우주의 구조가 붕괴될 것이다. 사랑을 배우고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공부라는 것을 명심하라. 우리는 사랑이 육체적 매력과는 거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육체적 매력이란 지상에서 입고 있는 옷에서 연유하는 동물적 특성이다.



사랑이란 영혼 사이의 끌림이다. 사랑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인격의 거친 면들을 다듬어야 한다.그러면 더 크고 진보한 영혼들의 집단에서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이곳에서는 이런 일도 가능하다. 즉 지상에서는 옻나무를 피하듯이 서로를 피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매너와 행동과 품위의 거친 면들을 부드럽게 갈고 다듬는 과정을 거친 후에 서로에게 헌신적인 파트너가 된다.



영혼들이 조화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깨달아 갈수록 그 진보한 영혼의 집단은 너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감명시킬 것이다. 즉 전쟁이 줄어들고 민족과 국가 간에 더 많은 교류와 나눔이 일반화될 것이다. 그것은 이곳의 상태가 지상에 투영된 것이다. 지상에 혼란이 극심하다면 그것은 영계나 지상 양쪽의 상태가 반영된 것이다. 서로를 피하고 멀리 하는 조화되지 못하는 영혼들은 베일의 양쪽에 모두 영향을 끼친다.



자신에 대한 나쁜 기록을 지우는 유일한 방법은 곤란한 지경에 있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돕는 것이다. 모든 선행을 통해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기록을 해 나가는 것이다. 점수를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점수를 적어두는 것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기록되어진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자신에 대한 자서전을 지니게 된다. 바로 우리가 자신에 대한 심판관이자 배심원이다.



만일 자신이 긴 흰 수염을 기른 노인에게서 가혹한 형벌을 받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양심이며, 그것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 양심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을 것이다. 태고로부터 우리는 자신의 두루말이에 자신의 도장을 찍었던 것이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스승이나 점수 기록원을 속여 넘길 수 없다. 속임수는 좋지 않다. 우리 자신이 점수를 기록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자신을 속일 수 없다.



물질 세계에 나타나는 현상들의 법칙을 좀 더 이해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스승들이 이곳에 존재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우주적 진리에 대한 지식을 향상 시키기를 원하는 지상의 사람들에게 스승을 통하여 우리의 생각을 투사한다. 비전에 대한 이런 지식을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즉 어떤 사람은 영계와 지상을 가로막는 베일을 뚫고 다른 쪽과 쉽게 교신할 수 있는 능력을 오랜 과거로부터 발전 시켜 왔기에 양자 사이의 균형만 유지한다면 위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인격의 균형이 잡혀있지 않다면, 영계와 교신을 시도하거나 하프를 켜는 천사를 믿으며 자신을 달래거나 간에, 문제는 발생할 것이다. 그러한 불균형은 잠재된 위험이다. 천사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지상에서 영계로 옮아간 영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덜 위험하다는 발상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루쓰, 네 아버지가 전에 말했듯이, 영계를 탐구하는 데 열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인격이 확실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불균형인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사람은 신비학의 결점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 자체가 불완전 하기 때문에 위험에 빠지는 것이다.



지상에서 충분한 삶을 살았고, 환생하는 데 서둘지 않는 영혼들이 있다. 그 영혼들은 이곳과 지상 양쪽 모두의 다른 영혼들을 도울 수 있는 공부를 이곳에서 한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육체 상태에 있는 아이들이 유혹과 질병과 사고에 더 잘 견디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곳에서 많은 연구들을 한다.



이 영혼들이 육체 상태로 존재할 때는 과학자와 심리학자 그리고 의사로 종사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진보를 가져다 준다. 그들은 수면 상태에서 뿐 아니라, 깨어있을 때에도 자주 이런 생각이나 암시를 받아들인다. 갑작스럽게 떠오른 영감이 돌파구를 찾게 해주고, 바로 곁에 있는 새로운 도구나 책에서 멋진 해결책을 생각해 낸다. 졸 때나 수면 중의 잠재의식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의식적인 마음에도 영감이 스며든다.



지상의 문제들에 대한 대부분의 해결책은 이곳에서 그 문제에 종사하는 영혼이 제시한 것이다. 이곳의 우리는 그 문제들과 해결책에 대한 더 널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이미 말했듯이,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은 바쁘게 일하는 세상이다. 파괴를 위한 도구들을 발명하는 사람은 어찌 된 것인가? 그것 역시 번번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좋은 아이디어를 파괴적인 목적으로 악용하는 것은 육체적 인간들이 한 짓이지 영혼들이 한 짓이 아니다.



어떤 발명이든 선과 악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누가 그것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들이 자주 못된 머리와 손에 장악되어 모든 인류의 진보를 위해 사용되기 보다는 사악한 목적에 이용되도록 왜곡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폭도들과 비판자들을 포용하라. 그들이 큰 목소리로 기존 질서의 단점을 비난하면서 그 단점과 함께 장점까지 부숴버리는 대신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다른 삶과의 만남



거의 2천년 전의 오늘, 나사렛에서 온 예수라는 사람이 영원한 삶의 살아 있는 상징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어떤 사람은 그가 또 다른 기적을 보여주기 위해 십자가에서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 있는 그리스도는 죽음으로부터 살아 남아 거듭 영체(astral form)로 부활함으로써 삶이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육체는 실체가 아니며 단지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의 물질적 상징일 뿐임을 증명했다.



그는 자신의 설교가 진실됨을 입증했고, 그래서 태초부터 신의 힘 안에 존재해 온 그리스도 의식으로서만 아니라 육체적 예수로서도 불멸하게 되었다. 이제 성 바울의 경우를 보자 그는 다마스커스로 가는 도중 그리스도의 환영을 보았다. 그는 결코 예수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으나, 그 환영을 보는 즉시 그것이 예수라는 육체 안에 거하고 있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 대한 말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예수는 태초에 창조된 영혼의 위대한 화신이며, 때때로 인간의 육체로 환생한다. 그는 부처이고,메시아이며, 그 전부이다. 또 우리가 언제나 내부의 영혼 속에서 갈망하던 형이며, 좋은 친구이고, 중재자이며, 선의 화신이다. 신의 아들, 그렇다. 예수는 기본적인 진리로 모든 인류를 이끌어 가도록 신에 의해서 권능을 부여 받았다는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고, 너를 해롭게 하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심판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며,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대로 남에게 행하라.



그리스도의 영혼은 살아있으며, 잠시 동안 나사렛 예수 안에 존재했었다. 그러나 이 점을 기억하라. 우리 모두의 안에 거하고 있는 영혼은 신의 동일한 일부이며, 악에 저항할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초에 그랬던 것처럼 순수하고 깨끗하고 진실하게 되도록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가장 중요한 요점은 우리 모두가 육체적으로 죽은 뒤에도 완전한 인격과 기억을 가지고 영적으로 산다는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바로 이 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영원한 부분은 물질적 육체가 영혼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았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라고 기억하고 있는 다양한 화신에 대해 말한다. 그가 예수로 환생하기 전에는 다수의 다른 사람으로 환생했었다. 그리고 그런 환생들에서 그는 인간의 완전함을 추구하였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 다른 사람들에게 육체적 인간으로 살면서도 유혹을 견디고 완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때때로 우리는 예수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린다. 다른 육체적 사람에게와 마찬가지로 예수에게도 동일한 육체적 유혹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육체적 유혹을 모두 뿌리쳤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정의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왜냐하면 예수가 육체 상태에서도 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한 번의 육체적 삶을 통해 자신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사람, 그러나 풀어야 할 과거 생의 카르마가 너무 많아서 그 임무가 불가능하게 보이는 사람의 경우를 말해 보자. '한 번의 삶으로 자신을 완성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까?' 라고 너는 묻는다.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과거의 카르마가 아주 심각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는 아직도 마음 속으로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모든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하게 되면, 그는 은총의 법칙을 따르게 된다. 은총의 법칙은 진실로 후회할 때 그 사람의 과거의 죄는 사라진다. 이것이 나사렛 예수가 자신의 뒤를 이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 신성한 성령이다. 이 신성한 은총의 성령을 이용하라. 그리고 그것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사랑'이 키워드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사랑하라.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배우라.



아직도 항상 후회하고 있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데 실패 했다. 나는 예수와 같은 생에서 내가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 기회를 이용하지 못했다. 나는 정의 보다는 기계적 암기에 더 관심을 가진 꽤 보수적인 유태인이었다.



대개의 경우 우리는 이곳 영계의 기억을 물질적 마음으로 갖고 오기 때문에 때로는 과거 생의 기억이 현생으로 이어진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대부분은 과거 생에서 걸어 왔던 그 길을 가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가 몸을 입고 있는 동안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과거 회상은 자주 꿈 속에서 나타난다. 꿈이란 우리가 물질적 활동을 정지한 상태인 것이다.



이런 꿈들은 자주 과거 생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만일 우리가 그 꿈들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우리의 진보가 좀 더 쉬워질 것이다. 꿈들은 단편적인 환상이 아니라 영원한 세월동안 우리와 함께 해온 의식의 꾸준한 흐름이다. 과거의 잘못이 계속되는 수정행위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꿈은 계속된다. 너처럼 우리도 영혼을 완성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우리는 영혼들의 미덕에 의해서 변화되는 것을 보기 때문에, 그 영혼들 다음 차례로 우리 자신이 그런 변화의 모델이 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는 방법이 좋은 방법만은 아니다. 각자의 영혼 안에는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이 들어있으며, 우리 각자는 유혹과 친절함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절대자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손가락의 지문이 다르듯이 우리도 서로 다르다.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완성을 향한 자신만의 길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 각자는 무엇이 올바른지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그것을 실천하려 하지 않는가?



아무도 억지로 환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만일 우리가 원한다면 영원히 이곳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진보하기가 더 어렵다. 그러나 아주 조급하게 물질적 육체로 되돌아가는 영혼들도 있는데 이용 가능한 아무 기회라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지상의 삶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들은 이곳에 있는 동안 거의 배우지 못했고 다른 육체적 삶의 목적을 정확히 평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불구와 거지와 도둑과 강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은 적합한 육체가 준비되는 것을 기다리려 하지 않았고, 눈에 띄는 대로 아무 차나 잡아 탔던 것이다. 이곳에서 한 희망에 찬 약속들, 빨리 진보하고 지상의 사악한 힘과 유혹에 꺾이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들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슬프게도 그 영혼들이 꼭은 아니나 대개는 괴로운 좌절 속에서 이곳으로 힘없이 되돌아온다. 자신이 하기로 약속했던 것이 완수되지 않은 것을 알고서 맥이 풀린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직 육체 상태에 있을 때 모든 잘못을 솔직하게 돌이켜보겠다고 결심하라.네가 이곳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처럼 그곳에서 진지하게 회고하라. 반드시 그곳에서 회고해야 한다. 그곳에서는 아직 행로를 변경하여 더 높은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영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회고하고, 평가하고, 공부하고, 결심하고, 다음의 육체적 환생을 준비하는 것 뿐이다.



지상에서는 아직 본래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적어도 다른 사람의 길에 불을 밝혀줄 기회를 가지고 있다. '정직하게 거래하다 보면 예상치 못했던 우표를 얻게 된다.' 다른 사람의 길을 밝혀주기 위해 불을 밝히다 보면 자신의 발 밑도 저절로 밝아진다.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육체의 유혹을 극복하고 심오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가? 작고 조용한 내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릴리)



높은 진동을 하는 영혼들



고차원의 세계들이란 본질적으로 의식의 높은 수준을 말한다. 달리 말하자면 장소는 거의 동일하지만 그곳의 의식 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 차원의 영혼들은 아주 많은 준비를 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 반면에 그런 고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영혼들은 우리가 존재하는 차원에서도 아무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있는 이곳과 네게 있는 지상과의 차이가 약간 비슷한 점이 있다.



고차원의 세계에 존재하는 영혼들은 우리가 그들을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잘 우리를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거칠고 세속적인 모서리가 다듬어졌을 때 고차원의 세계로 진보해 간다. 그들이 정신적 영적으로 진보해 감에 따라 그들은 높은 수준적 비전의 깨달음을 배우게 된다. 다시 환생을 함으로써 그들의 진보가 더 빨라질 것임을 느끼는 영혼들은 좀처럼 고차원의 시계로 건너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단 고차원의 세계로 건너가면 그들은 육체로 환생하는 가장 빠른 노선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릴리는 더 많은 시간을 고차원의 높은 진동 속에서 보낸다. 그가 너에게 많은 것을 말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제한된 마음을 지니고 있는 네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전에 말했듯이 그것은 다른 차원이라기보다는 더 높은 의식 세계이다. 우주는 오직 하나일 뿐이다. 의식 수준들 간의 차이를 말로 묘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고차원의 의식세계에서 인간의 영혼은 육체 상태일 때와 마찬가지로 깨어 있으나 육체 상태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우리는 지금 속박과 긴장이 병존하는 중간 단계에 있다. 그러나 릴리가 고차원의 의식세계로 들어갈 때는 물질적인 의지와 장애에서 비롯한 모든 미련을 버린다.



다른 행성에서의 삶



다양한 의식 수준의 영혼들이 많은 행성에 거주하고 있다. 일부 영혼들의 의식 수준은 지구 거구자들보다 높고, 일부 영혼들은 더 낮다. 발전의 여러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은 진동을 통해 보내지는데 보통은 그 진동이 너무 높기 때문에 지상의 기계로는 기록할 수 없다. 그리고 가끔은 어떤 저기압의 조건하에서 충분히 재능을 지니고 있다면 가장 정밀한 기계로 그것을 측정할 수도 있다.



릴리가 말한다.

우리가 중간 단계인 이곳에서 교훈을 배우고 나면 환생을 하거나 아니면 의식의 다른 영역으로 여행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일부 영혼은 내가 있는 이곳으로 진보하는 쪽을 선택한다. 우리가 준비가 되면 즉, 자신의 철학적 대화를 완결하고 육체의 잘못을 재평가하게 되면 우리는 영혼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생각하기 위해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새로운 의식세계로 옮겨가게 된다. 그 의식세계에서 우리는 한동안 이곳 영계나 물질세계와의 연결이 두절된다.



그때 우리는, 한동안 다른 영혼들과 접촉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순수한 영적 영역에서 무엇이 생각나게 되는지 깨닫게 된다. 이것은 약간 외로운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질세계에서 만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서로 생각과 아이디어를 나누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잠시 후면 우리는 우주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 속으로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 우주 공간은 아주 높은 진동수로 진동하는 어떤 것이데 그것을 육체적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는 말하자면 천왕성의 영역에 존재하고 있다. 그곳은 아주 높은 진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에 뼛속까지 흔들리는 줄 알았다. 그곳의 대기는 극단적이며 더 정확히 말하면 공기가 부족하며,우주선이나 방사선, 그리고 진동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아무것도 그것에는 없다. 만일 우리가 견딜 수 있다면 잠시 그곳에 머물면서 발전을 위한 다음 단계를 준비한다.



나중에 우리는 금성이나 화성, 혹은 우리 행성계에 속한 의식의 다른 영역으로 이동할 것이다. 우리가 그 행성의 일부라기보다는 그 행성의 진동의 영향하에 놓여있는 것이다. 물질세계의 너희들이 지구 위를 걷듯이 우리도 이런 행성들의 표면을 걷는다. 다만 우리의 영체는 무게나 육체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오히려 관념과 비슷하다. 그래서 영혼들이 지구 위를 덮듯이 많이 존재하고 있으나 인간들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과 어울리기도 하는데 오직 관념을 통해서만 어울린다. 어떤 행성의 진동은 조용하고 부드러우나 어떤 행성의 진동은 격렬하여 밀고 당기는 상반되는 힘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모든 인류가 우주적 차원에서 하나라는 것과 우리를 지배하는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모든 행성을 경험해야만 한다.



빛의 존재

우리가 너와 교신하고 있는 중간 단계 이상으로 진화한 영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네게 말하겠다. 고차원의 세계에서는 이런 쌍방간의 교신이 불가능하다. 에드거 케이시와 같은 일부 지상의 영혼은 예외인데 그는 자신의 진동을 끌어올리고 우리는 진동을 낮춤으로써 그를 도중에서 만나는 것이다. 내가 우리와 교신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내고자 할 때는, 나는 고차원의 세계에서 이곳 중간단계로 되돌아온다. 이것이 바로 네가 자리에 앉아 자동기술을 시작할 준비를 완전히 갖출 때까지, 내가 항상 네 주변에서 대기 하지 않았던 이유이다.



내 삶의 대부분을 보낸 고차원의 세계에서 나는 모습이 바뀌었다. 말하자면 영체라기 보다는 빛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이것은 창조주의 일에 우리가 매우 열심히 헌신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우리는 한 행성의 진동으로부터 다른 행성으로 미끄러지듯 쉽게 들어갈 수 있다. 바로 우리는 광선의 형태이기 때문에 그 일에 가장 적합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외면적 형태를 취하든, 결코 자신의 실체를 잃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실체란 우리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의아해 한다. 즉, 지상에는 항상 친절하고 사려 깊고, 기꺼이 남을 도우며, 지성적이며, 아름답고, 인간의 왕이라고 할만한 고도로 진보한 영혼이 있는 반면, 거의 동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며 탐욕스럽고, 야비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영혼들이 있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너는 각자가 수많은 환생을 거듭하면서도 실체인 영혼은 항상 동일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그리고 네가 그것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나는 그 영혼들이 태초에 동일한 신의 불꽃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추구로 말해둔다. 지상과 이곳에서의 삶이 계속됨에 따라 각자는 주어진 상황에 대한 반응을 통해서 자신의 인격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우리가 지상에서 자신이 태어날 상황을 선택할 수 있게 되자, 지상에서의 환생을 거듭하면서 상황 속에 체득한 것들이 새로운 상황의 원인이 되었다. 즉 이제는 주어진 상황에 반응하여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황에 따라 새로운 발전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태초에 각자는 다른 한 쪽의 복제였으며, 둘 다 신의 사랑의 완전한 불 꽃이었다.



그러나 지상의 세계가 그들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이것은 유혹에 대한 반응을 상징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천한 멍청이가 아니라 귀족이 되고자 한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유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평가해야 한다. 쉽게 끊을 수 없는 습관을 들이지 말라. 다른 사람의 요정을 받으면 그들의 필요에 응하라. 그리고 항상 신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네가 알다시피 이곳에서 우리는 육체로 환생할 것인가 아니면 너희들이 세 번째와 네 번째 단계라고 부르는 것으로 갈 것인가를 선택한다. 이 단계들은 분명하게 구분될 정도로 다르지는 않다. 다만 세 번째 단계에서 더 높은 진동에 숙달되고, 네가 빛과 소리라고 부르는 더 고도의 주파수로 오르기 위한 발걸음이 시작된다.



이곳의 우리는 곤충의 더듬이 같은 민감한 감각을 통하여 빛과 소리의 파장에 맞출 수 있다. 이 빛과 소리의 파장은 육체적 인간을 죽게 하거나 영원히 귀머거리로 만들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우리는 가느다란 빛 줄기의 형태로 이런 고도의 힘에 조율되기 때문에 영체 상태에서는 더 이상 보호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이런 고도의 진동에 고조됨에 따라 우리는 자신이 어떤 흐름 - 비록 무슨 유동체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 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상태에 놓여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굳이 표현하자면 우주의 틀 속으로 쏟아 부어진다. 그리고 그것과 거의 하나가 되기 때문에 한 동안 자기 자신이라는 의식을 잊어버리게 된다.



우리는 전체 흐름의 일부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전에 말했던 것, 즉 우리 모두가 완전한 전체의 부분이라는 깨달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단계는 전에 암시했던 것이다. 즉 화성, 목성, 천왕성, 금성, 그리고 그와 같은 다른 행성에서 거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물질적 육체 상태로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의 의식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행성들에 생명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물질적 형태로 지표에서 거주하는 생명 형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행성들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저급한 생명 형태인 원질로부터 고도의 생명 형태인 생각의 틀에 이르기까지 진화의 다양한 단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천왕성은 사악한 영혼들이 모여드는 곳이라는 점에서 특별히 파괴적인 행성이며, 가장 고도로 발전한 행성은 토성이다. 토성은 저차원의 의식으로 인한 혼란이 없는 순수한 의식들로 구성되어 있다.생각의 형태로 한 동안 이런 행성에 거주한 영혼들은, 지상에 사는 사람들이 합리적이라고 부르는 것들로부터 때때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만일 그들이 그 후에 물질적 육체로 환생한다면 그 당시에 환생해 있는 다른 영혼들과 다소 어울리기가 힘들다.



만일 그들이 지상에서 다른 영혼들과 어울려 공동의 일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고도로 진화해 있거나 화성이나 다른 행성에서 증오나 호전적 성향만 키워왔다면 그들은 육체 상태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내가 지금 있는 이 단계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다른 행성을 방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다른 육체적 삶 사이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내기 그곳에 다시 가게 될지 아니면 환생의 고리를 완성하기 위해서 다시 육체로 돌아가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고 있다. 나는 다시는 천왕성으로 가고 싶지 않다.



인간은 지구의 독특한 생명 형태



각자의 영혼은 창조주와 다시 하나가 되려는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성장과 과거 잘못의 수정이라는 책임을 져야 한다. 만일 어떤 영혼이 지상에서 길을 잃고, 다른 영혼에게 죄를 범해서 그 죄를 보상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환생이 필요한 그런 지경에 빠진다면 어찌 될 것인가?



때때로 그 죄를 빨리 보상하기 위해서 그는 가혹한 환경의 행성이나 별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전혀 다른 존재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지구의 환경적 조건이란 새로 창조된 죄없는 영혼이 취할 수 있는 것인데, 만일 그가 다른 행성의 가혹한 환경을 견디어 낸다면 그는 우리가 지구라고 알고 있는 덜 가혹한 환경에서 많은 생애의 잘못들을 충분히 속죄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이해가 되는가? 지구차원에서는 도저히 속죄할 수 없는 영혼은 자진해서 더 가혹한 행성의 거주자가 되고, 지상의 인간이 보기에는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외관을 취하는 것이다. 어떤 영혼은 언제나 다른 별과 행성에서 환생을 거듭해 왔다. 그러므로 그들로서는 우리처럼 자신들도 인간이라고 불리우는 형태 속에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형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영혼들이 물질적 육체 없이 순수한 영혼 상태로 생각 차원에서만 존재하는 행성들도 있다. 때때로 이런 행성들의 거주자는 우리가 지상에서 육체 상태로 만나는 영혼보다 훨씬 더 높이 발전한 상태에 있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겠다고 결심한 지구의 영혼은 그들이 물질적 차원에서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처럼 주의 깊게 교육을 받게 된다.



그들은 전에 경험하지 못한 영역으로 진동을 통해서 자신을 투사하는 방법을 배운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영체만 되는 것이 아니라 여행자가 된다. 우리가 전에 말했듯이, 그들은 때로 물질적 영역의 영적 감수성이 민감한 사람 앞이나 다른 행성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여행을 통해서 그들은 우주 법칙에 대한 지식을 넓히게 되고 그들이 네 번째나 다섯 번째 단계에 이르게 되면 서너 개의 행성에서 동시에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왜냐하면 고도로 의식 상태에 도달한 영혼은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자신의 영상을 투사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베일 이쪽의 마지막 단계에 대해서 말해보자.



최고의 완전함이란 영혼이 마침내 신과 융화되어 완전한 결합이 성취된 상태를 말한다. 확실히 이곳에 있는 우리는 아직 그 천국의 기쁨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다. 즉 영혼들이 그런 궁극적인 완전함에 가까워지면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 생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접한 적이 있는 모든 생각과 개념과 사상까지 다시 한 번 재고해 보아야 한다. 그것도 우리의 삶이 시작된 태초로부터의 모든 것을.



이런 과정이 여섯 번째 단계에서 일어난다. 자신들이 모든 태도나 생각이나 방법으로 온갖 수단을 다해서 과거를 보상했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한다. 그들은 그들의 그릇된 행동을 속죄했기 때문에 신과 합쳐질 준비가 되었던 것이다. 이 결정에는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 따위가 스며들 여지가 없다.



오직 태초부터의 그 영혼의 삶에 관한 철저히 정확한 평가만 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면 그들은 완전한 평화 속에서 신과 하나가 된다. 물론 이것은 나도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진보한 영혼들은 일단 앞서 말한 완전한 순간을 경험한 다음에는 환생을 하거나 운명의 바퀴를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기술을 하려는 그녀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한 위험은 없다. 그녀는 무의식을 수호령의 지시나 의식에 다르도록 해야 한다. 만일 그녀가 의식의 지시에 따른다면 그녀는 어떤 해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잠재의식의 고삐를 풀어주는 순간 그녀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왜냐하면 잠재의식에는 과거의 모든 기억이 담겨 있는데, 그것들이 감자기 널리 퍼지게 되면 존재의 동굴 안에 감추어져 있던 기억들이 뒤범벅이 되어 버린다.



이런 기억들은 한꺼번에 풀려나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잠재의식에 점령당한 이런 사람들은 이곳 영계로 올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렇게 느슨하게 풀려서 자유로워진 잠재의식은 모든 것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올바른 판단이나 인내가 결여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불쌍한 여자는 악마에게 사로잡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즉 예수가 미친 사람에게서 악마를 쫓아 냈을 때, 미친 사람은 잠재의식에서 벗어나 현재의식의 통제력을 실제로 회복했던 것이다.



현재의식과 잠재의식의 균형을 잡는 일은 지구시간으로 오랜 세월이 걸린 다. 그러므로 이것이 잠재의식에 대한 안전장치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육체적 이간들에 대한 경고라고 생각하라. 만일 잠재의식이 정신을 지배하도록 허락한다면 그들은 판도라 상자의 온갖 악몽을 풀어 놓는 셈이다.



명상과 기도와 남을 돕는 손길을 넓게 펼침으로써 자신의 영적 수준을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들 각자에게 달려 있다. 아무도 우리를 위해서 그 길을 열어주지 못한다. 우리 각자가 그 길을 발견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 삶의 고난과 도전이 우리를 강하게 성장시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바람이 항상 등 뒤에서 불어주기만을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posted by 有然(유연)